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없는 한국정치] 최장집 “진·보 ‘反정당적 태도’ 공유”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사회적 이해집단 대변 ‘경합체제’필요
-내각제는 ‘이상’준대통령제 현실 대안


외국인이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에게 한국에서는 어느 정당이 재벌의 이익을 대표하느냐, 누가 중소기업을, 누가 노동자·농민의 이익을 대표하느냐고 묻는다면?

최교수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이 재벌 이익을 대표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이익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를 대표한다”고 말할 뿐이다. 이는 정당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다.

최교수는 제자인 박상훈·박찬표 박사와 함께 쓴 최근 저서 ‘어떤 민주주의인가’(후마니타스)에서 민주화 20년을 맞았음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더욱 퇴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정당 정치의 실종에서 찾았다. “한국의 정당은 대중 참여의 메커니즘으로서 제 역할을 해본 적도 없고, 어떤 계급적·이념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프로그램을 투표자들에게 제시한 적도 없다.”

이는 보수와 진보에 관계 없이 만연한 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보수파들은 사회적 균열에 넓게 기반을 둔 민중적이고 대중적인 정당의 출현이 현상 유지나 사회적 기득 구조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로 민주화운동 출신 진보파들은 부패하고 무능하며 보수적인 정당으로는 좀더 큰 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는 인식하기 때문에 양측이 모두 반정당적 태도를 공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극복되지 않는 한 소외된 사람들의 의사를 정치 과정에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본다. 이는 올 초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이 최교수를 비판하며 제기한 ‘운동의 동원에 의한 민주주의’론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최교수는 “운동론자들은 정당의 매개 없이 시민사회와 국가가 직접 관계하는 것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제도적으로 조직화돼 있지 않은 시민사회 또는 운동의 형식으로 강력한 국가를 민주적으로, 그것도 장기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운동이 추동하는 대중 동원의 에너지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정당으로 매개되지 않을 때 자칫 ‘국가로의 길’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추진이 결국 관료와 기업연구소에 막혀 좌초됐던 사실로 증명된다. 선출된 적이 없는 관료와 기업 연구소가 든든하게 떠받치는 ‘강력한 국가’가 추진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정규직법에 대해 ‘정당 없는’ 시민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최교수의 가장 큰 비판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보수진영이 진작 성장과 개발, 효율성만을 정치에 투사해 왔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 그 면적을 더 넓혀왔다면 그에 대응하는 시장 소외자들의 열망은 노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 속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절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당정 분리나 국민 경선제처럼 정당의 역할을 최소화하려는 접근을 취해왔다.

최교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의 갈등하는 이해 집단들의 소리가 조직되고 대표되는 정당이 경합하는 체제’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든든하게 들어선 뒤에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론적으로는 의회중심제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지이기 때문에 행정수반과 국가수반을 분리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출에 결선 투표제를 가미하는 프랑스식 준대통령제가 대안일 수 있다고 한다.

〈손제민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정당없는 한국정치] 후보만 보이고 黨은 안보인다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여론조사 의존한 경선…후보·팬클럽 중심 선거

-민심과 동떨어진 ‘헤쳐 모여’되풀이 ‘퇴행’심화


한국 대선에 정당은 없다. 민주주의 근간이 ‘괴사’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탈(脫) 여의도’ 구호가 단적이다. 대선의 축이 되고 정책 산실이 돼야 할 정당은 뒷전에서 병풍으로 전락했다. “정당마다 얼굴(대선후보)만 있고, 줄기(노선·정책)와 뿌리(당원)는 썩어가고 있다”(한 재선의원)는 지적은 정당정치의 기형적·퇴행적 현주소를 압축한다. 정치불신→이합집산→여론조사 선거→당원 소외→당 정체성 혼선→후보(팬클럽) 중심 선거의 악순환이 심화된 탓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원내정당화, 대중정당화 모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며 “정당의 유동성이 커지고 책임을 묻는 정치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의 일관성·안정성·예측가능성이 흔들리는 폐해가 국민들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후보만 있고 당은 없다=대선후보만 ‘광채’를 받고, 당은 그늘 속에 있는 인물중심의 선거가 반복되고 있다. 후보들이 불신받는 제도권 정치와 거리를 두거나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구도다. 대선후보의 공약에 ‘가위눌린’ 정당이 단적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대운하’ 공약은 아직 당 공약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공개적으로 ‘신중론’을 점화하자, 박근혜 전 대표측 유승민 의원은 “당 공약으로 채택할지 표결로 정해야 한다”(지난 15일 의원총회)며 반박하는 중이다. 다만 “내정된 것”(당 관계자)이란 표현처럼 당에선 확전만 덮는 기류다.


