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론비평(2007. 5. 10) / "손만 대면 황금이 되는 자의 괴로움"
[기획연재 :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 (1) 숭고와 비장

출처:<학술저널 담비>(www.dambee.net) 강성민



   
 
김훈을 읽을 때마다 받는 느낌이 있다. 다들 그랬겠지만 처음은 강렬했다. 하지만 자꾸 읽다보니 형식이 보였고 사유의 문법이 보였다. 그러자 점점 질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스타일에 기대는 자의 한계로 가볍게 치부할 건 아니다 싶었다. 그건 김훈의 개성이기보다는 우리의 감각적 깊이가 닿지 못한 보편적인 것에 대한, 김훈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걸기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숭고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미학용어 숭고(崇高, sublime)와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고, 대충 말하자면 김훈이 거대한 것에 압도당할 때가 많다는 것, 접근의 한계, 견딤의 한계, 관계맺음의 한계 등 한계가 많다는 것, 사물을 공들여 분석해놓고 그 결과물로부터 시적인 초월을 해버린다는 것, 사람들이 허무주의라고 말하는 그런 태도를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니 갑자기 양념간장이 떠오른다. 우리가 깔끔하게 시 한편을 읽거나 대금 연주 같은 걸 듣는다면 조선간장의 깊고 그윽한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헌데 김훈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너무 처연하게 바라봐서 진하디 진하지만 끝 맛에서 조미료를 쳤다는 의혹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조미료는 모두 천연재료로 즉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맛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훈의 숭고는 몰아의 경지는 아니다. 그는 이미 예전에 『풍경과 상처』(문학동네, 1994)에서 “나는 자연을 해독하거나 자연을 자아의 일부로 편입시키지 못한다. 나는 거기에 가담하지 못하고, 늘 그 바깥을 서성거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훈은 솔직한 편이다. 앞에서 한 말은 “아득한 염전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는 그 갯벌이 끝나는 곳까지 물러가 있다”라고 말할 때 사실임이 증명된다.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연못처럼 가두지 못하고, 저 멀리 수평선까지 밀어낸다. 그 밀어낸 아득한 거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말이다. 풍경은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그를 매혹시킨다. 그래서 전군가도(全群街道)의 벚꽃을 보며 그는 “여자 생각”에 쩔쩔 맸던 것이리라. 애초에 여자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가짜로 가진다고 한들 뭐가 변하겠는가 하는 자의식일 뿐이다.

김훈이 몰입을 못하거나 기피한다면 차라리 비장함을 떠올려야 옳을까. 비장함과 숭고는 둘 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감정이란 점에선 똑같지만, 메카니즘이 다르다. 세상과 자아의 불일치나 대립이 자아의 꺾어짐으로 귀결될 때 비장미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김훈은 꺾어지는가. 비장하게 전사해서 연민을 일으키는가.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날렵하고 현란하게 말(言)에 올라타고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그 넓은 공간을 달린다. 그 팽팽한 긴장이 풀어질 때 아마 문필가 김훈도 죽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김훈 고유의 숭고를 나는 김훈이 누군가를 위해 써준 추천글에서 확인한 적이 있다. 바로 곽의진이라는 소설가인데, 출판저널 기자시절 이 분이 펴낸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의 인터뷰를 하러 진도에 내려간 일이 있다. 말이 인터뷰이지 사실은 진도에 한 이틀 가보고 싶어 일부러 그 책을 골랐다는 게 맞다. 진도가 고향인 작가가 서울로 상경해 소설가로 성공해서 애도 낳고 살다가, 소설과 가정을 통째로 버리고 홀로 귀향해서 살다가 고향의 언어와 눈으로 고향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한땀 두땀 지어낸 책이다. 그는 인터뷰를 대충 마치고 먼 데 까지 온 손님들을 위해 진도 곳곳을 구경시켜 주고, 자기가 친하게 지내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사주고, 옆동네 잔칫집에 데려가 홍어회와 함께 술도 질펀하게 먹여주었다. 그러더니 차를 몰고 산속 깊숙이 지어놓은 자신의 거처로 우리를 데려간다. 산비탈이 간신히 평지를 이루고 있는 곳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나무집이었다. 마당 바로 앞이 낭떠러지였다. 그래도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했으며, 달빛에 교교히 물결지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다. 곽 선생의 말이 김훈은 자기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그가 진도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하룻밤은 머문다고 얘기를 전해준다. 김훈과 사진작가 허용무는 진도 돌김을 간장에 찍어 먹으며 홍주를 많이 마셨다고 했다.

