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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두 번 숨다 ㅣ 탐 철학 소설 19
황희숙 지음 / 탐 / 2015년 3월
평점 :
[비트겐슈타인 두 번 숨다/황희숙/탐]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다.
철학서적을 보면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적 철학에 매료된 적이 있기에 언젠가 그의 책을 읽고 싶었다. 탐 출판사의 ‘탐철학소설’시리즈로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다니, 반갑다. 이 책은 소설 형식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그의 삶을 풀어준다. 해서 어려운 논리철학을 조금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소설은 외손자 상우와 외할머니 강지효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고뇌와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기에 상당히 이색적이다. 특히 이십대의 외할머니가 미국 유학을 가서 비트겐슈타인의 명성을 듣고 영국으로 건너가 그를 만난다는 설정과 그런 할머니의 노트를 통해 현재의 손자가 논리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라고 칭송받는 비트겐슈타인을 만난다면 얼마나 신날까?
소설은 중학생 상우가 외할머니의 묵은 ‘청갈색노트’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기억에도 없는 외할머니가 미국 유학을 갔다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있다는 괴짜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을 만나러 대서양을 건넌다는 외할머니의 옛 편지를 보게 되면서 이십대 지효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비트겐슈타인의 매력에 푹 빠진 지효는 영국에 도착해서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인 러셀을 찾아가기도 하고 동료들을 찾아가지만 비트겐슈타인을 만나지 못한다. 지효와 친구들은 약도가 그려진 메모만 남긴 채 은둔처로 사라진 비트겐슈타인을 찾아 그를 추적하게 된다. 드디어 노르웨이에 은둔한 비트겐슈타인을 만나 그의 삶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지효와 친구들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언어논리에 빠지게 되고…….
지효는 천재 분석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가치관과 논리와 분석 철학이 그의 개인적인 삶의 흐름 속에서 터득한 것임을 알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강 산업의 대부호 아들로 태어나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축복받은 가족 분위기에서 자랐다. 하지만 가업을 무려받길 원했던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었던 형들의 갈등으로 3명의 형들은 자살로 생을 마쳤다. 어린 시절 겪은 형들의 죽음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던져 주었고 그렇게 청소년기를 마쳤다.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시 히틀러도 다녔다는 린츠 실업 고등학교에서 물리학을 배웠고, 베를린 공과대학을 거쳐 맨체스터 공과대학에서는 항공공학을 연구했다. 그의 관심이 항공공학에서 유체역학이론, 응용수학, 순수수학으로 옮겨 가면서 러셀의 수학원리를 접하며 논리학을 배우기에 이른다.
소설 속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오스트리아의 엄청난 부잣집 아들에 태어나 휘파람으로 오케스트라 전곡을 불기도 하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을 가난한 시인들에게 기부하고 나머지는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즐기고,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철학적 사색에 빠지는 괴짜로 그려져 있다. 이후 그는 초등 교사, 수도원 정원사 조수, 누나의 집을 현대식으로 손수 건축하고, 캠브릿지에서의 강의, 말년엔 아일랜드에서 은둔하다가 암으로 죽는 순간까지 지효와 교류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노르웨이 바닷가에서 은둔자로 지내다가 제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군으로 자원입대했고 이탈리아군에 잡혀 포로수용소에 수용 되고, 수용소에서 <논리철학논고>의 원고를 마무리했고, 지효 일행과 말놀이, 규칙 따르기, 가족유사성, 《논리-철학 논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지효는 비트겐슈타인의 강의도 듣고 그와 나눈 대화와 편지를 통해 점점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습관이 들게 되고…….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기란 힘들다.’(141쪽)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28쪽)
‘철학이 유리병에 갇힌 파리에게 출구를 가르쳐 주는 것’(28쪽)

물질이 주는 풍요보다 검소함이 주는 비움을 사랑한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실재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동일성을 찾았고, 언어를 실재의 논리적 그림으로 봤다고 한다.
삶과 죽음, 언어의 논리와 분석을 외롭게 은둔하면서 구체화하고 완성한 이야기가 놀랍다. 무엇이든 관심을 보이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냈던 천재, 세계적인 철학자 러셀마저도 신이라 불렀던 제자, 죽는 날까지도 저술을 멈추지 않았고 최선의 삶을 살다가 천재의 검소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삶을 통한 실존적 고뇌와 철학적 문제를 형들의 자살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전쟁터에서 느끼고 고민했음을 알게 된 책이다. 난해한 철학이지만 논리철학을 삶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비트겐슈타인의 순수한 열망을 볼 수 있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