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문화예술을 창조한다?
[석유문명과예술]시멘트에서 흙으로 돌아와야

출처:<컬쳐뉴스>(www.culturenews.net)2007-10-01
박승옥 _ 시민발전 대표


코끼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 코끼리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문화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동서양의 수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을 정의했다. 물론 동양의 문(文)과 예(藝)는 서양의 컬쳐(culture)와 아트(art)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오늘날 문화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 생물학자 등등이 내린 문화와 예술의 정의를 죽 내리 적어 종합하면 아마도 문화와 예술은 사람과 지구를 넘어서 우주의 모든 것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수많은 정의에서 공통점을 하나 찾을 수가 있다. 다름아니라 문화와 예술이 학습과 모방을 통해 전달, 확산, 변형되는 지식 정보라는 점이다. 마가렛 미드가 『세 부족사회의 성과 기질』에서 관찰하고 있듯이 뉴기니 섬의 산 속에서 사는 아라페시족은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자손을 불려나가는 일을 인생 최대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강가에 사는 먼더거머족이 전투와 여성쟁취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며, 호숫가에 사는 쳄불리족이 주로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각각의 부족들이 그런 자신들의 부족문화와 예술을 세대와 세대를 거쳐 대대로 전수하고 학습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미국의 팝송이라는 대중음악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나라 젊은이들에게 뜻도 모른채 흥얼거려지는 것은 미국문화를 맹목으로 선진문화처럼 받아들이고 쫒아가는 모방과 확산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문화와 예술은 과연 사람이라는 종에게만 유일하고 고유한 것일까.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표지 가운데 하나가 사람은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고 전승한다는 데 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모방은 아이 때부터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람이 더 하등한 동물보다 우월한 까닭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모방하기 좋아하는 생물이며 처음에 모방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과연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수많은 보고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는 고시마섬 원숭이
고구마를 씻어먹는 고시마섬 원숭이

1940년대 영국인들은 아침마다 집집이 배달되는 우유병의 얇은 막으로 된 뚜껑이 뜯겨져 우유가 누군가에게 도둑맞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순식간에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범인은 푸른 박새(Parus caeruleus)였다. 푸른 박새 한 마리가 우연히 병뚜껑을 찢어 우유를 마실 수 있었고 이를 본 다른 푸른 박새들도 곧 이를 모방하고 학습해서 신선한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푸른 박새들은 우유병 뚜껑만 찢는 것에서 나아가 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벽지를 뜯어내기까지 했다.

1953년 9월 일본 고시마 섬의 마카구 원숭이 한 마리가 연구자들이 준 고구마를 근처 개울물에 씻어 먹었다. 그러자 그 행동을 유심히 지켜 본 다른 새끼원숭이들이 덩달아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했고 이윽고 고구마 씻어먹는 기술은 무리의 전 새끼원숭이들에게 학습되고 전수되어 하나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형성되었다. 고시마 섬의 원숭이들은 모래 위에 던져진 밀도 모래와 밀을 물 위에 던져 물에 뜬 밀을 건져 먹는 기술까지 발견했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 기술 또한 고시마 섬 원숭이 무리의 음식문화로 정착되었다.

짝짓기에도 모방과 학습이 있다

문화와 예술의 가장 주요한 소재와 내용은 짝짓기이다. 오늘날 우리는 선남선녀를 중매하는 결혼정보주식회사의 주선으로 수많은 남녀들이 모여 짝짓기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같은 결혼 시장에서 개개의 사내와 계집은 그들의 재산과 외모, 집안 배경 등 짝짓기를 결정짓는 요소들이 적나라하게 계량화되어 등급이 매겨지고 상품목록에 올라간다. 짝짓기를 하고자 하는 사내와 계집은 회사 입장에서는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혼의 남녀는 실제는 상품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결혼정보회사들이 보여주는 바는 명백하다. 사람들은 결혼 시장에서 자신의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굳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하지 않고도 미혼의 성인들은 성장하면서 다종다양한 모임과 만남의 장을 통해 자신의 짝을 어떤 분명한 선택 기준에 따라 고르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인종과 지역에 따라 그리고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수많은 짝짓기 선택기준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의 짝짓기 선택기준이 부와 권력임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굳이 유전자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와 권력은 여성과 자식들의 안전한 미래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혼 남성에게 부와 권력은 사실 미래의 가능성일 뿐이다. 여성은 미래에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남성을 선택해야 하는 일종의 모험을 해야만 한다. 이런 모험에서 위험을 가장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부 새 종류에도 렉(lek)이라는 결혼시장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의 짝짓기 선택권은 주로 암컷이 갖게 된다. 렉은 다름아니라 암컷이 수컷을 고르는 수컷들의 공동 구혼장이다. 젊은 스칸디나비아 멧닭 암컷들은 렉에서 나이든 암컷이 고르는 수컷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모방의 결과이다. 경험많은 암컷의 선택은 그만큼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유럽 소나무와 가문비나무,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의 렉에서 상위 멧닭 수컷 한 마리는 렉에 있는 암컷의 80%를 독차지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여성들은 다른 여성이 선택한 남성을 선택하고자 하는 모방 경향이 있으며, 플레이보이에 매력을 느끼는 까닭 또한 멧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극락조 깃털 모자와 줄무늬풍조의 아름다운 정자

