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혁명을 꿈꾼 시대>
출처:프레시안(www.pressian.com) 2007-06-08 오후 8:01:47


최근 나온 <혁명을 꿈꾼 시대>(장석준 지음, 살림 펴냄)는 절대로 지하철에서 읽어서는 안 될 책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져 주변 사람 보기에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 십상이다. 헬렌 켈러, 레온 트로츠키, 모한다스 간디, 파블로 네루다, 로자 룩셈부르크 등 이름만 열거해도 '하품'이 나오는 이들의 연설을 모은 책인데도 그렇다.

이 책은 20세기에 한 획을 그은 스물세 사람의 연설을 모았다. 이들은 전쟁, 자본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파시즘, 남성 중심 사회, 자본의 세계화를 극복하기 위해 말 그대로 '온몸'으로 20세기를 살았던 이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흘리는 눈물은 이들의 삶 또는 연설의 내용 탓이 아니다. 바로 그 연설을 듣고 있었을 그 때 그 사람들 때문이다.

"연설의 문구들 사이에 연설자보다 더 강렬한 잔상으로 살아 있는 것은 사실 그 현장에서 함께 가쁜 숨을 내쉬며 타오르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대중이다. 연설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그들의 박수소리(또는 야유)가 숨어 있다. 그리고 연설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의례적인 기념사처럼, 지루한 낭독이 끝나면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 모습 그대로 굴러갔을까? 아니다. 거기에는 말로는 온전히 옮기기 힘든 어떤 결단이, 행위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누가? 그 대중들, 바로 우리와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순간들을 탄생시켰다. 그 순간들이 20세기를 그마나 조금이라도 낫게, 사람이 살 만한 세월로 만들었다."


20세기 벽두부터 울린 반전의 목소리

그렇다. 1915년 12월 19일 뉴욕 워싱턴어빙 고등학교 강당에서는 반전 강연회가 열렸다. 연사는 당대의 대표적인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자라고? 그렇다. 그는 1909년부터 미국 사회당 당원이었고, 당 안에서도 혁명적 좌파에 속했다. 강당을 가득 메운 이들을 향해 반전을 촉구하는 그의 연설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노동자가 전쟁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전쟁을 통해 온갖 비극과 참상을 겪을 때, 지배자들은 그 보상을 가로챕니다. 전쟁을 핑계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억제되거나 줄기 십상이고, 노동 강도 역시 더 세지기 마련입니다. 그에 따라 가정생활도 그 평안함을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 만약에 민주 국가들이 전쟁 대비에 실패해서 '세계 제국'이 등장하게 된다 할지라도 노동자들은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보다 더 잔악하게 임금을 삭감하고 억압할 수 있는 정복자는 없습니다. 노동자는 사슬 밖에는 잃을 게 없으며, 얻을 것은 세상입니다."


이런 헬렌 켈러의 외침에도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20세기 전반기의 양차 세계대전은 결국 인류 전체를 절멸할 수 있는 원자폭탄, 수소폭탄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공포의 시기에도 헬렌 켈러의 목소리를 잇는 행동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비록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2003년 전 세계에 울려 퍼진 이라크 전쟁 반대의 목소리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아옌데에서 차베스로 이어지는 사회주의를 향한 꿈

이 책에서 가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부분은 1973년 9월 11일 오전 9시 10분, 당시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국민을 상대로 라디오를 통해 한 연설이다. 탱크가 대통령궁을 에워싸고 폭격기가 폭탄을 퍼붓는 가운데 아옌데는 "결코 사임하지 않겠다"며 쿠데타를 일으킨 군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을 약속했다.

"지금이 분명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 이 역사적 갈림길에서 저는 민중의 충성에 제 생명으로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수천, 수만 칠레인들의 소중한 양심에 심어 놓은 씨앗들은 일격에 베어 쓰러뜨릴 수 있는 게 아님을 확신하다고.

(…) 이 나라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그 운명을 믿습니다. 반역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이 암울하고 가혹한 순간을 딛고 일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전진할 겁니다. 이걸 잊지 마십시오. 자유로운 인간이 활보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크나큰 길을 열어젖힐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게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저는 제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란 것을 확신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대역죄인과 비겁자 그리고 반역자를 심판할 도덕적 교훈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카스트로가 선물한 기관총을 들고 경호원과 함께 쿠데타군에 맞서 싸우다 숨졌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사회주의 칠레를 지키고자 했던 아옌데와 그의 동지는 남아메리카의 변화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 21세기에 사회주의 베네수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우고 차베스는 그 좋은 예다.

