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중심 - 미완의 시학
김정란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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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중심/미완의 시학/김정란 비평집/최측의농간/시인의 문학 비평~~

 

 

 

 

 

 

 

시인으로 태어났고 시인으로 살았고 시인으로 생을 마감할 저자의 문학비평이란 어떤 걸까. 시를 잘 읽기 위해 비평을 했다는데, 시인의 문학 비평이란 이런 것이구나싶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시와 소설들이 난해하게 파헤쳐져 있지만 그 속에서 텍스트를 해부하는 노력은 축제의 현장 같다. 시를 해부하고 소설을 해부하는 그 노력들이 금기와 억압에서 자유롭게 날고 있다.

 

 

 

 

<비어있는 중심, 미완의 시학>에는 한국의 여성시인들도 있고. 이성복의 시 세계도 있고, 지성과 광기 사이에 있는 김승희의 시세계도 있다. 오규원의 시 읽기, 양선희의 시집, 허순위의 시집도 있고, 박용하의 시집도 있다. 게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등 소설도 있어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시어의 잔치, 언어의 잔치를 즐기게 된다. 언어의 잔치 너머의 시세계를 보게 된다.

 

 

 

<남해 금산>,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통해 이성복의 시세계를 보면 상처의 소유에서 상처의 초월적 극복의 의미로 와 닿는다. 80년대를 살았던 시인의 음산함과 비열함, 용렬함이 울부짖으며 토해낸 시어들이기에 시대의 아픔을 빼어난 시어로 승화시켰다.

 

그해 겨울이 지나가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불임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 <1959년>중에서

 

이성복의 시가 <1959년>이지만 '1979'년으로 고쳐읽는다. 그런 아픔을 알고 있기에 어두운 시절을 1959년으로 그렇게 표현했지 않을까. 또한 아성복의 시를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깊은 병에 걸렸는 지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깊이 병들어서 자신이 병 든 사실조차 모를 만큼 일까.  

 

아무도 그날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날> 중에서

 

 

 

 

 

 

 

 

 

 

김승희의 시세계를 봐도 시어의 아름다움에 갇히지 않고 내면의 페드라를 울부짖는다. 시인을 통해 한 세계를 알고 소설가를 통해 또 한 세계를 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시를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은 생긴 것 같고 시인들의 시를 자꾸 들춰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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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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