우리는 사람만이 도구를 사용하고 사람만이 문화를 창조한다는 우물안 개구리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숭이도 새들도 도구를 사용하고 놀이를 한다. 원숭이는 막대기를 이용해 개미를 잡아먹고 도래까마귀는 눈 위에서 배를 대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보금자리로 돌아오면서 공중제비를 돌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가위개미는 나뭇잎을 잘라 정교한 지하방에서 자급자족의 곰팡이 농사를 지어 먹고 살고, 말레이시아의 돌리코데루스 개미는 가루깍지벌레를 가축으로 길러 그 항문에서 나오는 꿀방울을 먹이로 생활한다.

2005년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코끼리 여덟 마리가 합동으로 그린 그림이 4천 5백만원에 팔렸다. 코끼리가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1980년 인도코끼리 한 마리가 그린 그림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유명한 추상화가 전시회에 몰래 끼워 넣어 마찬가지로 미술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실제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인터넷에서 한 번 검색해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 침팬지도 그림을 그릴 줄 안다.

뉴기니의 원주민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의식용 옷을 입는데, 어떤 부족들의 남성용 모자는 반드시 극락조의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다. 뉴기니의 줄무늬풍조는 짝짓기 장소이기도 한 인디언 천막 모양의 매우 정교하고도 뛰어난 정자를 저마다 각기 다르게 짓는다. 가운데 기둥을 세우고 기둥 둘레에 이끼로 작은 담을 쌓은 다음 정자를 장식하기 위해 총천연색의 자연재료는 물론 화려한 색의 과자 포장지, 작은 상자, 반짝이는 열쇠 등 온갖 인간의 물건들까지 훔쳐 간다. 사람이 만든 극락조의 깃털 모자는 예술이고 줄무늬풍조의 아름다운 정자는 짝짓기를 위한 본능의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이 세상은 다양한 생물종들의 축제 장소이다. 문화와 예술은 종다양성의 생태계를 바탕으로 꽃을 피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만이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만이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새가 지저귀고 우는 것을 새의 언어로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정말 멍청한 생물종 편견주의자이다. 늑대가 포효하는 것이, 미어캣의 경보음이, 치타가 짧고 독특한 소리로 새끼들을 부르는 소리가, 괭이갈매기 새끼가 어미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참새들이 아침에 깨어나 아침 안부 인사와 함께 온갖 얘기와 정보를 주고받는 그 시끄러운 소리가 그들이 나름으로 세대와 세대를 거듭해 전승하고 학습한 언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문화와 예술은 종다양성의 생태계에서 피는 꽃

문화와 예술은 모방이자 대화이다. 사회와의 대화이자 자연과의 대화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 예술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산업화의 석유 냄새가 너무나 많이 나는 인공의 기괴한 낭비성 사치품으로 전락해버린 측면이 많다. 아니 심지어는 대중문화라는 미명 아래 사람들을 자본주의의 노예상태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도구로, 석유문명의 중독증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마취제로 사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계가 만든 문화와 예술은 진정한 문화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공의 포장지에 쌓인 또다른 기계일 뿐이다. 현대 산업문명을 예찬하는 모든 문화와 예술은 사실은 석유 위에 핀 조화일 뿐이다. 석유문명의 붕괴에 일조하는 바벨탑일 뿐이다.

탈석유문명의 문화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수많은 창작자들이 여기저기서 내지르는 비명을 듣는 일은 참으로 눈물겹다. 그런 비명소리를 넘어 우리의 문화와 예술은 이제 흙으로 돌아와야 한다. 차라리 뉴기니 줄무늬풍조와 도래까마귀와 코끼리로부터 배워야 한다.



*박승옥은 구로동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10여 년 동안 시골을 돌아다님. 지금은 에너지전환 운동 시민기업인 시민발전 일과 전태일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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