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시전집/이연주/최측의농간/시인은 갔어도 시는 살아있네~

이연주 시전집 - 1953-1992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11월

이연주 시전집/이연주/최측의농간/시인은 갔어도 시는 살아있네~

시인 이연주(1953~1992)

시인은 1991년 마흔에 등단한 뒤 촉망받는 여류 시인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자살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몸과 마음이 녹아든 삶이 죽음보다 더 힘 들었을까. 죽음 뒤의 또다른 멋진 세상을 본 것일까. 가녀린 꽃봉오리를 채  활짝 피우지 못한 시인이 남긴 시엔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분위기와 삶의 헛헛함이 묻어난다.

폐 속에 포도알 같은 허파꽈리들이 수없이 많답니다.

자극을 받거나 날씨가 나쁠 땐 기침이 나기도 하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단순한지

둥근 뼈의 집을 헤엄쳐다니는 안개의 숨소리,

핏줄들은 힘차게 팔딱거린다.

소금에 절은 바람도 거기선

비틀린 사랑을 배우며 살아온 어느 골방의 불규칙적인 안식도

거기 도착하면 흐릿해진 알전구를 바꿔 끼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인생은 여러 번 바뀌어도 사람의 고향이 몸 속에 있었다니......

-<사람의 고향> 일부

에미의 생식낭에서 부화하고 나와

허망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단순한 종교적인 삶

절망은 유물을 남기지 않는다, 하찮은 거미 한 마리의 주검엔

그래서인지

그놈에게선 부패의 냄새가 없다

나는 두루마리화장지를 조금 풀었다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내듯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게 끝이다

살뫄 죽음 사이가 실은

이토록 쉽고 간단한 것을......

-<긴다리거미의 주건> 일부

삶과 죽음 사이, 공간과 시간 사이, 집과 길 사이, 점과 선, 면 사이, 인간과 환경 사이, 배신과 신뢰 사이, 치욕과 위풍당당 사이, 행복과 불행 사이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시인의 시들이기에 새삼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정제되지 않은 시인의 시의 주제나 소재들은 계절의 변화처럼, 인간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하다. 때로는 철학자의 시였다가 때로는 자연주의자의 시가 된다. 때로는  페미니스트의 시였다가 때로는 성자의 시가 된다. 때로는  생태학자의 시였다가 때로는 허무주의자의 시가 된다. 그래서 시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시인의 시들은 대개 어둡고 쓸쓸하고 절망 가득한 세계, 소외되고 나약한 매음녀, 우수 가득한 페미니스트적인 시선이 가득하다. 배신의 상징 가룟 유다, 구원을 향한 속죄제물, 절망 속에서 더욱 애절하게  희망의 빛을 갈구하는 시들이다. 현실을 담은 시가 더욱 살아서 꿈틀대곤 한다. 시인은 죽었으나 시인의 시는 살아 숨쉬는 시전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