김훈은 추천글에서 “이 글의 저자 곽의진이 고향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고향으로 유배당한 자의 삶과 같다. 곽의진은 고향을 유배지로 만들고 그 유배지에서 다시 고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후 그 집 마당을 온통 붉게 칠하는 일몰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나는 이 곳의 풍경을 견딜 수 없다. 그런 장엄한 소멸을 견디어낼 힘이 나에겐 없었다”라고 말이다. 매일매일 세상이 허물어지는 것 같은 전면적인 일몰 앞에서 김훈은 무너졌다. 그러고 보니 그는 너무 자주 장렬하게 전사하는 듯하다. 그러니 비장하기는 비장하다.

최근 펴낸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보면 김훈의 숭고성이 전쟁이라는 공간, 그것도 성안에 갇힌 약소국의 예정된 죽음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 구절을 보자.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하지만 적들은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적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적을 표상하는 무수한 말도 보이지 않는다. 칸트가 보편적 이성을 정초하기 위해 일부러 물자체를 고안했듯이, 김훈 또한 실존의 명료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남한산성은 어떤 곳인가. 그 산성은 병자호란 때 대피한 조선왕실이 10만 적군에 둘러싸여 있던 돌로 된 수갑이었다. 조선은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밖으로 나가 투항할 수도, 구원을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칸에게 무릎 꿇는 일이 오로지 살 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내면을 그려놓은 소설이다. 투항은 곧 사는 길이었지만, 투항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 마음고통을 다시 겪어내는 것에 김훈의 작가정신이 깃들어 있다.

“청병에 대항하여 싸우자”, “아니다 항복함이 최선이다”라고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이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사흘 뒤에 성을 나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결판이 난 뒤 최명길은 말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 청나라 측이 저항을 고집한 신하 2명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하자 2명의 젊은 당하관이 자청하고 나섰고, 그 이유를 캐묻다가 왕은 쓰러져 운다. 그 때 최명길은 다시 말한다. “군신이 함께 삼전도로 가더라도 전하의 길이 있고, 저 두 사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 먼 후일에 그 두 길이 합쳐질 것이옵니다.”

김훈은 최명길이 사직을 보호하기 위해 총대를 멨다는 것을 분명히 묘사하고자 한다. 최명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홀로 적진을 뚫고 최초로 교섭하러 갈 수 있었다. 항복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했지만 아무도 그 주장을 하지 않았기에 최명길이 입을 열었다고 보는 것이다.

김훈은 한국일보 기자시절 군사정권의 용비어천가를 썼다. “니가 글을 잘 쓰니 니가 써라”고 위에서 요구했고, “그래 내가 쓴다”라고 김훈은 썼다. 그가 쓴 정권찬양 기사는 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활자화되었다. 그들의 책임까지 몽땅 김훈이 떠안았다. 하지만 총대를 메었다고 그게 무슨 영웅의 행위는 아닌 것. 언론인으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고, 김훈은 그것이 치욕스럽다고 수시로 말해왔다. 하지만 그런 행위에 대해 사죄하기보다는 그냥 치욕을 끌어안고 살겠다고 또한 말해왔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의 최명길은 누구인가. 백관이 입을 모아 장렬히 싸우자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합창을 할 때 오직 최명길 혼자 항복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최명길이 강경일변도였던 예판 김상헌을 덜떨어진 인간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최명길은 예판과 끈질긴 논리대결을 벌인 뒤에도 “일 리가 있는 말씀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다만 인간으로서, 왕을 모신 신하로서 그 상황에서 취할 최선의 행동원칙을 정하고 밀어붙였을 따름이다. 김훈은 자기 또한 그런 심정으로 곡필을 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소설 『남한산성』은 이러한 김훈의 자전적 에피소드 위에 특유의 비단결처럼 유장한 문체로 내려앉으면서 더욱 굳게 입을 다무는 듯하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남성적 숭고’라는 느낌도 살짝 든다. 루카치가 소설은 성숙한 남성의 문학양식이라 말했던 것은 소설가가 비극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김훈은 천상병 시인의 정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추방된 자리에서, 자신을 쫓아내버린 세계와 대칭되는 존재의 삶을 영롱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천상병의 정치의식이다.” 이 대목을 김훈은 혹시 자신의 글쓰기가 생에 대한 과장된 제스처인지, 아니면 필연적인 정치의식의 소산인지를 떠올렸을까, 떠올리지 않았을까.