이라크 자이툰 파병을 반대해 온 민주당이 이인제 후보 당선후 ‘찬성” 입장을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후보가 파병연장안을 찬성하고, 당에선 협의는 없었지만 부인할 수 없어 따라간 것”(당 핵심인사)이란 지적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경선때 ‘정기국회 처리 찬성’ 입장을 밝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도 당 지도부는 신중한 입장이어서 후보와 당 사이에 긴장이 쌓이고 있다.

◇당원과 당규는 뒷전이다=‘반한나라당’ 깃발을 든 대통합민주신당은 여전히 ‘과도기’적 행태가 짙다. 현재 ‘열린우리당 승계당원(75만명)+대선후보 경선때 합류 당원+지역 당원협의회별 신규 당원’이 세 갈래 축을 이룬 장부상의 당원 숫자는 117만여명. 그러나 “경선때 ‘유령당원’ 논란을 빚은 열린우리당 승계당원은 적극성과 동의여부에서 미제로 남아있다”(당 핵심인사)는 평가다.

착근된 선거제도가 없는 불안정성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당심·민심 반영 비율을 5대 5로 만들기 위해 여론조사에 가중치를 뒀던 경선규칙의 ‘봉합’은 여론조사에서 앞선 이명박 후보에게 승리를 안겼고, 박근혜 전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의 경선불복 움직임을 낳았다.

◇책임·정책·참여 정치는 위기다=정책과 통합의 축이 될 정당의 퇴조는 한국 정치에 암운을 던진다. 최근 ‘정당없는 민주주의’란 테마로 열린 한국정치학회에서는 “‘워낙 신생민주주의니까’로 치부될 상태가 아니다. 정당 자체가 어떻게 정립돼 가야 하는지 재고가 없는 한국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인물중심 선거와 이합집산의 폐해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 민심에서 멀어진 정당이 외부 인물수혈과 여론조사 같은 처방을 내놓지만, 구조적 병폐는 계속 키우고 있다. 당장 당원들은 소외되고, 대선후보들의 선거 주력부대가 당보다는 ‘명박사랑’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처럼 팬클럽이 되고 있다.

후보단일화 카드가 거론되는 범여권은 정당의 울타리가 더욱 느슨해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좋은정책포럼에서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정당은 소극적으로 사회통합기능에 매우 중요하고 적극적으로는 민주적 집단의지의 구현체”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당원과 핵심지지층을 무시하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이는 인기투표는 정당정치를 파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기수·박영환기자〉


[정당없는 한국정치] 선거마다 ‘떴다방 정당’ 불신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정당정치 실종 원인과 해결책은


‘한국에 제대로 된 정당이 있었나.’ 정당정치의 위기에 대해 정치학자와 정치권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던진 의문이다. 그만큼 한국 정당의 구조는 왜곡됐고, 그 점에서 정당정치의 ‘실종’이 아니라 ‘부재’가 맞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 뿌리는 1987년 6·10항쟁 후 지역주의에 근거한 ‘3김 정치’로 거슬러올라갈 정도로 깊다.

민정당(전두환)·민자당(노태우)·신한국당(김영삼)·새천년민주당(김대중), 열린우리당(노무현) 등 ‘한 정권의 정당’으로 전락한 정당사는 상징적 단면이다. 원인은 무엇이고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도당(徒黨)이 돼 버린 정당=정당정치 부재의 근저에는 왜곡된 우리 정당의 구조가 놓여 있다. ‘강령(가치)·당원·지지대중’의 전통적 정당의 요소는 한국적 정치현실에서 ‘돈·권력·조직’으로 대체돼 왔다. ‘떴다방’식 선거조직과 당원들은 해묵은 선거철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는 정치권이 ‘진성 당원’의 명분을 외치면서도, 현실에선 손쉬운 ‘조직 동원’에 의존해온 때문이다.

