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삶 그리고 혁명

카치아피카스, 『정치의 전복-1968년 이후의 자율적 사회운동』


『신좌파의 상상력-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이후)의 표지 그림 : www.yes24.com

바리케이트, 각목, 입맞춤. 『신좌파의 상상력-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의 한국어판 표지 그림. 해방을 향한 본능적 욕구의 확산 현상=에로스 효과. 더 많이 혁명할수록 더 많이 사랑을 즐긴다=1968년 5월의 구호…. 그리고 혁명의 순간들은 흔히 말하는 정치에서의 소외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치를 에로스화한 순간들이었다고 선언하는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생각을 시각화한 이 사진 한 장. 그 이미지는 여전히 생생하다. 빗속에서 진행된 우드스탁 페스티벌, 그 벌거벗은 몸과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로 울리는 절규도 다음의 말과 함께 선명하다.

“상상력이 실용성을 대체하고, 협동과 존엄성이 인간의 경쟁심과 냉담함을 대체함으로써,고된 일은 놀이로 되어간다!”

파리에서 버클리까지, 베이징에서 프라하까지, 맑스에서 마르쿠제와 사르트르까지, 체 게바라에서 지미 헨드릭스까지, 그리고 기억되지 않는 베트남 정글의 수많은 전사들에서부터 바스티유 광장과 시카고 공원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까지,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1968년 신좌파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어 사회과학의 새로운 고전으로 평가받는 『신좌파의 상상력』의 저자가 이제는 ‘1968년 이후의 자율적 사회운동’이라는 부제를 단 『정치의 전복』으로 自明性의 허위에 길들여진 우리의 의식을 다시 한 번 타격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엔 만만치 않은 인식이 ‘자율성’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정치의 전복-1968년 이후의 자율적 사회운동』
이후(2000) 표지 : www.yes24.com

기존의 거대권력과 자본의 논리로 무장한 정치의 전복을 꿈꾸는 자율적 사회운동 또는 아우토노미아의 목표는 무엇인가.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자율적 사회운동의 전개 양상을 서술한 후, 카치아피카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율적 사회운동의 목표는 정치의 전복이다. 즉, 국가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시민생활의 탈식민화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창조하려는 열망과 일인칭의 정치에 기반하여 자율적 사회운동들은 거대한 정부들과 기업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부과하려는 구실로 삼는 통제중심의 허위의 보편성에 반대한다. 정치의 전복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의미할 것이다. 아테네나 플로렌스 시민들이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미국혁명이 전망하고 간직한 것보다 더 많은, 전에 가능했던 것보다 질적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의미할 것이다."

욕망마저 자본의 논리와 권력에 의해 균질화해버린 상황을 ‘삶의 식민화’라 부를 수 있을 터이다. 이러한 식민 상황에서 일상생활과 시민생활의 탈식민화를 지향하는 ‘정치의 전복’은 우리의 의식에 내면화되어 있는 식민성을 자각하고 이를 타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식민성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권력의 그물이 지금 여기에서의 이대로의 삶을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향한 열정과 본능(에로스)은 질서와 규율이라는 이름 아래 길들여진다.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슬로건이 우리의 몸과 의식 구석구석에 하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아름다운 질서란 늘 폭력을 동반한다는 사실마저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자율적 사회운동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은 카치아피카스뿐만 아니다. 안토니오 네그리(『디오니소스의 노동』)와 펠릭스 가타리(『분자혁명』)도 각각의 방식으로 획일화와 식민성을 강요하는 거대권력과 정치의 허위성을 비판하고 있으며, 활자를 띠고 있는 일련의 NGO 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NGO를 비롯한 시민사회운동은, 카치아피카스가 말한 바와 같이,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확대하는 데 결정적일 뿐 아니라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율적 사회운동은 우리의 전망을 명료하게 해주고 이전 시기로부터 우리가 이어받은 왜곡된 이미지들을 제거하도록 돕는 렌즈이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나 사고방식이 사회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도 어렵다. 사회는 얼마든지 그 구성원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수많은 혁명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어떤 성격의 권력에 의해 조작되는지를 자각하고 그 허위와 기만을 전복할 수 있는 혁명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서 혁명의 이미지가 반드시 핏빛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카치아피카스가 말하듯이 자율적 사회운동은 충분히 혁명적일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과 타자의 삶을 다 함께 인정하는 사랑을 전제로 한다. 물론 사랑은 항상 투쟁을 대가로 요구한다는 것은 부연할 필요도 없으리라.

