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상자 위의 소년 - 홀로코스트에서 피어난 기적
리언 레이슨 외 지음, 박성규 옮김 / 꿈결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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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무상자 위의 소년/나치 당원 오스카 쉰들러의 공장에서 살아난 소년 

 

 

 

예전에 본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기억에 없다. 대충 독일인이 나치군으로부터 유대인 직원들을 살려낸 쉰들러 이야기라는 것과 나치 휘하의 유대인 학대의 참상과 독일인 사업자의 용기에 충격과 감동을 받은 기억은 난다. 

 

 쉰들러 리스트의 최연소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엔 쉰들러가 조국 독일을 배반하며 얼마나 목숨거는 일을 했는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알 수 있었기에 영화 <쉰들러 리스트> 그 이상의 슬픔과 감동이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쉰들러 리스트 2>가 되지 않을까?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지금도 세상엔 전쟁이 존재하고, 핍박과 박해, 차별, 학살이 존재하기에 타인의 고통에 무디어진 많은 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인지시켜주지 않을까?

 

저자인 리언 레이슨(1929~2013, 본명은 레이브 레이슨)은 오스카 쉰들러의 인연으로 나치의 유대인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평화롭던 폴란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살던 아이는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함으로써 가정의 풍지박산을 경험하게 된다. 형이 나치에게 끌려가는 모습, 게슈타포에게 무기력하게 맞기만 하던 아버지의 모습, 나치에게 끌려가는 나약한 어머니의 모습을 어린 나이에 경험했고, 주변 유대인들과 함께 인간 이하의 수용소 생활을 경험했다. 그런 경험 중에도 살기 위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웠고,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을 거라는 어른들의 말을 되내며 견딜 수밖에 없었다.  

 

 

 

 

 

 

나무상자는 리언의 상징이다. 기술이랄 것도 없는 작은 소년이 쉰들러의 보호를 받으며  최악의 장소에서 목숨 부지하며 살게 한 것이 나무상자였으니까.  기술자인 아버지 덕분에 온 가족이 '쉰들러 리스트'에 올라  쉰들러 밑에서 일할 때, 그는 영양부족으로 키가 자라지 않고 사춘기를 거치지 못한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기에 나무상자 위에 올라가서 기계를 조작해야 했으니까. 

 

소년이 쉰들러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유대인들의 수차례의 포로수용소 행을 거액의 뇌물로 막아준 쉰들러가 없었더라면 소년의 기억엔 전쟁의 공포만 남지 않았을까? 

 

  

리언의 가족은 1938년 10월, 독일군의 폴란드 점령으로 유태인들은 재산을 강제로 빼앗기고, 인간 이하의 폭력과 멸시를 받으며 다윗의 별을 달고 전대미문의 유대인 격리지역으로 갔다. 많은 유대인들은 자존심과 자존감을 버려야 했고, 나치가 시키는대로 해야했다. 게슈타포가 폭력을 휘두르는대로 맞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했다. 심지어 25cm 높이의 창고 천장에 숨어지내기도 했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최고의 목표였고, 굷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전쟁이던 시절이었다.

 

앞날을 알 수 없던 그들 가족에게 오스카 쉰들러는 희망의 손을 내민 셈이다. 리언의 아버지가 쉰들러의 금고를 열어주면서 그의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게 되었으니까. 

 

 

무뢰한, 바랑둥이, 전쟁 모리배, 주정뱅이라는 별명을 달고살던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할 때 폴란드에 들어간 나치당원이자 독일인 사업가였다. 그는 다른 나치당원들처럼 유대인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은 사업가였고, 유대인들에겐 무임금을 주고 비유대계 폴란드인들에겐 저임금을 주면서 부를 늘린 독일 군납업자였다. 암거래나 에나멜 냄비와 솥 생산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던 나치당원이었던 그는 유대인들이 강제로 몰살되는 시기에 유대인 1200명을 구해냈다. 심지어 자신의 재산을 나치군들에게 찔러주고, 사교술을 발휘하면서까지 유대인들을 보호해주었다.

 

 

그 당시 히틀러는 모든 문제의 원인에 유대인들을 끌어들였다. 세계대전의 패배, 경제불황 등 모든 크고 작은 일의 원인이 유대인때문이라고 보았다. 물론 이전에도 유대인들은 차별을 받던 민족이었기에 유대인들을 인간 이하로 차별했다. 쉰들러는 그런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학살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들을 구해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물론  쉰들러 밑에서 일한다는 건 무급이었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유대인 직원들의 안전망이   되어주었다.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었지만 가끔 기계 옆에 선물을 주고 가기도 하고, 포로수용소로 향하던 직원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에게 그의 한 마디는 구원의 소리였고, 그가 내민 손은 구원의 손이었을 것이다. 소년이  만약 쉰들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소름이 돋는다.

 

리언 가족은 전쟁이 끝나고 미군 휘하의 포로수용소애서 미국에 있던 이모와 연락이 되었고, 난민신청까지 받아들여져 가족들은 미국에 정착했다. 그의 형과 누나는 이스라엘 건국에 동참하러 팔레스타인으로 떠났다. 리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면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치당원이자 유대인의 목숨을 살린 영웅이었던 쉰들러는 나치의 인종차별에 저항하며 유대인 직원들을 살려냈지만 전쟁의 종식과 함께 그도 나치당원이었기에 소박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1965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리언이 쉰들러를 만난 사진은 감동, 그 이상이다. 쉰들러는 그의 직원이었던 유대인들과 죽을 때까지 교류하며 소박하게 살았고  많은 유대인의 후원에 힘입어 그의 소원대로 시온산에 묻혔다고 한다.

 

 

《안네의 일기》를 뛰어넘는 감동 실화!

홀로코스트에서 피어난 기적!

'쉰들러 리스트' 최연소자!

 

책표지의 문구만으로도 어떤 이야기일 지 장담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가슴 뜨거워진 이야기다. 키가 작아 나무 상자 위에서 기계를 돌보았던 소년이 보고 듣고 체험한 홀로코스트 이야기가  그 어떤 홀로코스트 이야기보다 처참해서 눈물겹고, 감동적이어서 눈물겹다. 나치 휘하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영화나 책으로 많이 접했지만 이리도 슬픔과 감동을 받은 경우는 아마 처음인 듯 하다.  그건 아마도  쉰들러 리스트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었기에 더욱  가슴 먹먹해지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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