2004년 “난닝구·빽바지”로 치고받으며 1년 넘게 분란을 일으킨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 논란은 한국정치가 조직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반수 정당의 외양에도 불구하고 “정치현실은 다르다”며 당원자격 완화를 주장한 한 개혁성향 재선 의원의 말은 상징적이다.

이같은 상황은 우리 사회의 정치 불신과 맞물리며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기존 정치인보다는 정당밖 ‘스타’가 주목받고, 다시 그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현상이다. 그 결과 ‘신장개업’과 같은 깜짝쇼나 ‘탈정치화’는 유행이 됐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당선가능성만 높고 잘 알려져 있으면, 정당 활동을 안해도 당의 후보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정당정치를 더욱 약화시키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그간 정치개혁의 방향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부패를 단절하겠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지구당 폐지 등 대중과 정당을 이어주던 고리가 단절되면서 정당정치의 기반을 더욱 침식했다는 것이다. 당정분리·원내정당화·개방형 국민경선 등의 정치 변화도 정당을 국가와 사회로부터 분리시킨 측면이 있다.

◇돌파구는 없나=결국 본질적 해법도 정책·이념정당 등 ‘정당 바로세우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 진성당원화의 체질 강화가 궁극적 해법이라는 의미다. “민노당이 유럽 좌파 정당들처럼 30~50%의 지지를 받을 정도로 정치판의 한쪽을 담당하면 다른 쪽의 정치성도 분명해질 것”(박노자 교수)이라는 진단이다. 강원택 교수는 “외국도 당원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정당 스스로 당원을 결집하고 조직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던 것 같다. 과거식 위계적 정당은 이제 어렵고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당이 변신해야 할 것 같다”고 충고했다.

장기적 체질 강화와 별개로 국민들과 정당의 거리를 좁혀,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진민 명지대 교수는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반응도를 높이는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당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지지자들 폭을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광호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또 분신…비정규직 ‘출구 잃은 선택’
출처:인터넷 한겨레 2007 10 31  황예랑 기자 황보연 기자


»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

서울우유 운송트럭 운전 고철환씨 3도 화상 중태
10년간 운송료 동결 노조 설립…회사는 대화 거부
한계점 넘어선 비정규직 “극한 투쟁 상황 내몰아”


31일 오전 1시께. 새벽바람을 맞으며 2.5톤짜리 우유 배달차를 몰았던 고아무개(52)씨와 박아무개(57)씨는 “함께 죽자”며 고씨의 트럭에 ‘우유’ 대신 ‘휘발유’를 싣고 서울우유 안성공장 정문 앞으로 차를 몰았다. 공장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서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인 지 17일째 되는 날이었다. 차가 공장 정문 앞에 멈춰서자 두 사람은 차 위로 올라가 휘발유를 뿌렸다. 곧 불길이 치솟았다. 휘발유가 거의 묻지 않았던 박씨는 화를 면했지만, 고씨는 3도 화상을 입어 중태다. 인천지역 건설노조 조합원 정해진씨에 이어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비정규 노동자의 ‘분신’이다.

 
»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 조합원 고철환씨 분신에 항의하려 모인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31일 오후 서울우유 안성공장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제공
 
목숨까지 내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극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일용직이나 특수고용직, 용역직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조활동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고씨는 서울우유협동조합과 월 300만∼400만원을 받는 계약을 맺고 자기 차로 우유를 나르는,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였다. 하루 휴무하면 10만원이 깎이는 탓에 고씨는 휴일도 없이 일했다. 나날이 운행시간·거리는 늘어났지만 10년 동안 운송료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같은 처지에 있던 안성·거창·양주 등지의 우유배달차 노동자 380여명이 지난해 운수노조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를 설립했다. 이어 지난 7월 서울우유 쪽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넉 달째 노조를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우유는 31일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화물 차주들의 노조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냐”고 밝혔다.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황대섭 교육부장은 “회사는 노조가 생겨나자 노조원 네 명을 무연고지로 보내고, 노조원들에게 ‘화물연대 탈퇴’ 각서를 강요하며 노조를 탄압했다”며 “회사가 고씨를 분신으로 몰아간 셈”이라고 주장했다.