다시 '불타는 인내'의 시간을 감내하자

아옌데가 숨진 지 며칠 뒤인 9월 27일 파블로 네루다도 병석에서 숨을 거뒀다. 아옌데에게 대통령 후보를 양보한 지 3년, "버림받고" "억눌려 온" 세계의 언어를 대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2년 만이었다. 쿠데타 군의 감시 속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 행렬에서 쿠데타 이후 칠레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내셔널'이 합창됐다.

네루다는 1971년 12월 13일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랭보의 시구("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칠레의 미래를, 사회주의의 미래를, 인간해방의 미래를 예고했다. 6월 항쟁 20년을 맞는 지금 우리의 '불타는 인내'의 시간은 지났을까? 이 책은 "아니다"고 외치며 다시 꿈꾸기를 촉구한다.

"저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랭보의 방금 시구에 표현된 대로라는 것을 선의의 사람들, 노동자들, 시인들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오직 불타는 인내를 통해서만 우리는 온 인류에게 빛과 정의, 존엄성을 부여할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노래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El pueblo unido

Inti Illimani 가 부르는 이 노래는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다. 칠레 민중가요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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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이런 류의 역사관련 책읽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학 논쟁 만큼 민족주의적 색채를 드러내는 학문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그런 민족주의적 색채에 알레르기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류의 책들을 의외로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나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책들은 전부 다 있는 것 같다. 이 무슨 이율배반(?). 이 책도 자꾸만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아래 소개글에서 언급한, "민중사학의 입장에 선다면 말갈족이 다수였던 발해사는 만주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관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책@세상. 깊이읽기]역사는 어떻게 씌어야 하는가
출처:인터넷경향신문 / 입력: 2007년 09월 14일 14:47:15
▲ 동아시아 역사분쟁
송기호|솔

유고슬라비아의 참혹한 내전이 끝난 후, 발칸 각국의 역사가들은 국사 교과서가 전쟁의 한 원인임을 지적했다. 자기 민족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웃 나라와 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적대감을 부추김으로써, 결국에는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와 알바니아를 막론하고 전전의 ‘국사 교과서’를 쓴 역사가들과 열정적으로 그것을 가르친 역사 교사들은 ‘민족의 전범(典範)’을 만들었지만, ‘내전의 전범(戰犯)’이기도 했다. 그리스를 포함해서 발칸 각국의 역사가들이 교과서 위원회를 만들어 발칸의 공동 역사 교과서 편찬 작업에 착수하기까지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번민과 고통, 정신적 공황이 어떠했을까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역사학이 핵물리학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영국의 마르크시스트 역사가 홉스봄의 지적은 굳이 새로울 것도 없다. 멀리는 지난 20세기, 가까이는 일본의 ‘새역사교과서’ 이후 21세기의 동아시아를 뜨겁게 달군 역사 논쟁의 관찰자들에게 역사학의 핵 폭발적 갈등의 잠재력은 이미 입증된 바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역사논쟁의 뇌관을 제거해 역사가들이 부추기는 핵폭발의 재앙을 방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1세기 이상의 시간을 거치면서 한없이 복잡하고 형편 없이 얽혀 있는 폭탄의 회로를 분석해서 뇌관을 제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폭을 감수하는 용기와 감정의 인내, 전문가적인 지식과 식견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성실한 텍스트 읽기와 치밀한 분석이다. 발해사 전공자로서 중국과 일본, 한국과 러시아의 문헌자료들을 섭렵한 그의 전문가적 지식이 주장의 신뢰도를 높인다. 서로 충돌하는 주장들을 각 장의 뒤에 자료로 배치해,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편집자로서의 배려도 이 책의 미덕이다.

역사가로서의 저자의 미덕은 특히 역사해석에서 민족적 감정을 절제하려는 노력에서 잘 드러난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발해사’ 전공 교수인 저자의 입에서 “발해사는 한국사에 속할 수도 있고, 만주의 역사에도 속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듣는 것은 신선하다. 민중사학이 고대사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면서도, 만약 민중사학의 입장에 선다면 말갈족이 다수였던 발해사는 만주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대목은 저자의 학문적 정직성을 잘 드러내준다. 학문적 정직성은 연구자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는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직한 추론의 결과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식 권력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왜(倭)가 고대 한반도에서 활동했고 고대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임나일본부’를 인정하는 거냐는 엉뚱한 비난을 감내하겠다는 용기의 표현이다.

