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옛 추억의 그림자, <광식이 동생 광태>
 
 
"인연이라는 것은 운명의 실수나 장난 따위도 포함하는 것 같아요."
 
 
 
지난 토요일 오후, 혼자서 영화를 봤다. 제목만 가지고는 광식이 핵심인물인지 광태가 핵심인물인지를 알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고 이미 다 자라버린 남자들의 ‘성장영화(?)’ 같기도 한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영화의 내용은 스토리 라인이 단단하지만 특별하게 기교를 부리거나 하지 않고 단순하다. 1부 ‘광식’, 2부 ‘광태’, 3부 ‘광식이 동생 광태’로 이어지는 3장 형식을 통해 광식, 광태 형제의 사례를 각각 제시하고 3장에서 감독 나름의 답변을 제시하는 식이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속시원한 고백 한 번 못해보고 7년째 탐색만 하고 있는 광식. 나이는 형보다 7살이나 어리지만 만난 여자의 수는 형보다 70배는 많은 동생 광태. 그는 365일 작업 중이며 가슴은 윗주머니에 넣어두고 몸만 주기 때문에 고민할 이유가 없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 가지고 이야기 하면 이 이상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광식이 동생 광태>는 여기에 영화를 보는 사람 나름의 슬픈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덧붙여진다. 영화가 그저 보여지는 대로 읽히는 텍스트가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살을 붙이고 감정을 이입시키는 작용을 하게 만드는 쌍방향 통신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누구나 한 가지씩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희미한 옛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영화라 할 수 있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하나하나 엮어나가는 광식의 에피소드들이 주는 아련함, 생각없이 쿨한 척 여자의 몸만 생각하는 광태의 에피소드들. 과연 그것들이 날실과 씨실로 엮어져 우리에게 보여지는 삶의 모습은 우리 자신과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다면 가까운 영화관을 찾을 일이다.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추억의 가요들을 듣는 즐거움 또한 만만찮다. 다만, 영화 막바지 윤경의 결혼식 장면에서 광식이 무반주로 부르는 <세월이 가면>은 너무나 처연하기에 가슴 한 구석이 쏴하기는 하지만….

2005 12 13


<세월이 가면> - 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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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영화 좋아합니다. 그냥 로맨틱 코미디로 치부하기엔 생각할 꺼리가 좀 있죠. 둘의 너무나도 차이나는 작업방식도 그렇고. 아니 한 명은 작업도 못하죠.

내오랜꿈 2007-09-17 23:1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충분히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영화죠.

개봉 당시 주위의 아는 부부들에게 괜찮은 영화라며 보라고 권했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무슨 애들 장난치는 영화냐"며, "니가 무슨 20대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더랬습니다..-.-

마늘빵 2007-09-18 09:3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아 이거 심오한 영환데.
 

슬프디슬픈 꽃망울로 툭 터진 ‘하얀 노래’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
① 욕심도 사랑도 죽음도 엮어 마흔세 살 카센타 더부살이 삶에 불어온 찔레꽃향기

» [화보] 장사익의 웃음.

 



왜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프다고 했을까?

그는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놓아, 그것도 모자라 밤새워 울었다고 노래했다. 아니 노래를 불렀다기보다 울부짖었다.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불리는 장사익(59). 가슴이 떨렸다. 보름전 인터뷰 약속을 하고, 막상 그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진한 흥분이 온 몸을 감쌌다. 지난 26일 그와의 인터뷰는 그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마치 광(狂)팬의 마음가짐으로 진행됐다. 자하문 너머 보이는 북한산 자락에 자라잡은 그의 자택 2층.

한쪽 벽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북한산 기슭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그의 응접실이자 작업실에서 그가 끓여주는 중국 보이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전날 예술의 전당에서 펼친 ‘노래판’의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 그러나 깊은 주름과 적당히 자란 희끗희끗한 턱수염이 잘 어울린다.

» 장사익이 서툴게 잘라온 사과와 외출했다가 뒤늦게 귀가한 부인이 내놓은 딸기.

» 찻잔 테이블을 겸한 응접실 나무 탁자.

» 장사익이 손님 접대를 위해 다기에 손수 끓인 중국 보이차를 내놓았다.

» 2층 응접실 겸 작업실의 한쪽은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북한산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건 아니다’ 생각에 새납 딱 3년 배워 인생 바꾸기로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찔레꽃>의 가사에 대한 궁금함으로 실타래를 풀었다.

"왜 찔레꽃 향기가 슬프다고 했죠?"

(사실 이 노래를 늘 즐겨 들으며 궁금했다. 찔레꽃 향기에 대해 별다른 선입견은 없지만, 꽃 향기에 진한 슬픔을 이입시키는 것은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1992년 말께었죠. 내가 43살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 변변한 직업도 없이 친척이 하는 강남의 카센타에서 수리하러 온 차를 주차시키며 살아가던 때였죠. 바닥이었습니다. 생의 바닥이라고 느껴졌어요. ‘이건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새납(태평소)를 배우기로 했어요. 더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40대 초반 자신 인생의 역전을 꿈꿨단다. 그럼 인생 역전과 찔레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찔레꽃>에서 찔레꽃을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럽다’고 표현했다.

“봄이면 배 고파 들판에서 따먹던 그 꽃에 내 모습이…”

찔레꽃이 그의 입을 통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어요. 그때는 잠실 고층 5단지에 살았어요. 5월 어느날 아파트 단지를 나오는데 어디선가 진한 꽃 향기가 느껴졌어요.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실려온 꽃 향기였어요. 주변을 보니까 붉은 장미만 눈에 띄었어요. 분명 장미냄새는 아니었어요. 장미덩쿨를 살피고 있는데 흰 꽃잎의 찔레꽃이 수줍게 피어 있는 것이 보였어요. 순간 어릴 때 기억이 났어요. 봄이면 들판에 핀 찔레꽃을 따 먹곤 했어요. 찔레꽃은 회충을 죽인다고 어른들이 말하곤 했어요. 장미덩쿨 뒷쪽에 나지막히 옹기종기 피어 있는 찔레꽃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찔레꽃이 내 모습처럼 보였어요.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폼잡지 못하고, 쭈삣쭈삣 눈치나 보고 있는, 그런 모습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슬퍼졌어요. 그냥 슬펐어요.”

장사익은 그 감정으로 <찔레꽃> 노래를 만들어냈다.

“막 울었어요. 그리고 막 토해냈어요. 슬픔을 쏟아내니 개운해졌어요. 슬픔이 씻겨나가고 마침내 기쁨으로 승화되는 느낌이었어요.”

피아노의 조용한 반주 속에 나지막하게 시작되는 그의 <찔레꽃>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나지막하게 읊조리듯 시작한 이 노래는 점차 톤이 올라간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이제 중창단과 함께 반복한다)

· · · 후 렴 · · ·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춤추며 울었지/ 아! 당신은 찔레꽃”

비록 가사에서는 ‘당신은 찔레꽃’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가 꽃향기에 취해 울었다. 어느날 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를 취해 만든 <찔레꽃>.

이 노래는 장사익 본인뿐 아니라 이 노래를 듣는 많은 이들의 감정샘과 눈물 샘을 오늘도 진하게 자극한다.

» 응접실 한쪽에 있는 징


» 목포의 눈물 악보.


» 창밖을 바라보며 장사익이 노래를 연습하는 곳. 우리 가요 악보책과 기타가 놓여 있다. 악보책엔 ‘목포의 눈물’이 펴져 있다.


술집 벽지에 휘갈겨 쓴 시, 쓰레기통에서 찾아서 거침없이

이번엔 그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노래풍을 그대로 보여주는 <국밥집에서>의 가사를 물었다.

노래 중간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라는 익숙한 ‘희망가’가 삽입된 이 노래의 후반부에는 장사익이 비장한 톤으로 외친다.

“그렇다/ 저 노인은 가는 길을 안다/끝내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다”

노인의 죽음을 초월한, 인생을 달관한 경지를 한 줄로 표현한 이 노래를 들으면 속세의 부질없는 욕심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 노래의 가사는 누가 만든 것이죠?”

“최산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최산이 강남의 어떤 술집벽에 휘갈려 놓은 시죠. 항상 이 시가 좋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저 시로 노래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먹고 그 술집을 갔는데 벽지를 새로 한다고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거예요. 그래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그 시를 찾아 냈어요. 그리고 노래를 엮었죠.”

엮는다. 그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엮는다’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삶을, 노래를, 인생을, 고뇌를, 욕심을, 죽음을, 사랑을 줄줄이 엮는다. 그리고 그가 엮은 노랫 가락은 그의 입을 통해, 누에고치가 비단실을 풀어내듯 줄줄이 내 뿜는다.

그의 흥얼거림과 온 몸을 감싸는 끈끈함은 듣는 이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과연 어디서 그의 노래가 품고 있는 마력과 괴력이 생겨난 것일까? (계속)

» 소리꾼 장사익에게 풍경소리는 어떻게 들릴까.