진숙경 고려대 기업경영연구원 연구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격렬한 투쟁은 이미 예고된 일”이라며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노조 활동이 제도화되지 못하면 극한 투쟁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도 “40~50대 남성 가장들이 잇달아 분신을 기도했다는 것은, 이들이 그만큼 출구가 보이지 않는 꽉 막힌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라며 “이른 시일 안에 근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했지만, 정작 법과 제도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해 생기는 불가피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씨와 같은 화물 지입차주나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근로자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몇해째 논의만 무성할 뿐 아무런 진전이 없다.

한편, 이랜드나 코스콤 등 비정규직 문제로 회사 쪽과 장기 갈등을 빚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 양상도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 50일째에 접어든 코스콤 비정규지부는 지난 29일 새벽 단체교섭을 요구하려 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다 용역 경비원들에게 끌려나와 경찰에 넘겨졌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 8m 높이 철제탑에선 19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던 노조원 이아무개씨가 쓰러져 응급실로 급히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또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앞 폐쇄회로텔레비전 전송탑에서 고공시위를 시작한 뉴코아노조 간부 박아무개씨는 9일이 지난 지금까지 탑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황예랑 황보연 기자 yrcomm@hani.co.kr


내오랜꿈 ---------------------------------------------------------------

다수의 편의를 위하기보다는 소수자의 권익을 위하여 휠체어가 못 다니는 육교나 지하도보다는 교통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횡단보도가 권장되고, 하루 십만 명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도 십만 명의 비장애인의 편의보다는 단 한 명의 장애인을 위하여 휠체어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인류문명이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소수자권리에 대한 최종결론이다.

이것이 진정한 문명의 '진보'요, '발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전 정권보다 '진보적'이라는 DJ정부, 참여정부 들어와 비정규직 양산의 길을 터게 되고 확대재생산 되어왔다. 세상 그 어떤 '진보'가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고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길거리로 내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

이런 판국에 다시 한 번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 진보, 개혁 세력이 후보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도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진보, 개혁은 어떤 것인가?

진보? 개혁?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문학은 절망과 희망 사이에 서있어
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베로니크 타조 / 코트디부아르 소설가
 인터넷한겨레 / 2007 10 30
 


  » 베로니크 타조 코트디부아르 소설가
2002년 코트디부아르는 정치적, 군사적 갈등의 깊은 골로 접어들었다. 나라는 둘로 분리되었다. 반군이 지배하는 북과 친정부 성향의 남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갈등의 핵심은 ‘코트디부아르인이란 과연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누가 코트디부아르인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가를 묻고 있었다. 이웃한 국가들 중 북쪽 지역에 위치한 기니와 말리, 특히 부르키나 파소인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7월, 오우아가도우고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나는 2004년에 쓴 <포코우 여왕>이라는 책에서 코트디부아르의 갈등을 과거 구전전통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제기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이미 익히 알려진 전통에 따르면 포코우 여왕은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난 후 아샨티 왕국(과거 가나 왕국/역자)으로 도피를 했다고 한다. 도주자들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이 너무 크고 넓어 건너기가 힘들어지자, 포코우 여왕은 자신이 낳은 갓난아이를 물속에 던져 버렸다. 이를 통해 여왕의 추종자들과 후에 바울레 왕국(‘바울레’는 “아이를 희생하다”라는 뜻)을 세우게 되는 사람들은 무사히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추격을 피할 수 있었다.

바울레 왕국, 다시 말해 지금의 코트디부아르의 탄생신화를 탐구함으로써 나는 오늘날 종족 간 갈등과 정치적 야심가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적 갈등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조감해보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바오인들은 거의 모두에게 ‘진짜’ 코트디부아르인으로 인정 받는다.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일말의 회의를 품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를 보면, 이들이 오늘날 가나에서 왔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전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부터 이동해왔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종족을 구분하여 싸우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국가가 오히려 풍성한 전통을 가진 법이다.

포코우 여왕의 희생은 내게 자신의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어머니의 희생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오늘날 권력 투쟁의 제물이 되고 있다. ‘소년병’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이들을 납치해 전선에서 싸우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지금도 서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다.

