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뿌리’ 에이즈·빈곤 맞서 오늘도 ‘전쟁중’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⑥ 보츠와나·남아공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9 26 권혁철 기자 김태형 기자
 

» 보츠와나 수도 가보로네 인근 카모게로 에이즈고아원에서 30개월 된 웬디가 두 뺨 가득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 이 고아원은 트리산요 카톨릭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다. 가보로네/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콘돔없이 섹스없다.’(No condom No sex)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쪽으로 100㎞ 떨어진 하모니 광산. 남아공에서 세번째 큰 금광인 이곳 들머리에 붙은 에이즈 예방 구호다.

8월초 찾은 이곳에서는 ‘에이즈와 전쟁’이 한창이었다. 남아공 대표적 에이즈관련 시민단체인 치료접근운동(TAC)이 전국 탄광을 순회하며 에이즈 예방교육 중이었다. 활동가들은 광부들을 모아놓고 에이즈 검사부터 받으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200만명 가량이 에이즈 감염 사실조차 모른 채 생활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모두 얼룩무늬 전투복 바지 차림이고 현장 사무실은 국방색 야전 천막이었다. 마치 작전 중인 군대처럼 보였다. 티에이시 활동가 다니엘 토드에게 “왜 군인처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들은 에이즈와 전쟁을 벌이는 전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최고 감염률에 가족·사회 잇단 ‘파탄’ 위기
‘감염→사망’ 편견 깨기 꿈틀…가난 극복이 관건


» 보츠와나·남아공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놓인 상황을 보면 ‘에이즈와 전쟁’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세계 인구의 13%가 사는 이 지역에 세계 에이즈 감염자의 63%가 산다. 이 지역 에이즈 사망자는 전 세계 에이즈 사망자의 72%를 차지한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보건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맞먹는 재앙이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 등은 “보츠와나·나미비아·스와질랜드·짐바브웨·남아공 등 남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확산이 국가의 존재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에이즈는 △사망률 증가→인구 감소→노동인구 감소·숙련 노동력 상실 △막대한 에이즈 치료비 지출→저축 감소 등을 초래한다. 에이즈는 잠재성장력에 절대적 구실을 하는 기술과 교육·경험 등 ‘인적자원’의 총량을 줄인다. 에이즈 사망자의 80%가 한참 일할 나이인 20~40대이어서 사회를 지탱할 노동력과 기술축적의 기반이 무너진다. 미국 국가정보자문회의(NIC)는 에이즈로 생산성 하락과 경제 위축으로 2010년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내총생산이 20%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에이즈는 가족관계도 파탄낸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고아’가 급증하고 있다. 8월초 찾은 보츠와나 수도 가보로네에서 17㎞ 떨어진 카모게로 고아원. 점심 때라 두살부터 여섯살까지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 250명이 식당에서 옥수수와 콩이 섞인 수프를 먹고 있었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은 보츠와나의 에이즈 고아를 16만명으로 추산했다. 보츠와나 인구가 177만명이므로 이 나라 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에이즈 고아인 셈이다. 다이아몬드 생산량 세계 1위인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의 모범생’이다. 종족대립이나 쿠데타, 내전도 없고 수십년동안 안정적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에이즈 감염률 세계 최고 36%란 멍에를 쓰고 있다.

보츠와나에서 부모가 에이즈로 숨지면 아이들은 할아버지·할머니한테 맡겨지거나 마을 공동체가 키운다. 에이즈 고아들은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로부터 에이즈를 감염된 채 태어난 아이들도 있다. 표준체중보다 마르고 버짐이 생기거나 피부가 약한 아이는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의심받는다.

카모게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헬레나 수녀의 도움으로 할머니와 사는 ‘에이즈 고아’ 아톨랑(4)의 집을 찾았다. 구멍 뚫린 함석지붕 방 2칸짜리 4평 집에 6명이 산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침대로 쓰는 매트리스 2개뿐이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도는 없다. 아톨랑의 가족 가운데 고정 수입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헬레나 수녀는 “이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게 큰 일”이라고 말했다.

