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식객>17권을 읽다가 국밥에 관한 에피소드를 보았다. 나에겐 무척 실감나는 에피소드다. 나 역시 어떤 음식 하나를 무척이나 갈망했던 시절이 있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던, 별 것도 아닌 시락국밥, 돼지국밥 한 그릇을. 국밥 한 그릇이 무에 그리 맛일을까만, 단순한 맛이 아니라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게다. 어쩌면 추억이라고 하기보다는 조금 슬픈 기억이랄까.

지금도 부산엘 가면 자주 돼지국밥집에 들린다. 싫다는 아내를 억지로 끌고 들어가서는 거의 반 강제로 먹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뭐, 아내도 쫑알쫑알 대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은지 거부하지는 않는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먹고 싶었던 게 돼지국밥이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게 아래의 글이다. 아 참, 지난 여름에 안경 맞추러 가서 보니까 3,500원으로 올랐던 거 같다.




서울엔 돼지국밥이 없다


돼지 국밥,,,

먹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소고기 국밥 보다 훨씬 더 맛있다(뭐 상대적이겠지만).

학교 다닐 때, 돈이 없어 소주 한 잔 하기도 만만찮던 시절,
학교앞 시장통 입구에 위치한 시락국밥집에서 파는 돼지국밥은
불과 300원의 돈도 아까워 시락국밥으로 대체당하곤 했다.
(시락국밥 500원, 돼지국밥 800원)

그 한을 품고 살아서인가?

서울 생활을 하면서 최소한 먹는 거에 대해선 궁핍하지 않던 시절,
그 돼지국밥을 먹고픈 생각이 들어 수소문 했지만
서울에 돼지국밥을 파는 곳은 없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93,4년 경엔 없었다.

그 이유를 파헤쳐보니 돼지국밥은 대구 이남 지방에서만
주요 먹거리로 인정되고 그 이북 지방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놈들과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말하곤 했다.

"야, 다 때려치고 돼지국밥집이나 하나 하자!"


또 하나의 차이는
부산쪽 보통의 돼지국밥 집엔 순대를 같이 판다.
500원 짜리 순대 한 접시 시켜 놓구선 소주 몇 병을 비우던 시절,
딥따 소주만 시키면서
"어무이, 국물 좀 더 주이소." 하는 소리가 당당하게 나오던 시절...

그 순대 또한 서울은 부산과 달랐다.


오랜만에 만난 부산 친구놈과
서울의 어느 순대집으로 가서 순대와 소주를 시켰는데, 뭔가 한 가지가 빠졌다.

"아주머니, 여기 된장 주세요~."
"댄장요?"(으~씨, 우리 발음이 그렇게 들렸나 보다...-.-..)
"네에, 순대 찍어 묵구로요..."
"여는 된장 없습니다. 그기 소금 있잖아요?"
..ㅡ.ㅡ...

서울 사람들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는 거였다.
우리는 된장(엄밀하게 말하면 막장)에 찍어 먹었는데....

부경방에 올리신 월유님의 뒷풀이 먹거리들을 보니,
불현듯 그 옛날의 돼지국밥이 그리워진다.

지금도 가끔 부산을 가서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일부러라도 부산대학교 앞을 찾아 돼지국밥집을 들린다.
지금은 3,000원씩 하는데,
그 옛날, 친구들이 모여 해장하러 아침밥 먹으러 가서는
각자 돼지국밥 하나에 소주를 1병씩이나 비우던 그때의 추억은 못 살리지만
그래도 땀 흘리며 비우는 돼지국밥 한 그릇은 여전히 '추억'으로 존재한다.



200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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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순이 2007-09-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대 앞 국밥집도 괜찮지만 남산동 새벽 시장 근처에 괜찮은 국밥집이 있습니다. 24시간 영업이라 가끔 새벽에 가기도 하는데 부대 앞 못지 않은 맛입니다~ 한 그릇 사죠~^^

내오랜꿈 2007-09-19 20:18   좋아요 0 | URL
'못지 않다'? 우리 말은 참 비교급이 덜 발전한 것 같아. 덜 발전했다기보다는 일상 생활에 덜 활용된다고 해야 하나? '못지 않다'라면 '나쁘지 않다'는 것이고, 영어식 표현으로는 'not better'인데, 좋은 말로 알고 있어.

그런데 우리 생활에 있어 '못지 않다'고 하면 '그럭저럭 먹어줄 만하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표현 아닌가? 내가 우리 말 이해에 문제가 있는건가? 전문가의 견해를 한 번 듣고 싶다.

그리고, 한 그릇 먹으로 갈테니 여기서 부산 갔다 오는 차비까지 준비하고 있기 바란다!

점순이 2007-09-20 17:46   좋아요 0 | URL
'못지 않다'는 못하지 않다는 뜻이니까 최소한 같거나 낫다는 뜻이겠죠.
not better과는 의미가 반대같은데.. 오늘 새벽에 수업 듣는 애 중 2명이 생일이래서 그 집 가서 국밥 먹고 헤어졌는데, 역시 맛 있더이다~ 순대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이던데 또한 일품~(비싸서 몇 점 못 먹었지만..^^;) 이름은 금문돼지국밥~ 내려오는 길이 있으면 한 그릇 대접한단 뜻인데, 차비까지 대라는 어거지를 쓰시다니.. 서울살이 꽤나 팍팍한가 보네요.. 빨리 귀농하소서~^^

내오랜꿈 2007-09-20 19:51   좋아요 0 | URL
뭔, 억지? 살 거면 화끈하게 사라는 거지...

근데, 그게 왜 'bad'가 아니라 'better'로 되어 있지?

antitheme 2007-09-19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대학교 앞 비봉식당의 돼지국밥이 생각나네요. 거기에 부산식 막장에 찍어먹는 순대.
비가 와서인지 더 그립습니다.
제가 있는 남대문 주변 어디서 돼지국밥집 간판은 봤던 것 같은데...

내오랜꿈 2007-09-19 20:20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다른 인터넷 매체에 올렸더랬는데, 몇 가지 반응들이 오더군요. 서울 어디 어디에 돼지국밥집이 생겼다,는 류의 댓글들 말입니다. 가장 신빙성 있는 제보로는 강남 역삼동 먹자골목 뒤편으로 하나 생겼다면서 전화전호까지 남기더군요. 실제 확인은 못해 봤습니다.

아사히 2007-09-2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난 토요일 비가 내리는 출출한 늦은 저녁시간 밥을 먹고 들어갈까라는 남편말에 모두 동의하고 그럼 뭘 먹지? 돼지 국밥 먹을까 돈까스 먹을까? 딸과 나, 남편은 돼지 국밥, 아들은 돈까스. 하나로 통일 해야 하는데 갑자기 아들이 고집을 피운다. 다수결로 해도 돼지국밥이고, 누나와 가위바위보에서도 진 주제에 아들은 눈물로 고집을 피운다. 돈까스라는 단어를 꺼낸 남편이 미워졌다.
진짜 그런날에 돈까스 먹기 싫은데.
거금도에서 모언니가 말했던 부모의 권력 행사를 떠올리며 그래 돈까스 먹고 싶은 아이들의 입장을 백번 고려해도 난 그 순간 돈까스 먹기가 싫었다.
결국 돈까스 집앞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돈까스 하나 포장해서 돼지 국밥집에 가서 우린 돼지국밥 먹는다. ㅋㅋㅋ

내오랜꿈 2007-09-20 13:21   좋아요 0 | URL
짜~~식, 꽤 고집 있네.
누구 닮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