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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산월기/나카지마 아쓰시/60년간 일본 교과서에 실린 국민소설이라니...
한 권을 통해 여러 단편 소설들을 읽는 재미가 큰 책이다. 중국 고담을 엮은 산월기, 이릉, 영허, 우인, 호빙 등이 있어서 중국의 옛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었고.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서 산 경험을 담은 범 사냥, 순사가 있는 풍경, 풀장 옆에서 등 에서는 그 시절의 풍경이나 문물, 사상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더불어 식민지 조선에 대한 비참함에 대한 작가의 공감도 볼 수 있었다.
「산월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33세로 요절한 일본 국민작가 나카지마 아쓰시의 단편 히트 작이다. 이 소설은 60년 이상 일본 교과서에 실린 국민소설이다. 산월기는 당 현종 때 농서 사람 이징이 주인공인데. 스스로의 고집과 아집에 무너진 재능있는 한 남자의 몰락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전설이나 괴담 같아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주인공인 이징은 박학다식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내다. 그는 진사시에 급제하고 하위직인 강남위로 임명받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해 천한 직업에 안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나머지 고향에 칩거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하급 관리로 속물 상관들 비위를 맞추며 사는 것보다는 마음 편하게 시를 쓰고 시로써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다. 문제는 시를 쓰는 일이 만만치 않았고 시를 쓰느라 빈곤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갔다는 것이다. 그러다 그는 처자식을 버리고 홀로 숲으로 들어가 야수가 되었고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되었다. 어느날 호랑이가 된 이징이 숲을 지나가던 친구를 알아보고 친구를 불렀다. 그리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시를 세상에 남겨달라고 부탁한 뒤 숲으로 들어갔고 울부짖었다. 세상에나. 남보다 뛰어난 자신의 재능에 취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사람은 얼마나 우둔한가. 이릉 같은 사람이 지금도 존재할까. 약간의 재능에 취해, 자만심에 취해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세월을 허비하는 자의 모습이 지금도 있지 않을까.
「이릉」은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인데. 사마천과 이릉의 입장을 잘 보여주면서 흥미롭게 흐른다. 한무제 때 기도위 이릉은 흉노와 맞서 싸우다 흉노의 포로가 된다. 이에 대해 한무제는 진노했지만 태사령이었던 사마천은 작은 군대의 이릉이 최선을 다해 싸웠다며 그리 친하지도 않던 이릉을 변호한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나대던 사마천은 이러한 자신의 무모한 변호 때문에 궁형에 처해졌고 생식기를 잘렸다. 사마천은 궁형으로 인해 평생을 육체의 고통에 시달렸고 수치심에 미치기도 했다. 궁형을 받던 굴욕의 순간이 기억나거나 악몽을 꾸고 난 뒤에도 그는 부친의 유언을 생각했고 중국의 사서편찬 작업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후 다시 복권이 되고 이전보다 더 큰 벼슬을 하며 천자의 총애를 받았지만 자신의 존재 이유엔 역사서에 대한 책임감과 기쁨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과업을 도우며 천하를 다니며 역사 기록들을 모으고 확인했던 사마천은 육신이 준 고통으로 미쳐가면서도 사기를 완성했다니. 아버지의 유언, 역사서에 대한 책임감, 사기 편찬의 즐거움이 그의 삶을 이끌어갔다니. 무언가에 몰두한 삶은 소소한 고통이나 절망도 이겨내게 하는구나 싶다.
식민지 시대의 조선 풍경을 담은 범 사냥, 순사가 있는 스케치, 풀장 옆에서 등 3 편의 글은 작가가 교사이던 부친을 따라 조선에서 학교를 다니며 본 이야기를 엮은 것인데. 특히 한국인 친구 조대환에 얽힌 이야기인 「범 사냥」에서는 조선인 친구 조대환의 분노와 고민에 대해 옆에서 보고 느낀 소감이 담겨 있다. 만약 저자가 해방 후까지 살아서 한국을 보고 느꼈다면 또 어떤 이야기를 알까 궁금하다. 양심적인 작가 같아서 말이다.
요절한 천재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 속에는 옛 고전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소설도 있고 자신이 살았던 일제강점기의 조선의 삶은 비참하면서도 정신은 비굴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의 모습도 있다. 12편의 단편소설 모두 깨달음과 교훈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