가령 『칼의 노래』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왕의 칼과 왜구의 칼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 외로운 장군의 얘기다. 이순신은 교활한 선조의 칼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순신은 “적의 적으로서 살거나 죽어야지 왕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함을 참을 수 없었”으며 “왕의 칼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나의 충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훈은 ‘쾌도난담’ 사태로 자질 여론이 일자 시사저널에 사표를 던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내 30년 기자생활을 오욕으로 마무리하자.”자폐적인 태도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는 이순신을 복원하면서 “내면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나와 이순신을 동일시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김훈은 “벗이여, 나는 3인칭으로 글을 쓸 수가 없네.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네”라고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왕의 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김훈을 몰아세웠던 그 여론이 아니었을까. 그는 노회하고도 교활한 여론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칼을 꽂았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그 일에 대한 나름의 만족감을 흘려왔다.

하지만 나는 김훈이 역사를 호출해서 자신을 변호한 정치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고통스러운 결단을 역사에 기대서 표현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니 『칼의 노래』는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의소설(寓意小說)이다. 이것은 『현의 노래』의 우륵에게로 거의 유사하게 이어졌는데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자면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사극들은 김훈 내면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이런 그의 세계관이 늙은 여성으로 확장된 것이 「언니의 폐경」이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으로 형상화된 것이 「火葬」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을 통해 김훈은 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아온 셈이 됐지만, 그 이전에 이미 그는 타인들의 삶을 글로서 많이 어루만진 바 있다. 그래서 김훈을 미워할 수가 없다. 저 멀리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 나오는 마성역장 박창하 씨, 토박이농부 정진호 씨, 금속장인 김인태 씨, 간이음식점 주인 심동순 씨 등과 같은 보통사람들, 『원형의 섬 진도』(이레, 2001)에 나오는 사라져가는 농꾼, 춤꾼, 소리꾼, 무인(巫人)들의 삶은 김훈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빚어진다.

이처럼 그는 자기에게만큼 타인에게도 애정을 베푸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장점이자 단점 중의 하나는 손만 대면 작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독특하고 깊이 있는 북 리뷰로 필명을 떨치고 있는 ‘로쟈’라는 분은 김훈의 문체가 기본적으로 에세이스트의 것이고 소설가의 문체는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아름다워도 적당히 아름다워야지 너무 아름다우면 소설이 안 된다는 데 있었다. 평범한 것도 김훈이 묘사하면 평범함의 극단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공감이 가는 지적이라 해두고 싶다.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6월호에 실릴 예정인 '탈아카데미 저자열전-김훈편' 총 6개 챕터 중 첫번째 챕터를 떼어 내어 확장한 것입니다. 담비에서는 앞으로 김훈을 10가지 코드로 읽어내는 글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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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망명은 처량한 격리
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③ 파크리 살레 팔레스타인 비평가
 
 
 출처:<한겨레신문> 2007 10 25  
 


» 파크리 살레 팔레스타인 비평가
 
지난해 11월 미국 메릴랜드주 안나폴리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중동평화회담을 앞두고 브레진스키, 리 해밀턴, 브렌트 스카우 크로포트를 포함한 일단의 저명한 미국 정치학자들, 여론결정자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한 호소문을 통해 미국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만일 실질적이고 항구적이며 포괄적인 평화가 11월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폭력의 악순환은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번져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고,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평화가 회담과 직접협상 따위를 통해 가능하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평화는 우리가 과거 우리 적에게 저질렀던 일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낄 만큼 선의와 의지를 지닐 때 달성될 수 있다. 국제회담은 양쪽이 각기 자신들의 부정한 과거를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평화의 수단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중동 땅에서 서로 기꺼이 어울려 살고 공존하는 식으로 희구되는 평화에 다가가고 있는가? 팔레스타인에서, 이라크에서,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그러면 우리 지구별에서 화약고가 어디인지 알게 될 것이다. 거기서는 모든 게 몇분 내로 화염에 휩싸일 수 있다. 나는 평화가, 완전히 분리된 분위기에서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이 망명자이며 동시에 추방당한 자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은 아직 팔레스타인 땅 제닌, 그 초토화된 도시에 이스라엘이 2002년에 몰아넣은 난민 캠프에서 분노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우리 조국을 몰수해버리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가난의 구렁텅이로 내몰렸다. 나는 그 당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슴에 품고 산 슬픔과 분노에 공감한다. 1967년 6월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터졌을 때, 어린아이였던 나는 폭력이 거듭되는 가운데 공포 속에서 살았다. 나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영원히 지워낼 수 없을 공포를 안겨주며 우리(나와 내 동생) 머리 위로 날아갈 때 부들부들 떨면서 작은 팔레스타인 마을에 있던 우리 집으로 달아나던 장면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감정은 이데올로기적 헛소리가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들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텅구리 정치인들이 느껴볼 필요가 있다.