» 깊게 패인 입가의 주름, 희끗희끗한 턱수염, 손을 쓸어넘긴듯한 머리칼... 북한산 자락의 집에서 만난 소리꾼 장사익의 너털 웃음은 여전했다.



글·사진 <한겨레> 이길우 기자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1 30(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187385.html



찔레꽃 -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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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 허구적 세계의 진실




1. 보르헤스의 『픽션들』

보르헤스는 철학과 문학 '사이'에 있다. 즉 그는 철학을 문학화하며, 동시에 문학으로 철학을 한다. 가령 『픽션들』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각기 하나의 철학적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백과사전을 통해 하나의 세계, 하나의 새로운 혹성을 만들고자 했던 시도를 다루고 있는 「틀뢴...」은 백과사전을 통해서 모든 지식을 담고 배열함으로써 진리에 이르고자 했던 18세기 계몽주의의 꿈을 슬며시 뒤집음으로써 지식과 현실의 관계에 관한 우리의 계몽적 통념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지구 상의 어떤 지점에 존재하는, "깨달음 자체인 어떤 사람"을 찾아가는 「알모따심을 찾아서」는 그렇게 "찾아다니고 있던 자가 찾는 자가 동일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불교철학적 '신성' 혹은 내재성을 다루며, 하나의 동일한 텍스트가 상이한 외부적 조건을 통해서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텍스트와 외부성의 문제를, 혹은 연기적(緣起的) 조건의 문제를 다룬다. 루이스 캐롤의 암시를 확실하게 밀고 나간 「원형의 폐허들」은 타인의 꿈 속에 존재하는 사람을 통해서 현실과 꿈의 관계를 다시 철학적 주제로 부상시킨다.

또 스스로 카프카에 대한 영향을 명시하고 있는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추첨의 모든 단계에 우연을 개입시키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우연의 영원한 놀이'라는 니체적 관념이 카프카가 말하는 '무한한 연기(延期)'와 얼마나 잇닿아 있는가를 보여주고,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회고적 시간구조를 가진 소설의 형식을 통해서, 반대 방향의 '무한한 연기'를, 혹은 상반되는 가능성이 공존하는 다양한 잠재성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우주를 하나의 도서관으로 변형시킨 「바벨의 도서관」은 수학적 존재 내지 수학적 진리 개념을 수학적인 형식으로 다룸으로써 존재와 진리, 지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되던지고 있다(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식의 증명에 대한 풍자; 카발리에리의 역설을 이용하여 무한한 도서관을 한 권의 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주석--이는 나중에 「모래의 책」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아마도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작품일 「끝없이 두 갈래로 가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상이한 가능성을 갖고 펼쳐질 시간적 세계를 정원과 길이라는 공간적 형상으로 변형시켜 병치시킴으로써 시간에 관한 선형적 관념을 전복하고 있다.

보르헤스가 가장 빈번하게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인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완벽한 기억, 순수한 기억이 그 자체로는 사고할 수 없는 무능력을 뜻할 뿐이라는 점을 드러내면서 기억에 관한 통념을 극한에서 뒤집는다. 언표주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언표행위의 주체로 하여금 언표주체 내지 언표대상이 되게 하여 진행되는 「칼의 형상」에서는 바로 그 전도된 주체의 위치를 이용해서 억압적 세계, 비열하고 치졸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대개는 언제나 남의 탓을 하게 마련인 '나 자신'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고백의 형식을 벗어난 고백), 들뢰즈가 배신과 속임수의 구별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는 「배신자와 영웅에 대한 논고」에서는, 배신자와 영웅의 역설적 단일성을 통해서 모든 외부를 삼켜버리는 목적론적 관계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목적론에는 외부가 없다!). 「비밀의 기적」에서는 시간의 선형성, 시간의 외재성, 시간의 단일성에 대한 반문을 정지된 시간의 형식으로 체험적 시간을 독립시키는 방식으로 던지고 있으며, 비밀의 문제를 다루는 「불사조 교파」에서는 가장 완벽한 비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유지되는 비밀이란 모든 말에 의해 지칭되는 비밀, 감추어지지 않은 비밀이라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소설들에서 허다하게 많은 책들을, 때로는 있는 저자의 있는 책을, 때로는 있는 저자의 없는 책을, 또 때로는 없는 저자의 어떤 책을 뒤섞어 인용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상호인용의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확실성의 관념이나 문헌학적 진리 관념을 조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은 인용과 재인용이며 그것의 변용일 뿐이라는, 다시 말해 인용과 변용이 바로 생산이고 창조라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소설을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로 만들고, 그 텍스트들에 자신 스스로 등장하기도 하고 '나'와 '보르헤스'라는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하면서 전통적인 저자의 관념을 깨고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자기 소설의 문체에 대해 연구하려는 시도에 대해 가볍게 비웃는다. 즉 자신은 문체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간결함과 응축(모든 말들을 다 담는 한 마디 말을 찾는 시도가 빈번하게 반복된다), 그런 만큼 별다른 수사 없이 지극히 간결하고 평이하게 쓰여진 문장들.

어쨌거나 보르헤스가 다루는 이런 주제들의 일부는 많은 경우 2-30년 정도 지난 후,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철학적인 담론으로 다시 제출된다. 그런 점에서 놀라운 비동시대성(선구적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나중에 보니 자신이 보르헤스의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던 푸코는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 보르헤스의 글을 직접 언명한 바 있지만, 가령 「저자란 무엇인가」라든가 「도서관 환상」과 같은 글에서 보르헤스적인 주제를 철학적 진지함을 갖고 천착하고 있다. 나중에 몇몇 불만스런 점들에 대해 촌평하기도 하지만,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니체의 영원회귀를 다루면서 보르헤스를 인용하고 있다.

해체주의자들이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역시 보르헤스에 대해 경탄하면서 자신들의 선구자로 만들기에 바쁘다. 특히 하나의 양식적 특징을 가시화하고자 했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사후적으로 문학에서 찾아냈던 '기원적' 저자가 보르헤스였다는 것은 잘 열려져 있다. 덕분에 그는 한 사조의 시조가 되었지만, 이는 자신의 근본적인 사유를 단순히 저자의 해체와 상호텍스트성의 배경으로, 패스티쉬와 키치의 일종으로 만들어버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눈이 멀도록 읽어댄 책들로, 마치 혹성 틀뢴을 만들어낸 사람들처럼 백과사전적인 지식으로 보르헤스가 만들어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그 전복적인 사유를 통해 그가 사유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지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차라리 보르헤스를 문학자가 아닌 철학자로, 혹은 어떤 화두를 들고 사유하는 사상가로 다루어보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해준다.


2.허구적 세계의 진실

1)진리와 허위의 경계

-백과사전: 또 다른 바로크 인? "표상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
cf.고전주의 시대 표상의 에피스테메와 백과사전, 계몽주의(푸코, 『말과 사물』)

-->틀뢴과 같은 허구적 세계를 그런 방식으로 만든다면? 이로써 보르헤스는 표상 뒤를 들추는 근대적 질문이나 표상의 근거를 찾아 무한소급하는 고전적 질문 모두와 달리, 허구와 현실의 경계선 상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에 관해 질문한다. 이로써 진리와 허위의 경계 자체가 문제화된다:

-->참이라고 답하는 것의 부당성(eg.「신학자들」의 아우렐리아노); 허위라고 답하는 것의 부당성(eg.'엠마 순스'의 진실성/허위성); 차라리 보르헤스는 허위의 유효성과 그 유효성의 허망성을 포착한다(「죽음과 나침반」에서 사태를 아는, 하지만 그래서 죽는 뢰로트; 「배신자와 영웅...」에서 영웅적 처형; 「매수」에서 공정성의 이용과 '허망함'이라는 죄)

--그렇다면 문제는 어떤 것이 진실인가 아닌가, 허구인가 아닌가, 혹은 지식인가 사실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행사하는 유효성과 그것의 한계('허망성')를 보는 것이 아닌가? cf.푸코, 『지식의 고고학』.

2)환(幻)으로서 세계
-보르헤스가 환영의 세계을 만드는 요소들: 꿈(「원형의 폐허들」, 「꿈」); 거울(「거울과 가면」); 지식(책, 도서관: 「틀뢴」, 「바벨의 도서관」, 「모래의 책」); 기억(「기억의 천재 푸네스」, 「셰익스피어의 기억」); 미로(「아베하깐...」, 「두 왕과 두 개의 미로」) 등등.

