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영화 말고도 분노할 게 많다
[영화칼럼] < M >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최광희 _ 영화저널리스트]
출처:<컬쳐뉴스> 2007-11-08


영화 < M >의 포스터
▲ 영화 < M >의 포스터
최근 개봉한 이명세 감독의 영화 <M>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디 워> 파문 때와는 정반대의 양상이지만, 또 다시 영화를 둘러싼 옹호와 비판(혹은 저주)의 격돌 양상은 비슷한 것 같다. 이번에는 ‘평론가들의 가르치려는 오만한 자세’에 덧붙여 ‘관객을 무시하는 감독의 태도’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이번에는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논란의 물꼬가 터졌다는 것이다. <디 워>가 애국심 마케팅을 동원한 여론몰이 등 영화 외적인 부분에 치우치면서 소모적인 헐뜯기로 일관했다면, <M>은 영화를 받아 들이는 개별 관객의 반응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건설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쉽게 수긍할 수 없는 현상은 여전하다. 이 글이 <M>을 비평적으로 옹호하고자 함이 아니므로, 나는 영화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이 시대 대중 관객의 인식과 그것이 확산되는 과정의 모순에 집중하고자 한다. 대중 관객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적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관객들이 스스로를 ‘대중’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키고, 정치인 등의 이른바 지도 계층이나 오피니언 리더, 혹은 소수 전문가 집단과 대립하는, 일종의 계층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디 워> 파문은 그 설득력 있는 방증이었으며, <M>은 그 같은 문화적 징후가 더 이상 징후가 아닌 하나의 광범위한 현상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소비 자본주의는 대중을 일상의 고객으로 신격화했다. 그러므로 대중의 선택은 절대선처럼 추앙된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절대선인 척 얼러준다. 이런 숙명은 불가피하게도 대중문화의 소비 패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중성’이라고 통칭되는 ‘상업성’, 또는 ‘상품성’은 다른 어떤 미학적 기준을 압도하는 잣대로 기능하고 있다. 숙명적으로 대중추수주의에 함몰된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여기에 강력한 알리바이를 하나 개발해 냈다. 평점이라는 수치를 통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이다. 별점 매기기는 원래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시각을 관객들이 일별하기 쉽도록 최대한 간단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 도입된, 일종의 저널적 선정성의 결과물이었다. 때문에 비판도 많았지만, 관객들이 길고 난해한 평론보다 짧고 간단한 요약문을 선호할 것이라는 가설은 이 우스꽝스러운 도표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별점이 평점으로 둔갑해 네티즌들의 손에 들어가자, 금세 전가의 보도가 됐다.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이 네티즌 평점은 영화의 상업적 성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을 최대한 단순화해 보여주는 이런 방식은, 기존 언론들이 선정적으로 써 먹던 수법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쉽게 권력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었다. 그 권력을 고안한 당사자인 언론은 자기 꾀에 넘어간 셈이고, 네티즌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있는 셈이다. 평점은 관객 일반의 반응이 아니라 영화의 품질을 따지는 점수가 됐다. 그래서 평점이 낮은 영화는 별로인 영화, 평점이 높은 영화는 좋은 영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네티즌들이 평단에 대립각을 세우는 근거로 평점을 들이댄다. 평점이 이렇게 낮은데, 당신들은 무슨 근거로 영화를 그렇게 좋게 얘기하는 것이냐, 혹은 평점이 이렇게 높은 영화를 깎아 내리는 저의는 무엇이냐 등등.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아예 평점 권력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믿는다.

▲ 모 포털의 영화평점 사이트
개봉하자마자 5점대의 처참한 평점을 얻으며 부산국제영화제 때의 화제와 상찬을 무색케 한 <M>의 경우, 그러므로 나쁜 영화인 셈이다. 평점이 낮다는 것은 대중성이 없다는 것이며, 평점 권력의 논리에 따르면 대중성이 없는 영화는 영화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이 논리를 들이댄다. 영화는 어차피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명세가 자아 도취에 빠져 이상한 영화를 만들어 놓고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갔다고 말이다. 강동원이 나온다기에, 영상미가 끝내 준다기에 나름대로 기대감을 갖고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들로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당황한 것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대중 관객들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또는 영화가 낯설다는 이유로 그 고유의 가치와 상관 없이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말할 나위 없이 관객의 선택은 절대선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고객인 자신이 재미 없었으므로 그 영화는 나한테 맞지 않거나 취향과는 다른 영화, 혹은 기대와는 핀트가 맞지 않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쓰레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평점 권력은 그 생각에 발언의 기회를 준다. 그리고 생각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규합해 준다. 쓰레기라는 말은 생각을 떠나 실체가 된다. 영화가 기어코 쓰레기가 된다.

평점 권력의 반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명세가 관객을 가르치려 들었다’고 훈수한다. 왜 ‘자기만 알아 듣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이게 영화야’라고 하냐며 내러티브의 결핍이 치명적인 오류라고 한 수 가르친다. 예술영화 만들 거면 (본인이 대중영화 전문배우라는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알아서 대중 배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강동원을 왜 캐스팅했냐고 지청구다. 한마디로 재수 없다는 거다. 논거는 간단하다. 영화 감독은 관객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업의 종사자일 뿐이다. 그러니 예술가라는 쓸 데 없는 자의식은 버리라는 거다. 예술이 관객의 욕망과 대립된다는 건,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요설일까? 이 논리라면 영화 감독은 시나리오 쓸 시간에 소비자 분석부터 먼저 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낯선 영화에 대한 부적응이 쉽게 반감으로 치환되는 현상의 배후엔 앞서 말했듯 평점 권력이 도사린다. 그리고 그 권력은 인터넷 안에서만 매우 혁명적이어서, 이른바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모든 권위에 대한 냉소와 저주를 부추기고 있다. 이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그 냉소와 저주의 모티브가 단순한 의견의 상이함이 아닌, 잠재된 분노와 증오이기 때문이다. 타깃이 명확하지 않은 그 정서의 마그마는 약한 고리를 타고 분출된다. 영화는 그 마그마가 찾아낸 첫 번째 약한 고리다.

