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해집단 대변 ‘경합체제’필요
-내각제는 ‘이상’준대통령제 현실 대안
외국인이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에게 한국에서는 어느 정당이 재벌의 이익을 대표하느냐, 누가 중소기업을, 누가 노동자·농민의 이익을 대표하느냐고 묻는다면?
최교수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이 재벌 이익을 대표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이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이익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를 대표한다”고 말할 뿐이다. 이는 정당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다.
최교수는 제자인 박상훈·박찬표 박사와 함께 쓴 최근 저서 ‘어떤 민주주의인가’(후마니타스)에서 민주화 20년을 맞았음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더욱 퇴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정당 정치의 실종에서 찾았다. “한국의 정당은 대중 참여의 메커니즘으로서 제 역할을 해본 적도 없고, 어떤 계급적·이념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프로그램을 투표자들에게 제시한 적도 없다.”
이는 보수와 진보에 관계 없이 만연한 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보수파들은 사회적 균열에 넓게 기반을 둔 민중적이고 대중적인 정당의 출현이 현상 유지나 사회적 기득 구조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로 민주화운동 출신 진보파들은 부패하고 무능하며 보수적인 정당으로는 좀더 큰 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는 인식하기 때문에 양측이 모두 반정당적 태도를 공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극복되지 않는 한 소외된 사람들의 의사를 정치 과정에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본다. 이는 올 초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이 최교수를 비판하며 제기한 ‘운동의 동원에 의한 민주주의’론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최교수는 “운동론자들은 정당의 매개 없이 시민사회와 국가가 직접 관계하는 것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제도적으로 조직화돼 있지 않은 시민사회 또는 운동의 형식으로 강력한 국가를 민주적으로, 그것도 장기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운동이 추동하는 대중 동원의 에너지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정당으로 매개되지 않을 때 자칫 ‘국가로의 길’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추진이 결국 관료와 기업연구소에 막혀 좌초됐던 사실로 증명된다. 선출된 적이 없는 관료와 기업 연구소가 든든하게 떠받치는 ‘강력한 국가’가 추진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정규직법에 대해 ‘정당 없는’ 시민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최교수의 가장 큰 비판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보수진영이 진작 성장과 개발, 효율성만을 정치에 투사해 왔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 그 면적을 더 넓혀왔다면 그에 대응하는 시장 소외자들의 열망은 노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 속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절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당정 분리나 국민 경선제처럼 정당의 역할을 최소화하려는 접근을 취해왔다.
최교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의 갈등하는 이해 집단들의 소리가 조직되고 대표되는 정당이 경합하는 체제’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든든하게 들어선 뒤에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론적으로는 의회중심제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지이기 때문에 행정수반과 국가수반을 분리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출에 결선 투표제를 가미하는 프랑스식 준대통령제가 대안일 수 있다고 한다.
〈손제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