-보르헤스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환영maya이다. 그것이 사실성의 형상(「독일 진혼곡]의 수용소, 「자이르」의 돈)으로 나타나든, 지식이나 책의 형상으로 나타나든, 아니면 표상이나 감응(「후안 무라냐」의 칼)의 양상으로 나타나든. 왜냐하면 가령 「자이르」의 돈처럼 그 자체로는 하나의 물질적 사실적 형상을 갖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것은 그에 대한 거의 강박증과도 같은 사람들의 믿음, 사람들의 집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그것과 결부된 의지, 요컨대 마음에 의해 삶으로 들어오고, 그런 만큼 그것은 마음과 의지의 산물이다. 부인을 패는 남자는 술 때문에 패는 게 아니라 패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고, "우리는 꿈 속에서 스핑크스가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스핑크스의 꿈을 꾸는 것이다."(「꿈」) 따라서 환영이 일종의 꿈이라면, 그것은 허망하고 무의미하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그 꿈과 같은 환영을 만드는 우리 자신의 공포와 욕망, 마음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영은 거짓이 아니라 정확하게 진실성을 갖는 현실이고 유효성을 갖는 실재다. (환상문학의 리얼리티!)

다만 그것이 환영이란 이름에 값하는 것은 그 욕망이나 마음이 무상하며 그런 만큼 그것의 현실성도, 유효성도 무상하다는 사실이다. 틀뢴은 보르헤스가 보기에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하나의 현실이었을 지도 모른다. 틀뢴을 다룬 그 백과사전은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사전』}처럼 진리의 저장소가 될 수도, 혹은 후일 사실로 간주될 수 있는 사료가 될 수도 있었을 어떤 문헌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안 되는 시간만으로도 '실재성'의 옷을 벗고 진리의 관을 벗어야 할 어떤 것이다. (리얼리즘의 허구성, 불가능성)

이런 점에서 보르헤스의 환영이란 거짓도 허상도 아니지만(현실성, 유효성--욕망과 마음이 실린 것, 이것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 또한 진리도 실재도 아니다. 그것은 그때마다 달라지는 어떤 욕망 내지 마음의 표현이다. 하지만 무상한 마음의 일부라는 점에서 마음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것의 표현이다(諸心皆爲非心, 是名爲心). 그것은 어떠한 자성도 갖지 않은 마음이 잠시 머무는 어떤 형상을 빌어(假) 나타난 것이다(이를 용수는 『중론』에서 '假名'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환, 환영, 그것은 용수가 말하는 假 내지 假名이다. "가면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보르헤스) 그것은 자성을 갖고 실재하는 어떤 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 말고는 따로 존재하는 것도 없다는 점에서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非有非無--空!) 것으로서 幻이다.

따라서 보르헤스가 단지 유효성으로서 실재만을 보고 있다고 말해선 충분하지 못하다. 오히려 그는 어떤 것을 환영으로 만드는 관계들, 연기적 관계들을 그려내고자 한다. 동일한 것, 동일한 책, 동일한 얼굴, 동일한 텍스트를 단 한번도 허용하지 않는 그 연기적 관계의 무한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가 동일성과 가까운 공간보다는 가변성과 가까운 시간을 통해서 세상을 보려고 하고, 추리소설의 형식을 통해서 감추어진 관계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모든 것인 동시에 하나인 것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이와 긴밀히 연관된 것이다.

만약 앞서 언급한 예들에서 지워지는 것과 지워지지 않는 것(「푸네스의 기억」, 「셰익스피어의 기억」)의 대비를 찾을 수 있다면, 나아가 형식화된 것과 탈형식화된 것(eg. 「거울과 가면」에서 모든 것을 담는 한 마디의 시구; 「두 개의 미로」에서 잘 만들어진 미로와, 벽도 없고, 입구도 출구도 없는, 따라서 가장 완벽한 미로로서 사막; 은밀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비밀과 「불사조 교파」의 그대로 드러나지만 결코 누설되지 않은 비밀 등등)의 대비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幻으로서 세계, 假로서 세계가 갖고 있는 '空性'을, 결국 절대적인 것(그 자체로 모든 것인 하나, 혹은 알레프 내지 알모따심)은 본질적으로 공인 무한한 가변성의 세계뿐임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cf.보르헤스의 '회의주의' 혹은 '허무주의'?


3.시간의 정원

보르헤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는 시간이다. 『픽션들』만 보아도,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이나 「비밀의 기적」, 「허버트 쾌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시간을 직접적인 주제로 하고 있고, 「삐에르 메나르, 『돈 키호테』의 저자」나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간접적으로 시간을 다루고 있으며, 백과사전을 써서 만들어낸 환상의 혹성 틀뢴은 시간적인 세계다. "그들에게 세계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체들의 집합이 아니다....그것은 연속적이고 시간적이지, 공간적인 게 아니다."(『픽션들』, 30) 「모래의 책」에 실린 「타자」나 「1983년 8월 25일」은 시간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명의 보르헤스를 통해서 시간의 문제에 다시 접근하고 있다. 취팽만큼이나 보르헤스에게도, "시간이란 문제만큼 그를 초조하게 만들고 고뇌하도록 만든 문제가 없었다는 것"(「...정원」, 『픽션들』, 163)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단 이 작품들에 공통된 것이지만, 보르헤스에게 시간이란 외연적인 양 내지 시계적인 시간이 아니라 체험적인 어떤 것으로서 시간, 사건적인 어떤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는 베르그송과 유사하다. 베르그송에게 시간이란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다루어지며, 그런 한에서 체험적인 것이었다. 이를 그는 "이질적인 것의 연속"으로서 지속이란 개념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이는 보르헤스에게도 마찬가지다. 틀뢴에서 세계는 "독립적인 행위들의 이질적 연속이다."(30) 이미 본 것처럼 그에게 모든 것은 환영이었고, 그것은 곧, 욕망이라고 하든 마음이라고 하든, 주어진 것을 나름대로 변용하여 수용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보르헤스에게 모든 것은 "마음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었고, 그런 한에서 그것은 유효성과 실재성을 획득한다. 요컨대 보르헤스에게 시간이란, 그처럼 마음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의 이질적인 연속이었고, 이질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시간의 개념에 대해 베르그송처럼 양이 아닌 질, 동질성 아닌 이질성 등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보르헤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의 비선형성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선형적이고 일시적이며 따라서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시간 개념을 넘어서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베르그송의 비판과는 다른 의미에서 시간을 공간화한다. 가령 「두 갈래 길...정원」에서는 상이한 사건들의 연속으로서 시간을 길이라는 공간적 이미지로 치환하고, 정원이라고 불리는 시간의 장 전체를 상이한 가능성에 따라 한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의 '그물'로 변환시킨다. "그는 시간의 무한한 연속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어지럽게 증식되는 분산되고 수렴되고 평형을 이루는 시간들의 그물을 잊으셨던 거지요."(164) 따라서 그 그물 속에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166). 과거도, 혹은 다른 조건과 계기에 의해 다른 경로를 그리는 또 다른 미래도 역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간의 일부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어떤 시간 속에 당신은 존재하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시간 속에는 나는 존재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다른 시간의 경우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합니다....시간은 셀 수 없는 미래들을 향해 영원히 갈라지지요. 그 시간들 중의 하나에서 나는 당신의 적이지요."(165)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는 뒤돌아가는 시간에 대해서도, 정지된 시간 속의 움직이는 시간에 대해서도 충분히 상상한다. '허버트 쾌인'의 작품 『에이프릴 마치』,는 "시간적으로 거꾸로 씌어있고, 가지처럼 갈라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설"(120)이다. 어떤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의 '이유'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소설이 펼쳐지며, 그에 따라 "전날 밤에 일어날 수 있었던 또 다른 사건"(122)을 서술하면서 거듭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씌어지는 소설. 하지만 보르헤스는 거슬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있었던 상이한 사건들이 병치됨으로서만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거슬러 가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가능성이 병치되면서 펼쳐지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죽음」에서 과거를 수정하는 다미안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치욕적인 죽음을 수정하는 것, 그것은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것이고, 치욕 속에 죽은 자의 잔영 안에 깊이 남아 있는 의지요 욕망이다. "그렇게 해서 1946년, 오랫동안 가슴 안에 품고 있던 열망에 따라 1904년 겨울과 봄 사이에 벌어졌던 마소예르의 패전에서 전사했다."(『알렙』, 111)

반면 시간을 멈추고 주인공의 미완성 드라마를 완성하게 해준 「비밀의 기적」은 못다 한 여행을 마치기 위해 시간을 멈추게 하며, 그 사이에 자신만의 흐르는 시간을 갖는 '비밀의 기적'이었다는 점에서, 머묾을, 여행이 멈추는 순간을 뜻하는 파우스트적 '정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시계바늘의 움직임을 세우는 기적이 아니라, 사실은 돌아가는 시계바늘 안에서 비선형적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어김없는 시계적 시간의 선형성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간을 잊는 것, 아니 본래 空인 시간을 사는 것이고 시간의 空性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선형적 시간이 표시하는 정해진 사건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사는 것이고, 다른 가능성 자체의 세계로 비약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는 가능한 다른 사건이 병치되는 쾌인의 소설의 구조와, 그런 사건적 시간이 두 갈래 길들로 병존하는 취팽의 정원의 구조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제 자리에서 여행하기.)