영화 <M>으로 시작했다가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기왕 얘기 나온 김에 몇 마디 더 보태고 싶다. 나는 <디 워>나 <M> 등을 통해 감지되고 있는 최근의 문화적 징후가 한국사회의 기형적 보수화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기형적이라고 한 이유는 그것이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이상의 정당성보다 수단의 실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이른바 집단적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부패를 먹고 커왔던, 게다가 한국사회의 기득권자들이 노골적으로 응원해 마지 않는 특정 정당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계층적 이해나 토대와 상관 없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부패고 뭐고, 밥 먹고 살게 해주는 놈이 장땡이라는 근거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제 삼겹살은 먹게 됐으니 갈비살도 좀 먹게 해달라는 주문처럼 들린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목전이지만, 여전히 성장주의의 가격이 공공성의 가치를 압도한다. 마치 평점이 영화의 가치를 압도하는 것처럼. 예술이 밥 먹여 주냐는 관객들이 돈 7천 원 냈으면 그에 합당한 상품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고 윽박지르는 것처럼.

이 현상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정서가 있다. 그것은 무기력이다. 이상이 현실적 실효를 증명하지 못하자, 배신감은 새로울 것으로 기대됐던 기존 권위로부터 순식간에 등을 돌렸다. 등을 돌려야 할 타깃은 명확했다. 보수 언론이 끈질기게 부추긴 덕분이었다. 그러나 돌린 뒤 보이는 풍경은 모호하다. 그것이 무기력을 이끈다. 분노는 타깃을 구분하지 못하고, 약한 고리로 터져 나온다. 지성은, 그리고 대중문화는 가장 쉽고 편리하게 응징할 수 있는 분노의 타깃이 됐다.  

영화 <M>을 통해 이명세는, 대중을 가르치려 한 게 아니다. <M>을 옹호하는 비평가들이 무식한 관객들을 계몽하려 드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만, 유사 이래 있어 왔던 예술의 본원적 가치가, 상품 사회의 욕망에 그렇게 쉽게 몸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자본주의적 예술의 숙명을 타고 난 영화 매체가 그나마 진화할 수 있었던 힘은, 순진하게도 그 영화 안에서 예술을 추구해보겠다고 애쓰며 자본과 관객들의 냉소에 맞서 싸워온 작가들이라는 사실을 애써 상기하려 드는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룰 바깥의 소통 가능성을 탐문해 보는 것이다. 그러니 그 풍경에는 분노와 저주보다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게 지당하다. 자본을 대신해 ‘대중성’의 채찍으로 예술가의 엉덩이를 때리고 있기에, 이 세상에는 분노할 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1995년부터 YTN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영화주간지 FILM2.0의 취재팀장과 온라인편집장을 지냈다. 현재는 기고와 방송 활동을 겸한 프리랜서 영화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

정말이지, 세상은 영화 말고 분노할 게 너무 많다.
이명박,
이회창,
자신이 진보라고 외치는 노무현과 그 아류들,
'삽질'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그리고 삼성,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남한산성, 너무 늦어버린 가을날의 하루


계획에도 없던 남한산성에 다녀왔다. 요즘은 주로 입으로만 산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광교산에서부터 지리산, 소백산, 월악산, 민둥산... 지난 몇 주일 동안 우리 부부가 입으로 다녀온 산들의 목록이다. 실제로 갈려고 계획했다 여건이 맞지 않아 포기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즉흥적으로 입에 올리다 계획한 전날에 이런저런 핑계로 유야무야 된 게 대부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않고 노트북을 켰다. 하루 사이에 몇 백만 원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아내에게 말을 걸며 주식 관련 정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제 올랐던 주가가 아침부터 폭락하고 있었던 것. 그때 갑자기 아내가 남이섬을 가고 싶다 한다. 한번도 간 적이 없다면서. 사실 아내의 남이섬 타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아마도 남이섬은 아내가 품고 있는 영원한 '이니스프리'인지도 모르겠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항상 '좋더라'란 감탄과 함께 시작되는 것을 보면...

굳이 못 갈 이유도 없기에 가자고 하니까 아내는 왠지 미적미적한다. 머냐, 어디로 가느냐, 얼마나 걸리냐 같은 의미없는 물음들을 던지며. 그 와중에 지도책을 펴고 남이섬이 있는 가평 가는 46번 도로를 찾다 남한산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아내에게 '남이섬이 멀면 남한산성을 갈까'라고 하니 좋다고 거든다. 그래서 나서게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몇 일째 붙박이로 꽂아 둔 카오디오에서 들려나오는 <라디오 스타> OST를 지겨운 줄 모르고 반복해서 듣고 부르며, 분당시내를 가로지르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 산성의 남문에 이르렀다. 이 길은 서울 생활하면서 외로운 '솔로'들이 모여 일요일이면 들락거렸던 길이다. 막걸리에 닭백숙, 그 뻔한 메뉴를 참 지겹게도 먹어댔던 시절. 꼽아 보니 불과 10여 년 전이다. 그때 함께 했던 후배놈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는 안타까운 인생들.



