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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찌질한 위인전]위인의 내적·외적 아픔이 설마 찌질해 보일까?
세상에 완벽한 이가 있을까? 신이 아닌 이상 허점투성이의 인간이다.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영웅이나 위인일지라도 완벽한 이가 드물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분야에 몰입했기에 다른 부분에서는 뒤떨어질 수도 있었으리라. 평소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영웅들의 찌질한 면이라니, 흥미로운 책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07/pimg_7269711951235892.jpg)
찌질한 위인전!
워인들이 찌질해 보이는 이유, 찌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에 그들의 내면과 조우하는 느낌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인디밴드를 잘 모르기에 달빛요정은 듣도 보도 못한 위인이다. 달빛요정은 홍대 인디밴드이자 원맨밴드라고 한다. 평범한 인디밴드지만 그의 삶과 노래에 대한 열정은 평범하지 않아서 일까?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불행한 뮤지션’이라고 TV화면에 비친 왜곡된 모습을 저자는 반박한다. 저자는 그의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 현실적 노랫말의 상징성, 음악에 대한 자세가 절대 찌질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그는 ‘불행을 노래한 뮤지션’이지만 세간의 인식대로 불행한 삶을 산 음악가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전혀 찌질하지 않다. 이미 고인이라니, 그의 음악을 사랑하던 팬들은 아쉬울 텐데......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김수영의 <풀> 일부 (29쪽)
<풀>이라는 시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의 이야기에선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전쟁의 아픔, 이념의 희생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시 <죄와 형벌>에서는 잔혹한 가정폭력이 묘사되어 있다. 어찌 이런 일이!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인
지 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김수영의 <죄와 형벌 >일부 (16~17쪽)
세상에 이런 찌질한 위인이 있나. 비 오는 거리 한복판에서 자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부인 김형경을 패다니. 더구나 아내의 건강보다 누가 보았을까라하며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다니. 아내에게 사과하기는커녕 현장에 버리고 온 우산을 아까워하다니, 정말 못났다.
가정폭력을 용서할 순 없지만 그에게도 사연이 있었다는데...... 동경 유학 시절 김수영이 도움을 받았던 선배는 이종구였는데, 이종구 선배가 잘 아는 여동생이 김현경이었다. 해방 후 부부가 된 김수영과 김현경은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수영이 인민군에 끌려감으로써 이산가족이 되었고,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부산살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부산에서 이종구 선배와 동거하는 아내를 발견했고, 1년이 지나서야 재결합했다고 한다. 아내에게 느낀 배신감이 그럴 폭력 남편으로 만들었을까? 전쟁 통에 헤어진 아내와 남편, 살기 위해 선택한 두 사람의 길을 보며 김수영 시인의 찌질해 보이는 면면도 있지만 그저 슬플 뿐이다. 그 시대의 자화상 같기도 해서.......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07/pimg_7269711951235893.jpg)
책 속의 찌질한 위인에는 김수영, 빈센트 반 고흐, 이중섭, 리처드 파인만, 허균, 파울 괴헬스, 마하트마 간디, 어니스트 헤밍웨이, 넬슨 만델라, 스티브 잡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등이 있다.
자칫 위인들에 대한 뒷담화 같지만 같은 고통과 고민을 겪은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위로와 연민이 드는 책이다. 위인들의 내적 아픔과 외적 아픔을 통해 그들도 고뇌하는 인간이었음을, 그런 과정에서 작품이 나왔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가족적인 아픔이나 시대적 상황이 그들을 찌질하게 내몰기도 했기에 안타까운 점도 있다. 잘 몰랐던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널리 알려진 위인이기에 위인들의 속사정을 듣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