수백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추방당하고, 망명 중에, 그리고 1948년과 1967년 다른 아랍세계로 유랑을 떠나게 된 뒤부터 깊게 뿌리내린 공포감 속에서 살아왔다. 팔레스타인인들 중 3분의2는, 아니 그 이상은 여전히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난민으로서 자신들의 문제가 미국이든 세계 어디서든 열리는 정치회담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접근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혀 느끼고 있지 못하다.

나는 이렇게 자문한다. 나는 현대라는 황야에서 오욕의 생을 운명처럼 지고 태어난 디아스포라 피조물, 곧 한 사람의 망명자일 뿐인가? 천만에! 나는 이스라엘이 내가 학업을 마치러 외국에 나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아 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국적을 지니게 된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내 망명은 강요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처량하기 짝이 없는 분단과 격리다.

내 가족 또한 모든 점에서 분리되어 있다. 몇몇은 요르단 사람이고(나 역시 그렇다), 다른 가족은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20년 이상 나는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어가는 게 금지되었기 때문에 여동생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게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중동 위기의 존재적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떠맡겨진, 심지어 강제된 격리의 수십 년 세월이 지난 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산가족과 친척들!

그렇다. 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작은 구역, 곧 분쟁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러나 뿌리, 민족, 국적을 잊고 그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중동 지역에서도 좌절과 공포, 극단주의의 분위기가 그 일대를 예측할 수 없는 폭력과 파괴의 악순환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 같이 신에게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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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훈 _ 문학평론가]


▲ 『남한산성』은 한겨울밤 편전을 울리는 신하들의 울음에서 시작, 봄볕아래 사공의 딸 나루를 쌍둥이자식 중 누구에게 시집보낼까 생각하는 서날쇠의 혼자웃음으로 끝맺는 소설이다.
김훈은 어디선가 주격조사 ‘은/는’과 ‘이/가’의 식별 불가능해 보이는 차이가 결정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자가 사실 대신 의견을 기술할 때 쓰는 조사라면, 후자는 의견 대신 사실을 기술할 때 쓰는 조사라고 한다. 그것들을 구별하지 않을 때, 말은 실체의 가면을 쓴 헛것, 헛것의 가면을 쓴 실체가 되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김 훈은 조사(助詞)의 용례에 민감하지만, 통사론이 전공인 언어학자는 아니다. 김 훈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대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칼의 노래』)로 소설의 첫 문장을 쓰는 소설가다. 김 훈은 ‘버려진 섬인데도 꽃은 여전히 피고 있구나’라는 감상의 미문이 아니라, ‘꽃이 피었다’는 계절의 주기와 순환의 사실을 적는 건조한 기록으로『난중일기』가 시작한다는 데에 주목한다. 생각해보면, 7년의 전란을, 아귀지옥의 세상을 사실의 언어로 끝끝내 기록하는 자의 내면은 헤아릴 길 없는 것이다.

김훈은 무엇보다도 말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말이 사람들을 다루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소설가다. 말을 다루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말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은 실체다. 그러나 김훈은 사람들이 말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때, 실체인 말이 헛것으로 바뀌는 과정을 응시한다. 말은 발화되는 순간, 주관이냐 객관이냐를 떠나 욕망에 붙들린다. 말하는 자는 욕망하는 자요, 욕망에 사로잡힌 자다. 말은 욕망이기에 사람들은 말한 것보다 적게 말하며, 말한 것보다 많이 말한다. 말은 결핍이고 과잉이다. 여기서 세상은 사람이 말을 다루는 세상이 아니라 말이 사람을 다루는 세상이다. 말이 사람의 주인인 세상에서 헛것인 말은 세상을 조종하고 사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헛것일까 싶었는데, 말은 어느새 효력 있는 실체가 된다. 사람은 사라지고 말들만 남는다. 말은 실체고 헛것이며, 헛것인가 싶으면 실체다. 가히, 어지러운 말(言)먼지의 세상이다.