그렇게 오른 남문 입구.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커다란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소설 <남한산성> 작가 김훈 초청 사인회". 그 플랭카드는 우리가 조금 후면 도착할 산성 안 로타리 주변에도 붙어 있었다. 솔직히 짜증이 팍 솟았다. 불과 두어 달 전에 방송, 신문 등 온갖 언론 매체가 지원하는 홍보성 이벤트를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한단 말인가? 좀 그만 울궈 먹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작부터 약간은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남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점심을 먹기로 한, 인터넷에서 잘 알려진 한 식당을 찾아 나섰다. 몇 번을 이리저리 돌아본 끝에 '오복'이라는 상호를 보고 '저기다'라며 들어섰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손두부와 막걸리를 주문하고 점심으로는 산채 비빔밥을 시켰다. 하지만 산행을 한 뒤 돌아본 주차장에서 전혀 엉뚱한 집이었음이 밝혀진다.

점심을 먹고 로타리 주차장에 차를 박아두고, 북문-연주봉옹성-서문-수어장대-남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잡았다. 손바닥 만한 산성인지라 무슨 코스 운운하는 게 어색할 정도다. 일주한다고 해도 두어 시간이면 족할 그런 산성이기에. 그렇게 오르게 된 산성안 단풍은 이미 절정을 지나 있었다. 더군다나 하늘조차 우리들의 늦어버린, 게으런 단풍놀이를 도와주지 않았다. 원래 이 곳의 視界가 그런 것인가. 날씨는 그닥 나쁘지 않았는데, 희뿌연 공기가 시야를 흐린다. 게다가 걷는 내내 손두부를 곁들여 아내와 나눠 마신 동동주 한 통에 속이 부대껴서 고생을 하고 보니, 오랜 만에 찾은 가을날의 남한산성이 그리 오래 기억될 것 같지 않다.


▲ 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 옆 어느 식당의 단풍나무.


▲ 북문에 걸터앉아 노래자랑 퍼레이드 중인 할머니들.




▲ 걸음은 건들건들, 동동주가 위에서 발효하는 신호를 자꾸 보내니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내가 벤취에 누워 자는 사이 아내가 몰래 찍은 사진들


▲ 북문에서 연주봉옹성에 이르는 중에 잠시 휴식.



▲ 시계가 좋지 않아 별 감흥을 못 일으키는 만추의 가을산/옹성에서 바라본 서울 모처.


▲ 이제부터 썩어져 내년을 준비할 낙엽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나가다 2007-11-09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이 온통 엑스자.
 

효리·조용필도 줄 서서 먹는 양곱창

[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21) 서래 양곱창

불만 가득한 남친 앞세워 양과 곱창 2인분을 시켜보라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09 28

» 사방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들이 붙어 있다. 단골이 되면 어느날 그들과 마주치는 행운을 누릴수 있을지도 모른다.

» 소 양과 곱창을 섞어 지글지글, 맛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8차선 도로에 차들이 어두운 불빛을 뚫고 아웃토반인 양 달린다. 육교 넘어 반짝이는 아파트는 황량하다. 저 꽉 짜여진 네모반듯한 공간 안에서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투쟁을, 누구는 꿈을 꾸고 있으리라. 어깨 너머로 살짝 언 바람이 태풍처럼 불어오면, 불현듯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워진다.

몇 블록을 지나 젊은이들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서래 양곱창’의 문을 열었다. 긴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남정네가 문 앞에서 한껏 맛난 폼으로 고기를 집고 있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사방에는 가수 이효리부터 축구선수 송종국까지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이 가득하다.

“어제 효리 씨가 다녀갔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기 가수, 그녀가 단골이란다. 그럼 자주 오면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단다.

며칠 전에는 근처에 살고 있는 가수 조용필 씨에게 곱창을 배달했단다. 그 역시 단골인데, 공연 후에는 늘 이곳에서 회식을 했단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불편했는지 배달을 요청하더란다. 곱창 배달도 되냐고? 다른 이는 안 되고 조용필 씨만 가능하다. 주인장 부부 모두 열렬한 팬이기에.

어찌 이리 많은 연예인들이 단골일까? 처음에 안주인이 새치름해 보여 말 붙이기가 어려웠다. 전형적인 도시 아낙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윽고 마주 앉아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하자 더없이 푸근하고 매력적이었다.

» 서래양곱창
‘흔히 이럴 것이다’하고 생각하는 것을 확 뒤집는 것만큼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지금은 ‘본죽’ 체인점으로 유명해진 김철호 사장도 그랬다. 죽 체인점을 만드는 것도 참 특이한 일이지만 그의 엉뚱함은 호떡 장사를 할 때부터 나타났다. 숙명여대 앞에서 호떡을 팔던 그는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고급스런 양복을 입고 호떡을 팔았다.

그런 면에서 김철호 사장과 주인장은 닮았다. 사람들이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식으로 바꾼다. 새벽 5시까지 영업하는 것도 그런 주인장의 생각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민 간 언니가 하던 고깃집을 이어 받아서 운영을 했단다. 언니가 돌아오면서 둘만의 곱창 집을 열게 된 것이다. 굳이 소 양와 소 곱창을 요리해서 팔기로 한 건 주인장 부부가 모두 곱창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곱창을 먹으러 다니는 일은 일상이었다. 그 일상의 즐거움과 따뜻함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단다.

이 집에서는 곱창 중에서 제일 좋은 부위만 가져온단다. 여러 집에서 재료를 공급받고, 냉동 곱창은 가까이 하지도 않는다.

» 둥글둥글 의자와 탁자, 곱창 맛을 더 쫄깃하게 한다.
곱창은 다른 고기와 다르게 절임이 안 돼서 진정 신선하지 않으면 맛이 없다. ‘특양’은 소 위중의 하나로. 양도 작고 가장 작고 귀하다. ‘기본’은 소 양와 소 곱창을 섞어 2인분이 나 오는데, 양과 곱창을 동시에 맛볼 수 있어서 좋다. 맛은? 설명이 필요 없다. 너무 맛있다. 여름에는 가게 밖의 도로변까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다. 밤이 깊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쳐다보면 민망해진다. 그럴 때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예쁜 주인장에게 멋들어진 곱창 한 접시를 부탁하자. 지글지글 곱창이 익어가는 동안 그 뿌연 연기 속에 네가 유명인 인지, 내가 유명인 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맛있는 곱창을 사랑하는 너와 나는 친구일 뿐!

