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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랜드 1 - 셉템버와 마녀의 스푼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공보경 옮김, 아나 후안 그림 / 작가정신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페어리랜드1/캐서린 M. 밸런트/작가정신/셉템버와 마녀의 스푼, 기대 이상인 동화~
기대를 하고 펼쳤지만 읽을수록 기대 이상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나니아 연대기, 페르세포네 신화 등 고전과 신화를 오마주한 작품이라는 데, 그 작품들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느낌이다. 시간과 공간, 식물과 동물, 무생물, 성별, 일상의 모든 것들을 생물화하고 생각을 뒤집는다. 독특한 상상력은 무한의 창조성을 보여주고, 고전 동화의 오마주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빛나는 날선 비유와 예리한 비판은 곰곰 되새김질하게 되기에 읽을수록 심오한 느낌이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지긋지긋할 즈음 누구나 새로운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한다. 모든 모험은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대한 반란일 테니까.
12살 소녀 셉템버는 5월에 태어났지만 9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왼쪽 뺨에는 검은 점이 있고 발은 크고 못생긴 소녀다. 셉템버에겐 바다건너 전쟁터로 간 아버지, 군수 공장에서 까다로운 비행기 엔진을 만드는 어머니가 있지만 개와 함께 늘 혼자서 집을 지킨다. 그러다 반복적인 지루한 일과를 보내며 홀로 찻잔을 씻던 어느 날, 셈템버는 초록 바람의 유혹적인 방문을 맞게 된다. 초록 바람은 셉템버에게 페어리랜드로 짜릿하고 솔깃한 모험을 떠나자고 한다. 찻잔과 개에 넌더리가 난 셉템버는 초록 바람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초록바람의 표범인 이모젠을 타고 페어리랜드로 간다. 모순된 이름과 불리한 외모를 가진 소녀가 일상탈출이라는 유혹적인 제의에 끌려 환상 속의 나라로 간 셈이다.
셈템버는 페어리랜드에 이르러 두 세상 사이의 통과의례인 네 가지 질문을 해서 12가지 대답을 얻고, 세관원의 까다로운 검사도 받는다. 페어리랜드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 하고, 오마하의 이정표는 더욱 무서운 글자들이 우아하게 새겨져 있다. 길을 잃는 방향, 목숨을 잃는 방향, 마음을 잃는 방향, 심장을 잃는 방향 중에서 심장을 잃는 방향으로 걷던 셉템버는 특이한 이름의 마녀와 인간늑대를 만나 호박, 와인, 어제, 비탄, 설탕, 요구르트, 질투, 내일이 묻어 있는 커다란 나무 스푼을 찾아 달라고 한다. 이후 셉템버는 자물쇠에 갇힌 용, 비도를 만나 가장 고통스러운 법에 대해 알게 된다. 짧은 역사 강의도 듣고, 비누인형을 만나 목욕도 하고, 경고를 안 해주는 집을 지나고, 물 속의 그림자가 있는 강을 건너 진화에 대한 가르침도 받는다. 드디어 후작이 사는 팬더모니엄 시로 입성한 셉템버는 후작과 논쟁도 하고 후작이 명령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마녀의 스푼도 돌려받고 새 구두도 얻게 되는데......
용감한 소녀가 일상탈출이라는 환상적인 모험 속에서 만난 페어리랜드는 규칙도 많고, 여후작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하는 모순과 부조리의 나라다. 요정들의 날개를 사슬에 묶어 날지 못하게 만든 모순, 권력자의 독재, 관리들이 무사 안일한 세상이다. 우리에 갇힌 바다요정들, 채찍질 당하는 자전거들, 페리선을 모는 노예들, 변방으로 물러난 불행한 사람들, 피지배자의 자유를 억압한 금지법들, 강물 색깔마저 획일화된 곳, 아이들의 성숙과 성장 정도에 따라 심장의 무게가 달라지는 곳, 누구든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하는 곳이다. 매사에 까다로운 규제와 퍼즐 조각 같은 수수께끼 풀어야 하고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곳이다.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자기주장과 정의, 모험정신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환상적인 자유를 찾아 나선 꿈같은 페어리랜드 역시 현실 세계와 비슷하거나, 현실보다 규제가 더 많은 세계임을 보여준다. 유토피아를 찾는 인간 세계에서도 크고 작은 전쟁은 여전하고, 규제는 더욱 촘촘해짐을 비유하는 판타지 동화다. 독재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한 은유를 담은 소설이라지만 지구 전체를 빗댄 매혹적인 동화다. 어디에서든 용기와 도전이 삶의 힘임을 보여주는 동화다. 아름다운 문장과 비유가 가득한 동화이기에 벌써 2편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