김 훈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칼의 노래』에는 헛것이자 실체인 말이 현실과 맺는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대한 통감(痛感)할만한 성찰이 담겨있다. 임진년전란이 일어날 무렵, 길삼봉이라는 이름이 출현한다. 길삼봉은 혹세무민하여 군사를 양성하고 조정을 위협하는 도당(徒黨)의 중심인물이라고들 한다. 들은 사람은 많은데, 본 사람은 없다. 허깨비인지 실체인지, 실명(實名)인지 허명(虛名)인지도 알 수 없다. 몇몇 사람들을 잡아왔고 실토를 하게했다. 처음의 심문은 “길삼봉은 누구냐?”였다. 시간이 지나자 질문의 구조가 바뀐다. “누가 길삼봉이냐?”『칼의 노래』는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질문의 구조가 바뀌자 길삼봉의 허깨비는 피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여덟 살, 다섯 살짜리에게 길삼봉의 실체에 대해 물었고 자백하지 못하자 무릎을 으깨어 죽였다고 써 있다. 비평가 서영채도 지적했지만, ‘길삼봉은 누구냐’와 ‘누가 길삼봉이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후자는 이데올로기적 질문으로 동지와 적을,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질문이다. ‘길삼봉은 누구냐’에서 길삼봉은 한 명이지만, ‘누가 길삼봉이냐’에서는 모두가 길삼봉일 수 있다. 2001년 9. 11테러 직후, 미국언론은 ‘아랍인 테러리스트’라고 썼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깃발이 뉴욕시내를 뒤덮었을 즈음, ‘아랍인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 아랍인’으로 둔갑해 있었다.

『남한산성』의 첫 문장은『칼의 노래』의 첫 문장과는 정반대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말이’가 아니라, ‘말은’이다. 사실이 아니라 의견의 언어이고, 욕망의 언어이다. 의견과 의견이, 말과 말이 칼과 칼 대신 부딪치고 대립한다.『칼의 노래』가 칼을 든 주인공이 있고 그의 언어가 세상과 부딪히는 소설이라면,『남한산성』은 말(言語)이 주인공이고 말에 들린 자들이 세상을 만드는 소설이다. 40여 일치의 식량, 바닥 난 탄약, 배고픔과 추위로 헐벗은 군사들이 성 안에 있다. 백성들이 있고, 임금이 있고, 신하들과 사대부들이 있다. 말하는 자들은 주로 신하들, 사대부들이다. 성 안에 갇힌 임금의 신하들은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그들은 성 밖에서 청(淸)의 이십만 대군을 맞아 칼과 총, 대포로 전투를 벌이는 대신에 성 안에서 말싸움을 벌인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말하지만, 나중에는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청을 치고 명(明)을 도와 이백년 동안 지켜온 종묘사직(宗廟社稷)을 구하자는 크고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편, 치욕을 감내하더라도 살 길을 도모하여 종묘사직을 보존하자는 작고 낮은 목소리가 후벼 판다. 대의를 밝히는 목소리가 화(和), 전(戰), 수(守)는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 사세를 살피는 목소리는 그 셋은 다르다고 말한다. 대의를 말하는 자는 죽음이 가볍다 말하고, 사세를 살피는 자는 죽음이 가볍지 않다고 말한다. 최명길을 죽여 사직의 앞날을 보존하자 하는 김상헌과 척화파의 말이 있고 성문을 열면 날 죽여도 좋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최명길의 말이 있다. 다들 옳은 말이고, 옳은 사람들이다.

"김훈은 무엇보다도 말을 다루는 사람
들에 대해, 그리고 말이 사람들을 다루
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소설가다."
- 본문 중에서
성 안에 갇힌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해지고 격렬해질수록 아름다워지며 아름다워질수록 허무해진다. 그런데 치욕의 날이 가까워올수록 말들은 서로 부딪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 알아볼 수 없게 변하기도 한다. 치욕을 감내하자는 신하는 자신의 말이 곧 길이라고 하고, 치욕은 안 된다는 신하는 말은 길과 다르다고 말한다. 또다른 자는 말은 길이 아니지만 글을 밟는다면 글과 길은 곧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말은 의미를 잃고 공허 속으로 떨어진다. 그렇기에 임금은 말한다. 말이 아름답다, 준열하다, 어지럽다, 괴이하다, 어렵다. 임금은 말들의 안팎에 있다. 임금은 성문을 열고 치욕의 길을 밟지만, 그것은 누구의 뜻을 따랐다기보다 주어진 길을 간 것뿐이다. 칸이 오줌을 누는 동안에는 임금도 하던 절을 멈춰야한다.

