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선 : 교토고쇼 - 킨카쿠지 - 료안지 - 아라시야마로 이동, 고류지 - 덴류지 - 도롯코 열차(편도) - 교토 시내 관광(한큐 가와라마치역 부근)
유적지 폐문시간은 '뽀작뽀작' 다가오고, 료안지를 나오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니시오지산죠에서 아라시야마行 환승버스(11번)를 기다리며, 찬 음료만 마셔서 밥 생각이 없는 패와 그래도 밥 안주냐고 칭얼대는 패로 갈린다. 큰 길임에도 근처는 마땅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골목마다 널린 게 가게 천지인 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남은 일정 중 한 두 개를 빼면 모를까, 시간상 제대로 된 식사는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고 맹탕으로 굶을 수만은 없어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간단히 때우고, 해 있을 때 부지런히 움직이는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 거리의 벽보에 걸린 수배자 전단, 왜 찍었을까요?
교토관광에서는 지하철보다 버스 이용이 거의 절대적인데, 전반적인 버스 운행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초행길인 사람도 노선표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조금은 적응 안되는 것이 우리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차선이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 때문인지 순/역방향이 한번씩 헷갈리는 것이다. 이는 순전히 운전석의 방향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다른 때는 확인 차원에서라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더위에 지친 이번 만큼은 선두를 선 남편을 철커덕 믿고 따랐다. 샌드위치 나눠 먹고 수다떨며 기다리다 마침내 기다리던 11번 버스를 타긴 탔는데, 확인 결과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였다. 한 코스도 채 지나지 않아서 버스기사에게 확인 사살을 날렸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쭉~ 어디까지 갔을지....
4. 고류지(廣隆寺) ; 경내 무료, 보물관 700엔
고류지는 이름난 사찰임에도 교토의 전형적인 관광코스 인기도 순위에서는 좀 밀리는지, 아니면 오늘만 그런건지, 앞서 번잡했던 금각사나 료안지에 비해 조용하고 한산했다. 버스를 내린 곳이, 주차장(?) 입구인 듯 싶은 곳과 연결된다. 대숲과 뿌리가 하나로 붙은 신기한 나무는, 천왕문으로 왔다 갔다 했으면 보지 못했을 그림이다.
▲ <左>대숲과 구름의 조합이 근사하다. <右> '連理枝'는 가지가 서로 엉겨 붙었는데, 이 나무들은 뿌리가 붙었으니, '連理根'이라 해야겠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물부터 찾는데, 자동판매기의 천국인 일본인지라 열기를 덜어 줄 냉음료를 즉시 뽑아 먹을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판기는 안 보이고, 경내 앞마당에 손 씻는 용도의 쯔꾸바이(つくばい)만 있다. 절로 약수가 철철 넘치는 우리의 절집이 그리운 순간이기도.
고류지는 일본의 일만엔짜리 지폐에 실렸었을 정도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쇼토쿠 태자와 관련이 깊은 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한 때 일본의 국보 제1호였다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우리의 고대사 영향 아래 그 출처에 대해 여러 각도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목조미륵반가사유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둘러본 몇 군데 일본의 유적지에서는 국보 제 몇 호라는 식의 표기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일반 유적지 뿐만 아니라 나라 국립박물관에 진열된 국보 더미 속에서도 그러했으니, 이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국보 1호였다는 설도 별로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아니, 신뢰라기보다는 '국보1호였었다'는 걸 자꾸 강조, 재생산해내는 우리의 의식구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발바닥이 아파오고 더위에 지쳐서, 태자당 마루에 퍼질러 앉았더니, 중력의 법칙이 강하게 눈꺼풀에 작용했다. 마냥 늘어지면 더 힘들 것 같아서 한 켠에서 휴식하는 일본인 관람객에게 전차 노선을 물었는데, 자기도 초행이라서 지니고 있던 가이드북을 꺼내든다. 뒤적뒤적, 그리고 한참...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빠져나갈 타이밍을 찾고 있는데, 다른 동반자의 지도까지 펼쳐든다. 일행들은 그냥 오라는 무언의 싸인을 보내고, 그렇게 나는 재차 타이밍을 놓쳐 주저 앉고... 끝까지 도움은 못 받았지만 어쨌던 시간 들여 최선을 다하는 마음만은 고마운 일이다. 휴식을 종료하고, 이제 슬슬 모두가 기대해 마지 않는 '목조 관음상'을 만나러 보물관으로 향했다.