동아시아 역사논쟁은 ‘사실’과 ‘거짓’의 진실게임을 넘어 ‘해석’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사실’이 ‘해석’을 낳는 게 아니라, ‘해석’이 ‘사실’을 낳는 것이다. 몽골인의 영웅 칭기즈칸이 중국인이 되고, 고구려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 민족의 역사가 모두 중국사가 되는 것도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규정하는 국민국가의 현상학 때문이다. 민족주의의 현상학이 동아시아 각국의 ‘국사’ 체계를 뒷받침하는 한, ‘사실’ 규명이 동아시아 역사분쟁을 해결하는 열쇠는 될 수 없다.

중국의 동북 공정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비판이 실증적 논박에 치우쳐있는 것은 이 점에서 아쉽다. 돋보이는 해박한 지식과 학문적 정직성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인식체계라 할 수 있는 민족주의의 현상학에 대한 비판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저자가 ‘민족과 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오늘날 국민국가로 발전해 온 ‘역사의 흐름과 계승’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구심도 있다. 국민국가를 ‘기원적 현재’로 설정하는 전형적인 민족주의 역사학의 사유방식이 특히 결론 부분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민족주의=좌파’ 대 ‘탈민족주의=우파’라는 저자의 이분법도 너무 순진하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국사의 동시 해체를 이상론으로 차치하고 국민국가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간다면, 역사는 다시 현실을 정당화하는 순응주의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인과적 설명 방식이나 통사적 역사 서술에 대한 저자의 확신은 지나치게 단단하다. 역사적 구성주의의 인식론은, 흔히 오해하듯이, 경험과학의 부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실증으로 포장된 모든 ‘사실’을 해체하는 ‘급진적 경험론’이다. 역사적 구성주의를 전략적으로 전유하기에는 저자의 인식론이 너무 본질주의적이다.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리’도 권력과 기술과 지식의 접합 속에서 변화하는 전략 개념이라면?

〈임지현|한양대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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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2002/04/01

R.E.M. 『Automatic for the People:민중을 위해』 : 절망과 고뇌, 상실과 죽음의 심포니



Everybody Hurts

Nightswimming

만약 누가 나에게 199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ROCK 음반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약간의 망설임은 있겠지만 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 : 민중을 위해』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얼터너티브의 비틀스'라 불리울 정도로 R.E.M.은 이미 우리 시대의 전설적 밴드가 되어버렸다. 니르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이 가장 존경했던 밴드가 R.E.M.이었고, 자살하기 직전에 마이클 스타이프(R.E.M.의 보컬)에게 전화를 걸어 하룻밤을 세워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미국의 수많은 얼터너티브 밴드들에서부터 영국의 RADIOHEAD 에 이르기까지 가장 영향을 받은 밴드이자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R.E.M.을 꼽는다.

왜 R.E.M.을 얼터너티브의 원조로 간주하는 것일까? 사실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많다. 음악적으로 보면 R.E.M.은 90년대를 뒤덮어버린 얼터너티브 밴드들과는 확연히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아마 니르바나나 펄 잼(PEARL JAM)식의 분노와 충동의 분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R.E.M.의 전혀 '하드하지 않은' 이 시기 사운드는 다소 이질적이기조차 한 것이다. 이런 R.E.M.이 얼터너티브의 원조로서 평가받는 이유는 아마도 음악만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나 철학 등 음악 외적인 측면이 더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밴드의 초창기, 그러니까 레이건 등장 이후 노골적인 '레이거노믹스'를 표방하던 때부터 R.E.M.은 당시의 주류 팝 뮤지션들과는 달리 사회참여적 발언과 메시지들을 담은 노래들을 통해 예술적 독창성과 신념을 고수하고 끊임없이 변모하면서 훌륭한 앨범들을 창조해 내는 R.E.M.의 자세 그 자체가 후배 뮤지션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하나의 모범적 지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1992년작 『Automatic for the People』.  만돌린,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폭넓게 사용하여 격조있는 사운드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가 완벽하게 하나의 '컨셉'을 일관되게 그리고 있다.

"죽음, 가치관의 상실, 고독, 소외"라는 주제로 전곡을 무겁게 감싸고 있는 분위기, 곡 하나하나에서 절절히 배어나오는 절망과 고뇌의 그림자... 그래서 이 앨범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듣는 편이 좋다. 수록된 12곡 모두가 그야말로 명곡이라 딱히 어느 곡만을 끄집어내어 설명하기가 곤란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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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사이트로 들어가 보십시오.
http://hometown.weppy.com/~remhome/

1. Drive
「Drive」는 앨범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주는 트랙이다. 어두운 기타 인트로로 시작된 곡은 우울하면서도 자조섞인 스타이프의 보컬은 시작부터 듣는 이를 한없이 가라앉게 한다.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고, 아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말해 주지 않는' 고독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R.E.M. 특유의 감성적인 사운드가 다채로운 현악과 함께 곡을 충만시키고 있는 것이다.