위치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전화번호 02-3477-0234
영업시간 오후 5시~새벽 5시
메뉴 기본 2만5천원 / 특양 1만5천원 / 곱창 1만원 / 소주 3천원 / 맥주 4천원

* 강력추천 곱창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당신, 이곳에서 그 맛을 평가해 보라. 서로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오래된 연인이라면 함께 곱창을 씹어보자.

* 귀뜸 한마디 밤이 깊을수록 연예인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매일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내오랜꿈 -----------------------------------------------------------------

퇴근 뒤 친구들과 만나 가볍게 소주 한 잔 하는 자리, 주메뉴는 역시 삼겹살이나 곱창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삼겹살과 곱창은 차이가 있다. 삼겹살이야 어느 집을 가도 대충 기본은 하는 메뉴다. 요즘이야 와인 숙성이니 된장 숙성이니 올리브 숙성이니 하지만 뭐 못 먹을 정도의 삼겹살 집을 만나는 게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곱창은 다르다. 제대로 맛을 내는 집을 찾아가야지, 무턱대고 아무 집에나 갔다가는 젓가락 몇 번 깨작거리다 입에 욕을 품고 나오게 마련인 것. 그래서 곱창을 메뉴로 선택할 때는 미리 어느 집을 가자고 작정한 뒤에 약속을 정하게 마련이다.

광명시 철산동에는 제법 알려진 곱창집이 하나 있다. 친구 하나가 광명에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짐승의 내장 종류라면 꺼려하는 아내도 그 집에서만큼은 잘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즈음, 곱창에 소주 한 잔은 다른 모든 먹거리를 뿌리칠 만큼 강력한 유혹이다. 얼마전부터 아내에게 수원에서 제법 알려진 곱창집에 가자고 몇 번 이야기했지만 그때마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아내의 동의를 기다리기보다는 이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는 조카들이나 한 번 불러모으는 게 빠를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7-11-0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래마을이라면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
한 번 가봐야 겠습니다..^^

내오랜꿈 2007-11-09 12:45   좋아요 0 | URL
가 보시고 괜찮으면 후기 남겨주십시오..^^

하이드 2007-11-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겁나 시끄럽고, 겁나 비싸요. 양은 그닥 안 많고, 손님 있는한 계속하고, 장소 굉장히 협소해서 기다리는 일도 많아요. 곱창이 왜 날씬한 곱창 있잖아요. 그래요. 개인적으로는 합정의 황소곱창이 진짜 맛있는데!말이죠

내오랜꿈 2007-11-09 12:57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소주 한 잔 하기는 장터 분위기도 나쁠 것 없죠^^..

그런데, 좀 제대로 된 곱창이나 양은 다 저 정도 가격 하지 않나요? 광양에 숯불고기 유명한 데가 많은데 그 시골바닥에서도 저 정도 가격은 다 하는 데요?

합정동의 황소곱창, 유명하죠. 그러나 지금은 평가가 극과 극으로 달리는 것 같습니다. 좋을 때는 좋은데, 나쁠 때는 너무 형편없다고... 너무 크게 확장하다 보니 곱창 수급이 그리 원활하지 못한 듯 합니다. 수급이 안될 땐 질이 떨어지는 곱창도 쓴다는 반증이죠.
 

맑스와 밀, 그리고 시급 3천원 알바
야만의 시대, C급 경제학자인 나와 우리 모두는 유죄다

우석훈 / 성공회대 외래교수
출처:<레디앙(www.redian.org)> 2006년 11월 17일

1.

이제 10년도 넘은 일이다. 재벌 시절의 현대그룹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현장에서 화학설비에 벤젠을 마시는 일을 하면 지금 식으로 표현하면 비정규직인 여공에게 이 일을 시키는 일이 소위 ‘관행’처럼 굳어져 있던 시절의 얘기이다.

열 여덟에서 스물을 갓 넘은 가임여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 친구가 나에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연락을 했던 일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 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 당시의 나의 상사는 이제 국회의원이 되어있고, 나에게 그 말을 했던 친구는 그의 보좌관이 되어있다.

그 당시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서 몇 년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건실태 특히 생태적 질환에의 노출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는 귀찮은 일들을 많이 해야했기 때문에, 몇 달 그러다가 포기했다.

진짜로 그 일을 포기한 이유는 이미 현장에서 그렇게 위험한 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넘어가 있고, 그들이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사람들의 ‘감성’이 움직이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외국인 노동자 몇 명이 위험한 유독물질에 중독이 되거나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다들 바빠서 그런지 이런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물론 나도 바빴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크고 건장한 40대와 50대 남자들보다는, 10대와 여성들이,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인 외국인들이 위험하고 귀찮은 종류의 일에 노출될 위험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한은 한 사회가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제도화시키기 전에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약자에게 유독 강하고, 가혹한 사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서 사람들의 감성도 움직이지 않을 때이다. 어쩌면 야망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놀랄만한 일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2. 알바비, 3천원...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내 주위에는 소위 ‘알바’라는 일을 하는 친척이나 지인이 한 명도 없다. 과잉 영양섭취가 문제가 되고, 지나친 사교육이 망쳐버린 친척들이 있을지언정, 알바 시장에 들어가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알바생들의 애환과 삶에 대해서 잘 모른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내 머리에서 ‘알바’라는 범주가 지워져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드디어 내 주위에 ‘알바’가 등장을 했다.

