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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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황석영/인생의 황혼이나 하루의 황혼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

 

 

 

 

고교 재학 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설가 황석영의 작품들은 읽을 때마다 묵직한 울림을 준다. 『개밥바라기별』,『바리데기』,『여울물 소리』,『모랫말 아이들』,『낯익은 세상』,『강남몽』,『오래된 정원』,『삼포 가는 길』등 그의 소설 속에는 주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잔잔하고 세심하게 그리면서도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기에 깊은 사유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번에는 인생의 황혼에 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와 그의 과거의 인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십대 후반의 88만원 세대의 여자와 스치는 인연의 이야기다. 여전히 과거와 현재의 한국인의 삶을 그리기에 어딘가에서 볼 수 있는 이웃의 풍경들이다.

 

 

 

 

 해질 무렵 하늘을 보고 있으면 노을이 주는 변화무쌍한 빛깔이 몹시 곱다. 붉은 기운이 가득한 아침의 노을과는 다르게 주황색이 가득한 저녁의  노을은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는 편안한  아름다움이 있다. 더불어 기운을 다한 듯한 바랜 빛깔이 주는 아쉬움이 있고,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몇 분 전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서면 어떤 느낌일까? 곱상한 노을빛처럼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을까? 아니면 후회와 회한이 가득한 아쉬움과 그리움만 가득할까? 소설을 통해 대리체험한 황혼에는 성공한 남자의 그림자엔 나즈막한 회한이 깔려있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은 명문대를 나오고 건축계에서 성공한 겉보기엔 남부럽지 않은 60대의 가장과 이십 후반이 되도록 생계가 힘들지만 꿈을 쫓는 힘겨운 여자다. 서로 다른 환경이기에 전혀 만날 일이 없는 두 사람이 인연에 인연이 꼬리를 물면서 스치는 인연이 되어가는 과정이 우리의 일상 같다. 옷깃도 스치면 인연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60년을 살아온 건축가 박민우의 삶과 29년을 산 연극연출가 정우희의 삶이 주변 인연들과 서로 교차하면서 대비되는 풍경도 해질 무렵에 거리를 스치는 사람들 모습과 흡사하다. 

 

박민우의 이야기 속에는 어린 시절 한동네 살던 탄고구마 윤병구,  대학 선배 김기영, 서울에서 같은  달동네에  옛사랑 차순아, 차순아를 둘러싼 동네 아이들의 사랑싸움, 명문대를 다니게 되고 유학과 결혼, 유명 건축가의 길을 살아온 박민우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개발 붐을 타고 온 세상의 정겨운 고향을 사라지게 한 주범인 건축가들의 이야기도 있다.

 

 

정우희는 스물아홉 살이 되도록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는 88만원 세대다.  그래도 그녀는 편의점 알바, 음식점 알바 등 알바 인생이지만 예술대학을 나와 연극연출가의 꿈으로 살아간다.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고 연극연출가의 꿈을 꾸기에 그녀에게 사랑은 사치인 셈이다. 그녀는 평소 사촌오빠처럼 살갑게 대해주던  김민우의 죽음을 계기로 김민우의 어머니 차순아의 삶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차순아의 죽음으로 우희는 어린 시절의 옛 사랑이었던 박민우를 찾아 차순아가 못다한 만남을 시도하고자 한다.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나?

 

황혼이 되면 누구나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한을 갖게 될까? 첫사랑을 못잊은 여자와 사느라 바빠 첫사랑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남자를 보며 서로 엇갈린 인생의 회한을 보게 된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들이 현실에서는 일상적이기에 작가가 던진 물음을 나도 다시 던져보게 된다.

 

 

석양을 바라보며 필름을 돌려 과거를 회상하는 인생의 저녁 무렵 풍경이다. 회한과 추억 가득한 이야기, 황혼의 나이대에 공감 가득한 소소한 풍경들이다.   등장 인물 하나하나가 마치 해질녘의 거리를 스치는 수많은 인파들을 보는 듯한 잔잔한 풍경화 같다. 인생의 황혼이나 하루의 황혼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각자의 애달픈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누군가에겐 추억을 선물할 것이고, 누군가에겐 위로를 선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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