이에 비해 「삐에르 메나르」와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시간 그 자체가 갖는 변환 능력을 보여준다. 메나르의 작품은 시간이 달라짐에 따라 동일한 문자들의 집합인 텍스트가 전혀 다른 텍스트로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시간 자체가 변환의 계기로 작동하는 무상함의 형식임을 보여준다.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우연이라는 계기와 시간이 직접적인 연관을 갖게 되었을 때,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가능성의 무한한 추가를 야기하여 무한한 연기의 형식으로 종착지를 제거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앞의 네 작품이 시간 자체를 비선형화하는 방식으로 변형하여 다른 가능성의 시간을,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혹은 잠재성 자체를 가시화하고 있다면, 이 두 작품은 시간 자체를 변환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 그 자체가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열리는 직접적 계기임을 보여준다.

한편 시간의 격차를 두고 두 명의 보르헤스가 만나는 「타자」에서 젊은 보르헤스와 늙은 보르헤스의 만남 속에서, 두 사람의 동일인이 사실은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너무 비슷했으면서도 너무 달랐다."(『셰익스피어의 기억』, 19)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앞서 말한 두 번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1983년 28월 25일]에은 좀 다르다. 거기서는 이미 자신에겐 과거인 젊은 보르헤스의 미래를 늙은 보르헤스가 알려주지만, 젊은 그에게 그것은 죽음(자살)으로 귀착되는 지겨운 모방의 선형성을 뜻하는 것이었고, 그래서인지 젊은 보르헤스 자신은 바로 거기서 도망치듯 벗어난다. "나는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밖에서는 또 다른 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155)

-->보르헤스에게 선형성을 넘어선 시간의 사유란 결국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요,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것이다. 무상성이 함축하는 무한한 가변성의 세계를 사는 것, 가변적인 삶을, 삶의 가변성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4.불멸성, 혹은 다른-것-되기

시간에 대한 보르헤스의 관심은 이제 죽음과 불멸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불멸성이란 무엇인가? 「죽지 않는 사람들」은 이 주제를 명시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다룬다면, 그에 바로 뒤잇는 「죽어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를 찾아가는 '나'가 죽을 고생 끝에 찾아낸 것, 천백년 전에 호머였던 혈거인의 되찾은 기억으로 도달한 것은 결국 자신이 바로 그 불사의 존재라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새로운 왕국, 새로운 제국을 헤메고 다니며 수많은 생을 산다. 불락에서 『천일야화』를 필사하기도 하고,사마르칸드의 감옥에서 장기도 두고, 보헤미아에서 점성학을 연구하기도 하고, 라이프치히에서도 살고.... 요컨대 윤회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불사의 삶, 불사의 존재란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되는 존재며, 다른 것이 되는 삶 그 자체다.

따라서 "불사의 존재가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피조물들은 죽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불사의 존재들이다."(『알렙』, 26) 따라서 그것은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도들이 보여준 불사성에 대한 신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26). 아니 반대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불사성에 대한 믿음이 불사의 삶을 가져다주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에 대한, 따라서 불사에 대한 관념의 부재가 불사의 삶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불사의 삶이란 불사에 대한 믿음과 무관하며,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삶 그 자체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나'라는 관념, "나는 호머다", "나는 셰익스피어다", "나는 보르헤스다"라는 구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나'의 탄생과 '나'의 죽음이란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내게 좀더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은 힌두스탄 지역의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수레바퀴다."(26) 무아를 설파하는 부처의 법륜? 따라서 '나'라는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불사의 강물을 마시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불사의 존재인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죽을 것이다."(36)

「죽지 않는 사람들」의 본문의 이 마지막 문장에서 보르헤스는 불사와 불멸이 '무아'며, 그것은 곧 모든-사람이-되는-것devenir tout le monde이라고 명확하게 언명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각각의 사람, 각각의 순간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각각의 구별되는 이름을 갖는 개체가 되기도 하는 것을 이 불사와 불멸의 존재 안에서, 불사와 불멸의 존재조건임을 발견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갖는 것, 그것은 셰익스피어가 되는 것이다(「셰익스피어의 기억」, 186). 세르반테스 시대의 문제를 연구해 그 시대의 스페인어를 구사하게 된 메나르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되는 것"이다(『픽션들』, 77). 아니 문학이란, 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쓰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베로에스의 행적을 추적하던 '내'가 마지막에 이르러 발견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동안 이 이야기가 바로 나 자신인 그런 어떤 사람에 대한 상징이고,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나는 그 사람이 되어야 했고, 그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이 이야기를 써야 했"다(「아베로에스의 추적」, 『알렙』, 143-4) 그렇다면 윤회와 환생의 형식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만 아니라, 창작의 형식으로든, 사유의 형식으로든, 혹은 행동의 형식으로든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아니 나 자신이 현재의 삶을 살면서 정체성의 중력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다른 삶을 사는 것, 바로 이 모든 것이 불멸의 삶이며 불사의 삶이 아닐까?

그것은 바로 통상적인 불멸의 존재인 신의 삶이기도 하다. 연기를 하며, 작품을 쓰며 평생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며 살아온 셰익스피어("그 누구도 그처럼 많은 사람이었던 적은 없었다." 「전체와 무」, 『칼잡이들의 이야기』, 58)가 죽기 직전에 신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오랜 세월 동안 헛되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었던 저는 이제 한 사람, 즉 나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신의 대답: "나의 셰익스피어여, 나 또한 나 자신이 아닌걸. 나는 마체 네가 너의 작품을 꿈꾸었던 것처럼 세계를 꿈꾸었지. 그리고 내 꿈의 형상들 속에서 마치 나처럼 수많은 존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도 아닌 네가 존재하고 있는 거지."(59)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셰익스피어와 신 사이에, 나와 신 사이에, 혹은 세상의 모든 것과 신 사이에 있는 근본적 구별이 사라지는 걸 알게 된다. 끊임없이 다른 삶을 사는 불멸의 존재, 내가 만약 그런 존재라면, 내가 바로 신인 것이다. 굳이 나라고도 할 것이 없는.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을 전적으로 모방하고 전적으로 그 사람의 삶에 동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현재 선 지점과 가려고 하는 지점 사이에서 제 3의 선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메나르는 "어떻게 해서든 세르반테스가 되어 『돈키호테』라는 목표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에게 삐에르 메나르이면서, 비에르 메나르의 경험들을 통해 『돈키호테』에 도달하는 것보다 덜 야심적인 작업, 따라서 덜 흥미로운 작업으로 생각되었다."(『픽션들』, 77) 전적인 모방은 메나르의 관점이 아니라 세르반테의 관점에서 『돈키호테』를 쓰는 것이고, 셰익스피어의 기억에 전적으로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헤르만 세르겔은 모든 게 자신을 셰익스피어로 데려가는 강력한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혀 다른 무엇을 다시 섞는다. "엄격하고 장대한 음악, 바하"(『기억』, 193)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게서 보르헤스가 발견했던 위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5.알렙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보르헤스가 평생 찾아다닌 것은 바로 '신의 글'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마술적인 하나의 문장."(「신의 글」, 『알렙』, 165) 혹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단 한 줄의 시(「거울과 가면」, 『기억들』, 87). 이는 사실 우주의 모든 책들이기도 한 한 권의 책(「모래의 책」, 「바벨의 도서관」), 모든 별이기도 한 하나의 별 내지 모든 사람이기도 한 한 명의 사람(「알모따심으로의 접근」)에 대한 추구를 통해서 쉽게 입증될 수 있는 것이다. 알렙, 그것은 수학적으로 모든 實數를 자신 안에 포함하는 하나의 수다(집합론). 보르헤스는 그것을 서로 겹치거나 투명해지는 일 없이, 그리고 전혀 크기의 축소 없이 모든 점들에서 본 우주의 모든 상들이 들어있는 조그만 구체인 알렙으로 변형시켰다. 우주 전체를 머금은 한 알의 좁쌀('설봉의 좁쌀'), 혹은 시방삼세를 모두 다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먼지(一微塵中含十方).