▲ <左>아빠는 읽어주고, 딸래미는 받아적고.. 우리나라 유적지에서도 흔히 보는 그림. 학구적인 부녀를 덴류지에서 다시 만남. <右>보물전 앞에 뜰에 핀 도라지, 이렇게 키다리 도라지는 처음 봄.
<고류지의 보물관에서>
태자당 뒤켠에 있는 보물관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사진 촬영 금지와 함께 모자를 벗어라고 재촉했다. 실내는 겨우 선풍기 두 대만 돌아가는 완전 찜통 속이었는데, 국보급 유물을 상당수 보유하다 보니 꽤나 까다롭게 군다 싶으면서도, 그네들의 유물관리 정책엔 나름대로 수긍이 가기도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했으니 더워도 어쩌겠는가...^^
왼쪽의 입장권 사진을 한 번 보시라. 나는 아직 국립 중앙 박물관에 못 가봐서, 우리의 금동으로 만든 미륵반가사유상의 실물은 못 봤지만 아마츄어의 눈에도 역사 관련 책에서 늘 보아오던 매우 눈에 익은 모습임을 알아챌 수 있다.
흔히 언급되는 이야기처럼, 이 반가사유상이 한 때 일본의 국보 1호로 매겨졌었다가, 재질이 일본에서 자라지 않고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적송이라고 밝혀지면서 국보1호에서 순위를 후퇴시켰다면, 이것은 아마도 중국이나 한반도에 비해 고대사의 출발이 늦었던 일본의 컴플렉스가 여실히 보여지는 측면 가운데 하나로 읽혀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볼 여지도 있는 것 같다. 위에서 '국보1호였었다'는 걸 재생산해내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관해 언급했는데, 이것 역시 우리가 비판하는 일본인들의 그것과 똑같은 컴플렉스의 일종-고대 일본은 반드시 우리의 영향을 받았어야만 한다는 문화적 우월감의 발로-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어디에선가 읽어본 것 같은데,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보의 순위를 번호로 매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일본에서는 나름의 가치판단을 가지고 국보의 번호체계를 없앤 것인데, 우리가 유독 그것을 가지고 일본의 컴플렉스 운운하는 형태로 담론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우리 나라에서 논란이 된 국보 1호 교체 논쟁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교체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보 1호 교체가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논리 자체도 우습거니와 굳이 1호, 2호 순으로 번호를 매겨서 유물의 가치를 줄세우기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차라리 관리,보전의 편의란 차원에서 비슷한 성격의 유물군으로 묶는 새로운 번호체계가 필요하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 반가사유상은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됐던 유물인데, 한반도 것임을 인정하는 학자들 중에서도, 백제의 것이다 또는 신라의 것이다 등으로 의견이 나뉘는 모양이다.
뭐, 이것 말고도 사천왕이 'ㄷ'字 구조로 지키고 있는 나라시대의 밀교 형식 대형불상도 어마어마하고, 불교를 정치 기조로 삼은 쇼토쿠 태자 시절에 만들어진 유물들이 꽤 전시되어 있었다. 끊임없는 전란으로 인해 목조 유물이 홀라당 불타 버려, 삼국시대의 것이라고는 한 점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누구 말대로 제대로 된 외침 한 번 받지 않은 복 받은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설렁설렁 보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일행들은 가는 곳 마다 진지하고 꼼꼼한 관람자세를 흐트리지 않기에, 시간은 늘 모자란다. 누가 역사 선생 아니랄까봐...-.-...