정선태 「사랑과 삶 그리고 혁명」, 『BOOK+ING 책과 만나다』, 그린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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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옹호될 수 있는가
 
대학신문 2007년 09월 01일 (토) 22:03:18 문승기 기자 msk0314@snu.ac.kr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금지돼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폭력행위에 대해 비합법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결과다.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품는 두 권의 책이 지난 7월 함께 번역돼 나왔다. 사카이 다카시의 『폭력의 철학』과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의 『폭력에 대한 성찰』이 그것이다. 특히 소렐이 자신의 혁명적 생디칼리즘(Syndicalisme) 철학을 집대성한 『폭력에 대한 성찰』은 발간 100여년 만에 번역된 터라 더욱 눈길을 끈다.

 

 

 

 

 

 

 

 

먼저 『폭력의 철학』의 저자 다카시는 세상을 폭력과 비폭력만으로 나누는 명확한 이분법을 경계한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다양한 대상을 향해 각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복잡함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장선 상에서 그는 ‘폭력 중에도 옹호해야 할 폭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탱크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행위 혹은 인종차별주의자에 맞서 흑인 폭력단이 행하는 폭력을 그 예로 든다. 여기서 저자는 옹호해야 할 폭력의 기준으로 근원적 동기의 순수성 여부를 제시한다. 누군가가 절실히 옳다고 주장하는 폭력이라도 그 동기가 불순하면 옹호의 대상일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조르주 소렐은 “옹호해야 할 폭력이 있다”고 말하는 다카시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폭력을 찬미한다. 그는 먼저 ‘억압의 폭력’과 ‘해방의 폭력’이란 용어로 폭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전자는 통치 질서를 강제하는 소수 지배자의 힘으로, 후자는 기존 질서의 파괴를 지향하는 힘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부여를 토대로 소렐은 사보타주, 보이콧, 스트라이크(동맹파업) 등 생산현장에서 직접행동을 통해 실현되는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야말로 인간의 완전한 해방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증오나 복수심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폭력이 아닌 총파업과 같은 계급투쟁적 성격이 짙은 폭력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혁명성을 찾으려한 소렐의 이러한 성찰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파시즘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 중 함께 읽을만 한 책으로는 “육체를 부여받은 우리에게 폭력은 숙명”이라고 주장한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의 『휴머니즘과 폭력』, 혁명가 네차예프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한 필립 폼퍼(Philip Pomper)의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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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
[연재] 21세기의 사유들 ① 슬라보예 지젝 - 이현우 강사 (인문대ㆍ노어노문학과)
 

2007년 09월 01일 (토) 22:08:07 대학신문 snupress@snu.ac.kr

 


 

 

▲ 이현우 강사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라캉주의 분석가이자 포스트모던 철학자이고 문화비평가다. 혹은 자신의 표현을 빌면, ‘정통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다. 그는 히치콕, 레닌, 오페라, 9ㆍ11 테러, 인권, 근본주의, 사이버공간, 포스트모더니즘, 다문화주의, 전체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많은 책들을 썼다. 그가 목표하는 바는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대중적 환상 혹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신분석적 폭로다. 그 자신의 겸손한 정의에 따르면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다룬 거의 모든 주제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재고의 대상이 된 건 이데올로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인 1989년 지젝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으로 영어권 지식계에 ‘정식’ 데뷔한 것은 우연의 일치이지만 상징적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던 그 시기에 그는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다고 주장하며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그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이름은 ‘냉소주의’다.