우주 전체를 포함하는 하나의 구체, 이는 필경 우주 전체로 펼쳐져 있는 상호적인 관계의 망, 緣起的인 관계의 그물 전체와 결부된 것이다. 즉 신의 글, 그것은 "미래에 있을 것이고, 현재에 있고,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짜인 채 그것을 형성하고 있었다."(「신의 글」, 『알렙』, 169)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이는 '알렙'이나 '모래의 책'과 같은 기이하고 특별한 어떤 존재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시방삼세의 緣起的인 관계 전체를 포함하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보르헤스는 말한다. "나는 인간의 언어들에서조차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발하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즉 '호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를 낳은 호랑이, 그가 삼켜버린 사슴들과 거북이들, 사슴들이 뜯어먹은 목초, 목초의 어머니인 대지, 대지를 낳은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알렙』, 167) 따라서 시인이 찾아낸 '운드르'라는 말(「운드르」, 『기억』, 97)만이 아니라, 모든 말이 바로 신의 말이고, 모든 말이 "그 안에 수많은 말들이 들어있는 단 하나의 말"이다(『알렙』, 167). 모든 먼지가 시방삼세를 다 포함하고 있다(一切塵中含十方). 따라서 시인을 사랑했던, 그래서 시인에게 모든 것을 주었던 한 여인이 있었다면, "삶 또한 내게 모든 것을 주었지요. 삶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해요."(「운드르」, 『기억』, 97) 마지막 말, 혹은 신의 글, 그것을 보르헤스는 '운드르'라고 말한다. 경이로움을 뜻하는 단어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우주를 담고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하듯이, 자신의 삶이 바로 모든 것을 주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발견할 수 없는 단어다. 반대로 그것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에서 우주 전체를 보고, 모든 말에서 신의 글을 보게 되면, 어떤 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경이로움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그 경이로움 속에서 긍정하고 그것이 주는 우주 전체를 받아들인다는 것, 아마도 그것이 보르헤스가 평생을 찾아다녔던 깨달음의 징표, 혹은 신의 글이 아니었을까? 알렙.


수유 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 2001년 봄 강좌 <문학과 철학 사이>, 2001년 4월 18일 / 강사: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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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2] ‘조동진 사단’엔 세월이 머무네


언더그라운드 음악 대부에서 은둔자 시인으로… 새로운 음악의 흐름 소화하며 언제나 그 자리에

신현준/ 대중음악 평론가
출처:<한겨레21> 제496호(h21.hani.co.kr)



1980년 상처 입은 사람들을 조용히 위무한 노래 하나가 발표되었다. <나뭇잎 사이로>라는 조동진의 두 번째이자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나뭇잎’과 ‘가로등’과 ‘너의 얼굴’과 ‘지붕들’과 ‘하늘’과 ‘사람들 물결’이 등장하면서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땅으로 시선이 교차하는 이 곡은 시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동반하면서 1980년의 복잡한 정서를 적확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늘 정치적으로 초연했던 이 곡의 주인공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 1980년대 초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로 불리기 시작할 무렵의 조동진.

상처 입은 영혼에 한줄기 햇살을…

그 뒤로 그는 의도하지 않게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방송에 나가 아부하지 않으면서 뜸하게 음반을 발표하고 콘서트만 열면서도 음악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때까지 누구도 개척하지 못한 길이었다. 1981년 10월 숭의음악당, 1986년 5월 미리내극장에서의 ‘조동진 콘서트’는 이후 소극장 라이브 공연의 붐을 이루는 기폭제였다. 그 전부터 이미 ‘조동진의 집’은 최성원·전인권·이영재·이승희·하덕규·함춘호·허성욱·이병우 등이 들락날락하는 아지트가 되었다. 물론 조동진의 가장 가까운 후배는 그의 친동생 조동익(1960~)이었다. 조동진의 2집에 수록된 <어떤 날>의 작곡자이자 1980년대 중반 이병우와 함께 듀엣 ‘어떤날’을 결성해 활동한 바로 그 조동익이다.

광화문에서 음반소매상을 경영하던 김영이 음반 제작에 뛰어들면서 조동진 사단의 일원들은 김영의 동아기획에서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조동진 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85년 들국화의 음반이 대박을 터뜨리고 뒤에는 김현식·한영애·신촌블루스·봄여름가을겨울·푸른하늘까지 합류하면서 동아기획은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본산이 된다. 이 이야기는 꽤 복잡하고 다양하니 다른 인물들을 다룰 때 하도록 하자. 이 모든 이야기의 신호탄이 <제비꽃>이 수록된 조동진의 세 번째 음반(1985)이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 지난 1월 말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조동진 음악회’를 앞둔 조동진.

그렇지만 이 무렵 조동진의 이전 음반들이 여러 음반사에서 어지럽게 발표되었고 편집음반들도 시중에 나뒹굴었다. 비즈니스를 맡은 사람이 계약관계를 매끄럽게 하지 못한 결과였다. 조동진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방식은 1집과 2집 음반을 다시 녹음하는 것이었고, 1986년에 ‘재녹음 음반’이 발표되었다. 이 음반부터 조동진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인들은 강근식·조원익·이호준 등의 베테랑에서 이병우·조동익·김광민 등의 (당시로서는) 젊은 음악인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한 음악인이 세대를 이어가면서 하나의 계보를 만든 드문 경우였다.

동아기획이 주류에 진입한 뒤 조동진은 자기 발로 서는 작업을 추진했다. 1980년대 후반 조원익이 문예부장으로 근무하던 서울음반을 통해 자신과 후배들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1992년에는 음반산업에 진출한 한 대기업의 투자를 받아 전문 프로덕션인 ‘하나음악’을 탄생시켰다. 조원익이 비즈니스를 전담하고 ‘사단장’ 조동진과 ‘야전사령관’ 조동익의 휘하에 장필순·한동준·권혁진·이소라·박용준·고찬용·조규찬·신진 등이 모여들었고, 이들 가운데 몇몇은 엉클·더 클래식·낯선 사람들 등의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몇몇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들의 면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1989년부터 개최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조동진 사단과 하나음악의 식구들을 재생산하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상업성 잃고 변방으로 밀려날지라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방송에 의존하지 않는 음악인들의 설 땅은 넓지 않았고, 시간이 가면서 하나음악은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판세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안다면 그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결국 하나음악은 1995년께 일단 해산되었다가 1997년 서초동에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다시 모였지만 몇년 뒤 합정동으로, 그 뒤에는 다시 일산으로 이사하면서 중심부에서 멀어졌다.


조동진 (아세아, ALS-1000, 1983) 조동진 <슬픔이 너의 가슴에/제비꽃(3집)>(동아기획/태광음반, VIP-20015, 1985) 조동진 <일요일 아침/당신은 기억하는지(4집)>(서울음반, spdr-231, 1990) 조동진 <조동진5>(킹 레코드, KSC-6033 SA, 1996) 조동진 (신나라뮤직, KSC-A0002, 2000)

그사이 조동진의 음악은 더 느려지고 더 우울해졌다. 4집(1990)과 5집(1996)에는 한번만 들어도 귀에 착 감기는 ‘히트곡’은 없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슬프도록 아름다운 곡들로 채워졌다. 또한 변칙 조율을 이용해 만들어낸 기타 연주는 그 자체로 서정적이었다. 또한 후배들과의 일상적 교류를 통해 ‘퓨전 재즈’나 ‘모던 록’ 등 새로운 음악적 흐름도 능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이렇게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으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음악인의 섬세한 노력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을까. 1995년 이후 조동진이 더 이상 새로운 정규 음반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간접적인 답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그의 공적 활동으로는 1997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합동공연, 2000년 예술의전당에서의 공연, 그리고 지난 1월 말 LG아트센터에서 개최한 공연 등이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사이에도 그와 하나음악 후배들의 재정적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대중음악계 장인

그래서인지 최근 그의 모습은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은둔하는 가난한 시인 같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때문인지 어쩌다가 무대에 오른 그의 모습은 그 나잇대의 다른 사람들이 발휘하지 못하는 ‘아우라’로 가득하다. 이는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속칭 ‘삐딱선’을 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후배 연주인들과 함께 들려주는 음향도 오랫동안 공동체를 이루어 음악 세계를 가꾼 집단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나는 이 점이 그가 셰그린이라는 ‘커버 밴드’와 동방의 빛이라는 ‘세션 밴드’를 거친 것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마음 편히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그뿐만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이 사회가 어떻게 대우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대우와 무관하게 조동진은 특유의 ‘느리지만 진지한’ 행보를 계속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듯하지만, ‘아침 기차’를 타고 ‘바다’로 흘러가서 ‘작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등 부단히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P.S. 하나음악은 2003년 옴니버스 음반 <꿈>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에는 재즈 연주그룹 ‘더 버드’(The Bird)와 모던 록 싱어송라이터 ‘이다오’의 독집을 준비하고 있다. 이 음반들을 포함하여 하나음악에서 제작한 모든 음반에서 조동진은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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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실체에 대한 철학적 물음들 : 『카게무사』

수유연구실 강좌 : "필로시네마 : 영화로 탈주하기 2" 8강 1999.11.26. / 고미숙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카게무사』는 엄청난 스케일의 자본이 투여되어야 하는 전쟁영화로 개봉되기까지 적지 않은 난관들을 거쳐야 했다. 구로사와는 초기에 제작자들의 외면으로 영화화가 어렵자 시나리오를 직접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1978년 번역대본과 그림을 갖고 유럽으로 건너가 전시회를 열었으나, 별무소득. 다시 미국으로. 미국에는 당시 미국영화계를 주름잡던 프란시스 코폴라와 조지 루카스가 자신들의 정신적 스승인 구로사와를 열렬히 맞이하였고, 마침내 그를 20세기 폭스사와 연결해 주었다. 20세기 폭스사는 다시 일본의 도호영화사에 접근하여 투자를 유도하여 미,일 합작을 성사시켰다. 이를테면, 구로사와는 "옆에 있는 제작자를 만나기 위해 지구를 반바퀴나 돌았던" 셈이다.