 ▲ 청소년아르바이트 권리찾기 캠페인 (사진=양산노동민원상담소)
그가 들려주는 세계의 모습은 너무 끔찍한 것이었다. 이 얘기의 압권은 B사에서 손님이 없는 오후 시간이 되면, 알바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시급이나 월급이나 노동을 구매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 계약된 시간에 대해서 소위 고용주가 임의로 시간을 빼기 위한 이런 방법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손님 많을 때만 잠깐 돈을 주고 일을 시키고, 보다가 손님이 없으면 “나가 있으라”는 이런 종류의 노동방식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점심 시간부터 저녁 시간까지 8시간을 꼬박 서서 일을 하면 2만 1천원을 받는데, 중간에 3시간 동안 나가 있는다면 1만 5천원이 된다. 물론 사실상 여덟시간을 노동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렇게3시간 동안 나가 있는 동안에 뭘 할 수 있겠는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PC방이라도 가거나 뭐라도 잠깐 사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10대들이 이렇게 삶을 보내고 있다는 건 황당한 일 같아 보인다.

3. 그나마도 떼먹는다...

더 황당한 일은 그나마도 떼먹는다는 사실이다. 청소년을 고용하기 위해서 부모동의서 같은 걸 받아와야 근로계약서 같은 걸 쓸 수가 있지만, 그야말로 배부른 이야기란다.

부모 몰래 방황하는 아이들이나 결손가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아이들의 약점을 잡고, 그나마 3천원짜리 시급도 떼어먹는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보면 겉만 멀쩡하지, 내가 사는 이 사회는 조금만 어두운 곳으로 돌아서면 밀림과 너무 똑같은 야만의 시대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4. 10대 여공들과 경제학자들

   ▲ J.S Mill
존 스튜어트 밀과 맑스는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인데, 밀이 맑스보다 조금 연배가 높고, 그 시대는 맑스보다 훨씬 유명했었다. 여러 가지 저작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맑스가 아담 스미스에서 리카아도에 이르기까지 혹은 푸르동이나 생시몽과 같은 바로 그의 앞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까지 부담 없이 ‘팍팍’ 씹었던 것과 비교하면, 밀한테는 상당히 점잖게 대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는 한다.

밀은 이제는 자유주의자들의 대빵이 되었고, 맑스는 좌파들의 대빵이 된, 그래서 유시민 같이 '웃기는 짬뽕'들이 자꾸 자기와 존 스튜어트 밀을 비슷하다고 우겨대는 곤란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착각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 하는데, 유시민은 아마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맑스의 『자본론』2권과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은 필체와 스타일이 상당히 비슷한데, 특정한 몇 부분만을 비교하면 맑스가 밀을 아주 열심히 읽었고, 좀 베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하다. 나는 밀의 책을 자본론보다 아주 몇 년이나 지난 다음에나 읽었는데, 마음에 손을 얹고 고백하면, 재미있기는 밀의 책이 훨씬 재미있다.

두 명 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서 서술하는 부분이 바로 영국에서 10대 여공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에 관한 일들이다. 간이 선반으로 만들어진 작은 다락방에 올라가 아래의 직물기계로 실타래를 내려주는 먼지 투성이의 작업조건에서 일했던 이 소녀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조건과 성인 남자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에 대해서 이 시대를 풍미했던 두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저술에서 매우 긴 공간에 걸쳐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의 분노를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후세 사람들이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두 학자를 해석하고, 사실 이런 분노와 슬픔에 대해서 한 줄도 제대로 해석해주지 않거나, 아니면 ‘휴머니스트’라든가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얘기들을 달아주지만, 이 사람들이 시대를 살아갔고, 시대의 고민 속에서 생각들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흔적, 그리고 별로 알아주지도 않고, 나름대로는 고통 속에서 살아갔던 시간들 속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와 풀고 싶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난 『자본론』2권이 문학적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자본주의 전개에 대한 역사적 서술’이라는 작은 코멘트와 함께 “바쁜 사람은 넘어가시오”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렇지만 정치적 전제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부푼 꿈을 잠시 접고 자본론 2권을 읽는다면,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시대의 드라마 같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보다 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책이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이다. 읽고 나면, 어렵고 따분한 고문체의 고전 한 권을 읽었다는 뿌듯함보다, 일제 시대의 여공들의 삶 혹은 구로동 시절 같은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짐을 느끼는 책이다.

5. 다시 알바, 시급 3천원에 대하여...

  ▲ Karl Heinrich Marx
나는 밀이나 맑스 같은 A급 경제학자가 아니라 그저 그렇고 그런 C급 경제학자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건강이 말씀이 아니라서 하루에 열 다섯 시간은 자고, 밥 먹고 약 먹는 시간 빼고 나면 아주 잠깐 예전에 읽은 책들을 뒤적이며 건강을 추스리는 환자에 가깝다.

그래서 시급 3천원 알바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사회적 약자이자, 사실은 다음 세대의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 될 10대들이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밀려난 것인지 아니면 시대의 모순이 그 어깨 위에 전부 얹혀져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구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하나마나한 생각 정도가 내가 해낼 수 있는 생각이 전부이다.

맑스의 ‘노동가치’ 얘기를 라면에 비유하던 박영호 선생의 비유를 따르자면, 하루에 짜장면 다섯 그릇을 버는 그들의 생계비를 계산하면, 짜장면 두 그릇에서 두 그릇 반, 혹은 간짜장 두 그릇을 벌어가는 셈이다. 좀 고상하게 얘기하면, “야만의 시대를 살아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고, 정치학에서 사용하는 ‘과잉대표’라는 개념을 가지고 응용하면 ‘과소대표’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나마 시급 최저생계비가 적용되어서, 3,100원이라는 돈이라도 확보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최저생계비를 올리면 문제가 나아질 것인가 아니면 청소년 알바 상담센터 같은 것들이 제대로 운영이 되면 조금 나아질 것인가, 아니면 혁명 없이는 답 없는가?

