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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병 환자들
브라이언 딜런 지음, 이문희 옮김 / 작가정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상상병 환자들/창조적 삶에 대한 압박이 위인들을 상상병으로 이끌었을까?
세계적인 위인들 중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불안감으로 고통스러워했던 이들이 이토록 많은 줄 몰랐다. 세계적인 업적을 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한 부담이 정신과 육체를 괴롭혔을까?
이들을 괴롭힌 상상병은 심기증이라고도 하는데, 상상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과 불안감에 시달리기에 뚜렷한 병명은 없다고 한다. 상상병은 때때로 감각이 과장되기도 하거나 광적인 집착을 불러일으키기에 폐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정신병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해서 대개의 경우, 의사들로부터 외면받았던 병이다.
정신적 고통이 육체로 전이된 상상병은 의사들에겐 꾀병으로 보이기도 했기에 상상병을 앓던 위인들은 자신의 고통을 외부에 알리려 나름 노력도 했다. 치유를 위해 자신만의 치료법을 가졌을 정도로 상상병 치료에 애썼지만 상상병은 죽을 때까지 이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세상을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위인들이 육체와 정신의 통증으로 이토록 괴로워했다니, 최고의 경지에 오른 댓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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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병으로 시달렸던 위인들을 보면 분야를 가지리 않는다.
제임스 보즈웰은 계획을 세우고 고치는 일에 집착한 우울증 환자였고, 샬럿 브론테는 자기 몸에 병이 있다고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한 신경증 환자였다. 찰스 다윈은 헛배부름을 호소하며 혼자있고 싶어한 소화불량증 환자였고, 간호사로서 희생과 헌신에 중독된 프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신경쇠약증 환자였다. 육체의 고통이 예술의 일부라 믿었던 앨리스 제임스는 감각과민증 환자였고, 여자가 되고 싶다던 다니엘 파울슈레버는 망상증 환자였다. 약초 연기로 채워진 방의 주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천식환자였고, 손가락을 다칠까 봐 악수까지 거부한 글렌 굴드는 강박증 환자였다. 앤디 워홀은 딸기코 등으로 인해 외모 콤풀렉스에 시달렸고,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고 싶었던 나약한 겁쟁이였다.
다윈의 헛배부름 증세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최근에 과학서적을 읽으며 다윈의 이야기를 거듭 접했기에 더욱 애틋하다.
다윈이 비글호를 탄 행운으로 갈라파고스 군도를 가게됐고, 그곳에서 관찰한 기록들로 결국 진화론을 탄생시켰지만 여행 도중 내내 소화불량이나 헛배부름으로 고생했다니, 더구나 현지 와인을 마시고 배탈이 나서 한 달이나 고생했다니, 만성 통증과 소화불량을 앓으면서도 관찰이나 연구를 할 때가 가장 평온했다니, 진화론은 헛배부름의 고통을 견디며 낳은 산물인 셈이다.
그가 진화론이라는 위업을 이룩했으나 육체는 고통의 나날이었고, 입술과 손 등 신체 곳곳에서 나타나는 알 수 없는 통증들에 시달렸기에 급기야 연구실 옆의 비밀의 공간에는 물치료 장치를 두었다고 하니, 그의 고통이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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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증거는 없지만 많은 위인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보냈다고 하니, 새삼 그들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남들보다 예민해서 일까? 이들은 고요한 밤에 머릿속에 끼어드는 심장박동 소리를 듣기도 하고, 음식물이 연동운동을 하며 식도를 내려가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현기증이나 피로감 등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 힘든 소리까지 듣기에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치부되기도 한다니,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통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심기증 치유에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 의심에 시달리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하니, 역시 상상병은 연구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이 준 병이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예술가나 사상가들이 알았던 상상병은 때로는 꾀병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폐인으로 취급되기도 하고, 때로는 구제불능이라는 오인을 받게 했다니, 안쓰럽다. 세계사의 중심에 선 위인들의 심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점도 있겠지만 연구에 대한 집착과 부담이 상상병을 앓게 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