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생텍쥐페리/열린책들/어느 작은 별에서 온 그대~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어린왕자/생텍쥐페리/열린책들/어느 작은 별에서 온 그대~

 나에게 있어 별에서 온 그대의 원조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다.  몇 번을 읽어도 질리기는 커녕 여운을 남기는 별그대다.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영롱한 은유 가득한 빛나는 문장을 만나기에 언제나  새롭게 느껴질 정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에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고,  인생에 대한 긴 반성을 남기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한때는 저자가 어린아이였던 모든 어른들에게 어린이의 시선으로 읽도록 조언하기에  뜨끔하면서도 찔린다. 그래서 어린왕자에 더욱 끌리는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는 실제로 비행기 조종사의 자격을 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행기 조종사의 이야기를 어린 왕자에 담았다. 파리예술대학에서 15개월 간 했던 건축학 공부를 기반으로 동화에 직접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저자가 다재다능하면서 순수한 상상력을 지녔기에 순수한 영혼을 가진 어린 왕자를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왕자>에서는 어린이의 순수함과 어른들의 오염됨을 대조시키고,  어린이들의 유연하고 끝없는 상상력과 어른들의 편협되고 고착된 사고력을 대비시킨다.

어른이라면 거대한 보아뱀이 맹수를 삼킨 뒤 소화될 때까지 웅크리고 잠자는 모습을 보고 흡사 모자같기도 하고 커다란 탁상형 바위 같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그런 어른들의 고정된 사고를 망치로 깨라고 한다. 소화될 때까지 여섯 달 동안 잠자는 보아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이해하는 어른들의  편견에 대해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다시 불러들이라고 은근히 충고한다. 언제나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어른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넓히고, 편견을 깨라고 하기에 읽을 때마다 뜨끔하거나 찔리게 된다. 

사막에 불시착한 어른 주인공에게 나타난 어린 왕자가 다짜고짜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는 대목도  나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무수한 양 그림을 시도한 끝에 그려준 그림은  구멍 세 개가 난 상자이다. 그순간 상상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작은 양이 잠들었다는 상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상자 속의 잠든 양을 무한상상하지 않았을까?  어린왕자의 사고에 전염이 된 독자라면  그런 상상력은 자연스런 것이니까. 그렇게 어린왕자를 따라가다 보면 상상력의 세계를 넓히게 된다.  

<어린왕자>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사랑과 소유에 대해 어린왕자와 여우가 나누는 대화다.  작은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어린왕자와 길들려지지 않은 야생의 여우가 나누는 이야기는 몹시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며 철학적이다. 

같이 놀자는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자신은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되지 못한다고 거절한다. 길들여진다는 건 관계를 맺는 일이고, 오랜 시간을 거쳐 인내하며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까, 여우의 친구 만들기 논리에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보이는 법이라는 여우의 말에 여유를 갖고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동시에  슬로우 라이프를 조금씩 실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관계맺기나 어린 왕자와 장미의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책임감도 생겨남을 생각한다. 여유를 갖고 긴 시간을 두고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면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이기에 철학자 같은 여우의 말을 가슴에  담게 된다.

가시 네 개로 자신을 보호하는 그저 평범한 장미 하나, 겨우 무릎까지 오는 화산 세 개를 지닌 작은 행성에 사는 어린 왕자, 말을 걸어주는 꽃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아주 작은 어린 왕자의 행성, 여린 자신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기 위해 생긴 장미꽃의 가시들, 가시가 있는 꽃도 먹어치우는 양,  소행성 여행에서 만난 왕, 지구에 도착해서 꽃과 여우와 만나는 이야기가 모두 명문장으로 빛나는 고전이기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인생은 사막같은 여행지이지만 별도 볼 수 있고 물도 만날 수 있다. 사노라면 어린왕자 같은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삶에 통찰을 주는 여우같은 철학적인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왕자가 만났던 권력자, 상인, 염세가, 노학자, 허풍쟁이 등 다양한 사람들도 만날 것이다. 내 인생에서 스쳐간 어린 왕자는 누구였을까?  

어린왕자를 읽고나면, 늘 소소한 것에 감사를 하게 되고,  작은 발견에도 감탄과 기쁨을 표현하게 된다. 그렇게 어린 왕자의 내게 던져준 말의 여운이 몹시 깊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중요한 것들, 작고 작으나 빛나게 하는 것들, 가지고 있으나 감사하지 않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 책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어린 왕자가 들려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르지 않을까?  어쨌든 울림이 긴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