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 - 2. 『Unplugged In New York』

: 더 많은 예술, 더 많은 대안을 위해





All apologies


니르바나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는 "음악적 스타일이기 전에 태도이고 지향이고 운동이다." "그들은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처럼 휘황 찬란한 의상을 자랑하지도 않고, 매력적인 춤을 선보이지도 않고, 잘 손질된 머리카락을 휘날리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지저분하게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플란넬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노동자가 신는 부츠를 신고 다닌다."
(신현준 엮음,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 한나래, PP.73~74)

이런 니르바나에게 『Nevermind』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성공을 바탕으로 거들먹거리거나 흥청망청대지 않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니르바나 멤버들의 집에는 보디가드도, 그루피도, 홍보 담당자도, 비서도, 하녀도 없었다. 그들의 집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전통적으로 락스타들은 성공을 거둔 뒤 궁핍했던 시절의 고통을 일거에 보상 받으려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니르바나의 경우는 물질적 풍요나 그와 연관된 쾌락을 즐긴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또한, 그들은 주류(락음악)의 세계가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생각을 견지했고, 그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야유를 퍼부었다. 단적인 예는 1992년 4월 『롤링 스톤』지와 인터뷰 할 때 발생한 사건이었다. 『롤링 스톤』은 니르바나를 커버스토리로 다룰 계획을 알리고 사진 촬영을 위해 커트 코베인을 불렀다. 그런데 촬영장에 나타난 그의 티셔츠 위에는 '재벌 잡지는 여전히 메스껍다 CORPORATE MAGAZINE STILL SUCKS'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생각해보라. 자신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표지모델로 삼겠다는 잡지의 표지사진을 찍으러 오면서 '니네 잡지는 엿같다'는 문장이 새겨진 옷을 입고 나오는 뮤지션을. 1960년대말 '혁명가들'에 의해 창간되었지만 이제는 주류에 확고하게 자리잡아 요트와 대형차를 광고하는 『롤링 스톤』도 커트의 냉소를 비켜갈 수 없었다.

그리고 니르바나는 백인 남성 우월주의에 젖은 80년대 주류 락음악의 추악한 전통에도 도전하였다. 작은 키와 창백한 안색과 부드로운 목소리를 가진 커트 코베인은 건스 앤 로지스(Guns & Roses)의 액슬 로즈(Axl Rose)로 상징되는 마초(marco) 이미지의 락스타와 대조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인물이었다.

코베인에게 동성애 혐오자, 성차별주의자, 스판덱스(spandex)는 동의어였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진지하고 당당하게 앞장 섰다.

그러나 현실은 커트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자신들이 그렇게도 혐오하고 부정하는 주류의 세계를 그대로 답습하는 자신들의 위상. 『Nevermind』가 공중파 라이오와 MTV를 점령하면서 니르바나는 '이전의 주류를 대체하는 또 하나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 파티장 곳곳에서 흘러 나오거나, 일부 팬들이 '니르바나와 건스 앤 로지스를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느냐?'라고 물어보는 일 정도는 그러저럭 넘길 수 있었지만 두 청년이 니르바나의 노래를 부르면서 한 소녀를 윤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더라도 니르바나가 어떤 식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뮤리엘의 웨딩』에는 아직도 아바(ABBA)를 듣는 뚱뚱하고 못생긴 뮤리엘에게 세련되고 예쁜 그녀의 친구들이 니르바나의 음악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녀의 친구들이 뮤리엘보다 더 속물적이고 그녀들에게 니르바나는 그저 아바를 대체하는 첨단의 '연예인'에 지나지 않는다.

또 『보이즈 온더 사이드』에서는 마약 딜러이자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개망나니가 우피 골드버그의 옛 애인(그는 동성애자이다)의 남자 친구로 나온다. 그런데 그가 사는 집에는 니르바나의 데뷔 앨범인 『Bleach』를 확대한 앨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의 사고나 생각은 주류 팝과는 다르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연예'일 수밖에 없는 이 모순.

결국 니르바나는 락음악이 주류 팜음악의 세계와 맺는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를 재현하고 말았다.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만 가지고는 폐쇄적인 공간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업성을 감수하면 산업화된 생산의 논리에 종속되고 만다. 이중구속. 언더그라운드 펑크 씬의 순수성에서 성장한 커트 코베인은 이런 상황에서 빠져 나올 무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3년 9월 세번째 앨범인 『자궁 속에서 In Utero』를 발표하면서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으로 돌아갈려는 메시지를 던진다. 자궁이란 그가 돌아가려는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앨범 발표 뒤에 그를 찾아온 현실은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In Utero』가 발매 1주일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이었다. '실패'를 노래한 그에게 청중들은 더 큰 '성공'으로 보답한 것이었다. 그는 점점 더 분열적이 되어 헤로인에 젖어들게 된다(신현준 엮음, 위의 책 PP.73~89에서 정리)'

자살하기 6개월전인 1993년 11월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면 초췌하고 어딘가 몽환적인 모습을 보이는 커트를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 MTV 언플러그드 앨범을 니르바나를 가장 잘 표현한 앨범이라고도 한다. 솔직히 나도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커트의 그 절규하는 듯한 보컬이 머리 속에서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 언플러그드 공연이 마지막 공연인데, 앵콜 곡으로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을 불렀다. 이 곡은 전설적인 흑인 포크 뮤지션 리드벨리(Leadbelly)의 곡으로 유명한 전래 민요인데, 이 곡의 내용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 커트 코베인은 1994년 4월 8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모든 변명'(All Apologies)을 넘어서.....

아마도 그는 전혀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로써 커트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더 많은 '예술', 더 많은 '대안'을 추구하는 얼터너티브 락 음악의 역사에서...


2002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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