1980년에 개봉된 『카게무사』는 일본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6백만 달러가 투자되었고, 첫흥행에서 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림으로써 일본영화 사상 최고 히트작이 되었다. 준비에서 흥행까지의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구로사와의 영화적 열정과 세계영화사에서의 위치, 그리고 일본관객의 저력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영화화 될지도 미지수인 작품을 그림으로 옮기다니! 도대체 자신의 시나리오를 이토록 사랑하는 감독이 있을까? 여기에는 "진정으로 영화적인 표현을 얻기 위해서는, 카메라와 마이크는 불과 물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그렇게 할 힘을 지닌 무엇이어야 한다."는 구로사와의 육성이 그대로 무르녹아 있다.

그러면 도대체 그로 하여금 대륙을 횡단하게끔 한 시나리오는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국시대 전쟁의 한 책략이었던 그림자 무사에 관한 것으로 자신의 주인과 일체화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야기다. 이미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를 통해 저 아득한 시간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 실존적 물음을 던지는 실력을 멋지게 보여준 구로사와 답게 이 시나리오의 기본구조 역시 참으로 특이하면서도 모던하다.

그러나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가 이 시나리오에 착안하게 된 것이 일단 그림자와 실체라는 철학적 물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전국시대의 한 전투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즉, 그는 다른 작품을 위해 16세기를 공부하다가 전국시대를 장식한 전투 중에서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에 의해 다께다군을 전멸시킨 나가시노 전투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그를 사로잡은 질문은 "노부나가와 이에야스 혈족이 하나도 죽지 않았는데, 다케다 혈족이 왜 전멸하게 되었는가?"라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전투에서 죽은 무사들은 신겐에 의해 마법에 걸린 듯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신겐이 가케무사를 많이 썼다는 간단한 역사정보를 가지고서 그 수수께끼에 접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을 어떻게 신겐의 성격 속에 빠져들게 해서 실제로 신겐이 될 수 있게 할 것인가?" 결국 그것은 "신겐(캐릭터)의 힘에 의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텍스트를 전적으로 통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의도와 미끄러질 수도 있고, 목표한 바의 경계를 넘어갈 수도 있다. 이 영화 또한 구로사와의 애초의 동기와 의도를 넘어선 여러 선들이 흘러다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국시대라는 일본사의 격동의 현장이, 즉, 다께다 신겐과 그를 둘러싼 대명들의 전쟁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겐이라는 존재의 의미, 더 나아가 한 주체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선들이 가로지르고 있다. 이제 이 두 계열을 따라 가면서 텍스트를 음미해보자.


영화 속의 '일본사' 몇 장면

이 영화의 배경은 16세기 전국시대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오닌의 난(1467-1477) 이후 기존의 천황과 장군을 중심으로 했던 무로마치 막부가 무너지면서 약 100여년간 유력 大名(다이묘)들 사이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카마쿠라 체제 이전의 무사동맹체의 우두머리들이나 혹은 슈고들과는 달리, 다이묘는 그 지위가 천황정부나 바쿠후의 합법적 승인에 의해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었고, 단지 그의 무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다이묘는 그 자신이 하나의 권력이었다. 천황과 쇼군이 계속하여 교토에 존재했으나, 다이묘는 전장에서 승리로 얻은 것 이외에는 어떠한 권위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 수많은 다이묘들의 유동성으로 인해 하극상의 풍조가 만연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강력한 힘을 가진 자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가능케 하는, 이른바 '사무라이 정신'을 구성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전국시대 가운데서 서서히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한 16세기 후반기이다. 통일의 세 주역은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노부나가가 쌓아놓은 통일작업을 완료시킨 히데요시는 생략되었다. 그리고 노부나가와 이에야스 가운데 주역은 단연 전자이다.

먼저 오다 노부나가(1534-1582)에 대하여. 중부 일본에 영지를 확보하고 있었던 소규모 다이묘 가문의 아들이었던 노부나가가 단번에 전국 다이묘의 주역으로 떠오른 데는 그의 저돌적 힘과 치밀한 전략 덕분이다.

1560년 5.18일 기요스성에 이마가와의 대군이 국경을 공격해왔다는 급전이 온다. 작전회의가 열렸으나 별다른 대책이 없어 노부나가는 잡담만 늘어놓다가 잠이나 자라고 부하들을 귀가시켰다. 밤이 샐 무렵 적군이 주요 성을 공략, 포위했다는 전령이 도달하자, 노부나가는 부채를 펼치고 휙 일어서더니 평소에 즐겨 부르던 노래, "인생은 일장춘몽, 덧없는 인생이라"(영화에서 신겐의 죽음을 확인한 다음 노부나가가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이 정보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것)를 부르고 즉시 갑옷을 갖추어 입고 선 채로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출진 명령을 내렸다. 겨우 5기만을 거느리고 성문을 박차고 나가 2시간 정도 걸려 전장에 도착했을 무렵에야 겨우 2천명이 뒤를 따라붙을 수 있었다. 노부나가는 여기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험악한 지형의 산그늘을 이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적의 본진에 다가갔다. 적군은 승리의 무드에 싸인데다 폭풍우가 거세 산만하게 늘어져 있다가 폭풍우가 잠잠해지면서 갑자기 노부나가의 군대가 등장하자, 처음에 아군이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용맹한 노부나가의 부하가 요시모토를 죽이니 때는 5월 19일 2시였다. 이것이 그를 가장 강력한 다이묘로 부상하게 해준 '오케하지마의 회전'이다.

이후 1570년대에는 다이묘들 가운데 최초로 교토에 입성하여 장군 요시아키를 옹립했으나 전국의 대명들이 난립하고 있어서 통일의 꿈은 여전히 요원했다. 그 가운데 관동의 강자 다케다 신겐이 가장 큰 적수였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와 손을 잡고 1572년 마카타가하라에서 신겐과 대결했으나 대패했고, 게다가 1573년 장군 요시아키가 노부나가에게 등을 돌려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신겐과의 큰 대결을 앞두고 신겐이 병으로 죽고 만다. 신겐의 죽음은 당분간 비밀에 부쳐졌는데, 장군은 신겐의 죽음을 모른 채 노부나가를 공격하려 하였고, 신겐의 죽음을 안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공략하여 추방해버렸다. 이것으로 무로마치 바쿠후의 시대는 마침내 역사의 장막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노부나가가 당대 최강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흡수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영화에도 그런 편린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먼저 전장으로 떠나기 전, 성 위에서 축성을 해주는 서양 신부들을 향해 '아멘!' 하고 외치는 장면과 이에야스와 강가에서 만나 회담을 할 때, 서양 와인을 들이키는 장면. 실제로 그는 당시 서양 선교사들과 깊은 친교를 맺었다. 그렇다고 그가 기독교 세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당시 혼겐사로 대표되는 불교계와 싸우기 위해 기독교를 이용했을 뿐이다. 이에야스와의 해변정담을 나누고 떠나면서, "난 저 종교적 난봉꾼들을 진압해야하기 때문에 아주 바빠."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아마 이 점을 염두에 둔 대사일 것이다.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노부나가를 이렇게 평가한다. "노부나가는 신불은 물론 그 밖의 우상도 모두 경멸하는 자이다." "노부나가는 이해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며 현실이 있을 뿐 죽음후의 세상 따위는 생각지 않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점이 더욱 중요한데, 그는 당시 어떤 다이묘들보다 철포나 쾌속정 등 신무기의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한 무장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대단원인 나가시노 전투(1575년 5월)가 그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군대는 조총으로 무장하여 미카와국 나가시노에서 카쓰요리와 맞서 3천명의 철포대를 3대로 나누어 교대로 성채가에서 쏘아 다케다군의 특기인 기마대가 철포에 맞아 모두 쓰러져 전멸한다. 1543년 포르투갈의 상인들에 의해 철포가 처음 전래된 지 40년 후의 일이었다. 이 전투는 일본 전쟁사의 한 분기점이라고 하는데, 조총이라는 신무기, 그것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경제력을 지닌 노부나가 군대의 승리는 다께다로 상징되는 "전통 무사도의 종언을 고하는 비극적 만가"(최원식)였던 것이다. 신겐의 죽음을 조총에 의한 것으로 처리한 것도 어쩌면 이런 점을 염두에 둔 허구적 장치일 수 있다. 나가시노 전투 이후 아시가루(足輕), 곧 조총으로 무장한 이 보병들이 이제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게 되었던 바, 노부나가 이후 새로운 패자로 등장하는 히데요시가 바로 미천한 아시가루 출신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전쟁의 평민화?!)

