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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표윤명 지음 / 새문사 / 2014년 10월
평점 :
[위작/표윤명/새문사]추사의 고서화 위작에 얽힌 소설, 진짜와 가짜의 비밀들…
모방은 진품의 일부를 본뜨거나 그 형식을 따른 것이지만 위작은 진품 그대로 베껴 진짜라고 속이는 것이다. 만약에 문화재 중에서 진품보다 위작이 많다면, 누가 어떻게 진위를 평가할 수 있을까. 만약 위작이 진품인 양 둔갑해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면. 과연 누가 진품과 위작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혹시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문화재 고위 관계자, 문화재를 소유하려는 갑부들, 문화재 관련 학자들과 관련되어 있지 않겠는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세상인데, 믿었건 전문가들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추사 김정희의 시와 그림의 위작에 대한 소설을 읽으며 문화재 위작 문제가 그저 소설에 그치기를 간절히 소원할 뿐이다.
세한도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현판 글씨, 글과 그림을 남겼던 추사 김정희의 작품 세계와 조선말의 화가들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설을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 세계는 물론 조선말의 화가들, 화풍, 고서화의 진품과 위작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문화재 보존처리법, 고서화를 가진 이들의 이기심 등이 촘촘하게 얽히고 설켜 긴장감과 예술적 감성, 재미와 유익을 듬뿍 선사했기에.
주인공 지환은 고서화 전문 박찬석 교수의 논문지도를 받는 과정에서 고서화 비리의 냄새를 맡게 된다. 이미 고서화점인 탐묵서점 사장인 탐매로부터 고서화계의 비리를 들었기에 박 교수의 이야기에서 위작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서화 위작의 비리를 폭로 할 계획을 세운다.
박 교수는 지환에게 강원도 영월에서 만난 노인에게서 호생관 최북의 그림 한 점을 사게 된 경위를 설명하지만 지환은 미심쩍어 한다. 박 교수가 산 <풍우오왕도(風雨午往圖,비바람 몰아치는 낮에 가다)>라는 작품이 <풍설야귀도,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오다>에 호응하는 글이며 모두 추사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풍우오왕도>인데다, 박 교수가 그 그림을 문화재 보존처리 연구소에 맡겨 붓 자국이나 채색도 본래대로 되찾아 깔끔하게 살려내는 과정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후 지환은 고서화 거래 전문가인 문수당 최 노인에게 그 그림을 전달하면서 후인 찍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이 모두 고서화를 보호하겠다는 모임이지만 실제로는 위작을 가진 이들을 보호하려는 모임이라는데......
탐매에게서 들은 위작이 생긴 사연이 정말 기가 막힌다. 추재 윤증후가 위작을 남긴 이유가 추사의 사후에 생활의 궁핍함 때문이었다니. 추사와 이재, 운봉의 제자를 두루 거친 추재는 실력은 빼어나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었기에 늘 가난에 절어 살았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추사를 닮기도 하고 이재와 운봉을 닮기도 해서 추사의 낙관을 찍으면 영락없는 스승의 작품으로 인정 받을 정도로 감쪽 같았다니. 어쨌던 위작 전문 화상의 제안으로 그렇게 추사의 것인 양 추재는 자신의 작품을 팔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추사의 제주 유배 중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추사의 동생, 추사의 아들들도 추사의 글씨를 흉내 내서 생계를 유지했으며, 오원 장승업의 그림을 흉내내던 위창 오세창도 독립 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 추사의 글씨를 흉내 냈고, 해방 후 사리사욕을 위한 추사의 위작 등이 지금의 위작 문화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림은 한 장인데 자식이 많을 경우 위작을 만들어 골고루 1장씩 나눠주는 진풍경도 있었기에 위작이 많다는 것은 고서화계의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지훈은 위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위작에 관련된 인사들이 상당한 거물들인데다가 광범위하게 점조직처럼 퍼져 있음을 알게 되고, 고서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적은 해동화사(海東畵史)의 위작에 대한 기록을 보며 진실에 근접할수록 지훈은 위험을 느끼게 되는데…….
일 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추사의 글씨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려면 감식의 혜안이 필요한 법인데, 현실에서 위작 논쟁이 벌어진다면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위작이 그저 소설 속 내용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위작 탄생의 과정, 거대한 위작 집단에 대항해 진실을 밝히려는 한 청년의 순수한 용기, 추사 김정희의 운필과 화법의 변화, 서권기문자향(붓을 잡는 사람은 항상 책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추사의 제자였던 흥선 대원군의 난 치기, 조선 말 화가들의 화풍과 생활 등이 흥미진지하게 버무려져 있다.
대인춘풍(대인춘풍)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라.
거무구안(居無求安) 삶에 있어 편안한 것만 찾지 말라.
행부무득(行不無得) 행함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좋은 글들이 많은 소설, 붓글씨의 매력도 느낀 소설, 추사의 필체가 주는 예술성과 힘을 느낀 묵향 가득한 소설이었다.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지 않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