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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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박찬영] 6대 왕과 함께 83년의 생을 산 정명공주 이야기...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면 누구나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명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목숨의 위협을 느낀 공주라면 어떻게 처세해야 할까.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의 역사를 보면 파란만장하지 않은 이가 없고, 우여곡절을 겪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요즘 차줌마 차승원이 광해군으로 나오는 MBC드라마 < 화정(華政)>에서도 죽은 듯이 지낸 정명공주(1603~1685)의 시선을 통해 6대에 걸친 조선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잘 알지 못했던 정명공주지만 책을 통해, 드라마를 통해 만나면서 혼란의 역사 속에서 왕실 여인이 가졌을 초조와 불안, 그 속에서도 자신을 다스리는 정명공주의 지혜를 보게 된다. 조선 14대 왕 선조와 어린 인목대비 사이에 태어난 정명공주의 삶은 그렇게 화정으로 대표된다. 화정은 빛나는 다스림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수준이 화정이라면 평정심 그 이상이 아닐까. 그녀가 스스로를 조용히 다스렸던 이유엔 광해군이 있을 것이다.

 

 

선조의 유언으로 조선의 15대 왕으로 오른 광해군은 자신의 왕위가 불안했기 때문일까.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자 눈엣가시였던 자기보다 9살 어린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하고,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린 정명공주를 서궁(정릉동 행궁, 덕수궁)에 유폐하기에 이른다. 물론 광해군이 임진왜란 중에 전시조정을 이끌며 탁월한 지도력을 펼치기도 했고, 대동법을 실시해 민생을 돌보고자 했고, 중립적인 외교정책으로 조선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했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정명공주의 입장에서는 선조와 인목대비의 죽음, 동생 영창대군의 죽음, 자신의 서궁 유폐를 겪으며 숨죽여야 했을 것이다. 최고의 여성 서예가였던 정명공주는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을 거치면서 죽은 듯이 83년의 생을 살았다. 서예에 뛰어났던 공주는 화정(華政)이라는 글을 남겼다. 귀머거리와 눈먼 봉사로 지내며 터득한 혜안이었으리라. 또한 혼란스런 정국에서 얼마나 소원이었으면 화정(빛나는 다스림)이라고 썼을까 싶기도 하고......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거나 들었을 때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명공주

 

정명공주가 83세까지 6대 왕과 함께 한 최장수 공주로 생존할 수 있었던 키워드는 화정이었다니. 죽은 듯이 지내며 속을 다스렸을 정명공주의 삶과 함께 한 그 시절의 역사 이야기에 가슴이 착잡해진다.

 

책 속의 임란 중 양위문제로 전쟁에 집중하지 못했던 조정, 폐위와 반정, 인재들의 살상과 유배, 민생보다 예송논쟁으로 붕당정치를 했던 정치인들, 광해군, 인조, 효종 때의 정치 등의 이야기가 정명공주를 중심으로 펼쳐지기에 색다르다. 관련된 유물과 유적지 사진이 많아서 이해하기가 쉬운 특별한 역사책이다.

 

 

광해군의 이복 여동생이자 인목대비의 딸, 영창대군의 누이인 정명공주의 시각으로 본 광해군을 보니, 순탄하지 않았던 광해군의 왕위계승과 광해군 태생적인 정권의 한계로 인한 불안감이 혼란의 역사로 몰고 간 것 같아 광해군 역시 비운의 왕 같다. 임진왜란 이후 여전히 전신을 차리지 못하는 조선 세도가들의 모습에서 불안과 수치를 느끼게 된다. 화정, 빛나는 다스림, 6대 왕과 함께 83년의 생을 산 정명공주 이야기에서 화정은 지금도 필요한 키워드임을 생각한다. 국가든, 사회든, 가정이든 자신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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