그러면 우리의 주인공 다께다 신겐(1521-1573)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인가? 그는 당시 호죠, 다케다, 우에스기 동국 3강의 하나였다. 스물 한 살에 아버지 노부토라를 스루가로 몰아내고 가이를 차지했고, 남쪽의 강자 스와씨를 2년간의 공방 끝에 격파했으며, 1545년 신겐가법을 제정하여 통치에도 힘썼다. 숙명적인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과의 가와나카섬의 결전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 요시노부를 자결토록 했다.(영화의 제일 첫신에서 아버지를 몰아내고, 아들을 죽였다는 진술이 나오는데,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다.) 그후 스루가 공격을 개시하여 태평양 연안까지 영토를 확대하여, 노부나가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다.

그런데 실제로 다께다는 노부나가보다는 우에스기 겐신이라고 한다. 신겐은 곧바로 겐신을 떠올릴 만큼 겐신과 용호상박의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둘은 적대국에서 흉년이 들면 양식을 보내주고, 소금이 없어 곤란을 겪으면 소금을 보내줄 정도로 서로를 인정하는 라이벌이었다. "나는 소금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칼로 싸운다"는 겐신의 유명한 말에는 전통 무사도의 자긍심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께다의 속성이기도 하다. 어쨌든 다께다와 마찬가지로 우에스기 겐신 역시 대결전을 앞두고 뇌일혈로 졸지에 최후를 맞는다. 노부나가가 전국의 패자로 떠오른 데는 이 두 용장들의 허망한 죽음에 덕본 바가 크다. 물론 그것이 결국 "전통 무사도의 고매한 덕성은 콩볶는 듯한 조총소리 속에 단숨에 분쇄"(최원식)되는 역사적 필연성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노부나가에 이어 전국을 마침내 통일한 히데요시는 해외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 일으킨 임진왜란의 패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사이에 힘을 비축한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후계자 히데요리와 그의 지지자들을 1600년, 중부 혼슈의 산악지역에서 벌어진 운명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시킴으로써 명실상부하게 통일의 완성자가 되었고, 그가 수립한 왕조가 바로 에도 바쿠후다.(김영희편저, 『이야기 일본사』 참조)


'전쟁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화면배치

이제 구로사와가 제기하는 질문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보자. 먼저 오프닝 신은 신겐과 그의 동생 노부카도, 그리고 그림자가 될 사형수가 어떤 휘장 아래에 앉아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정된 카메라, 풀 숏, 6분 가량의 롱 테이크", 다시 말해 "원신 원숏"으로 구성된 이 연극적 배치는 문자 그대로 사형수인 도둑이 신겐의 연기를 해야하는 연극을 미리 예고한다.(세 인물이 하나의 공간에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

아울러 이 영화는 전쟁영화임에도 일반적인 전쟁영화의 장르적 틀을 깨뜨리는 구성과 미장센을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과 뛰어난 색채 감각으로 장대한 스케일을 통해 병사들이 출진하는 거대한 행렬을 계산된 구도 하에 보여주고, 그들이 입고 있는 군복이나 깃발의 색깔을 이용해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음악 또한 단 하나의 테마 음악만을 계속해서 변주한다.(『라쇼몽』의 '볼레로'가 그랬듯이.) 아울러 직접적인 전투 장면 대신 사운드 효과나 조명 효과를 이용하여 전투를 간접화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다카텐진 공격 때에도 그렇지만, 특히 절정이자 대파국인 나가시노 전투에서도 기마병이 공격하고, 조총 부대가 사격하는 것만 몽타쥬로 보일 뿐 직접적으로 유혈이 낭자한 싸움의 과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이정국, 『구로사와 아키라』에서)

결국 문제는 거대한 스펙터클, 피비린내나는 전장, 장엄한 서사적 구성 등 기존의 전쟁영화들이 장기로 삼았던 부분은 이 영화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개 도둑에 불과한 한 인간이 어떻게 신겐이라는 실체를 획득해가는가,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인물이 모든 소여들을" 어떻게 흡수하는가의 문제이다. 처음 도둑과 신겐의 유사성은 신체적 특징일 뿐이다. 신겐의 혈육인 노부카도만이 알아챌 수 있는 유사성이고, 둘은 사실 지독히 먼 거리에 있다. 일개 좀도둑과 통일을 꿈꾸는 다이묘. 하지만 도둑의 입을 통해 말해진 것처럼 그러한 사회적 배치의 이질성이 핵심은 아니다. "나는 좀도둑에 불과하지만, 당신은 수백 명을 죽이고 영토를 강탈했어. 누가 잔인한 거지?" 이런 공격에 신겐은 "난 못된 깡패야. 아버지를 쫓아내고 아들을 죽였어. 이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할 것이다. 그것만이 이 피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지." 이 솔직담백함은 신겐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바, 이것은 둘의 인간적 유사성이면서도 또 진정한 차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둑은 한편으로 신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래서 결코 단순한 연기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다께다 신겐', 그 빈 공간을 둘러싼 몇 가지 흐름들

교토가 보이는 언덕에서 신겐이 최후를 마치자 이제 이 자리는 빈 공간이 되었다. 이 빈 공간을 일개 좀도둑이 채워가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구도이다. 그림자 무사는 "주인을 둘러싼 모든 것을 흡수해야만 하며, 그는 그 자신이 인상이 되어 다양한 상황들"을 통과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질문의 소여란 "상황 속에 숨겨져 있고 상황 속에 싸여져 있으며, 주인공이 행동할 수 있으려면, 상황에 대해 반응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추출해내야만 하는" 바의 것들이다.

신겐이라는 주체의 빈 자리는 다양한 계열들의 흐름들에 의해 규정되는 바, 그것은 크게 신겐의 내부에 있는 항목들과 외부에 있는 항목들로 구분된다. 부하들과 가족이 전자를 구성한다면, 간자들 및 그들의 정보에 의존하는 노부나가와 이에야스가 후자에 속한다. 그림자가 해야 할 일은 이 계열들이 서로 교차하는 빈 공간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열 장면은 부하들과 간자들을 동시에 속일 수 있다. 그의 역동적 행진에 압도하여 부하들과 간자는 그의 건재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들로서는 그러한 힘과 정동은 그림자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어떤 경지의 발로이다. 또 간자들은 부하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논리를 뛰어넘는 신겐의 카리스마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논리상으로 신겐은 분명히 죽었다. 죽었어야 한다! 그런데 저 강하고 힘찬 '폼'으로 사열을 하고, 위엄있는 자태로 가부키를 감상하는 것은 누구인가? 도대체 신겐 그 자신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저것을 흉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로서는 객관적 정황과 가짜 현실 사이의 이 엄청난 간극을 그림자가 메우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는 순전히 신겐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전투를 개시한다. 이것을 통과한다면 그는 주어진 소여를 충족할 수 있을 터.

물론 그 이전에 내부의 여러 막들을 통과하는 경로를 거친다. 아이, 시종, 첩, 말 등. 사실 이 막들은 신체의 미세한 흔적들을 주시하는 것이어서 그림자가 메우기가 결코 쉽지 않은 부분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할아버지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아이. 이것은 그 아이만이 볼 수 있는 어떤 특징, 아마도 위엄이 무서움을 야기했던 그 느낌의 부재에 대한 반응이다. 재치있는 대응에 "맞아, 할아버지는 변하셨어. 무섭지 않아."라고 대응하고, 그후 아이는 그림자인 할아버지의 이중체와 가장 친숙해진다. 그가 원하는 것, 그것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보초와 수행원들의 시선. 그것은 그에게 주인으로서의 태도와 인품을 요구하는데, "너무 거만하시군요. 돌아가신 영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소." 여기에 그는 신겐 특유의 폼, "받침대위에 턱을 괴고 그윽히 시선을 내리까는" 모습을 연출한다. -순간 그림자에게 압도당하는 수행원들.

그 다음, 첩들은 그의 신체의 특징들을 한층 깊은 곳까지 꿰뚫고 있다.(뒤에 결정적으로 들키는 것도 어깨 뒤의 상처 때문임을 상기할 것!) 그의 목소리, 말투, 피부, 등등. 이것들은 아이나 시종들을 통과하는 방식과는 다른 것이 요구된다. 그는 이 난관을 진실을 말함으로써 돌파한다. "연극은 끝났소. 나는 신겐이 아니다. 카게무사일 뿐." 의심하고 있는 대상들에게 그들의 의혹을 앞질러 가 발화해 버림으로써 상황을 전복해버린 것이다. 상황을 능동적으로 역이용하는 힘, 이것은 곧 그가 신겐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으로 믿게 만든 것이다. - 첩들을 멋지게 속이고 걸어나오는 그림자 무사의 뒷편으로 긴 그림자가 걸쳐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그림자가 신겐의 빈 자리를 메꾸어가는 과정이자, 다른 한편 신겐이라는 주체가 구성된 방식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신겐을 포함하여 모든 주체는 타자의 메시지, 타자들과의 배치 속에서 구성된다. "의미작용을 통해 타자의 메시지가 반복됨으로써 반복적인 의미와 반복적인 주체의 기표를 만들어 낸다. 이 반복적인 주체의 의미와 기표는 개인의 반복적인 사고와 행동의 준거가 된다. 이러한 준거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라캉은 동일화 혹은 동일시라고"(이진경)한다. - 상징적 동일시. 그림자 무사는 타자들이 욕망하는 바를 수행함으로써 실체와 중첩되어 가는 것. "인정욕망을 통해서 개인은 주체가 된다."(이진경, 「라캉 : 도둑맞은 편지, 도둑맞은 무의식」) 사실 이것은 죽은 신겐 역시 마찬가지. 타자들이 욕망하는 바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그 또한 한갖 그림자로 추락할 뿐. 이 영화가 16세기 신겐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 수행의 능력 - 소여의 정점?

