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장석주/21세기북스]시인이 뽑은 시, 설레지 않나.

 

감탄사가 본능이듯 시어도 본능이 아닐까. 삶을 노래하는 모든 언어는 시로 불리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지친 청춘들에게, 너무 일찍 사회를 알아버린 청춘들에게 장석주 시인은 나지막한 소리로 시인들의 노래를 불러준다.

T. S. 엘리엇, 고영민, 기형도, 김소월, 김수영, 김신용, 김용택, 김행숙, 김형영, 류근, 마종기, 문태준, 박정대, 박준, 서정주, 송찬호, 신경림, 신동옥, 신미나, 윤동주, 이경임, 이덕규, 이문재, 이병률, 이영광, 이장욱, 이진명, 이혜미, 장석남, 장인수, 전윤호, 정숙자, 정재분, 정호승, 조정권, 진은영, 최승자…….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지 않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빈집전문,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기형도 시인의 시는 같은 시어라도 더욱 처절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장석주 시인은 기형도 시인의 빈집에서 오르페우스 신화를 떠올린다. 에우리디케를 잃은 오르페우스의 슬픈 노래는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너게 돕는 뱃사공 카론과 저승 입구를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감동시키고, 지하의 하데스 왕과 왕비마저 감동시키며 에우리디케를 빛의 세계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참을성이 부족해서 금지 규정을 어긴 결과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잃게 된다. 다시 강가에서 식음을 전폐하며 부르는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광인의 애가가 되어 슬픈 감동을 주게 된다.

 

사랑을 잃고 쓴 시는 노래가 아니라 비명이다. 빈집은 그 잔잔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의 마음속 여린 부분을 할퀸다. 그 다정한 속삭임 속에 비명의 날카로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략) 사랑을 잃고 헐떡이는 마음의 고통은 오직 그 고통에 겨운 마음을 죽음이라는 망각에 들이민 다음에야 비로소 잠잠해진다. (25)

 

사랑도 기회가 올 때 잡아야 한다. 지나고 나면 잡기 어려운 기회의 여신과 같이 되돌리기 어려운 법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에서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전문, 거대한 뿌리김수영

 

풀은 잡초다. 이름도 모르는 풀은 농작물 성장에 방해가 된다며 뽑아 버리는 식물이다. 하지만 아스팔트 틈새, 벽돌 사이를 비집고 나온 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하는 풀이다. 해서 풀은 민초나 풀뿌리 민주주의, 아니면 어떤 상징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였다. 연약하기에 비바람에 쓰러질지언정 뽑히지 않는 잡초다. 풀은 그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던 경이로운 존재다.

 

장석주 시인도 김수영의 풀은 물질세계와 잇닿아 있는 자명한 의식세계 저 너머의 무엇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이미지’(234)이라고 한다.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김수영 시인. 은 그의 사후에 공개된 작품이라고 한다. 다의적인 해석을 지닌 이지만 나 그저 야생초이자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자연의 일부로 보고 싶다. 바람결에 그저 누웠다 일어나는 풀,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무심한 풀, 들판 어디에서나 존재하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는 그저 자연의 일부로서의 풀 말이다.

 

 

 

 

목마르다면 물로 채워야 한다. 허기진다면 먹거리로 채워야 한다. 지쳤다면 휴식과 잠으로 채워야 한다. 허나 영혼이 목마르고 허기지고 지쳤다면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탐욕과 절망의 세상, 이기적이고 엉큼한 사회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청춘들에게 시인이 보내는 시다. 시를 음미하는 시간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기에 충전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