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덤불에서도 꽃은 핀다 - 남경필의 고백
남경필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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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덤불에서도 꽃은 핀다/남경필/여당에서 야당으로

 

 

 

 

남경필 경기도 지사를 몰랐다. 그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정치 풍파를 겪었는 지를.

금수저, 국회의원 5선, 경기도지사인 그를 꽃길에서 가시밭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가시밭길은 그에게 무엇일까.

 

 

남경필은 지금 기도와 명상, 작은 기록들을 더해 세상에 내옿았다. 담담하게 인간 남경필로 들어서는 글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태어났지만 정신적 고향은 수원이다. 어린 시절 수원에서 자랐던 그는

초등학생  고학년 무렵에 서울로 전학했다. 전학생이 되어서는  어릴 적의 수원을 잊지 못했다.

 

 

그는 1989년에 결혼했는데, 딩시 그녀는 이화여대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아버님의  이른 결혼 소식에 일찍 결혼 했고 결혼후 6개월 내에 돌아가셨다, 1989년 결혼했으니 25년을 부부로 산 셈이다. 그리고 2014년에 헤어졌으니 이젠 사나 죽으나 다른 길이다. 25년을 부부로 살았으면서 왜 헤어졌을까. 그건 두 부부만의 일이 있지 않을까. 당시 유치원 사업을 거쳐 보석사업을 했는데 뭔가 구린 구석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집사람의 사업에 전부 사찰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일 이후에 몸무게가 30kg정도로 안 좋아진 이후엔 정치인의 아내도 싫다며 이혼 쪽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이번 도지사  결과를  본 후에 떨어지면 함께 하는 것이고 붙으면 이혼을 하자고 했다. 결과는 당선이었으니 이혼이었다. 그리고 이미 협의한 대로 변호사를 선임했고 프로세서를 진행시켰다. 원래 계획대로 진행시켰다. 양가의 어른의 반대가 있었지만 어렵게 우리의 이혼을 받아들이셨다.

 

그 이후엔 자녀들과 함께 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큰 애는 육사단 포병부대 최전방에서 다녔는데.  언론 보도에 아이의 폭행과 성추행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비록 본인이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부대원의 질못은 심각하지 않기에 탄원서를 자발적으로 제출한다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지금은 피해자를 비럿한 부대원들과 잘 지내고 있다.부부의 연과 자식의 연은   이렇게 길고긴 연인가 보다. 이후로 아들은 휴학하고 이프리카 모로코로 가서 봉사활동을 했고 2년의 집행유예가 끝나자 한국으로 돌아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경필의 삶을 보면 금수저라는 소리가 절로 난다. 하지만 금수저도 그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당에서 야당이 된 것도 그는 박근혜의 정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근혜의 잘못을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는 부끄럽지않은 삶을 위해  광야로 나와 새 땅을 연 것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으니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봐야 한다. 

금수저 출신의 보수개혁당인 남경필의 새로운 세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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