그런데 이 영화를 단지 타자의 시선에 의해 주체가 구성되는 방식만을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다. 신겐이라는 인물이 지닌 범접할 수 없는 능력, 그것은 사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구성하는 주체와는 질을 달리하는 양태인데, 이 영화의 비극성의 깊이는 그림자가 그 질의 강밀도를 획득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분명 이전에 통과한 내,외부의 막들과는 다른 종류의 소여이다. -깃발과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깃발은 신겐의 상징이자 그 자체이다. "바람처럼 빠르고, 숲처럼 고요하고 불처럼 격렬하고 산처럼 꿋꿋하다."는 깃발의 의미는 신겐이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실체의 자리,--창기병과 기마병으로 구성된 그의 군대들의 뛰어난 특징과 그것들을 통솔하는 신겐의 고유성이--이다. 먼저 작전회의에서 그림자는 그 점을 일차적으로 획득한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신겐의 유언이기도 하고, 가신들이 신겐에게 요구하는 바의 것을 낚아채어 버린 것이다.

이어지는 꿈 혹은 악몽은 그림자가 신겐의 소여의 심층에 다가가기 직전의 통과예의같은 의미를 지닌다. 항아리를 찢고 다가오는 신겐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가는 그림자. 그러나 돌아서 가버리는 실체를 쫓아 물 속을 정신없이 헤매는 그림자. 벗어날 수도, 그렇다고 그와 완전히 겹쳐질 수도 없는 그림자의 딜레마! 여기서 신겐이 갑옷으로 무장한 장군의 복장인 것을 유념하자. 그것은 이제 그림자가 통과해야 하는 것이 전쟁수행자로서의 신겐의 실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터.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는 신겐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싸움을 건다. 그들로서는 승리 직전에 후퇴하는 신겐을 이해할 수 없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에게 있어 신겐이라는 존재는 '전쟁기계'로서의 그것이다. 자신들과 동일한 욕망, 동일한 욕구,--예컨대 교토로 진격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는--의 소지자이면서 자신들과 같거나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략을 구사하는 통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전쟁의 능력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겐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역도 마찬가지.

타카텐진 전투에서 그림자는 신겐의 소여를 더욱 강도높게 획득한다. 난생 처음 전투에 참여해 본 그는 처음에는 꼭두각시였다. 그러나 전투의 진행과정을 목도하면서,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빼앗긴 시체를 보면서, 그는 이제 정말(!) 신겐이 된다. "움직이지 마라."는 명령. 이것은 작전회의에서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한 것과는 질이 다르다. 이것은 그림자가 아닌, '오야마' 신겐의 명령이다. 이에야스의 맹장 '혼다'의 야간기습, 그것은 다께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목표를 지닌 것인데, 이제 산처럼 버티고 선 그림자는 그에게 신겐 그 자체인 것이다. 소여의 정점.! - 그는 타자들이 욕망하는 바를 모두 수행한 것이다.


실체의 증발, 그림자의 소멸

이 전투는 카쓰요리가 일으키고 그의 전투력으로 승리를 낚아챈 것이지만 카쓰요리는 승리의 몫이 '신겐의 힘', '깃발의 힘'인 것을 안다. 여기서 카쓰요리의 존재가 흥미로운데, 그는 신겐과 그의 집합적 주체들 사이에서 미끄러진 선이다. 후계자 자리를 자신의 아이에게 빼앗기고, 깃발조차 사용할 수 없는 외면된 자식이다. 그런 점에서 신겐과 대립된 위치에 있고, 아울러 그림자가 지나가는 자리로부터 계속 삐져 나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카쓰요리야말로 그림자가 구성하는 실체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가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그림자가 도둑이라는 사실 따위가 아니라, 신겐을 둘러싼 여러 정황, 계열들의 흐름이다. 그것들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 그에게 신체의 소멸여부는 관건이 아닌 것이다. 실제 전투는 자신이 수행했는데도 "적들을 쫓아버린 것은 아버지의 힘"이라는 것을 그는 부인할 수가 없는 상황!

이렇게 하여 내부,외부, 전쟁까지 다양한 계열이 요구하는 바를 흡수한 그림자는 이제 그 정점에서 추락한다. 신겐이 준 시간 3년이 다 된 것이다.(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는 추락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시간은 다 되었고, 연극은 끝난 것이다. 부러진 팔을 감싸쥐고 초라한 몰골로 걸어나가는 뒷모습과 새로운 주인이 되어 들어오는 카쓰요리의 정면이 서로 엇갈리면서.

카쓰요리는 신겐의 소여를 흡수할 수도, 그렇다고 거기에 복속될 수도 없는 존재이다. 그는 그만의 깃발과 카리스마를 획득해야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오야마의 유언이자 '움직이지 마라'는 호명을 거부하며, 출진을 한다. 말리는 가신들을 버리고 해안가를 따라 전진하는 카쓰요리, "산이 움직였군." 노부나가의 희색. 그것은 신겐이라는 실체가 없는 그의 군대는 이미 적수가 아니라는 승리자의 기쁨을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카쓰요리는 깃발의 의미를 획득할 수 없다. 깃발을 쓰고 있지만 그것을 부정, 소멸시키는 역할만을 대행할 뿐이다. 바람, 숲, 불을 지휘하는 가신들은 자신들의 종말을 알고 있다. 그들은 신겐과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림자의 경우는? 그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너무 많은 것을 흡수해버린 것이다. "모든 주어진 소여들을 흡수하는 자는 단지 하나의 이중체, 주인 또는 세계에 봉사하는 하나의 그림자"(들뢰즈)가 되고 만 것이다. 애초의 상태보다는 좋은 삶의 조건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상태에서 그가 돌파할 수 있는 탈주의 공간은 없다.!

1575.5.25. 나가시노 전투는 신겐과 신겐을 구성하는 것들이 모조리 소멸되는 대스펙터클이다. 먼저 기병들이 바람처럼 치달리는 모습이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되고, 그리고 총소리. 그 역동적 진격이 콩볶는 듯한 총소리로 끝나고, 갈대 숲에서 가슴을 쮜어뜯는 그림자와 본대의 당혹한 표정이 몽타쥬됨으로써 전쟁의 경로가 전달된다. 어쩌면 여기서 노부나가나 총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맞서 싸우는 적들이 아니라, 실체가 사라진 그림자들의 최후의 운명적 질주!. 그들은 신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 죽음의 행진 마지막에 노부카도의 얼굴이 크로즈업되면서 절망적인 몸짓으로 그림자가 들판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죽음. 물가에 다시 와 떠내려가는 깃발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서로 어긋나는 라스트 신. 화면을 채우는 깃발. 그것은 신겐, 그리고 그림자가 흡수하고자 했던, 그리고 타자들이 그에게서 욕망했던 기표, 그것이 아닐지. 그렇다면 그림자뿐 아니라, 신겐 자신 또한 하나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아니, 우리 모두 역시!


蛇足(군말)

이런 견해는 어떤가? 이 영화는 "권력 바깥에서 작은 자유의 영역을 구축했던 도둑이 그림자 무사로 신겐을 대리하면서 전도"가 일어나, "진심으로 권력에 충성스런 이데올로그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권력과 자신을 일체화하는 일본 민중의 국가주의적 경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 "일본을 통일로 이끌 이 근대적 힘이 곧 조선침략을 향해 몰려갈 것이라는 비판적 의식의 함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시아 의식의 결여에 있을 것." 요컨대, "권력에 대한 숙명적 체관과 제휴하고 있는 아시아 의식의 결락"-->민족과 민중이라는 척도. 하지만 이것은 구로사와가 제기한 탈근대적 질문들을 근대적 평면으로 환원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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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와 더불어 진정으로 구로자와 아키라를 이해하려면, 『라쇼몽』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50여 년이 지난 영화임에도 『라쇼몽』이 간직한 철학적 깊이는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된다. 영화 한 편이 하나의 철학서적보다 더 철학적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게 『라쇼몽』이 아닐런지. 이 『카게무사』에도 '기표/상징/동일시/배치'라는 단어들로 정리될 수 있는 라캉의 주체이론을 설명할 수 있다. 이른바 '주체의 동일시' 혹은 '상징적 동일시'로 설명할 수 있는 무의식의 주체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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