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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누웠던 자리 ㅣ 그림으로 읽는 시 1
윤동주 지음, 전윤나 그림 / 새봄출판사 / 2015년 7월
평점 :
그가 누웠던 자리/그림으로 읽는 윤동주 시 ‘병원’/새봄출판사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몇 안 되는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가슴이 아려온다. 발표되지 않은 윤동주의 시를 만나다니, 이건 기쁨이자 아픔이다. 짧은 삶을 산 좋아하는 시인의 유작이기에 몇 안 되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음은 분명 기쁨이다. 하지만 그의 시 속에는 일제강점기의 아픔, 특히 일본의 세균실험의 대상이 되어 원인 모르게 죽어가던 시인의 번뇌가 서정적으로 녹아 있기에 더욱 슬프고 고통스럽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윤동주 시 「병원」의 일부
육신의 고통을 당해 보지 않고 환자의 고통을 안다고 하는 건 얼마나 교만한 일인가를 아파본 후에야 깨닫게 된다. 마음의 고통 역시 당해 보지 않고서 안다며 위로한 게 얼마나 오판이었는지를 겪어본 뒤에야 알게 된다. 일제 강점기를 살지 않았고, 세균실험을 당하지 않았기에 윤동주 시인이 당하는 고통을 차마 가늠치 못한다. 이십대의 푸른 꿈을 산산이 날려버린 일제강점기의 인간실험, 마루타 실험의 잔혹성에 대한 뉴스 보도를 들을 때마다 일제강점기가 상상불가의 공포 시대였음을 절감했을 뿐이다. 시인의 고통이나 여자의 고통을 미처 알지 못하지만 시대의 아픔까지 생각하니 온 몸의 세포에 통증이 인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의 미발표작 「병원」을 읽으며 하얀 건물 속에 감춰진 온갖 세균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환자들을 생각하게 된다. 아픈 여자를 바라보는 아픈 남자의 시선이다. 아파본 자만이 공감할 이야기이기에 그저 가슴이 저려올 뿐이다.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아픔이지만 은근히 저항적이고, 생존욕구로 꿈틀댄다. 가슴이 아픈 여자나 온 몸에 이상증세를 느끼는 남자의 동류의식을 보며 그저 이런 종류의 아픔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윤동주 시인의 미발표작을 만나서 몹시 설레며 필사한 책이다.
책 속에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그가 누웠던 자리-윤동주의 ’병원‘과 서정시의 윤리학’도 뒤편에 들어 있고, 필사와 컬러링북을 합친 필링북도 부록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