» 숫자로 본 아프리카 에이즈
 
심각한 에이즈 피해에도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비난과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 남아공의 여배우 코니(31)는 이런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올초 남아공에서 인기리에 방송됐던 드라마 <소울시티>는 에이즈 문제를 다뤘다. 이 드라마 주연 코니는 실제 10년 전 에이즈에 감염됐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난 코니는 “드라마 시청자들을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며 “에이즈 감염자도 얼마든지 열심히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이즈 환자도 성공할 수 있고, 지적이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한다.

베엠베(BMW)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환하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 코니는 더이상 에이즈가 불치의 천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치료받을 돈만 있다면 에이즈는 만성질환의 하나일뿐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좋은 치료제가 나와서 미국 에이즈 환자의 평균생존기간이 8년에서 24년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에 드는 치료비용은 약값이 워낙 비싸 1인당 61만8천달러에 이른다.

아프리카 임산부들은 태아의 에이즈 감염을 50% 이상 줄일 수 있는 약값 8달러가 없어 에이즈 모자감염에 노출되어 있다. 에이즈 퇴치의 해법은 아프리카의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그 길은 멀고 험해 보였다.

요하네스버그 가보로네/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감염된 사랑? “희망의 증거!”
편견 뚫고 에이즈여성과 약혼
약혼녀 “불치 아니다” 시민운동


 
» 은코사나 빌라카지(왼쪽)와 에이즈 감염자 난야트얌보 마카렐라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웨스트딘의 하모니 금광에서 에이즈 예방 캠페인을 벌이던 중 웃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약혼했다. 요하네스버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사귈까, 말까.” 이틀동안 밤새 고민했다. 은코사나 빌라카지(27)는 약혼녀와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에 수십번 되물어봤다. “이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여자의 저 상태까지 모두 사랑하는가”. 결론은 “사랑한다”였다. 두 사람은 1년6개월 동안 연애를 하고 올 7월23일 약혼했다.

2005년 12월 빌라카지는 어머니집 뒷집에 사는 난야트얌보 마카렐라(25)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런데 마카렐라는 에이즈 감염자였다. 마카렐라는 첫 만남 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마카렐라와 사귀는 빌라카지를 두고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남아공 인구 4270만명 가운데 13%(541만명)가 에이즈 감염자이지만, 비감염자가 감염자와 사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남아공에서도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극심하다.

2005년 1월 마카렐라는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처음 알았다.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고 친구들은 마카렐라가 곧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카렐라는 아침마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나는 에이즈를 이길 수 있다. 나는 괜찮다”고 외쳤다.

마카렐라는 에이즈가 불치의 병이 아니라 독감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독감은 완치가 불가능하고 증상을 억제하는 치료를 하는 것처럼, 에이즈도 항바이러스 치료를 하면 얼마든지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다.”

마카렐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에이즈와 편견에 굴복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에이즈 관련 시민단체에서 상담·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 경험을 전해주고 있다. 나처럼 여러분도 나아지고 있다.” 마카렐라는 숨거나 움츠리지 않고 에이즈 감염자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어했다.

빌라카지와 마카렐라는 결혼하면 아이도 가질 계획이다. 치료법이 발달해 조절만 잘하면 에이즈 감염이 되지 않은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마칼레라는 “약혼자를 빼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고 말했다.

글 권혁철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기획연재 : 검은대륙 희망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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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망명은 처량한 격리
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③ 파크리 살레 팔레스타인 비평가
 