냉소주의는 더이상 “그들은 자기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마르크스식의 허위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것을 한다”는 역설로 규정된다. 계몽된 허위의식의 역설이다. 가령, 우리는 지폐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돈에 대한 물신주의적 태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급진적’ 지식인들은 이민자의 온전한 권리와 국경 개방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지식인으로서의 특권적 지위가 계속 보장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무지’의 폭로는 더이상 아무런 파괴력도 갖지 못한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행위와 일상에 구조화돼 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 많이 믿는다.

  ▲ 슬라보예 지젝

지젝에 따르면, 우리는 지난 세기에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을 경험했다. 하나는 70여년을 버티던 ‘정치적 유토피아’로서의 현실 사회주의의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10여년을 구가했던 ‘전지구적 자본주의’, 곧 자유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종말이다. 전자의 종언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 베를린 장벽 붕괴였다면, 후자의 종언을 보여준 ‘실재적’ 사건은 바로 2001년의 9ㆍ11이다. 이러한 종말 이후에, 새로운 갈등의 장벽들이 실재적 역사로 회귀했다. 따라서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에 우리가 ‘역사의 종말’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바로 그 관념이야말로 유토피아적 환상이다.

사실 이념이라는 대타자(the Other)의 몰락 이후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고 관용적이며 쾌락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젝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부자유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자유롭다고 ‘느낄’ 따름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오늘날의 쾌락주의는 절제의 쾌락주의다. 카페인 없는 커피나 섹스 없는 섹스, 혁명(유혈) 없는 혁명에 대한 기대와 권장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의 부재는 아예 금지를 일반화한다.

가령 지젝이 자주 예로 드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관용적인 아버지의 경우를 대비해보자. 권위적인 아버지는 “너는 그것을 해라!”라고 명령한다. 반면에 관용적인 아버지는 “그것을 해라, 하지만 네가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배려는, 하지만 “너는 자발적으로 그것을 해라!”라는 보다 더 강한 요구를 숨기고 있다. 이것이 관용의 역설이며 자유주의의 역설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오늘날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손쉬워진 만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시대의 패러독스이며, 우리는 유토피아를 다시 발명해내야 한다. 유토피아는 가장 긴급한 요구의 문제다”라고 지젝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지젝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란 관념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공간의 건설이다. 왜 자리가 없는가? 기존의 사회에서는, 즉 사회적 좌표계 내에서는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지젝이 자주 드는 것은 1917년의 레닌이다.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선택의 자유’ 대신에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다. 즉 정치적 활동(activity)이 아닌 행위(act)란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 대신에 그러한 ‘정치적 계산’을 돌파하는 어떤 광기다. “난 인간이 아닙니다. 난 괴물입니다.”라고도 지젝은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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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 2. 『Unplugged In New York』

: 더 많은 예술, 더 많은 대안을 위해





All apologies


니르바나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는 "음악적 스타일이기 전에 태도이고 지향이고 운동이다." "그들은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처럼 휘황 찬란한 의상을 자랑하지도 않고, 매력적인 춤을 선보이지도 않고, 잘 손질된 머리카락을 휘날리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지저분하게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플란넬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노동자가 신는 부츠를 신고 다닌다."
(신현준 엮음,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 한나래, PP.73~74)

이런 니르바나에게 『Nevermind』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성공을 바탕으로 거들먹거리거나 흥청망청대지 않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니르바나 멤버들의 집에는 보디가드도, 그루피도, 홍보 담당자도, 비서도, 하녀도 없었다. 그들의 집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전통적으로 락스타들은 성공을 거둔 뒤 궁핍했던 시절의 고통을 일거에 보상 받으려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니르바나의 경우는 물질적 풍요나 그와 연관된 쾌락을 즐긴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또한, 그들은 주류(락음악)의 세계가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생각을 견지했고, 그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야유를 퍼부었다. 단적인 예는 1992년 4월 『롤링 스톤』지와 인터뷰 할 때 발생한 사건이었다. 『롤링 스톤』은 니르바나를 커버스토리로 다룰 계획을 알리고 사진 촬영을 위해 커트 코베인을 불렀다. 그런데 촬영장에 나타난 그의 티셔츠 위에는 '재벌 잡지는 여전히 메스껍다 CORPORATE MAGAZINE STILL SUCKS'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생각해보라. 자신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표지모델로 삼겠다는 잡지의 표지사진을 찍으러 오면서 '니네 잡지는 엿같다'는 문장이 새겨진 옷을 입고 나오는 뮤지션을. 1960년대말 '혁명가들'에 의해 창간되었지만 이제는 주류에 확고하게 자리잡아 요트와 대형차를 광고하는 『롤링 스톤』도 커트의 냉소를 비켜갈 수 없었다.

