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밤바 - 1915 유가시마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나지윤 옮김 / 학고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시로밤바/이노우에 야스시/학고재/서정적인 문장이 빛나는 자전적 성장 소설~

 

 

도시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의 풍경화를 그리라고 한다면 학교와 교회, 골목과 변두리의 야산이 주 배경이고 학교 가는 길에서 만나던 초록의 수양버들과 멀리 보이던 나지막한 산, 실개천이 흐르는 제방을 따라 난 도로, 시내 중심가, 골목마다 아이들이 노는 풍경이 부분적 소재들이다. 그렇게 내게도 유년의 풍경화는 연초록의 빛깔에 연분홍의 꽃향기가 날리는 수채화다.

 

 

아름다운 온천 마을 유가시마를 배경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 핏줄이 연계되지 않은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고사쿠의 어린 시절을 그린 풍경화도 연초록의 수채화다. 더구나 아름다운 문장이 돋보이는 잔잔한 서정적인 감성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기에 연속적인 수채화를 감상한 느낌이다.

 

소설의 제목인 시로밤바는 백발의 할머니라는 뜻이다. 해가 지고 나면, 아이들이 맨손으로 움켜잡겠다고 시로밤바, 시로밤바라고 외치며 뛰어다닌다고 한다. 그러니 시로밤바는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굴뚝의 하얀 연기처럼, 솜구름처럼 백발이 둥둥 떠다니는 요정인 모양이다. 소설에서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즈음 만나게 되는 저녁 무렵의 하얀 연기이거나 고사쿠를 키워준 외할머니의 백발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고사쿠의 증조외할아버지의 첩이었던 외할머니에게 자식이 없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큰딸 나나에의 아들 고사쿠를 외할머니에게 돌보게 유언을 남긴다. 그래서 고사쿠는 어려서부터 큰 집 식구와 부모를 떠나 핏줄과는 전혀 상관없는 외할머니의 흙집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고사쿠가 아이들과 놀던 놀이터 앞에 있던 외할아버지가 사는 큰집에는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이모들이 있다. 하지만 고사쿠는 큰집에 들를 때마다 주눅이 들곤 한다. 화류계에서 돈을 주고 사왔다는 외할머니에 대한 무시가 자신에게 전해지는 느낌에 늘 눈칫밥을 먹고 자란다. 그래도 고사쿠는 외할머니와 큰 집 식구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는 삶을 살면서 큰 집의 외삼촌과 이모들과 온천을 다니거나 뛰어 놀면서 핏줄의 정이 들게 된다.

 

 

자신의 핏줄인 고사쿠를 서로 키우려는 엄마와 외롭지 않으려 고사쿠를 키우려는 외할머니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고사쿠가 선택한 이는 늘 외할머니였다. 고사쿠에겐 도시에서 키우려는 엄마보다 오랫동안 정이 든 분은 외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엄마보다 친밀하던 외할머니의 존재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의 늙고 추레한 모습에서 고사쿠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외할머니의 죽음을 접하면서 끝내야 눈물을 흘리고야마는 고사쿠 모습이 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온다. 낳은 정 못지않은 기른 정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고사쿠에게 있어서 시로밤바는 핏줄은 전혀 관련 없지만 유년기의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였을 것이다. 부모와 떨어진 시골생활이었지만 친구들과의 놀이, 시골 흙집 외할머니와 생활, 큰집 아이들에게 주눅 들었던 장면은 추억의 장면들일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유년의 흔적들일 것이다.

 

 

시로밤바를 통해 일본 국민 작가라는 이노우에 아스시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그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라고 한다. 잔잔한 분위기지만 서정적인 문장들이 곳곳에서 매력을 발하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