▲ 우여곡절 끝에 타게 된, '아라시야마'역으로
가는 게이후쿠 전철
천왕문으로 나오다가 입장하는 관람객에게 우즈마사역이 어딘지 물었는데,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찜통 같은 더위 속을 걸어야 했다. 전차 레일을 따라가다가 갈라지는 방향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마침 지나는 젊은 츠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기꺼이 자신을 따라오란다. 어제 비행기에서 본 뉴스를 화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걷다가, 우즈마사역이 우리가 걸어나왔던 고류지 천왕문에서 살짝 비켜선 왼편이었음을 알았을 때의 허탈감이란...
전혀 역사 같아 보이지 않는 간이역이었지만 찾아볼 생각도 않고, 무턱대고 타인에게 의존할 생각부터 했으니, 누굴 원망하랴. 그런데 그 사람 참~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할 것이지, 무슨 배짱으로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는지. 과잉친절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4. 덴류지 ; 08:30 ~ 17:30, 600엔(정원관람만 500엔, 법당은 토/일요일 공개 별도 500엔)
따가운 해가 절정에 이른 오후의 아라시야마역은 어딘가 들뜨고 술렁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역 앞에서 사찰 순례는 고류지를 끝으로 마감하고 관광철인 토롯코 열차를 바로 탈 것인가, 아니면 덴류지를 들린 후에 탈 것인가로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가는 길목이니 들리자는 쪽으로 결정났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정원 쪽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먼저 앞서 간 남편이 법당 마루에서 빨리 올라오라는 재촉을 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올라갔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정원에서 법당 마루로 오르는 것은 금지였다. 본당으로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600엔짜리 입장권을 사던가, 또는 정원으로 가는 매표소에서 500엔짜리 입장권을 끊었다면 추가로 100엔을 더 내던가 해야 했는데, 매표소가 두 군데인 걸 몰랐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얌체 짓을 하여 100엔을 아끼는 사태가 발생했다.
▲ 14세기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소겐치 정원. 과거 아라시야마 전체가 이 절의 정원이었다니, 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을 것 같다.
▲ 마루로 올라가면 안돼요!
사전 정보없이 간 때문일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면 조금 더 무게 있고, 무엇인가 차별화를 가지며 상징성이 짙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점에서 보자면 겉으로 보이는 덴류지는 나에게 썩 무게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마음 가짐에 더해 오후 3시의 작열하는 태양빛은 모든 것을 귀찮게 만들고도 충분한 남음이 있었다. 일행들 또한 지친 기색이 역력하여 구석구석 답사를 포기하고 다다미가 깔린 실내에서 '소겐치 정원'의 풍경을 조망하는 것으로 시간을 떼운다. 반쯤은 누운 자세로 풀어질대로 풀어져서, 피로한 다리에게 휴식을 주며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으로 입장권의 가치를 인정해줬다고나 할까.
▲ 아이고 다리야~~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는 "J"의 다다미 강의도 듣고....
▲ 8번의 화재로 옛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의 것은 메이지 시대에 새로 지은 것.
아기자기한 정원을 감상하며 덴류지의 북문 쪽으로 쭉 나가면 '토롯코 아라시야마역'으로 통한다. 하루 일정의 말미에 이르러, 지친 상태에서 경사진 길이 좀 힘들긴 하지만 울창한 대숲이 펼쳐져 피로가 싸~ㄱ 가시는 기분이다. 대숲 사이 오솔길을 호젓하게 걷다 보니, 영화 <와호장룡>의 공중 칼싸움 장면이 생각난다.
일행들과 사진도 찍고, 드디어 기~인 사찰 순례를 끝내고 관광열차인 토롯코 열차를 탈 기대감에 설레어 있는데, 갑자기 저만치 앞서가던 남편이 원숭이처럼 대나무를 타고 오를 폼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에 국제적 망신이라고 모두들 말리니까, 이내 내려왔지만 남편의 개구스런 행동은 언제나 예측불허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 <左> 대나무 길이가 15미터는 족히 넘을 대숲 길. <右> 아저씨 나이, 40대 중반인 거 아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