그리고 니르바나는 백인 남성 우월주의에 젖은 80년대 주류 락음악의 추악한 전통에도 도전하였다. 작은 키와 창백한 안색과 부드로운 목소리를 가진 커트 코베인은 건스 앤 로지스(Guns & Roses)의 액슬 로즈(Axl Rose)로 상징되는 마초(marco) 이미지의 락스타와 대조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인물이었다.

코베인에게 동성애 혐오자, 성차별주의자, 스판덱스(spandex)는 동의어였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진지하고 당당하게 앞장 섰다.

그러나 현실은 커트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자신들이 그렇게도 혐오하고 부정하는 주류의 세계를 그대로 답습하는 자신들의 위상. 『Nevermind』가 공중파 라이오와 MTV를 점령하면서 니르바나는 '이전의 주류를 대체하는 또 하나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 파티장 곳곳에서 흘러 나오거나, 일부 팬들이 '니르바나와 건스 앤 로지스를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느냐?'라고 물어보는 일 정도는 그러저럭 넘길 수 있었지만 두 청년이 니르바나의 노래를 부르면서 한 소녀를 윤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더라도 니르바나가 어떤 식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뮤리엘의 웨딩』에는 아직도 아바(ABBA)를 듣는 뚱뚱하고 못생긴 뮤리엘에게 세련되고 예쁜 그녀의 친구들이 니르바나의 음악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녀의 친구들이 뮤리엘보다 더 속물적이고 그녀들에게 니르바나는 그저 아바를 대체하는 첨단의 '연예인'에 지나지 않는다.

또 『보이즈 온더 사이드』에서는 마약 딜러이자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개망나니가 우피 골드버그의 옛 애인(그는 동성애자이다)의 남자 친구로 나온다. 그런데 그가 사는 집에는 니르바나의 데뷔 앨범인 『Bleach』를 확대한 앨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의 사고나 생각은 주류 팝과는 다르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연예'일 수밖에 없는 이 모순.

결국 니르바나는 락음악이 주류 팜음악의 세계와 맺는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를 재현하고 말았다.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만 가지고는 폐쇄적인 공간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업성을 감수하면 산업화된 생산의 논리에 종속되고 만다. 이중구속. 언더그라운드 펑크 씬의 순수성에서 성장한 커트 코베인은 이런 상황에서 빠져 나올 무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3년 9월 세번째 앨범인 『자궁 속에서 In Utero』를 발표하면서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으로 돌아갈려는 메시지를 던진다. 자궁이란 그가 돌아가려는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앨범 발표 뒤에 그를 찾아온 현실은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In Utero』가 발매 1주일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이었다. '실패'를 노래한 그에게 청중들은 더 큰 '성공'으로 보답한 것이었다. 그는 점점 더 분열적이 되어 헤로인에 젖어들게 된다(신현준 엮음, 위의 책 PP.73~89에서 정리)'

자살하기 6개월전인 1993년 11월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면 초췌하고 어딘가 몽환적인 모습을 보이는 커트를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 MTV 언플러그드 앨범을 니르바나를 가장 잘 표현한 앨범이라고도 한다. 솔직히 나도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커트의 그 절규하는 듯한 보컬이 머리 속에서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 언플러그드 공연이 마지막 공연인데, 앵콜 곡으로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을 불렀다. 이 곡은 전설적인 흑인 포크 뮤지션 리드벨리(Leadbelly)의 곡으로 유명한 전래 민요인데, 이 곡의 내용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 커트 코베인은 1994년 4월 8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모든 변명'(All Apologies)을 넘어서.....