사람이 말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사람을 소모한다. 말이 바닥난 곳에서 임금이 울고 조정대신들이 운다. 말이 끝나고 소멸된 자리에 울음이 있고 울음이 끝난 자리에서 말이 시작된다.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라고 말하는 수어사 이시백처럼 울지 않는 자가 더러 있고 말과 울음,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사관 또한 울지 않는 자로 잠깐 비친다. 그럼 성곽 안쪽의 말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성 바깥에는 20만 대군을 호령하고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는 칸의 말이 있고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통역관 정명수의 말이 있다. 정복자의 화포처럼 펴 내지르는 말이 있고, 일찌감치 “말의 신기루”를 터득하여 말의 안팎을 넘나드는 말이 있다. 이들의 삶과 말의 물질성 편에서 보면, 성안의 말은 헛것이다.

말이 그 실체를 드러나는 자리에 백성의 삶이 있다.『남한산성』은 성 안팎의 나라 잃은 백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병을 건너게 하고 그 대가로 식량을 마련하겠다는 사공은 “나를 따르지 않겠느냐?”는 김상헌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오. 소인은 살던 자리로 돌아가겠소.” 김상헌은 사공을 칼로 벤다. 이 놀라운 장면의 끝을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날 새벽에 강은 상류부터 먼 하류까지 꽝꽝 얼어붙었다.” 김상헌은 청병을 건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공을 벤 것이고, 사공은 먹고살기 위해 돌아가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백성인가”라고 김상헌은 물었던 것이고, 이것이 백성이라고 죽은 사공은 아마도 대답했을 것이다. 대장장이 서날쇠도 있다. 연장을 다루는 자, 장인에 대한 김훈의 외경감이 엿보이는 인물설정이다. 서날쇠는 쇠를 녹여 갖가지 연장을 만들고, 좋은 흙을 골라내며, 똥을 삭혀 저장해둔다. 물, 불, 공기, 흙 모두를 다룬다. 말의 현란함과 삶의 단순성이 교차하고, 비상사태와 일상이 맞물린다. 대의냐, 치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과 자식을 돌보기 위해 살아야하는 백성들이 있다.

『남한산성』은 한겨울밤 편전을 울리는 신하들의 울음에서 시작, 봄볕아래 사공의 딸 나루를 쌍둥이자식 중 누구에게 시집보낼까 생각하는 서날쇠의 혼자웃음으로 끝맺는 소설이다. 김훈에게 던지는 세간의 질문, 당신은 누구편이냐에 대한 김훈의 묵시적 대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웃음이 아닐까.



*복도훈 문학평론가는 2005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주요 평론으로 「포스트모던 문명의 불만, 괴물들의 이상한 가역반응」, 「시체, 축생, 자동인형」, 「연대의 환상, 적대의 현실」 등이 있다. 공역서로 슬라보예 지젝 외, 『성관계는 없다』(도서출판 b,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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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지를 굳힌 작가 김훈.

‘칼의 노래’(생각의나무)를 시작으로 ‘현의 노래’(생각의나무) 그리고 ‘남한산성’(학고재)까지 김훈의 역사소설이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남한산성은 30~40대 남성 독자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될 정도다. 여기저기서 한국소설의 위기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김훈은 이런 한탄에서 비켜나 있다.

이런 기현상에 대해 평론계는 김훈에 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내놓고 있다. 특히 계간지 ‘창작과비평’과 ‘문학의문학’ 가을호는 김훈의 역사소설 비평을 동시에 내놓아 화제가 됐다. 창작과비평은 문학평론가 김영찬씨의 ‘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이라는 평론을 실었고, 문학의문학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씨의 ‘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라는 글을 담았다. 두 평론은 김훈의 역사소설과 작가 김훈에 대한 장점과 한계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point 1 김훈의 역사소설이 사랑받는 이유

