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 여림 유고 전집
여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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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여림 유고 전집/최측의농간/시인의 마음이 느껴져 먹먹해지고...

 

 

 

죽음은 아픔이고 슬픔입니다. 하지만 죽은 시인을 기리는 유고집은 기쁨과 감사입니다. 이른 죽음으로 꽃을 살짝 피우다만 젊은 시인의 시들을 알알이 캐내어 이렇게 유고 전집으로 만들었기에 말입니다. 이런 유고 전집이 못다 핀 시인이나 유가족에게도 기쁨이겠지만 몰랐던 시인과 시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기쁨입니다. 

 

 

 

대학 중퇴의 학력은 고졸이라는 출판사 사장과의 면접에서 가벼운 실랑이를 벌인 뒤 방송국 스크립터로 일하는 대학 동창을 만나 늦도록 술추렴을 하다 귀가한 다음날 나는 책상 위에 커다랗게 대체로 사는 건 싫다라고 써붙여 두었었다. 며칠 후 퇴근길에 소주 두 병을 사들고 들른 녀석은 대강 대강 사는 것이 싫은 것이냐 사는 것이 대체로 싫은 것이냐며 농짓거리처럼 슬몃 물었다 뜬금없는 그 말에 별 수 없이 객적게 웃어넘기긴 했어도 자리가 파한 후 막잔을 비우기까지 나는 퍽 막막했었다. 어쩌면 나는 그리 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이하 생략)

- 57쪽「대체로 사는 건 싫다」중에서

 

 

 

시인에게도 유년기의 경험이 시의 매력 속으로 발려 들게 했군요. 생활에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자신을 키웠던 누이가 취직을 해서 서울로 떠났을 때의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그런 누이가 남긴 공책을 다락방에서 찾았을 때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었겠지요. 그 공책에  빽빽히 적힌 시로 인해 서룰로 간 누이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겠지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시를 쓰도 싶다는 열망을 품게 했겠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었을 대의 현실의 삶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힘들게 했기에 가슴 먹먹해진 부분입니다. 문학 공부를 위해 서울예전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다할 수 없었던 시인은 대학 중퇴의 설움을 시나 산문으로 남겼는데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문학이란 애초에 어려운 건가요? 그래도 그런 와중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니. 시는 시인의 숙명이었나 봅니다.

 

 

 

 

 

 

 

 

 

오래 전에 덮어 둔 사랑시집을 꺼내 읽으려다

바래진 표지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먼지를 보았습니다.

시집 안에 버려져 있던 사랑의 낱말들이 막무가내로

내 가슴을 난도질하고 느낌표나 물음표가 사랑 안에는

없음을 알았습니다.

사랑 안에 놓여진 징검다리를 보았습니다. 한 발을 잘못 디디면

온몸이 물에 젖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한 번 젖은 몸은 쉬이 마르지를 않고 오랜 시일 사막을

헤매 다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하 생략)

 - 95쪽 「시집, 그 속의 사막」중에서

 

 

 

시를 사랑했지만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시에  온전한 시간을 내줄 수 없었던 시인이었는데요. 그런 시인에게 시는  한 줄기 위로이자 희망이었을 겁니다. 일상을 시로 노래하고 스치는 생각을 시로 읊은 시인의 시를 보며 볼수록 시인의 이른 죽음이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더불어 멋진 시를  세상에 알려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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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2 15: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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