 
 출처:<한겨레신문> 2007 10 25  
 


» 파크리 살레 팔레스타인 비평가
 
지난해 11월 미국 메릴랜드주 안나폴리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중동평화회담을 앞두고 브레진스키, 리 해밀턴, 브렌트 스카우 크로포트를 포함한 일단의 저명한 미국 정치학자들, 여론결정자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한 호소문을 통해 미국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만일 실질적이고 항구적이며 포괄적인 평화가 11월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폭력의 악순환은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번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고,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평화가 회담과 직접협상 따위를 통해 가능하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평화는 우리가 과거 우리 적에게 저질렀던 일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낄 만큼 선의와 의지를 지닐 때 달성될 수 있다. 국제회담은 양쪽이 각기 자신들의 부정한 과거를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평화의 수단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중동 땅에서 서로 기꺼이 어울려 살고 공존하는 식으로 희구되는 평화에 다가가고 있는가? 팔레스타인에서, 이라크에서,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그러면 우리 지구별에서 화약고가 어디인지 알게 될 것이다. 거기서는 모든 게 몇분 내로 화염에 휩싸일 수 있다. 나는 평화가, 완전히 분리된 분위기에서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이 망명자이며 동시에 추방당한 자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은 아직 팔레스타인 땅 제닌, 그 초토화된 도시에 이스라엘이 2002년에 몰아넣은 난민 캠프에서 분노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우리 조국을 몰수해버리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가난의 구렁텅이로 내몰렸다. 나는 그 당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슴에 품고 산 슬픔과 분노에 공감한다. 1967년 6월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터졌을 때, 어린아이였던 나는 폭력이 거듭되는 가운데 공포 속에서 살았다. 나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영원히 지워낼 수 없을 공포를 안겨주며 우리(나와 내 동생) 머리 위로 날아갈 때 부들부들 떨면서 작은 팔레스타인 마을에 있던 우리 집으로 달아나던 장면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감정은 이데올로기적 헛소리가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들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텅구리 정치인들이 느껴볼 필요가 있다.

수백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추방당하고, 망명 중에, 그리고 1948년과 1967년 다른 아랍세계로 유랑을 떠나게 된 뒤부터 깊게 뿌리내린 공포감 속에서 살아왔다. 팔레스타인인들 중 3분의2는, 아니 그 이상은 여전히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난민으로서 자신들의 문제가 미국이든 세계 어디서든 열리는 정치회담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접근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혀 느끼고 있지 못하다.

나는 이렇게 자문한다. 나는 현대라는 황야에서 오욕의 생을 운명처럼 지고 태어난 디아스포라 피조물, 곧 한 사람의 망명자일 뿐인가? 천만에! 나는 이스라엘이 내가 학업을 마치러 외국에 나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아 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국적을 지니게 된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내 망명은 강요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처량하기 짝이 없는 분단과 격리다.

내 가족 또한 모든 점에서 분리되어 있다. 몇몇은 요르단 사람이고(나 역시 그렇다), 다른 가족은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20년 이상 나는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어가는 게 금지되었기 때문에 여동생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게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중동 위기의 존재적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떠맡겨진, 심지어 강제된 격리의 수십 년 세월이 지난 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산가족과 친척들!

그렇다. 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작은 구역, 곧 분쟁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러나 뿌리, 민족, 국적을 잊고 그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중동 지역에서도 좌절과 공포, 극단주의의 분위기가 그 일대를 예측할 수 없는 폭력과 파괴의 악순환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 같이 신에게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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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으로서의 비평
[연재] 21세기의 사유들 ⑤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문학평론가)
 
2007년 10월 06일 대학신문 
 
   
  ▲ 사진제공 : 「교수신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평가로서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자(또는 사상가)로서의 얼굴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를 비평가로 여기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 물론 얼마 전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를 제출해 한국문단을 한동안 긴장시킨 바 있지만, 그런 주장은 도리어 그가 문학을 완전히 떠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그와 같은 판단에는 『트랜스크리틱』이나 『세계공화국으로』와 같은 사상서들이 그의 주저로 간주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사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흔히 아는 의미에서의 문학비평을 거의 쓰지 않고 있으며, 대신 철학이나 사회사상 쪽으로 관심대상을 넓혀왔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정작 가라타니 자신은 비평가로 불리길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철학자이기보다 비평가이길 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개념을 좇기보다 문제를 좇기 때문이다.