아마도 그는 전혀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로써 커트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더 많은 '예술', 더 많은 '대안'을 추구하는 얼터너티브 락 음악의 역사에서...


2002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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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1), 『Nevermind』 : 목소리 없는 세대의 목소리






Nirvana - Smells like teen spirit


어떤 음악평론가는 말한다. "펄잼(PEARL JAM)을 무시하는 니르바나(NIRVANA) 팬들도 역겹지만, 니르바나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펄잼 팬 또한 억지스럽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얼터너티브락의 역사에 아주 둔감한 사람이거나 락음악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일 게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사마중달이 죽은 제갈량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 듯이 커트코베인의 자살이후 자연스레 최고의 얼터너티브 밴드로 인정받는 펄잼 역시도 니르바나를 떠나서 생각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니르바나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니르바나는 '시대를 열어간' 밴드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니르바나는 다른 많은, 뛰어난 밴드들과 확연히 다른 역사적 의의와 무게를 보장받는다.

「Smells like teen spirit」의 엄청난 히트 덕에 지하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올 수 있었던 수많은 "그런지어"들은 이내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고, 순식간에 락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Smells like teen spirit.

거의 이펙트가 걸리지 않은 기타의 인트로로 시작해 갑자기 강력한 디스토션을 먹은 기타가 드럼과 베이스의 뒷받침을 받아 파괴적인 사운드르 난사한다. 그리곤 다소 잠잠해진 뒤 리드미컬한 보컬이 버스 부분을 장식한다. 그리고 다시 코러스 부분에서는 인트로 후반부와 유사하지만, 이제는 절규하는 목소리까지 더해진 난폭한 사운드가 듣는 이의 귀와 몸을 두들긴다. 간주의 기타 솔로도 현란한 속주가 아니라 보컬의 멜로디 라인과 동일한 단순한 연주지만, 묘한 불협화음 같은 무드 속에서 피드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긴장감을 유지한다.(신현준 엮음,『얼트 문화와 록음악 1』, P.76)

새로운 음의 충격, 낯선 화성, 공격적이고 리얼한 애티튜드... 헤비 메틀만이 락의 모든 것이라는 락매니아들의 해묵은 우상을 여지없이 깨버린, 바로 그 음악.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가 서서히 마약 속에서 파멸되어 가는 자신을 악몽과도 같이 그리고 있다면, 니르바나는 앞 뒤 가릴 것 없이 달려가 폭발하는 사운드를 갖고 있다. 커트 코베인의 머리를 관통했던 바로 그 총알처럼...


60,70년대 아트락이나 헤비메탈 사운드만을 락이라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함'에 자족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 앨범 정도는 들어볼 수 있는 아량은 베풀어야 한다. 『Nevermind』없는 1990년대 락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니르바나의 음악만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사고, 행동, 생활 등 모든 면에서 이전 세대의 '공룡밴드'들(레드제플린, 핑크플로이드, 블랙사바스) 과는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락은 태생적으로 저항적인가?"라는 '락의 진정성'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분명 60년대 락음악은 '시대정신'의 반영이요, '저항정신'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런 저항정신이나 시대정신은 락밴드들의 상업적 성공과 슈퍼스타라는 열광 앞에서 너무나 초라한 것이었다.

공연을 위해 전세비행기로 장비를 실어날라야 할 정도로 비대해진 쇼비니즘,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은 대저택과 안락한 생활, 단순히 기타의 달인이 되어가는 뮤지션들(마치 어떤 상징이 되어버린 듯한 휘어진 왼손).....

그 부정과 내파 속에서 오랜 시간 새로운 경향을 찾아헤매던 락음악은 알이엠(R.E.M.) 등을 거치며 시애틀 그런지어들에게서 하나의 새로운 시대, 경향을 맞이하게 된다. 그 폭발이 바로 니르바나의 싱글 「Smells Like Teen Spreet」과 앨범 『Nevermind』이다. 이를 통해 락음악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반항이라는, 저항이라는 청년정신을 사회 표면 위로 분출시켰다. 그리고 곧 그것은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오늘은 일단, 음악부터 들어보자.


2002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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