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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8월
평점 :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허만하/최측의농간/시적 감성이 빛나는 보석 같은 에세이~~
1932년에 태어난 병리학 박사 허만화의 수필을 읽으며 최측의농간 출판사의 재출간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어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산업발전의 격동기를 함께 한 의사의 수필에는 문학적 감성과 인문학적 지식이 맛깔나게 어루러져 깊은 향미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시를 쓰는 과정에 쓴 에세이들을 모은 30년의 결과물들을 다듬고 추린 저자의 정성도 느낄 수 있었고 최측의농간이 16년 만에 재발간한 연유도 감지할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문학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이의 문학과 전문 문인들의 글이 깊이에서 다르다는 오해와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글들. 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대한 일화들, 이중섭의 은지화를 직접 본 감상, 이인성의 경주 그림을 보며 직접 그림 그렸던 장소를 찾던 여행 일화, 동서양의 문학과 고전을 아우르는 깊은 통찰과 사유 등 모든 문장들이 보석처럼 빛나기에 읽으며 음미하기를 반복하고 있답니다.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는 제목처럼 의사이지만 시인이기도 했던 저자에겐 십리 밖 풍경이 주는 설렘조차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시처럼 그려놓았기에 오랜만에 문장 하나하나에 매료되었답니다.
시의 근거는 체험이다. 고유한 그리고 단 한 번뿐인 그리고 가멸적인 목숨의 가장 개성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것이다. 다 같은 경험 소재라도 경험하는 사람의 정신의 간섭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가장 특수한 것을 통해 가장 일반적인 것에 이르는 길을 시는 걷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과학의 방법론으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시의 형태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18쪽
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추석일 수도 있고 먼 고향일 수도 있고 또 밀물 썰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허상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인 인식은 가르쳐주고 있다.
(중략)
과학적 세계관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저 가을 벌레 소리도 어떤 값의 차장으로 환원시켰다. 달밤을 날아가는 목이 긴 청새의 비상을 역학이란 방정식으로 분해해버렸다. 숨져가는 동생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나를 무수한 분자와 원자로 해체시켰다. -229쪽
과학과 문학의 경계에서 현실과 이상을 분해하고 사유를 했던 무수한 시간들에 대한 단상, 세잔이 그린 고향 그림, 이인성의 경주 그림, 신라 기와에서 읽어낸 명주의 길을 오간 희랍 흔적들, 하루살이에 대한 동서양의 놀랍도록 공통된 견해, 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일상 등이 명문장으로 다듬어졌기에 소중하게 다루며 읽은 책입니다.
특히 풍경화는 시적 특질을 갖고 있다는 말과 살면서 마음에 담은 풍경이 시인으로, 화가로 자라게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저자 역시 문학, 예술, 여행 등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모든 것을 매력적인 풍경화로 그려냈기에 더욱 보고또보게 되는 에세이였어요. 이렇게 좋은 문장을 만나게 한 저자와 출판사에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애장도서 목록을 올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