그렇지만 청소년 알바 문제를 해결하자고 혁명의 깃발을 올리자고 하는 것도 좀 거시기하기는 하다.

일본의 알바 문제 상황을 좀 찾아봤더니,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가까웠다. 정상적인 알바들은 우리나라 정규직 공무원보다 급여가 높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일까? 알쏭달쏭하다...

하여간 맑스는 영국의 15세 여공들의 황당한 문제는 자본주의가 끝이 나야 풀린다고 했고, 밀은 ‘사회적 원칙’이 변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확실한 것은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 사회는 아직도 이런 정도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국민소득을 올려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노동조합이 깨어야 하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각성해야 하나? 그런 건 더더군다나 아닌 것 같다.

하여간 알바비 3천원을 둘러싼 야만스런 일에 대해서 국민소득 1만 6천불이라는 이 사회가 눈을 감고 있는 건 꽤나 이상해 보인다. 이 이상한 사회적 공모에 공모자나 조력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이상한 알리바이라도 만들어서, 나는 “무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출구가 보이지가 않는다 (사람이라면 이 알바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세 시절 귀족들이 지껄이던 농지거리와 같은 말이다.)



그날이 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방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오케스트라

찰리 헤이든 - 37년 동안의 급진적 재즈 프로젝트

출처:<레디앙(www.redian.org)> 2006년 11월 03일 / 장석원 객원기자


오래간만에 다시 시작하는 반역의 레코드에 적당한 음반이 무얼까 한참 고민했지만 적절한 음반을 찾지 못하고 대신 오래전부터 다루려고 마음먹었던 아티스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고상하게도(?) 재즈다.

재즈는 그 긴 역사와 대중적인 보급에도 불구하고 좌파와의 연관을 찾기가 쉽지가 않은 음악 분야다. 빨갱이들 천지인 포크와는 처음부터 비교불가이고, 짧은 역사의 록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같은 흑인음악인 블루스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재즈만큼 탈정치적인 대중음악도 드물다. 록이 그런 것처럼 미국보다 영국에는 좌파 재즈 뮤지션들이 많이 있고 시선을 북유럽이나 프랑스로 돌리면 더 급진적인 재즈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런 친구들은 재즈 매니아들도 간신히 이름 석자 정도 들어본 그런 경우가 많다.

물론 존 콜트레인이나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를 뒤져보면 60년대 흑인민권운동이나 심지어는 '블랙팬더당'같은 급진파와의 연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건 그 시절 모타운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재즈 음악계에서 유별난 존재가 바로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이다.

* * *

▲ 이분이 바로 찰리 아저씨다.
재즈전문지 Downbeat에서 14년 연속으로 최고의 어쿠스틱 베이스 연주자로 선정되고 있는 '실력파'이기도 하다.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재즈 뮤지션으로는 정상급에 속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다루게 될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반역의 레코드'에 등장하는 아티스트들 중에 대중적인 지명도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인물이다. 50년대 후반 재즈계의 전설 중의 한명인 오넷트 콜맨의 쿼텟에서 연주를 시작했으니 음악생활이 거의 50년 되가는 베테랑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팻 매스니와 함께 1997년 녹음한 "미주리 하늘 너머Beyond the Missouri Sky" 앨범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참, 그가 연주하는 악기는 베이스다.

그런데 이 양반이 미국 재즈계에서는 보기 드문 '확실한' 좌파다.

찰리 헤이든을 소개할 때 자주 따라다니는 이야기 중에 하나다. 1971년 당시 파시스트 정권이 집권 중인 포루투갈에서 순회공연을 하게 됐다. 공연 중에 그는 자신이 작곡한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Song for Che'를 연주하기에 앞서 이 곡을 여전히 포루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의 혁명가들과 독립투사들에게 바쳤다. 바로 다음 날 비밀경찰은 리스본 공항에서 그를 체포해 억류했다. 미국 대사관의 개입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FBI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그의 앨범과 공연이 정치적인 코멘트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발표했던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앨범에는 좌파는 고사하고 정치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만한 곡이 없다. 공연도 별다른 코멘트 없이 10여분짜리 연주를 길게 이어나가는 편이다. 음반이나 무대를 자신의 주의주장을 알리는 선동의 장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재즈 팬들 중에는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찰리 헤이든은 음악 자체에 충실한 평소의 활동과 달리 급진적인 재즈를 선보일 때는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Liberation Music Orchestra"라는 이름으로 움직인다. '해방'이라는 단어를 앞에 내건 만큼 음악은 주장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다. 구성도 평소 트리오 체계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오케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10명 안팎의 재즈뮤지션으로 이루어진다.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는 지금까지 모두 4번 소집됐다. (99년에 발매된 실황음반은 제외)

* * *

"Liberation Music Orchestra"
1969년
1. The Introduction
2. Song Of The United Front
3. El Quinto Regimiento (Medley)
4. The Ending To The First Side
5. Song For Che
6. War Orphans
7. The Interlude (Drinking Music)
8. Circus '68 '69
9. We Shall Overcome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앨범은 1969년에 발표됐다. 애초에 찰리 헤이든이 이 오케스트라를 연속된 프로젝트로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음악 오케스트라"도 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앨범의 제목에 불과했다.

앨범의 전반부는 스페인내전에 관한 것이다. 오케스트라에 피아노 연주자 겸 편곡자로 참여한 칼라 블레이가 작곡한 짧은 도입곡이 끝나면 한스 아이슬러가 쓰고 브레히트가 가사를 붙인 '통일전선의 노래Song Of The United Front'가 연주된다. 이 노래는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시작부분과 똑 닮아서 남한 민중가요 사상 최초의 표절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곡이기도 하다. 이어서 스페인 내전시기 공화군과 국제의용여단의 전사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3곡을 조곡 형식으로 묶은 연주가 20분 넘게 펼쳐진다. 칼라 블레이는 이후 모든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에 편곡자로 참여하게 된다.