2. Try Not To Breathe
「Try Not to Breathe」는 마치 스코틀랜드 민요를 듣는 듯한 사운드를 내고 있다. 우울하게 고통스러운 자조를 되풀이하던 것이 첫 곡 「Drive」였다면 「Try Not to Breathe」는 아련한 기억의 근원을 돌이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사운드는 더없이 안정감있고 두텁다.

3. The Sidewinder Sleeps Tonite
「The Sidewinder Sleeps Tonite」에서는 분위기가 일단 전환되는데, 이 앨범에서 흔치 않은 업템포의 곡으로 세련되고 탄력감이 느껴지는 트랙이다. 곡의 후렴부에 매력적으로 되풀이 되는 'Call me when you try to wake her up'은 아주 빠른 스피드로 노래되고 있어서 얼핏 들으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을 정도.

4. Everybody Hurts
그들 자신들의 말을 빌자면 그냥 듣기만 해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같은 감상적인 곡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밴드의 의도라고 하는데, 그 의도는 충분히 충족된 것 같다. 가녀린 어쿠스틱 사운드와 애잔한 느낌으로 거의 클래식 수준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곡을 R.E.M. 미학의 완성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5. New Orleans Instrumental No. 1
제목 그대로 Instrumental인데, 2분 16초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깊이를 담고 있는 곡이다. 『Out of Time』의 「Low」를 연상하게 하는 우울한 단조의 분위기이다.

6. Sweetness Follows
「Sweetness Follows」는 첼로의 인상적인 인트로로 시작하는데 죽음과 단절감이라는 주제에 걸맞는 무거운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앨범 전체에서 가장 우울한 감상이 잘 살아 있는 곡이고, 황량해진 영혼을 진혼하는 느낌을 준다. 스타이프의 보컬은 허무하게 낮은 음역대를 오간다.

7. Monty Got A Raw Deal
이 곡에서부터 앨범의 분위기는 급변하여 격정적인 감상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이 곡은 어쿠스틱 기타의 인상적인 멜로디로 시작되어 드럼의 연타와 함께 다소 템포가 빨라지는 곡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8. Ignoreland
「Ignoreland」는 의 감상이 효과적으로 고양되면서 3번 트랙 「The Sidewinder Sleeps Tonite」처럼 업템포의 곡이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지성파 밴드 R.E.M.이라는 평가가 수긍이 갈 만큼 사회적인 비판과 분노의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부시와 클린턴이라는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라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공화당에 대한 비판은 아주 노골적이다.

9. Star Me Kitten
「Star Me Kitten」에서 우울한 정서는 감당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절정을 이룬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앨범 전체를 통해 가장 어둡고 가라앉은 저음의 보컬을 들려주고 있다.

10. Man On The Moon
이 곡에서부터 후반부의 세 곡은 모두 어쿠스틱시기 R.E.M. 사운드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트랙들이다. 잔잔하면서도 풍요로운 사운드는 그 이상을 논하기 힘들 정도이다. 편안하고 따뜻한, 꾸밈없는 정서가 듣는 이를 감동시킨다. 'Yeah, yeah, yeah, yeah' 하는 후렴구도 독특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11. Nightswimming
「Nightswimming」은 연주에 앞서 음색을 가다듬는 오케스트라의 잼과 함께 시작된다. 앨범 전체를 통해 가장 클래시컬한 느낌이 부각되는 명곡이다. 사운드의 뼈대가 되고 있는 피아노는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한밤중에 수영을 한다는 로맨틱한 상황 설정도 감성을 자극한다. 상실되고 소멸되어가는 것들에 대한 애달픔, 지나간 사랑의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노래하고 있다.

12. Find The River
거리를 바라보며 눈 앞에 스치는 풍경들을 하나하나 뇌리에 새겨두면서 떠나가는 내용의 가사는 쓸쓸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의 담담함, 허무함도 짙게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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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2007/09/15/02:50), 왕자웨이 감독의 <2046>을 보고 있다. 케이블 홈CGV에서. 본 횟수로 따지자면, 아마도 다섯 번째 아니면 여섯 번째인 것 같다. 영화관, 비디오, 케이블tv, 또...???

장쯔이가 말하고 있다.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만나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나를 그런 여자들 취급 하지는 말아요." 이 단순하고 쉬운 영화를 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지...

<아비정전>이 생각난다. '발없는 새'도 생각난다. 유덕화와 장국영의 기차씬도 생각난다.

'장국영'. 그는 왜 자살했을까?


