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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 ㅣ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김용택 시인이 필사해보고 싶다던 시
예전에도 좋은 문장이나 멋진 시를 예쁜 종이에 베끼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이렇게 책 한 권을 통째 베껴 쓴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다. 요즘 필사를 하면서 시와 소설에 끌린다. 소설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는 짧은 틈을 내서 할 수 있는 필사이기에 소설보다 시를 더욱 즐기게 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03/pimg_7269711951233776.jpg)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이 꼭 한번쯤은 써보고 싶었던 시라니, 궁금했던 책이다.
역시 동서고금의 명시가 가득하다.
섬진강변에서 맑고 밝은 자연을 보고 살았기 때문일까? 필사하고픈 목록에도 서정시가 그득하다.
이병률의 <백 년>, 정끝별의 <와락>, 김인육의 <사랑의 물리학>,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나희덕의 <푸른 밤>, 이병기의 <별>, 김구영의 <봄밤>, 김소월의 <산유화>,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등 우리나라 시인의 시도 있다.
막스 자콥의 <지평선>, 폴 엘뤼아르의 <경쾌한 노래>,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윌리엄 예이츠의 <수양버들 공원에 내려가>, 파블로 네루다의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요한 괴테의 <용기>, 로버트 프로스트의 <걸어보지 못한 길> 등 외국 시인의 시도 있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을 필사하면서 친구를 떠올렸다. 유명한 이성복 시인을 아직도 모른다며 구박하던 친구를. 소설가도 잘 모르는데, 어찌 시인을 아니? 하고 내뱉은 후로는 이성복 시인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띄곤 했는데……. 그러게 안 만큼 보이는 게 세상이치인가 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703/pimg_7269711951233777.jpg)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 <남해 금산 >전문 -42쪽
남해 금산에서 일어난 사랑인가 보다. 만남과 이별이 남해 금산의 무수한 바위를 배경으로 일어났나 보다. 만남은 설렘이고 환희지만 헤어짐은 눈물이고 쓰라림이다. 이별로 인해 흘린 눈물이 강만큼 불고 바다만큼 불었던 걸까. 어쩜 바다 물결에 잠기듯, 하늘 바람에 휩쓸리듯 고통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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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 안도현 <일기> 전문 - 104쪽
읽고 또 읽으며 음미한 시다. 이미 알고 있던 시지만 직접 베껴보니 시골 한적한 곳에서 꽃과 벌레, 새와 하나가 된 시인의 여가를 느낄 수 있다. 홀로 글방에 앉아 줄지어 나는 기러기를 세고, 감도 따고, 마당도 쓸고, 때로는 호젓한 산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을 벗하다가 저녁 무렵 시장기를 반찬삼아 소박한 2첩 밥상으로도 행복해하는 시인의 모습이 멋지다.
시골살이가 적막하다고 해도 자연이 맺어주는 친구들이 어디 한둘인가. 마음먹으면 죄다 손내미는 것이 자연의 생명체들인데...... 여긴 도시이기에 나도 지난여름 주사를 놓고 간 모기 녀석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다. 드라큘라, 흡혈귀, 악마 같은 모기지만 말이다.
원고지 필사, 세로줄 필사 등 서정적인 명시를 다양하게 베껴보며 느긋한 여유를 갖게 된다. 필사를 통해 잘 몰랐던 시인들의 색다른 시를 만나는 재미도 있다. 필사의 매력을 다 모르지만, 그냥 음독하는 것보단 시가 내게로 더 가까이 오는 듯하다. 한 번 적은 시는 여운도 길고 기억도 오래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