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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것들 - 슬프도록 아름다운 독의 진화
정준호.박성웅 외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Mid(엠아이디)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독한 것들/박성웅/정준호/MiD] 독은 진화의 원동력, 생존의 무기야~
영화 <위플래쉬>를 보면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갈망하는 학생의 독한 연습과 최고 교수의 지독한 교수법이 만나 천재 드러머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나온다. 플렛처 교수는 앤드류에게 극단적일 정도로 자극하고 위협해서 미친 연습을 유도한다. 독한 교수법과 독한 연습의 합작으로 결국 영재를 천재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천재가 되기 위해서는 지독한 연습이 필수임을 공감하다가도 지독한 자극을 끊임없이 주는 교수법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혹시 저러다 미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독한 교수법이 결국 천재를 낳는다는 거였다.
인간 세상에서는 독한 사람이 성공하고 독해야 산다. 사회뿐 아니라 자연에서도 독은 진화의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독은 생존의 무기였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독을 만들고 사용했다. 참으로 독한 세상이다. 독은 해롭기만 할까.
독은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보호용이고 누군가에겐 파괴용이다. 독은 무기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무기는 아니다. 치명적인 독도 잘 사용하면 약이 되기도 하고, 보약도 지나치면 독이 법이다.
예를 들면, 생명 유지에 필수인 물도 지나치면 독이다. 몸에 좋은 영양제도 지나치면 독이다. 아침에 먹은 사과는 약이고 저녁에 먹은 사과는 독이다. 보툴리눔 은 치명적인 독소이지만 극소량으로 경련이 일어나는 증상이나 미용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보툴리눔 독소가 인간에게는 0.7마이크로그램도 치명적인 반면에 썩은 짐승을 먹는 청소부 동물에겐 저항성이 있다. 1953년에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진정효과로 인해 임산부들의 입덧에 특효라고 알려졌지만 탈리도마이드를 먹은 산모들이 기형아를 출산하게 되면서 판매금지된 사례도 있다. 이렇게 몸에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되기도 하고, 아무리 치명적인 독이라고 해도 극소량은 몸에 이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이 필요 없는 환경이라면 독니나 독주머니가 퇴화한다고 한다. 결국 생태계의 경쟁적인 환경이 독을 만든 셈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의 무기로 생겨나게 된 독이었고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독이었다.
식물의 타감작용은 놀라운 이야기다. 타감작용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을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독성 물질을 분비하는 현상이다. 주변에 독을 흘려 다른 식물들이 근처에서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현상이다. 호두나무의 주글론 독, 클로버, 소나무의 갈로탄닌, 허브향 등 모든 식물은 타감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타감작용은 맞춤 환경을 만들려는 생존본능인 셈이다.
주변의 독성을 이용하는 독한 것들도 있다. 해파리의 독성을 이용하는 갯민숭달팽이, 미생물에게서 테트로도톡신을 취하는 복어 등은 고단수의 전략가다. 독을 전수하며 가족 사랑을 표현하는 나방도 충격적인 부성애를 보여준다. 오너트릭스 불나방은 결혼기념으로 자신의 정액을 통해 독을 암컷에게 전한다. 자신의 독을 암컷에게 선물함으로써 자식들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독을 전수하는 것이다.
치명적인 독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독을 사랑하는 현상은 반전의 재미를 주는 이야기다. 고추의 독을 사랑하는 인간의 매서운 면, 캡사이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조류 등은 반전의 묘미다. 뛰는 몸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을 증명한 예다.
보호독이든 공격독이든 독은 진화의 수수께끼라고 한다. 남의 애벌레를 오랫동안 마취를 시켜 그 안에 자기 알을 낳아 알이 부화할 때까지 먹이를 공급하게 하는 나나니벌, 자신보다 덩치가 큰 바퀴벌레를 마취시켜 끌고가는 보석말벌, 손톱 크기의 작은 개구리지만 화려한 경계색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독화살개구리, 압도적인 번식력과 피부에서 분비되는 강력한 독으로 번식한 외래종 대표 사탕수수두꺼비, 농작물 해충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외래종 사탕수수두꺼비의 반역행위, 독성이 강한 유칼립투스를 먹을 수 있는 코알라. 압도적 크기의 인도네시아 코모도왕도마뱀(최대 길이 3m, 몸무게 70kg 정도)의 붉은 침 안에 독소 등 모두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독은 아직도 연구대상이라고 한다.
고대 인도의 의술서인 아유르 베다에 기록된 독 이용술, 혈액응고제로 쓰이는 러셀살무사의 독, 항암치료제로 쓰이는 태형동물의 독, 독을 이용해서 신약개발로 이어진 사례들, 마시는 독 에탄올, 피우는 독 니코틴, 뱀독, 일산화탄소 등의 혈액독, 유전독성, 최기형독성, 면역독, 신경독소, 오리너구리의 독발톱과 독주머니 등 모두 생존을 위해 선택한 신비한 독 이야기다.
살기 위해 독해야 했던 생명체, 독한 것들을 이용하는 지독하게 얄미운 생명체, 독을 만든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독을 사랑하는 지독한 것들, 독을 약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종들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다. 살기 위해 바둥거려야 했던 생물이기에 독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충격적이면서 공감이 된다. 지독해서라도 살아 남으려는 생명체들의 의지가 무척 살벌하지만 감동적이기도 하고.
EBS 다큐프라임<진화의 신비, 독>으로 나왔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살벌한 경쟁과 위험한 공존의 독종들 이야기가 호기심을 끌고 재미를 준다. TV로도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