20세기는 ‘극단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철학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는 완전히 이질적인 두 상황이 각각 존재했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전자의 시대였기에 후자의 시대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지난 세기 수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그런데 들뢰즈의 말처럼 철학사가 개념창조의 역사라고 한다면, 철학이란 서로 다른 개념들 간에 이뤄지는 힘겨룸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개념들은 어떻게 생성되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 것일까? 바로 개념들의 배치에 의해서다. 즉 ‘이항대립’을 통해 구축되기 마련인 개념들은 어느 쪽을 더 우위에 놓느냐에 따라 이전 개념군이 파괴되고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개념군이 자리잡는 방식으로 배치된다. 이런 이유로 알튀세르는 철학에는 무의미한 형식적인 전복운동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평은 이와 다르다. 그것은 철학과 달리 개념에 대한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주어진 문제들에 집착하면서 그에 대한 인식이 개념화되는 것을 끊임없이 회피한다. 그러므로 비평의 관심은 항상 개념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를 향한다. 다른 말로 비평을 한다는 것은 개념을 낳는 문제(조건)들과 씨름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오로지 이동을 통해 가능하다는 말이다. 가라타니가 비평을 ‘대립’이 아니라 ‘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비평은 이를 통해 ‘개념의 노동’(헤겔)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우리에게 소개돼 왔다. 그러나 동시대 사상가 중에 가라타니만큼 널리 읽힌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그의 책을 그토록 탐독해온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라타니의 책은 여느 철학서보다 쉽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슷한 한자어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에게는 중심개념이라고 할 만한, 다시 말해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할 개념(핵심용어)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대신에 기존 개념들의 의미를 조금씩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논의를 펼쳐가기에, 딱히 철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약간의 수고만 들인다면 그 흐름을 쫓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이들이 철학의 대중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그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혹 대중적으로 성공을 하더라도 기껏해야 지적 임팩트가 제거된 요약본을 내놓는 데 그쳤다. 그러므로 가라타니는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대중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저서들이 마냥 쉽게 이해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소화하기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의 전환이나, 생산자 투쟁에서 소비자 투쟁으로의 이행,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리로 이야기하는 ‘제비뽑기’, 점진적으로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이룩해가는, 규제적 이념으로서의 ‘세계공화국’과 같은 것들은 개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같이 우리가 자명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이동’시킨 결과다.

따라서 우리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 ‘가라타니 철학’이라는 실체와 접하는 경험 따위는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가라타니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라타니를 읽은 후 이제 더 이상 이전 같이 사고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비평의 철학이란 바로 이처럼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세기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상가들이 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우리와 함께 숨 쉬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상가는 가라타니 한 사람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까닭은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한국 비평과 한국 철학의 빈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오랜꿈 ------------------------------------------------------------------------------

가라타니 고진. 비평을 문학이라는 영역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철학, 역사, 건축, 마르크시즘 등 이른바 '메타담론'의 영역으로 확대시켜온 사람. 아마도 가라타니를 가질 수 있었다는 건 일본 문학계의 커다란 축복이리라. 우리나라도 이런 '문예비평가'(가라타니 스스로 이렇게 불리기를 원했다)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어쩌면, 故 김현 선생이 그에 비견될 수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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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문화예술을 창조한다?
[석유문명과예술]시멘트에서 흙으로 돌아와야

출처:<컬쳐뉴스>(www.culturenews.net)2007-10-01
박승옥 _ 시민발전 대표


코끼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 코끼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문화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동서양의 수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을 정의했다. 물론 동양의 문(文)과 예(藝)는 서양의 컬쳐(culture)와 아트(art)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오늘날 문화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 생물학자 등등이 내린 문화와 예술의 정의를 죽 내리 적어 종합하면 아마도 문화와 예술은 사람과 지구를 넘어서 우주의 모든 것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수많은 정의에서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가 있다. 다름아니라 문화와 예술이 학습과 모방을 통해 전달, 확산, 변형되는 지식 정보라는 점이다. 마가렛 미드가 『세 부족사회의 성과 기질』에서 관찰하고 있듯이 뉴기니 섬의 산 속에서 사는 아라페시족은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자손을 불려나가는 일을 인생 최대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강가에 사는 먼더거머족이 전투와 여성쟁취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며, 호숫가에 사는 쳄불리족이 주로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각각의 부족들이 그런 자신들의 부족문화와 예술을 세대와 세대를 거쳐 대대로 전수하고 학습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미국의 팝송이라는 대중음악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나라 젊은이들에게 뜻도 모른채 흥얼거려지는 것은 미국문화를 맹목으로 선진문화처럼 받아들이고 쫒아가는 모방과 확산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문화와 예술은 과연 사람이라는 종에게만 유일하고 고유한 것일까.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표지 가운데 하나가 사람은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고 전승한다는 데 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모방은 아이 때부터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람이 더 하등한 동물보다 우월한 까닭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모방하기 좋아하는 생물이며 처음에 모방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과연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수많은 보고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는 고시마섬 원숭이
고구마를 씻어먹는 고시마섬 원숭이