‘김훈의 소설에서, 전쟁이란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됨됨이를 축약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알레고리다. … 따라서 그의 소설은 역사소설이라는 외양을 하곤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역사의 옷을 빌려 (작가가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와 자아의 자리를 되새기는 자의식적 소설이다. … 따라서 사실은 이렇다. 그것은 모두 ‘세상의 길’ 위에 선 ‘나’의 이야기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역사는 오늘의 삶과 자기 정체성을 되비쳐 볼 수 있는 유력한 준거틀이다. 소설가들이 역사를 빌려오는 것은 얼크러진 현실의 복잡한 정황 때문에 그것을 전체로서 그러쥐고 통찰하기 어려울 때다. … 1인칭 서술자 이순신의 목소리는 실은 김훈 자신의 목소리다. 김훈은 교묘하게 복화술을 한다. 이순신이 모멸과 치욕의 현실 앞에서 드러내는 자의식은 실은 김훈 자신의 자의식이다.’(‘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김영찬씨와 장석주씨는 김훈이 역사소설에 매진하는 이유를 ‘도피’라고 설명한다. 김영찬씨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불편하니까,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한 단계 걸러주는 것이다”면서 “독자는 역사소설을 통해 현실과의 거리감을 느끼면서, 김훈의 문체가 보여주는 미학적인 아우라 같은 것을 함께 느낄 수가 있다”고 설명한다. 장석주씨는 “김훈의 역사소설은 현실과 맞서기 어려울 때 찾는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현실소설에서 하는 것보다 역사소설을 통해서 하는 것이 독자나 작가 모두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현실소설에서는 많은 제약을 받지만, 역사소설에서는 역사적인 인물을 통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point 2 변하지 않는 허무주의

‘김훈의 소설에서 세상의 참혹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세상이 살육과 유혈로 얼룩지고 지배와 폭력이 창궐하며 고통과 죽음이 흥건한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참혹함이란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질서에 압도되는 김훈의 인물들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는 정념이다. 그것은 무력한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어떻든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고 굴욕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하고 도저한 체념에서 나오는 것이다. … 김훈의 소설은 그렇게 저 불가피를, 그리고 불가피 앞에 선 자의 우울과 허무를 냉정한 시선으로 드러내놓는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이순신의 사유, 고뇌, 외로움, 불안, 절망은 박제된 역사적 인물의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구체적 현전이다. … 오로지 제 운명의 버거움을 힘겹게 견인해가는 자의 버거움이 드러난다. 대타적세계(세상과 불화로 인해 고립되는 것)와의 되먹임(피드백)의 고리가 끊긴 곳에 제 실존을 세운 자는 필경 허무주의자로 나아간다. 허무주의자는 생존 상의 가치가 결여된 선택과 행동을 취한다.’(‘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작가 김훈에게는 ‘허무주의자’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하지만 김훈의 허무주의는 독자들에게 큰 사랑과 동감을 얻어내고 있다. 김훈이 펴낸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이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등의 에세이집에서도 그의 허무주의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김훈의 역사소설에서도 허무주의가 깊숙이 깔려 있다고 두 사람은 평가하고 있다. 김영찬씨는 “김훈에게는 허무주의, 파시스트, 남성우월주의 등의 단어가 따라다닌다”면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 왜 그런 규정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point 3 김훈은 역사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

“거대한 불가피 앞의 무력한 우울과 신음을 통절하게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유려하게 미학화하는 김훈의 소설은 … 그러면서도 김훈은 일각의 그들과는 달리 결코 공상이나 판타지, 취미나 텍스트 등으로 도주하지 않고 현실의 감각을 환기시키면서 그것을 진지한 사유와 성찰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있다. 저 스스로 2000년대 문학의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바로 그 안에서 그와는 또다른 길과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는 김훈 소설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김훈 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에서)

‘김훈 소설은 진화 중이다. 진화의 단계에서 역사소설은 악보 상의 휴지부(休止符), 잠시 쉬어가는 쉼표다. 김훈은 이 휴지부, 쉼표를 빠르게 건너갈 것이다. 지금까지 김훈 소설은 그 본질에서 독백이다. 앞으로 나올 소설은 독백에서 벗어나 다향의 울림을 가진 대화일까?’(‘김훈 소설, 혹은 그 이마고에 관하여’ 중에서)

역사소설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훈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앞으로도 역사소설을 통해 그의 매력을 계속 발산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소설로 변신을 꾀할 것인지. 두 평론가는 김훈이 이제는 현실소설로 넘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장석주씨는 “‘남한산성’의 인물 캐릭터가 너무 기계적으로 나뉘어 있고, 리얼리티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평하면서 “(김훈이) 언제까지나 역사소설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작품은 현실소설이 될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작품성 측면에서 보면 현실소설이 실패할 확률은 60% 정도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예상을 하는 이유는 역사소설에서는 그리 눈에 띄지 않은 단점이 현실소설에서는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성우월주의나 몸에 대한 파시슴적인 요소들이 현실을 다루면 다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김영찬씨 역시 “역사소설은 이제 그만 쓰고 현실문제를 다룰 것 같다”면서 “그렇다고 그의 작품 성격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평한다. 또한 “현실소설을 펴냈을 때는 역사소설이 보여줬던 흡입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두 평론가의 이야기처럼 역사소설에는 김훈의 매력과 장점을 부각하고 동시에 독자들이 불편할 만한 내용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김훈이 현실소설을 냈을 때는 그동안 잠복해 있던 불편함이 여과 없이 나올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훈의 다음 행보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오랜꿈 ----------------------------------------------------------------

