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없는 한국정치] 후보만 보이고 黨은 안보인다 |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
-여론조사 의존한 경선…후보·팬클럽 중심 선거
-민심과 동떨어진 ‘헤쳐 모여’되풀이 ‘퇴행’심화
한국 대선에 정당은 없다. 민주주의 근간이 ‘괴사’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탈(脫) 여의도’ 구호가 단적이다. 대선의 축이 되고 정책 산실이 돼야 할 정당은 뒷전에서 병풍으로 전락했다. “정당마다 얼굴(대선후보)만 있고, 줄기(노선·정책)와 뿌리(당원)는 썩어가고 있다”(한 재선의원)는 지적은 정당정치의 기형적·퇴행적 현주소를 압축한다. 정치불신→이합집산→여론조사 선거→당원 소외→당 정체성 혼선→후보(팬클럽) 중심 선거의 악순환이 심화된 탓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원내정당화, 대중정당화 모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며 “정당의 유동성이 커지고 책임을 묻는 정치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의 일관성·안정성·예측가능성이 흔들리는 폐해가 국민들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후보만 있고 당은 없다=대선후보만 ‘광채’를 받고, 당은 그늘 속에 있는 인물중심의 선거가 반복되고 있다. 후보들이 불신받는 제도권 정치와 거리를 두거나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구도다. 대선후보의 공약에 ‘가위눌린’ 정당이 단적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대운하’ 공약은 아직 당 공약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공개적으로 ‘신중론’을 점화하자, 박근혜 전 대표측 유승민 의원은 “당 공약으로 채택할지 표결로 정해야 한다”(지난 15일 의원총회)며 반박하는 중이다. 다만 “내정된 것”(당 관계자)이란 표현처럼 당에선 확전만 덮는 기류다.
이라크 자이툰 파병을 반대해 온 민주당이 이인제 후보 당선후 ‘찬성” 입장을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후보가 파병연장안을 찬성하고, 당에선 협의는 없었지만 부인할 수 없어 따라간 것”(당 핵심인사)이란 지적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경선때 ‘정기국회 처리 찬성’ 입장을 밝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도 당 지도부는 신중한 입장이어서 후보와 당 사이에 긴장이 쌓이고 있다.
◇당원과 당규는 뒷전이다=‘반한나라당’ 깃발을 든 대통합민주신당은 여전히 ‘과도기’적 행태가 짙다. 현재 ‘열린우리당 승계당원(75만명)+대선후보 경선때 합류 당원+지역 당원협의회별 신규 당원’이 세 갈래 축을 이룬 장부상의 당원 숫자는 117만여명. 그러나 “경선때 ‘유령당원’ 논란을 빚은 열린우리당 승계당원은 적극성과 동의여부에서 미제로 남아있다”(당 핵심인사)는 평가다.
착근된 선거제도가 없는 불안정성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당심·민심 반영 비율을 5대 5로 만들기 위해 여론조사에 가중치를 뒀던 경선규칙의 ‘봉합’은 여론조사에서 앞선 이명박 후보에게 승리를 안겼고, 박근혜 전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의 경선불복 움직임을 낳았다.
◇책임·정책·참여 정치는 위기다=정책과 통합의 축이 될 정당의 퇴조는 한국 정치에 암운을 던진다. 최근 ‘정당없는 민주주의’란 테마로 열린 한국정치학회에서는 “‘워낙 신생민주주의니까’로 치부될 상태가 아니다. 정당 자체가 어떻게 정립돼 가야 하는지 재고가 없는 한국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인물중심 선거와 이합집산의 폐해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 민심에서 멀어진 정당이 외부 인물수혈과 여론조사 같은 처방을 내놓지만, 구조적 병폐는 계속 키우고 있다. 당장 당원들은 소외되고, 대선후보들의 선거 주력부대가 당보다는 ‘명박사랑’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처럼 팬클럽이 되고 있다.
후보단일화 카드가 거론되는 범여권은 정당의 울타리가 더욱 느슨해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좋은정책포럼에서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정당은 소극적으로 사회통합기능에 매우 중요하고 적극적으로는 민주적 집단의지의 구현체”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당원과 핵심지지층을 무시하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이는 인기투표는 정당정치를 파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기수·박영환기자〉
|
[정당없는 한국정치] 선거마다 ‘떴다방 정당’ 불신 |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1일 |
-정당정치 실종 원인과 해결책은
‘한국에 제대로 된 정당이 있었나.’ 정당정치의 위기에 대해 정치학자와 정치권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던진 의문이다. 그만큼 한국 정당의 구조는 왜곡됐고, 그 점에서 정당정치의 ‘실종’이 아니라 ‘부재’가 맞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 뿌리는 1987년 6·10항쟁 후 지역주의에 근거한 ‘3김 정치’로 거슬러올라갈 정도로 깊다.
민정당(전두환)·민자당(노태우)·신한국당(김영삼)·새천년민주당(김대중), 열린우리당(노무현) 등 ‘한 정권의 정당’으로 전락한 정당사는 상징적 단면이다. 원인은 무엇이고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도당(徒黨)이 돼 버린 정당=정당정치 부재의 근저에는 왜곡된 우리 정당의 구조가 놓여 있다. ‘강령(가치)·당원·지지대중’의 전통적 정당의 요소는 한국적 정치현실에서 ‘돈·권력·조직’으로 대체돼 왔다. ‘떴다방’식 선거조직과 당원들은 해묵은 선거철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는 정치권이 ‘진성 당원’의 명분을 외치면서도, 현실에선 손쉬운 ‘조직 동원’에 의존해온 때문이다.
2004년 “난닝구·빽바지”로 치고받으며 1년 넘게 분란을 일으킨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 논란은 한국정치가 조직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반수 정당의 외양에도 불구하고 “정치현실은 다르다”며 당원자격 완화를 주장한 한 개혁성향 재선 의원의 말은 상징적이다.
이같은 상황은 우리 사회의 정치 불신과 맞물리며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기존 정치인보다는 정당밖 ‘스타’가 주목받고, 다시 그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현상이다. 그 결과 ‘신장개업’과 같은 깜짝쇼나 ‘탈정치화’는 유행이 됐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당선가능성만 높고 잘 알려져 있으면, 정당 활동을 안해도 당의 후보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정당정치를 더욱 약화시키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그간 정치개혁의 방향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부패를 단절하겠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지구당 폐지 등 대중과 정당을 이어주던 고리가 단절되면서 정당정치의 기반을 더욱 침식했다는 것이다. 당정분리·원내정당화·개방형 국민경선 등의 정치 변화도 정당을 국가와 사회로부터 분리시킨 측면이 있다.
◇돌파구는 없나=결국 본질적 해법도 정책·이념정당 등 ‘정당 바로세우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 진성당원화의 체질 강화가 궁극적 해법이라는 의미다. “민노당이 유럽 좌파 정당들처럼 30~50%의 지지를 받을 정도로 정치판의 한쪽을 담당하면 다른 쪽의 정치성도 분명해질 것”(박노자 교수)이라는 진단이다. 강원택 교수는 “외국도 당원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정당 스스로 당원을 결집하고 조직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던 것 같다. 과거식 위계적 정당은 이제 어렵고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당이 변신해야 할 것 같다”고 충고했다.
장기적 체질 강화와 별개로 국민들과 정당의 거리를 좁혀,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진민 명지대 교수는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반응도를 높이는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당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지지자들 폭을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광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