1940년대 영국인들은 아침마다 집집이 배달되는 우유병의 얇은 막으로 된 뚜껑이 뜯겨져 우유가 누군가에게 도둑맞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순식간에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범인은 푸른 박새(Parus caeruleus)였다. 푸른 박새 한 마리가 우연히 병뚜껑을 찢어 우유를 마실 수 있었고 이를 본 다른 푸른 박새들도 곧 이를 모방하고 학습해서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푸른 박새들은 우유병 뚜껑만 찢는 것에서 나아가 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벽지를 뜯어내기까지 했다.

1953년 9월 일본 고시마 섬의 마카구 원숭이 한 마리가 연구자들이 준 고구마를 근처 개울물에 씻어 먹었다. 그러자 그 행동을 유심히 지켜 본 다른 새끼원숭이들이 덩달아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했고 이윽고 고구마 씻어먹는 기술은 무리의 전 새끼원숭이들에게 학습되고 전수되어 하나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형성되었다. 고시마 섬의 원숭이들은 모래 위에 던져진 밀도 모래와 밀을 물 위에 던져 물에 뜬 밀을 건져 먹는 기술까지 발견했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 기술 또한 고시마 섬 원숭이 무리의 음식문화로 정착되었다.

짝짓기에도 모방과 학습이 있다

문화와 예술의 가장 주요한 소재와 내용은 짝짓기이다. 오늘날 우리는 선남선녀를 중매하는 결혼정보주식회사의 주선으로 수많은 남녀들이 모여 짝짓기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같은 결혼 시장에서 개개의 사내와 계집은 그들의 재산과 외모, 집안 배경 등 짝짓기를 결정짓는 요소들이 적나라하게 계량화되어 등급이 매겨지고 상품목록에 올라간다. 짝짓기를 하고자 하는 사내와 계집은 회사 입장에서는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혼의 남녀는 실제는 상품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결혼정보회사들이 보여주는 바는 명백하다. 사람들은 결혼 시장에서 자신의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굳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하지 않고도 미혼의 성인들은 성장하면서 다종다양한 모임과 만남의 장을 통해 자신의 짝을 어떤 분명한 선택 기준에 따라 고르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인종과 지역에 따라 그리고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짝짓기 선택기준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의 짝짓기 선택기준이 부와 권력임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굳이 유전자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와 권력은 여성과 자식들의 안전한 미래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혼 남성에게 부와 권력은 사실 미래의 가능성일 뿐이다. 여성은 미래에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남성을 선택해야 하는 일종의 모험을 해야만 한다. 이런 모험에서 위험을 가장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부 새 종류에도 렉(lek)이라는 결혼시장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의 짝짓기 선택권은 주로 암컷이 갖게 된다. 렉은 다름아니라 암컷이 수컷을 고르는 수컷들의 공동 구혼장이다. 젊은 스칸디나비아 멧닭 암컷들은 렉에서 나이든 암컷이 고르는 수컷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모방의 결과이다. 경험많은 암컷의 선택은 그만큼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유럽 소나무와 가문비나무,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의 렉에서 상위 멧닭 수컷 한 마리는 렉에 있는 암컷의 80%를 독차지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여성들은 다른 여성이 선택한 남성을 선택하고자 하는 모방 경향이 있으며, 플레이보이에 매력을 느끼는 까닭 또한 멧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극락조 깃털 모자와 줄무늬풍조의 아름다운 정자