내가 <아비장 블루스>라는 그 다음 소설에서 긴밀히 탐구했던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이 소설은 현대의 코트디부아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몰락한 한 가정을 다시 세우는 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내전의 참상과 이를 고발하는 새로운 방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한 개인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얼개가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한 개인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동시에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적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토록 전도양양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던 서아프리카의 한 모범적인 나라가 전쟁과 종족 간 갈등으로 인해 깡패국가로 바뀌어 갔는가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역사 속에 인간적 차원을 제공하려 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좀더 분명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사유가 깊고, 정치적으로 잘 교육 받은 동시에 도덕적으로 민감한 시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단지 아프리카에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이것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횡행하는 서구식 미디어만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과 말을 통해서, 논쟁과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문학이 바로 이 경우 새로운 전선을 열어젖히는 소중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문학은 인간을 저해하는 어떤 것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말의 거리감을 인정한다. 때때로 역사를 개인사 및 소설과 섞기도 한다. 현재를 다루지만, 과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쓰는 일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듣게 하고 그 속으로 인도하는 일이 문학의 일이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존재는 바로 이 모순 위에 세워진 것이다. 때때로 완벽한 침묵으로 귀결되는 절망과 완전히 새로운 행위를 추동하는 희망,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위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디 음악영화 ‘원스’ 10만 관객 돌파
 <한겨레> 2007 10 31


» 원스
아일랜드 인디 음악영화 '원스'가 전국 1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원스'의 수입배급사 영화사 진진은 "지난 28일을 기준으로 총 관객수가 10만7천499명에 이르러 1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섰다"며 "국내 개봉 인디영화 중 최고 기록"이라고 31일 밝혔다. 9월20일 개봉 당시 10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현재 15개 상영관으로 늘어났다.

이 정도 스크린 규모에서 10만 명이 넘었다는 것은 상업영화로는 최소한 500만 고지를 넘긴 것과 비슷하다. 인디영화의 경우 전국 1만 관객만 돌파하면 흥행 성공작으로 여긴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Falling slowly' 'If you want me' 등이 실린 O.S.T도 1만 장 이상 팔렸다.

'원스'는 아일랜드 인디밴드 더 프레임즈의 리더인 글렌 한사드와 체코 출신 뮤지션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뛰어난 음악성과 함께 담백한 연기가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영화.

존 카니 감독은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결코 과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깔끔하게 그려냈다.

(서울=연합뉴스)


내오랜꿈 ---------------------------------------------------------------

"<원스> 같은 영화를 보면 영화란 참으로 단순해 보인다. 적절한 대목에 제대로 연주를 하면 된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에 집중하거나 그들의 표정에 집중하거나, 적재적소에서 자리를 잡기만 하면 화음은 완성된다. 다양한 악기나 번쩍이는 조명 또는 환호하는 군중이 없어도 말이다. 또한 좋은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듯 의미에 앞서 정서를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원스>가 <카사블랑카> 같은 고전기 할리우드의 로맨티시즘을 부활시킨 느낌을 주는 것도 결말의 유사함만은 아닐 것이다. 로맨티시즘은 음악처럼 은근히 스며들어야 신파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원스>는 그런 점에서 올 가을 필요충분한 영화다."(남동철, <씨네21> 2007 10 12)

지난 9월 중순(추석전으로 기억한다)에 개봉한 <원스>가 입소문을 타고 장기상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개봉하기 전 시사회를 통해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렇게 흥행에 성공(?)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리라. 사실 영화 한 편을 두고 영화잡지, 평론가, 관객들 모두 거의 만장일치로 환호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깐느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영화들 조차 관객, 평론가 어느 한쪽의 구성원 일부에게는 외면 내지 혹평을 받게 되는 게 다반사 아니던가.

이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처럼 단관개봉했다가 평단과 관객들의 지지를 업고 수백여 개의 스크린으로 확대 상영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리는 걸 보면. 하긴,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작품 치고 나쁜 평가 받은 영화는 아마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래 인용하는 글은 조선희씨의 <원스>에 대한 리뷰다. 비교적 영화의 스토리가 드러나지 않는 리뷰니까 영화 못 보신 분들도 한번쯤 읽고 영화를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곡은 O.S.T.에 실린 "Falling Slowly"이다. 나머지 곡들도 클릭하면 들을 수 있다.


Once OST 中 "Falling Slowly"
 
Once OST 中 " Say it to Me Now"
 
Once OST 中 "Once"
  
Once OST 中 "If You Want Me"
  
Once OST 中 "All the Way Down"
 
Once OST 中 "When Your Mind's Made Up"
 
Once OST 中 "Fallen From the Sky"
 
Once OST 中 "The Hill"
 
Once OST 中 "Lea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