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고향 -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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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고향/임종업/소동/한국 화가들이 사랑한 장소에서 피어난 예술

 

 

 

 

사진이나 그림 속 장소를 찾는 여행 이야기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작가와 작품,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와 시대적 배경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30년 동안 신문편집과 책, 영화, 미술 분야를 담당하면서 발로 뛰고 인터뷰로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작가와 작품,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심오하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남달라 보인다.

 

작가와 그림 속 장소는 작가에겐 지리적 장소 그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던 장소는 화가가 뮤즈를 만나던 곳일 테니까.   작가적 본능으로 자꾸만 찾게 된 곳에서  예술적 끌림이 있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영감을 얻고 예술혼을 피웠을 테니까.

 

 

책 제목이 작품의 고향이지만 책 내용은 작품의 공간과 시간적 배경, 작가의 일생, 예술적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기에 무척 흥미롭다. 

 

불국사와 박대성, 인왕산과 겸재 정선, 지리산과 오윤, 진도와 허씨 삼대, 제주와 강요배, 영월과 서용선, 태백과 황재형, 골목과 김기찬, 임진강과 송창, 오지리와 이종구, 통영과 전혁림, 소나무와 김경인, 이길래 등 예술가가 사랑했던 장소나 사물의 이야기엔 예술과 역사, 문화가 진하게 배여 있어서 낯선 작가의 이야기지만 빨려들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돔 형의 천장을 가진 석굴암이 발견되고 설굴암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수리되는 과정에서 해체와 복원된 이야기는 일본의 식민사관과도 연계되어 있기에 의미있는 이야기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터무니없는 일본 고대사를 연결하는 고리로 석굴암을 이용하려 했으니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 고대사에 열을 올리고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한 이유도 한국 고대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시키고자 함과 맞닿아 있기에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다.

 

 

서울역 뒤 중림동의 골목안 풍경을 담은 김기찬의 작품들은 어릴 적 보 풍경이나 영세민의 삶이 녹아있기에 역사이자 지금도 진행형의 현실 같아서 묵직함을 준다. 작가가 사랑했던 중림동 서민들의 삶과 풍경, 중림동의 패거리 싸움 등이 추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지만 어디에선가 옛 이야기를 하는 사랑방이 있지 않을까.  과거사의 한 풍경이면서도 현재사의 한 풍경이기도 하기에 어떤 이에게는 과거일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현실일 것이기에 빈부차를 느끼게 하지 않을까. 

 

 

충남 서산 대산읍 오지리의 작가 이종구는 쌀 포대에 그림을 그렸다. 정부의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통일벼 정책 등으로 세월을 보냈던 농민들의 억울함이 담겨 있어 가슴 저리는 그림이다.

 

 

코발트 블루를 사랑했던 전혁림 작가의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은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던 그림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통영 달아공원에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는 이야기에 새삼 고인이 그리워진다. 피카소와 경쟁하고 싶었던 화가의 그림이 한국인들에겐 피카소의 작품들보다 더 가슴으로 와닿는 우리의 추상화일 것이다.  통영 앞바다의  코발트 빛 바다와 산, 건물에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숨결이 담겨 있기에.   

 

 

 

 

 

 

 

 

 

 

 

저자는 반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렸던 사이프러스가 있는 마을, 고흐가 잠시 거주하며 그림을 그렸던 아를의 거리, 마지막을 보낸 정신병원이 있던 오베르 쉬즈 와르를 직접 찾아서 고흐의 그림 속 풍경들을 현실로 확인하는 순간의 느낌이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  한국에서도 조명을 받지 못한 작가와 작품, 장소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호기심과 애정의 결과물이기에 읽을수록 저자의 작가와 장소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그림을 그린 장소를 알고 찾아가는 일은 작가의 예술적 끌림을 간접체험하는 것이리라. 그 곳에서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작가적 영감을 조금이라도 체험하게 될것이다.

불국사와 박대성, 인왕산과 겸재 정선, 지리산과 오윤, 진도와 허씨 삼대, 제주와 강요배, 영월과 서용선, 태백과 황재형, 골목과 김기찬, 임진강과 송창, 오지리와 이종구, 통영과 전혁림, 소나무와 김경인, 이길래 등 모든 이야기에서 예술과 역사의 향기가 짙게 흐른다. 작품의 고향은  그림의 현장이자 역사의 현장, 과거 속 작가의 예술혼이 머물렀던 곳, 예술적 끌림과 안식을 주던 곳, 뮤즈를 만나던 곳이기에  예술과 역사를 만나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기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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