우리는 사람만이 도구를 사용하고 사람만이 문화를 창조한다는 우물안 개구리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숭이도 새들도 도구를 사용하고 놀이를 한다. 원숭이는 막대기를 이용해 개미를 잡아먹고 도래까마귀는 눈 위에서 배를 대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보금자리로 돌아오면서 공중제비를 돌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가위개미는 나뭇잎을 잘라 정교한 지하방에서 자급자족의 곰팡이 농사를 지어 먹고 살고, 말레이시아의 돌리코데루스 개미는 가루깍지벌레를 가축으로 길러 그 항문에서 나오는 꿀방울을 먹이로 생활한다.

2005년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코끼리 여덟 마리가 합동으로 그린 그림이 4천 5백만원에 팔렸다. 코끼리가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1980년 인도코끼리 한 마리가 그린 그림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유명한 추상화가 전시회에 몰래 끼워 넣어 마찬가지로 미술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실제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인터넷에서 한 번 검색해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 침팬지도 그림을 그릴 줄 안다.

뉴기니의 원주민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의식용 옷을 입는데, 어떤 부족들의 남성용 모자는 반드시 극락조의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다. 뉴기니의 줄무늬풍조는 짝짓기 장소이기도 한 인디언 천막 모양의 매우 정교하고도 뛰어난 정자를 저마다 각기 다르게 짓는다. 가운데 기둥을 세우고 기둥 둘레에 이끼로 작은 담을 쌓은 다음 정자를 장식하기 위해 총천연색의 자연재료는 물론 화려한 색의 과자 포장지, 작은 상자, 반짝이는 열쇠 등 온갖 인간의 물건들까지 훔쳐 간다. 사람이 만든 극락조의 깃털 모자는 예술이고 줄무늬풍조의 아름다운 정자는 짝짓기를 위한 본능의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이 세상은 다양한 생물종들의 축제 장소이다. 문화와 예술은 종다양성의 생태계를 바탕으로 꽃을 피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만이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만이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새가 지저귀고 우는 것을 새의 언어로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정말 멍청한 생물종 편견주의자이다. 늑대가 포효하는 것이, 미어캣의 경보음이, 치타가 짧고 독특한 소리로 새끼들을 부르는 소리가, 괭이갈매기 새끼가 어미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참새들이 아침에 깨어나 아침 안부 인사와 함께 온갖 얘기와 정보를 주고받는 그 시끄러운 소리가 그들이 나름으로 세대와 세대를 거듭해 전승하고 학습한 언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문화와 예술은 종다양성의 생태계에서 피는 꽃

문화와 예술은 모방이자 대화이다. 사회와의 대화이자 자연과의 대화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 예술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산업화의 석유 냄새가 너무나 많이 나는 인공의 기괴한 낭비성 사치품으로 전락해버린 측면이 많다. 아니 심지어는 대중문화라는 미명 아래 사람들을 자본주의의 노예상태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도구로, 석유문명의 중독증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마취제로 사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계가 만든 문화와 예술은 진정한 문화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공의 포장지에 쌓인 또다른 기계일 뿐이다. 현대 산업문명을 예찬하는 모든 문화와 예술은 사실은 석유 위에 핀 조화일 뿐이다. 석유문명의 붕괴에 일조하는 바벨탑일 뿐이다.

탈석유문명의 문화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수많은 창작자들이 여기저기서 내지르는 비명을 듣는 일은 참으로 눈물겹다. 그런 비명소리를 넘어 우리의 문화와 예술은 이제 흙으로 돌아와야 한다. 차라리 뉴기니 줄무늬풍조와 도래까마귀와 코끼리로부터 배워야 한다.



*박승옥은 구로동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10여 년 동안 시골을 돌아다님. 지금은 에너지전환 운동 시민기업인 시민발전 일과 전태일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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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디자인은 좋은 것인가?

지상현/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심리학 박사
출처:<프레시안> 2007 05 10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요즘 부쩍 높아졌다. 그러나 관심도만큼 디자인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디자인은 다른 분야와 달리 사회의 인식수준 내에서 발전한다. 예컨대 공학은 연구시스템만 제대로 작동되면 대중의 지식수준과 상관없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사회의 구석구석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그 자체만 독립적으로 발전하는 법이 없다.
  
