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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평점 :
현대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예술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시가 더 이상 대중과 가까이 있지 못하고, 소설도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던 내가, 대학 진학후 소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이상문학상 작품집 '마음의 부력''을 꺼내들었다. 비평가들에게 대중의 눈에 맞추라고 요구할 수 없기에 나의 눈에 맞는 작품을 뽑아 보기로 했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소개된 작품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을까?
제44회 당선작들은 대부분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대상 수상작도 가족간에 있을 수 있는 어머니와 아들, 형제간의 미묘한 갈등을 소재로한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이다. 우리 영화에서 흥행 코드는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희생을 소재로한 작품은 한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치매 초기의 어머니와 먼저 저세상으로 간 형이라는 소재는 흥행에 적격이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풀어가듯 단서들을 찾아서 진실을 밝히는 전개 형식은 독자를 빨려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승우 작가의 서술방식은 '부재증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이를 부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담긴 소설 '부재증명'을 읽으며, 주인공이 혹시 헤리성 성격장애이거나,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이 금천에 실존했을 가능성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승우 작가만의 흡입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방식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재는 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신과 함께 1'에서 보았던 내용이고, 단서를 토대로 진실에 다가가는 전개방식은 외국의 많은 영화들에게 흔히 보았던 전개 방식이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훌륭하지만,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그의 작품을 대상의 반열에 올려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수작 중에서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다. SF 소설을 읽는 듯한 박형서 작가의 '97의 세계'는 무한 타임루프 속에서 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부성에가 느껴졌다. 윤성희 작가는 누가나 가진 가해자로서의 양심의 가책을 소재로 잔잔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블랙홀'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장은진 작가의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작품을 읽는 동안 아련한 짝사랑의 기억을 소환시키며 옛 추억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천운영 작가의 '아버지가 되어주오'라는 작품은 희생자로만 비춰질 수 있는 어머니의 삶을, 어머니 입장에서 새로운 '사랑의 삶'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 속에서 감동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제44회 이상문학상 우수작들은 모두 훌륭했지만, 나의 마음에 깊숙히 다가왔던 작품은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었다. 어머니로 알았던 존재가 아버지였으며, 우토로라는 공간을 소재로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전개와 한일간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소재, 성 소수자에 대한 성찰 등은 타작품과 분명히 비교되었다. 조그만 일상에 갖혀서 오늘의 삶에만 관심을 갖는 소설과는 달리, 한일관계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색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의 전개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끝났지만, 소설 이후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섞인 말을 자주 듣는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으며 이러한 우려를 떨쳐내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대상 작품에 공감하기 보다는 깊은 성찰을 하도록 나를 끌어 당기는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라는 작품에 대상을 주고 싶다. 심사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걱정은 당신들의 안목이 대중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지수!! 그녀의 '야심한 연극반'을 내가 뽑은 대상작품으로 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