집 앞의 "홈에버"를 멀리 한 뒤로 오산의 "이마트"까지 장 보러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주, "이마트"에서 산 와인이 그런대로 괜찮다. 어젯밤 개봉해서 한 잔 하고 오늘 두 잔을 마시고 있다. 낮부터 '몬순형 스콜' 같은 빗줄기가 내렸었다. 태풍 영향인가?

어제 저녁 7시. 수원에서 몇 안 되는 지인을 만나 술 한 잔 했다. 순대전골에 소주 한 병. 그리고 집에 와서 맥주 2캔, 그리고 와인..... 자야 되는데, 술이 덜 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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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품으로서의 생애

레이 몽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문화과학사(2000)


칸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그의 『순수이성비판』 읽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작가와 작품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작가를 아는 것이 작품을 아는 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기에 가장 큰 오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하겠다. 작가와 작품을 혼동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작가의 삶은 또 다른 작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작가의 삶을 다루는 평전의 독립적인 영토가 어디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삶은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 따라서 훌륭한 평전의 주인공은 의미 있는 작품을 쓴 사람이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다. 이 점에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철학을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소박한(?) 야심과는 상관없이 훌륭한 평전의 조건을 갖추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이 아니라 그의 삶인 '철학하기'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유럽의 최고 갑부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전반기 삶을 지배했던 것은 부정직한 여러 허식들과의 대결이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거짓말에 대한 결벽증적인 자기 검열, 화려한 장식이 없는 기능 중심의 가구들, 센티미터 수준까지 정확히 계산해서 지어주었던 누이의 집,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준 막대한 유산에 대한 거부(스스로 번 것이 아닌 어떤 돈도 받지 않기 위해 그는 온갖 치밀함을 동원한다!). 학위 논문으로 동과되기 위해서는 논문의 여러 형식적 요건들(주석을 다는 것 따위)을 갖추어야 한다는 무어의 편지에 그토록 분노했던 것도 그것들이 논문의 훌륭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허식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만의 유혹과 부정직의 허식을 떨어내려는 투쟁이 철학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의 요구로 나타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러셀은 잉크 세 방울 떨어뜨리며 세계에 최소한 세 개의 사물이 있어야 함을 인정하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세계 전체에 대한 어떤 주장도 무의미하다고 거절했다. 그가 인정한 것은 단지 '종이 위에 세 방울의 얼룩 무늬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부터인가 철학이 "움직이는 방향을 계속 바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사실 철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삶의 문제였다. 처음에 그는 명제를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논리학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세계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고 언어가 그것을 표상한다면, 명제의 참/거짓은 언어와 그 대상인 실재의 일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이전 모델을 완전히 뒤엎기라도 하듯이,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언급하지 않고 그것에 대응하는 실체를 찾는 시도는 헛되다"고 말한다. 단어의 의미는 삶과 무관한 영역에 자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형식 자체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의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표현되는 그의 새로운 삶이다. 특히 러시아의 노동자로 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유럽의 낡은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혁명 후 러시아에서 시작되고 있음에 흥분했다. 불행히도 러시아는 그 '저명 인사'를 노동자보다는 대학 교수로 모시고 싶어했고,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나는 이 책에서 그의 철학적 전환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삶의 전환을 목격했다. "빈손으로 떠나느니 이 요새에서 피흘리며 죽겠다"는 절규도, 대화에서 친구들의 논리적 헛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전투적인 태도도 사라졌다. 대신 그는 삶의 행복을 위해 철학을 사용할 줄 아는 삶의 기술을 얻었다. 친구들은 유럽 최고 갑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빈털털이가 된 그를 즐겨 불렀고, 그는 기꺼이 그들에게 자신의 철학적 재능으로 얻은 보물들을 나누어주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는 『논고』나 『탐구』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자신의 또 다른 위대한 작품을 이렇게 마감했다.

"친구들에게 전해주시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고병권, 「위대한 작품으로서의 생애」, 『BOOK+ING 책과 만나다』, 그린비(2002)

이곳 여수에 온 뒤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지고 있는 책을 읽고 싶을 때 바로 읽지 못하고 참고하고 싶을 때 참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숙소로 사용하는 원룸에는 불과 10여 권의 책만이 있기에...

레이 뭉크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850쪽에 달하는, 제법 두꺼운 전기이지만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로 흡인력 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이건 역시 고병권의 말대로 그의 삶이 주는, 인상적이고 강렬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뭐, 그럼에도 아직 난 그의 <논고>나 <탐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각각 두세 번은 읽었을 거 같은데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탐구>는 서광사 판본인데, 최근에 새로이 번역되어 나온 책세상 판본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200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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