  디자인은 우리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공기처럼 호흡된다. 문화와 산업이 만나는 접점이자 우리의 문화적 특징과 수준을 겉으로 드러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발전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간 외국 유명디자인의 성공 스토리, 외국 디자인계의 몇 가지 트렌드, 산업에서의 디자인의 역할, 디자인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견해가 미디어에서 충분히 소개되었다. 이런 정보들 덕에 고교 교실에는 디자인 전공을 원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관에서조차 얼마간의 디자인 예산을 책정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이런 양적 팽창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질적 성장을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자면 디자이너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 디자인이란 디자이너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하는 인간'이라는 정도의 뜻으로 새길 수 있는 '호모 데지그난스(Homo designans)'라는 라틴어 조어를, 이 분야에 정통한 분들의 도움을 얻어, 만들어 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맥락에서 몇 가지 생각해볼 거리들을 준비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디자인을 이해해보자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적 환경의 질을 높이고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일에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됐으면 한다. <필자>
  

몇 해 전 시내 유명 서점 안에 있는 문구점에 들렀다가 놀란 적이 있다. 외국의 디자이너가 제작한 편지나이프, 가위, 연필통 등 소품의 가격이 개당 1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순간 욱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조금 세련됐다고 이렇게 소비자를 현혹하다니!"
  
  좋은 디자인이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건 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약간의 차이로 제품의 가격이 급상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명품점에 가면 1000만 원이 넘는 양복이나 액세서리, 억대로 치닫는 AV시스템이 즐비하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가의 대체 상품을 사면 된다. 뻔히 알고 있는데, 그때는 왜 그리 화가 났을까? 어쩌면 명품관에 있어야 할 물건이 서민이 드나드는 서점이라는 안전영역으로 침입한 것에 대한 영역본능이 작동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다.
  
  비싼 디자인은 좋은 것인가?
  
  이 경험에 오버랩돼 떠오르는 낯익은 풍경들이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술자리에서 디자인 하나 때문에 몇 배 비싸게 팔리는 모모 브랜드의 성공스토리를 선망하고 디자인의 힘을 칭송한다. 나아가 '소수를 위한 것일지라도 자신만의 디자인세계가 담긴 특별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며 작가주의를 말하고 수입 종이 같은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지 못해 안달한다. 이런 태도는 디자인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간주돼 격려 받는다.
  
  의식했건 못했건 이런 이야기들의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을 위한 명품주의, 엘리트주의 디자인이다. 물론 이게 무작정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 아주 자연스러운 시장주의적 사고의 하나이며 필자도 이런 대화에 말을 보탠 적이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다양한 디자인의 세계에서 주된 관심사가 그런 것뿐이었을까", "왜 디자인에서 가치의 문제를 외면하고 수단으로만 생각해 스스로를 낮추었을까"하는 자성이 든다.
  
  디자인에는 추구해야 할 가치가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다. 인간에게 편하고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자는 이 정신은 세계적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의 말을 빌지 않아도 디자인을 디자인이게 만드는 핵심가치다. 그래서 디자인은 스타일리즘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 선진국의 정책에서도 살아 숨 쉰다. 예컨대 세계의 '디자인 공장'이 되겠다며 대처 정부 시절부터 강력한 디자인 육성정책을 펴고 있는 영국에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100대 디자인 과제를 선정해 추진 중이다. 100대 디자인 과제에는 시각장애우 들을 위한 색채점자 개발처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과제가 여럿 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유니버설 디자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노약자, 장애우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과 제품을 만들자는 디자인 이념을 말한다. 예컨대 휠체어를 위해 통로나 문틀에 턱을 없애거나 눈이 어두운 노인이나 문맹자를 위한 약 처방전 디자인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디자인에는 약간의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을 하는 기업과 디자이너는 그 정도는 개의치 않는다.
  