분명 현실도피요, 현실역사에 참여하지 못한 자의 비겁함이리라. 그래서 현실이 아닌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할말이 많아지는 허기짐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 허기짐은 사소한 행위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비장하고 숭고한 고뇌와 결단 끝에 내린 선택으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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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알리 바드르 후세인/이라크 소설가, 시인
 
 
 출처:<인터넷한겨레>2007 10 24  
 


이라크 문화의 영도(零度) - 점령하 문화와 지식인들

■ 핵심 질문?

이라크의 지식인으로서 우리는 늘 똑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점령 하에서 혹은 그로 인해 촉발된 혼돈 하에서 이라크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특히 테러리스트와 종교세력이 헤게모니를 잡은 이후에 지식인들은 어떤 조건 하에 살아가게 될 것인가. 물론 그런 문제들 뒤에는 많은 요인들이 놓여 있었다. 과거 사담 후세인 정권 때문에 고통 받을 때, 우리는 권위가 부재하고 대신 시민적 제도가 받쳐 준다면 훨씬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시민적 제도라는 꿈이 망상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전세계는 파괴의 가장 폭력적인 형태가 전체 역사의 파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독재 정권의 몰락 이후에, 점령군이 이라크에 도착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즉각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서관은 불타거나 약탈당하고, 고고학적 유물들은 파괴되었고, 박물관은 털려버렸다. 국립이라크박물관은 그 첫 번째 대상이었다. 국립대학들의 도서관들 또한 약탈당하고 깡그리 불타버렸다.

그러나 누가 알랴? 이라크 대학의 교수들 500명, 170명 이상의 저널리스트와 시인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수천 명이 나라를 떠났다는 사실을!

이것이야말로 이라크 지식인들에게 벌어진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학살이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라크의 지배적인 두 권력, 미군과 종교 전사들의 좋은 타격 대상이 되고 있다.

■ 종교 아젠다

종교당국은 고유의 아젠다를 갖고 예술을 금지시킬 때 잇달아 자기 식의 해석을 내리며, 법이나 시민의 권리, 혹은 인권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도 없고 종교적 위반자들을 벌하거나 죽이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혼돈 속에서, 그리고 행정 질서가 가져다주는 상대적인 편안함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극적으로 축소되었으며,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간단하게 추방되었다. 문화기구들은 문을 닫았다. 비밀리에 연습을 해 온 음악가들은 이제 탈레반 같은 보복이 두려워서 악기를 들고 감히 대중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종교 기구들이 문화를 독점하는 것이 현단계에서 우리가 맞부닥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문제 중 하나이다. 그들의 해석은 심각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신성하다고 정해 놓은 금을 넘어선 사람들을 벌줄 때 생각하는 자기정당화는 매우 위험하다.

■ 이라크 문화의 영도(零度)

우리는 합법화된 강한 권력의 공백 때문에, 혹은 무질서나 테러리즘 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문화의 파괴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점령군은 이라크 내 여러 개의 고고학적 유적지들을 파괴했다. 그들은 수많은 조직 갱들과 함께 수많은 이라크 도시들의 지방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다른 많은 물건들을 약탈해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이런 사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점령이 시작된 해에 박물관이 터무니없이 파괴되고 국가 문서와 도서관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이라크의 ‘영년(零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런 행동들은 이라크의 문화적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낯선 역사와 외국의 문화로 가득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는 백지만 남았다. 누가 그걸 채울 것인가? 미국이나 종교세력이? 민족문화를 수립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를 견인하는 두 세력을 만나고 있는바, 그 둘 모두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알리 바드르 후세인(Ali Bader Hussain)/이라크 소설가, 시인

 
영도: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저서 <글쓰기의 영도>(1953)에서 비롯된 용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지점을 가리킨다. 이글에서 필자는 미군의 공격으로 이라크 문화의 기반이 무너짐으로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영도’ 또는 ‘영년’이라는 표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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