앨범의 후반부는 60년대가 주제다. 앞서도 이야기한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와 찰리 헤이든에게는 스승님과 같은 존재인 오넷트 콜맨의 '전쟁고아War Orphans'가 연주된다. 물론 이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인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선곡이었다. 하긴 오넷트 콜맨도 재즈계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인물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 급진정은 정치보다는 음악에서 더 많이 발휘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후반부의 대미는 역시 찰리 헤이든 자신이 직접 쓴 '써커스 68, 69Circus '68 '69'다. 이 곡은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풍자한 것이다. 당시 전당대회는 반전파인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측 대의원들과 린든 존슨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밝힌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측 대의원들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격돌했다.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평화운동가들과 신좌익학생들의 반전데모가 대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경찰이 과잉진압을 펼치면서 시카고는 게엄령이 떨어진 도시를 연상시킬 만큼 폭압적인 분위기였다. 이 모습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중계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었다. '써커스 68, 69'는 당시 미국의 혼란스러움, 전쟁의 공포, 전당대회의 어수선함, 반전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묵시록적인 선율에 담아내고 있다.

이 앨범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민권운동의 송가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로 끝맺는다. 실제로 68년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패배한 반전파 대의원들은 항의의 표시로 기립해 이 노래를 합창했다. 민주당지도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행사밴드에 '미국찬가' 같은 노래를 연주하게 했다. 서로 다른 두 곡조가 메아리치는 전당대회장. 이것이 60년대 미국의 현실이었다. 찰리 헤이든은 당시의 광경을 음반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 * *

"The Ballad Of The Fallen"
1983년
1. Els Segadors
2. Ballad Of The Fallen
3. If You Want To Write Me
4. Grandola Vila Morena
5. Introduction To People
6.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7. Silence
8. Too Late
9. La Pasionaria
10. La Santa Espina
두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1982년에 소집됐다. 첫번째 앨범을 녹음하고 13년 만의 재소집이다.

이듬해 발매된 앨범의 제목은 "쓰러진 자들의 발라드The Ballad of the Fallen"다. 첫 번째 앨범처럼 스페인내전시기의 음악도 들어있지만, 두 번째 앨범의 주제는 라틴 아메리카, 특히 엘살바도르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다.

앨범의 제목이며 도시에 수록곡 중에 하나이기도 한 '쓰러진 자들의 발라드'는 산 살바도르 대학에서 연좌농성 중 정부군에 학살당한 학생의 시신에서 발견된 시다. 또한 앨범 커버에는 난민캠프의 소녀가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 이 그림에는 "우리의 죄는 그저 가난하다는 것뿐이다. 레이건이 보낸 수많은 총알들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글이 적혀있다.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는 미국이 개입으로 전복된 칠레 인민전선 정부의 주제가다. '갈색 마을 그란돌라Grandola Vila Morena'는 1974년 포루투갈 파시스트 정권을 뒤엎은 카네이션 혁명 때 좌익청년장교들이 봉기의 신호로 사용한 노래다.

앨범의 첫 번째 곡이며 카딸로니아 공화국의 국가로 사용된 '수확Els Segadors'처럼 나머지 곡들의 대부분은 스페인 내전기 공화군의 노래들이다.

* * *

 
"Dream Keeper"
1991년
1. Dream Keeper
2. Rabo de Nube
3. Nkosi Sikelel'i Afrika
4. Sandino
5. Spiritual
"드림 키퍼Dream Keeper"라는 제목이 붙은 세 번째 앨범의 녹음을 위해 새로운 해방음악 오케스트라가 1991년 소집됐다. 이번에는 브랜포드 먀샬리스 같은 유명한 연주자들도 참여했다. 전작의 주제가 라틴아메리카였다면 이번에는 남아프리카가 앨범의 주제였다.

17분짜리 대곡 '드림 키퍼'는 미국의 흑인문학가 랭스턴 휴즈가 쓴 같은 제목의 연작시를 바탕으로 엘살바도르 게릴라의 노래, 베네주엘라 민중가요, 스페인 내전기 아나키스트의 노래를 섞어 만든 것이다. 작곡은 앨범의 편곡자이며 해방음악 오케스트라의 숨은 주역인 칼라 블레이가 했다. 전체적으로는 1곡이지만 작게는 8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작품은 내용만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도 매우 실험적인 재즈를 선보이고 있다. 찰리 헤이든이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일반적인(?) 음악 활동과 분리해서 진행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보다는 음악적 실험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노래 '토네이도의 꼬리Rabo de Nube'는 쿠바의 민중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즈의 작품이다. 최근의 월드 뮤직 유행 덕분에 국내에도 실비오 로드리게즈의 CD가 상당수 수입됐다. 그러나 에스파냐어라는 장벽 때문에 좌익가수라기 보다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같은 아름다운 제3세계 음악으로 소개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무언가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다음 곡인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Nkosi Sikelel'i Afrika'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남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노래로 지금은 남아공의 국가가 됐다. 이 노래는 찰리 헤이든으로 하여금 세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의 녹음을 결심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현지어로 되어있는 가사는 비록 따라 부르기 매우 어렵지만 한번 들으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곡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남아프리카 흑인과 백인들을 단결시켰던 노래에 이어지는 두곡은 찰리 헤이든 자신이 직접 쓴 것들이다. '산디노Sandino'는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니카라과의 투사이며 산디니스타의 기원이 된 인물에게 바치는 찬가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성령Spiritual'은 '킹 목사, 메드거 에버스, 말콤 X에게 바친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찰리 헤이든이 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을 회상하며 만든 작품이다.

메드거 에버스는 전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활동가로 1963년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살해당했다. 밥 딜런은 그의 죽음을 보고 '장기판의 졸일 뿐Only a Pawn in Their Game'이라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피트 시거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듣고 60년대 민권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는 이 곡 뿐이라고 평했다.