▲ 일본의 표준적인 약처방전. 약 이름뿐 아니라 약의 모양과 복용방법, 부작용까지 꼼꼼하고 크게 적혀 있어 누구라도 어려움 없이 약을 복용할 수 있다. ⓒ프레시안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린 디자인(Green Design)'이란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쉽게 말해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이다. 가급적 환경 친화적이거나 재활용된 재료를 사용하며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재료를 낭비하지 않는 디자인을 말한다.
  
  각 민족의 고유한 시각 문화를 현대에 맞게 다듬는 일 역시 디자인의 소중한 과제다. 생명력을 잃고 화석화되기 쉬운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다듬어 살아 숨 쉬게 하는 것, 이는 경제적 가치를 떠나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소중한 일이다. 예컨대 홍익대 안상수 교수의 탈 네모틀 체의 개발은 한글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일깨웠고, 알파벳에 치여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던 우리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사라져가던 한국 도깨비의 형상이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로 되살아난 것도 마찬가지 경우다.
  
  우리는 디자인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나?
  
  이렇게 디자인에는 소중한 가치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이런 가치들이 균형 있게 발현될 때 디자인의 건강성이 유지되고 비로소 디자인은 사회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기능하게 된다.
  
▲ 한글을 활용한 의상으로 이상봉의 작품이다.@프레시안

  명품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물론 마케팅이라는 맥락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도 있고 작가주의 디자이너도 필요하다. 이들 덕에 디자인 방법론이 발전하고 새로운 스타일이 공급된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디자인의 세계가 완성되지 않는다. 좀 더 기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디자이너들도 있어야 디자인은 완결된 분야가 되고 시스템이 된다.
  
  예컨대 박물관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장애우나 노약자들이 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과 제품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도 있고 디자인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디자인 이론가, 방법론을 개발하는 디자인학자도 있다.
  
  실로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기본에 충실할 때 독창성도, 실용성도 커진다는 대목이다. 인간의 심리적, 물리적 욕구와 깊게 만나는 디자인은 수명이 길다. 반대로 인간의 욕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면 한 때 반짝이는 디자인은 가능해도 오래 지속되는 디자인을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디자인의 본질적 가치에 충실해야 인간의 욕구와 깊게 만날 수 있다.
  
  '실용성'과 '독창성'이 만날 수 있는 길은?
  
  예컨대 독창적인 손잡이로 시장을 장악한 'OXO International' 사의 'Good Grip' 시리즈 주방기구들을 보자.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한 애틋한 마음에서 탄생한 이 시리즈는 진정한 실용성과 독창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 OXO사의 주방기구들. 개당 가격은 10달러 정도 ⓒ프레시안

  또 전통문화는 독창성의 보고다. 오랜 세월에 걸쳐 대대손손 다듬어진 전통문양과 각종 도구들에는 당대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농밀한 아름다움이 있다. 순수한 무(無)에서 시작된 유(有)는 존재하지 않으며, 무엇인가를 딛고 창작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통문화는 확실한 디딤판이 된다. 한글을 이용한 패턴으로 프랑스 패션 디자인계를 놀라게 한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이 그러한 사례다. 골판지나 폐신문지 등이 새로운 디자인 소재로 각광받게 된 것은 그린 디자인이 독창성의 자양분이 되었던 비슷한 경우다.
  
  이렇게 디자인계에서 다양하고 본질적인 가치가 추구되고 그 결과물이 공유될 때 그 디자인계는 좀 더 완전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그런 사이 우리 거리와 환경은 아름답고 편한 곳이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 디자인은 남들이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폭과 깊이와 독창성을 갖게 될 것이다.
  
  글쓴이 '지상현'은,
  
  1960년 서울생.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연세대 대학원에서 지각 및 인지 심리학을 공부했다. SKC에서 4년 반 정도 디자이너로 근무했고 2년 정도 디자인회사를 운영한 적도 있다. 현재 한성대학교 미디어디자인 컨텐츠 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며 주 전공은 미술 및 디자인 심리학이다. "디자인의 법칙", "시각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 등을 5권의 책을 썼다. 심리학을 기반으로 디자인 교육, 경영, 창작 등에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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