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조지 손더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1210일/조지 손더스/RHK]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조지 손더스의 단편 소설, 참신함 그 자체!

 

 

참신하고 대담하며 풍자적인 목소리가 문단에 등장!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이 두 문장만으로도 끌렸던 책이다. 게다가 제1회 폴리오문학상 수상작이자 201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이슈를 모았다지 않은가. 처음 접하는 조지 손더스의 작품이지만 수더분한 외모와 달리 소설은 몹시 깐깐하고 꼼꼼하다. 단편소설집이기에 짧아서 쉽게 읽히려나? 생각했다가 큰 코 다친 작품이랄까. 물론 쉽게 읽힌다. 하지만 함축된 의미를 파악하느라 자주 되돌아가게 된다.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달라진다고 할까. 유머도 있지만 풍자와 함축적인 서사들이 자꾸 곱씹게 만든다.

 

 

가장 짧은 소설인 <막대>를 보자. 2쪽 분량의 초 단편소설이다. 막대에 대해서 무엇을 연상하게 되는가. 어릴 적 막대는 장난감이었다. 자라면서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물건을 받치는 도구, 작게는 젓가락, 크게는 국수를 미는 홍두깨까지 정말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막대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직접 만든 쇠막대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매년 추수감사절 저녁이면 쇠막대로 만든 십자가에 산타 옷을 걸치고, 슈퍼볼 주간엔 쇠막대에 운동복을 입힌 후 로드의 헬멧을 씌운다. 모든 기념일을 이런 식으로 맞는다. 독립기념일엔 엉클 샘 복장을, 재향군인의 날엔 군인 복장, 핼러윈엔 유령 옷을 입혔을 정도다. 심지어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도 쇠막대를 죽음의 신처럼 분장시키고 엄마의 아기 때 사진을 걸어 놓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가정교육에서는 엄격함이 지나칠 정도다. 크레용을 한 자루 이상 꺼내놓고 쓸 수 없게 하거나, 사과 한 쪽을 버렸다가 야단맞거나, 생일 파티엔 컵케이크로 때울 정도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쇠막대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의식을 거행한 걸까. 쇠막대는 완고하고 무뚝뚝한 가장의 나름의 유희거리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쇠막대는 어떤 의미였을까. 쇠막대는 경건한 의식의 대행자이자, 아버지의 분신이자, 자신을 대신한 표현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한다고 적은 표지판을 만들어 쇠막대에 매달고 용서해줄래? 라고 적은 표지판까지 만들어 걸어놓은 뒤, 집 안 복도에서 라디오를 켜둔 채 세상을 떠났다. (42)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서야 쇠막대를 통해 자식들에게 애정표현을 한 부성애가 느껴진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최대의 표현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순간 울컥해진다,

 

무뚝뚝하고 완고해서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가장의 애환과 나름의 표현법이 쇠막대와 함께 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았던 가장이었기 때문일까.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장치가 쇠막대였다니. 어쩌면 말 안 해도 자식들이 눈치껏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잘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한다면 마음까지 읽기도 하니까. 너무나 짧은 소설이지만 내용이 주는 여운은 몹시 깊고 긴 소설이다.

 

<강아지>의 경우도 곰곰 생각하며 읽은 글이다.

완벽한 옥수수 밭에 눈부신 가을 햇살이 비치면 동화 속 유령의 집이 떠오를까? 완벽한 옥수수 밭을 구경한 적 없지만 유령보단 옥수수 요리를 먼저 상상하게 된다. 먹거리 앞에서 푸짐한 상차림을 떠올리는 게 본능이지 않나. 그로인해 군침을 흘리게 되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잉여 가축에 대한 처리법은 너무 잔혹하다. 농장에서는 잉여의 새끼 고양이를 팔거나 팔리지 않으면 그렇게 살 처분하는 걸까.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 보게 된다. 눈부신 무언가를 볼 때면 나는 무엇이 떠올랐나.

 

    

저자는 때로는 아이 같은 말투가 재밌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살짝 틀린 단어를 사용하거나 유머 속에 풍자가 들어 있기에 되새김질 하게 한다.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사고의 비약은 참신하고, 발상의 엉뚱함에 무릎을 치기도 하는 소설이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이야기다. 문체가 이상하기도 하고 사방팔방으로 통통 튀는 어법인데다 좌충우돌의 전개로 인해 읽기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아니지. 읽기는 하는데 의미를 파악하느라 다시 읽게 되는, 함축적인 의미를 파악하느라 조금은 다시 생각하게 되는, 매력적인 문체에 끌려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시 읽게 만드는 기묘한 소설이다.

 

승리의 질주, 막대, 강아지, 거미머리 탈출기, 권고, 앨 루스턴, 셈플리카걸, , 나의 기사도적인 대실책, 1210일 등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마음을 열고 읽어야 할, 쉽지 않은 소설집이다.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조지 손더스의 단편 소설집, 처음 만났지만 참신함 그 자체다. 천방지축의 언어들이 봄날의 꽃향기처럼 마구 매력을 발산한다. 종잡을 수 없는 내용들, 은유적인 표현들, 매력적인 문체 사이를 헤매다 보면 꼭 다시 읽게 만드는 묘한 소설이다. 곁에 두고 다시 읽고 싶은 독특하고 참신한, 무척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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