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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ㅣ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자칭 신이라는 남자의 고민은…….
신이 없더라도 우리는 신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볼테르
보이지 않는 존재인 신이기에 인간이 그려보는 신은 여러 가지다. 전지전능한데다 보이지 않는 신이 있는가하면, 어수룩하고 실수연발이지만 인간의 모습을 한 신도 있다. 물론 어수룩한 인간 모습의 신은 스스로 신이라 부르는 이다. 독일 작가 한스 라트의 소설을 읽으며 세상은 소설 속에 나오는 어수룩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스스로 신이라는 사내가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삭막하고 황량한 세상에 온기를 주는 것만으로도 온기의 신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06/pimg_7269711951235432.jpg)
소설 속엔 두 남자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한다. 심리 치료사와 자칭 ‘신’이라는 사내의 만남이다. 이혼이후 야콥은 찾아오는 손님도 없기에 사무실 경비도 대지 못해서 파산 직전이다. 그런 그에게 이혼한 전처는 야콥이 머무는 아파트와 사무실이 자신의 소유라며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다. 게다가 엄마는 잘 나가는 은행원인 동생을 두둔하며 야콥을 무시한다. 그런 야콥에게 자칭 ‘신’이라는 아벨이 심리 상담을 요청하면서 법의 관점이 아닌 직감에 따라 판단을 내려달라고 한다.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게 분명해. 인간들이 다시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그 실수가 뭔지 찾아낼 수 있게 도와 줘. (105쪽)
서커스 광대를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아벨은 의사, 건축사, 비행기 조종사, 청소년 전담 판사, 검사, 폭파 전문가, 은행 직원, 핵물리학자, 소방대원, 선장 등 온갖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허풍을 떤다. 자신의 가족을 만나러 뮈헨으로 가자고 제안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제법 유머러스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해달라는 야콥의 말에 아벨은 태고적 빅뱅부터 이야기 한다.
-알았어. 그럼 빅뱅부터 시작하지.
-빅뱅은 나의 첫 개인적 불꽃놀이라고 생각하면 돼. 빅뱅을 통해 난 아득한 밤을 창조했어. 하늘과 땅도 그때 만들었지. 처음에 땅은 휑하고 황량했어. 오늘날의 달과 비슷했지. 하지만 태초의 지구에는 땅의 대부분을 뒤덮은 거대한 바다가 하나 있었어. 주위는 칠흑 같았고. 그래서 나는 빛부터 만들기로 마음먹었고, 그다음에......
-성경에 나오는 내용과 똑같잖아.
-그게 어때서?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다 틀린 건 아냐. (88~89쪽)
이쯤 되면 정신찬락증상을 보이는 병자이거나 희대의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인간의 모습을 한 진짜 신일까 헷갈리면서도 정신병자 쪽으로 몰게 되는 법이다. 야콥은 아벨의 요구에 응하면서도 정신병자가 아닐까라는 의심스런 눈을 거두지 못한다.
스스로 신이 된 아벨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의 돈을 카드 게임으로 번다며 신은 노름꾼이라고 한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말한 아인슈타인을 낄 데 안 낄 데 모르고 아는 척하길 좋아하는 인간이라고도 하고, 신은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룰렛, 블랙잭, 포커까지 할 줄 아는 진정한 노름꾼이라고 한다. 신이 도박꾼이기에 인간 같은 족속을 만들 생각을 했다나…….
미켈란젤로는 신의 도움이 필요 없던 몇 안 되는 인간에 속하지만, <인간 희극>을 쓴 발자크에겐 커피를 끓여줘야 했다고 하고, 커피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순간에 객차 서비스 직원이 커피를 들고 대령해 있고, 더 마시고 싶다는 순간에 따끈한 커피가 순식간에 빈 잔을 채운다.
신 아벨은 인간 야콥에게 질문을 던진다. 술, 약, 돈 등 적당하면 삶에 득이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도대체 선과 악의 경계가 어딜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은 실패한 신이라고 한다.
때로는 희대의 사기꾼 같기도 하고, 때로는 순진한 허풍쟁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심각한 정신병자 같기도 한 아벨과 동행을 하면서 야콥은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06/pimg_7269711951235433.jpg)
신의 애인을 찾고 신의 아들을 찾는 과정에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는 신의 존재에 야콥은 서서히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진다. 남을 조종하는 수상쩍은 능력을 가진 광대이지만 야콥은 그런 신의 따스한 매력에 끌려 그의 휘하에서 종교적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무엇보다 신의 도움을 받아 동생의 문제와 엄마의 문제까지 해결한 인간은 그를 믿게 된다. 아벨을 신으로 간주한다고해서 나쁠 것은 없음을, 서로에게 도움이 됨을 믿게 된다. 하지만 신은 사고를 당하게 되고…….
저자는 심리치료사가 신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하는 여정에서 신을 대하는 인간의 모순을 제기한다. 신은 어디에나 있음을, 가장 가난한 이가 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가장 아픈 이가 신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문제를 던지고 숙제를 주는 소설이지만 즐겁게 숙제할 수 있는 건 재미있는 어투 덕분일 것이다. 다소 무게감이 있는 주제를 톡톡 튀는 대화와 해박한 지식과 풍자, 유머까지 곁들였기에 굉장히 유쾌하게 읽힌다. 영화로 나와도 좋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