* * *

"Not in Our Name"
2005년
1. Not In Our Name
2. This Is Not America
3. Blue Anthem
4. America The Beautiful (Medley)
5. Amazing Grace
6. Goin' Home (From The Largo Of
    The New World Symphony)
7. Throughout
8. Adagio (From Adagio For Strings)
네 번째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2005년에 소집됐다. 소집의 이유는 당연히 '이라크 전쟁'이다. 두 번째 앨범에서 레이건 행정부의 중남미 개입을 비판한지 22년 만에 이번에는 부시 행정부의 침략전쟁을 비판하기 위해 동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앨범의 제목 "Not in Our Name"은 반전집회의 단골 구호이기도 하다.

앨범 커버는 35년 전 첫 번째 오케스트라의 것을 재현하고 있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찰리 헤이든과 칼라 블레이를 제외하고 첫 번째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던 연주자는 아무도 없다. 이전의 앨범들에는 꼭 들어있던 스페인 내전기의 음악이 안 들어있다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수록곡들은 모두 '미국'에 대한 노래들이다. 이라크와 관련된 곡은 없다. 또한 사용된 곡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처럼 진보적인 노래들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운, 그러나 미국인들이 익숙하게 잘 알만한 것들이다. 이점도 이전의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시대의 혁명가요, 민중가요를 재해석하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우리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어'라는 탄식만 반복하는 느낌이다. 전통적인 해방음악오케스트라 팬들이라면 실망스럽거나 불만이 생길만한 부분이다.

음악도 좀 다르다. 예전의 오케스트라가 도전적이다 싶을 정도로 실험적인 연주를 들려줬다면 이번 앨범은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연주를 보여준다. 평단의 반응은 따뜻했지만 누군가는 '이거 진짜 해방음악오케스트라 맞아'라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물론 여전히 17분짜리 대곡도 들어있고 재즈가 아닌 장르의 음악을 가져와 재해석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최근 한층 부드러워진 찰리 헤이든의 연주 스타일과 많이 닮아있다.

첫 번째 곡이자 타이틀 곡인 '우리 이름으로는 안돼Not In Our Name'은 찰리 헤이든의 작품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자신의 성명서이기도 하다. '이건 미국이 아니야This Is Not America'는 97년에 이어 팻 매스니와 다시 작업한 결과물이다. 데이빗 보위(!)도 함께 하고 있다. '미국 찬가America The Beautiful'은 2001년 9/11 이후 미국 방송을 도배했던 노래를 테마로 만든 17분짜리 대곡이다. 물론 찰리 헤이든의 의도는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지만, 미국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아무런 차이가 없듯이 우파가 부르는 미국찬가나 좌파가 부르는 미국찬가나 지루하긴 매한가지다. 생각해보라 무대 위에서 꽃다지가 애국가를 부른다고 그게 갑자기 진보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머지 곡들은 클래식을 재즈로 변형한 것들이다. '귀향Goin' Home'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를 편곡했고, 마지막 곡인 '아다지오Adagio'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인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편곡한 것이다. 물론 모두 미국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이번 가을 뉴욕에 기반한 진보적인 독립라디오 'Democracy Now!'의 설립 10주년을 맞아 기금마련을 겸한 공연을 가졌다. 찰리 헤이든은 내년이면 70살이 된다. 사실 이라크 전쟁이 아니었다면 해방음악오케스트라는 15년 전의 소집이 마지막이 됐을 것이다. 부쉬가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팬들은 다시 한 번 해방음악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고마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 * *

찰리 헤이든은 15년 전의 해방음악오케스트라 앨범에 이런 문구를 적어놓았다. "꿈이 살아 숨 쉬게 하라! Keep the dream alive!" 확실히, 해방음악오케스트라의 녹음은 지난 37년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모든 살아 숨 쉬는 인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내오랜꿈 --------------------------------------------------------------

찰리 헤이든의 연주는 일단 편안하다. 물 흐르듯 고요한, 정통 재즈연주자들과는 뭔가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재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언급할 주제가 못 되니 생략하자.

1980년대 중반, 대학 캠퍼스는 봄을 맞은 들판 마냥 활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학내에 상주하던 '짭새'들이 철수하고 학생회가 막 부활하기 시작한 터라 반정부 학내집회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반정부 유인물 하나라도 뿌릴라치면 잔디밭에서 공놀이 하던(할일 없는 짭새들이 평평하고 전망 좋은 잔디밭을 접수하여 공놀이를 즐기고, 학생들은 그 광경을 "시발시발" 하며 못본 척 지나쳐야 했다-.-) 사복경찰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잡아가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캠퍼스의 봄은 86년 초까지는 학내만을 배경으로 하여 움직였다. 역시 학교 정문 앞에는 수백 명의 전경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모든 집회는 교문을 사이에 두고 투석전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수십 명의 학생들이 4줄로 서서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교내를 한바퀴 돌면 이내 행렬은 수백 명으로 불어나 있었고, 그러면 교문밖 진출을 시도하며 전경들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는 모습, 80년대 중반 당시 대학 캠퍼스의 일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 수없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우리 승리하리라!"였다. 집회 한 번 하면 거의 10번쯤은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이 노래 말고는 별로 부를 만한 노래가 없었다. 광주를 노래한 몇 곡과 양희은의 "아침이슬", "늙은 군인의 노래" 그리고 몇 곡의 번안곡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오늘, 찰리 헤이든과 행크 존스의 연주로 듣는 "We shall overcome"은 그래서 참 감회가 깊다. 조안 바에즈나 피트 시거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원음의' 선율이다.



We shall overcome - Charlie Hadan & Hank Jones



We shall overcome - Joan Baez



We shall overcome - Pete Seege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