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들고 떠나는 시간여행/엄시연/팜파스/오래된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역사문화 스케치여행
오래된 물건이나 건물을 볼 때마다 세월의 길이를 생각하면 숙연해지곤 하는데요. 바람 잘날 없었던 한반도의 역사를 무사히 통과했구나 싶어서 애틋함까지 더한답니다.
스케치북 들고 떠나는 시간여행!
이 책은 오래된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역사문화 탐방을 담은 책인데요. 오래된 장소에 대한 사진도 있지만 대부분 스케치북 위에 그렸기에 감성이 넘치는 여행스케치북 같습니다.
집 떠나는 순간, 하루의 여행은 시작되고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나의 세계는 확장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렇게 스케치북을 들고 오래된 장소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은 손끝으로 과거를 그려보는 순간의 연속일 겁니다. 그렇기에 평소 가보고 싶었던 역사적 장소를 이렇게 스케치북을 들고 떠나는 시간여행은 그저 스치는 여행보다 더욱 깊은 문화 이해와 역사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선물할 겁니다.
혜화동에 자리한 학림다방의 역사엔 많은 문학인과 예술인, 민주주의 학생운동가들이 함께 했군요. ' 서울대 문리대 제 25 강의실' '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서울대 학생들이 강의실 다음으로 많이 찾았던 학림다방은 문리대의 옛 축제인 '학림제'에서 따온 이름이라는군요. 1956년 때부터 쌓인 시간만큼 학림다방의 물건이나 건물도 옛날 물건 그대로이기에 빛바래져 있다는데요. 그 시절을 추억하고픈 어른들에겐 멋진 시간여행을 선물할 장소일 겁니다. 혁명과 쿠데타, 학림사건, 천재 여류작가 전혜린, 김지하, 김민기, 김승옥, 이청준, 천상병 등 역사와 문화, 예술, 혁명을 논하던 장소가 아직도 그대로라니, 그곳에서 즐기는 찬 한잔의 맛은 특별할 듯 합니다.
학림다방과 전혜린의 문학과 철학, 명보다실과 전태일의 죽음, 권진규 아틀리에와 천재 조각가 권진규의 삶, 통인동 이상의 집과 이상의 삶과 시, 성북동 수연산방과 월북작가 이태준의 일생과 문학 사랑 등을 읽으며 문학과 예술, 노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유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특히 전태일의 이야기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답니다. 아직도 이 땅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수많은 전태일이 있기에 근로기준법, 근로 환경, 임금 격차, 비정규직에 대한 제대로 된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0년 정도된 오랜 가게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인 공덕동 성우 이발소, 소공로의 해창 양복점, 고서점계의 전설이 된 한국 최초의 서점 인사동 통문관, 음악인들의 문화유적지 LP판 가득한 회현동 리빙사, 한국 곡예의 역사인 대부도 동춘 서커스, 수제화의 명장을 만날 수 있는 을지로 송림 수제화, 칼로 세계 제일을 꿈꾸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한밭 대장간, 장충동 태극당, 인사동 구하산방, 즉석과자 전문점 내자동 내자땅콩 등 몰랐던 우리 장인들의 이야기엔 가문의 유산과 가족의 힘, 명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여행이었어요.
도심 속 반전의 장소인 딜큐샤, 길상사, 경성방직은 직접 가보고 싶은 장소입니다, 역사도 건물의 외관도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웠거든요.
저자의 눈에 담긴 오래된 장소에 대한 스케치엔 건물의 역사, 그곳을 스치고 지나갔던 문인예술가, 장인, 혁명가, 경영인의 열정과 피와 땀이 묻어있고 그들의 고고한 정신이 서려 있기에 엄숙하기까지 했는데요. 책을 읽으며 몰랐던 우리 문화의 유산들을 알 수 있었던 매력적인 시간이었어요. 오래된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역사문화 스케치 탐방엔 과거를 손끝으로 그려보기에 몹시 매력적인데요. 비록 책을 통한 간접 여행이지만 나의 세계가 조금은 확장된 것 같습니다. 나도 스케치 연습을 해서 저자처럼 스케치북을 들고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