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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선언 -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광훈 지음 / 김영사 / 2015년 2월
평점 :
[심미주의 선언/문광훈/김영사] 마음의 아름다움과 좋은 삶에 대한 인문학...
예술과 삶은 어떤 형태로든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원시사회부터 이어져온 유구한 문화가 예술이다. 하지만 예술은 멀고 삶은 가깝다고 여기는 게 현실이다. 그런 삶에 단비처럼 예술적 감수성으로 촉촉이 채워 줄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의 이야기가 현실과 예술의 접점을 돌아보게 한다.

예술의 마음밭을 가는 일(심전경작)은 기품 있는 자유의 즐거운 길이다. 미에 대한 탐구는 필요하고, 심미적인 것의 가능성은 유효하다. 이 가능성이란 줄이면 ‘자기를 만드는’ 데 즉 자아의 형성에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인격의 심미적 형성론’이다. (11쪽)
처음에 나오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담긴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이야기가 강렬하다. <최후의 심판>은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화인데, 땅과 하늘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들어 있다.

성 바돌로메는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순교한 예수의 제자다. 그림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에 가죽이 벗겨진 채 바돌로메의 손에 매달려 있다. 알맹이는 없고 허물인 채 심판을 기다리는 얼굴이 미켈란젤로로 밝혀졌다니. 결국 심판을 기다리는 순간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인 셈이다. 1923년 이태리의 의사인 카바가 밝혀냈다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허물을 그려낸 미켈란젤로의 재치가 돋보인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기에 결국 남는 건 껍데기가 아닐까. 가장 자연스런 모습,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 과연 인간이 심판을 기다리는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 자기직시의 자기성찰의 표현이라면, 이 자기성찰이란 삶의 진실을 위한 성찰이고, 그 진실을 감당하기 위해 어떤 수난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다. 이 의지의 표현으로 그는 자기가 껍질로 내걸리는 수모도 견딘다. (19쪽)
현재의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보는 예술가로서의 용기 있는 표현이 아닐까. 대대로 전해질 자신의 굴욕스런 모습마저도 수용하는 대인의 포스도 보인다.


저자는 죠르죠네의 <자화상>을 통해 화가의 눈빛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오만함을 이야기한다. 바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뒤러의 <자화상>가 실제보다 미화된 그림이기에 화가가 추구하던 균형과 조화, 완결 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살바토르의 <자화상>에서는 눈빛과 꽉 다문 입매보다 서판에 쓰인 문구인 “침묵하거나, 침묵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라”를 강조하고픈 화가의 의지를 전한다. 앙소르의 <자화상>에서는 화가를 둘러싼 무수한 가면, 다중적인 면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거울은 속이지 않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자화상은 예술가의 자기직시, 자기성찰의 표현이다. 세상의 모든 화가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내적 세계를 드러내고 미적 자아를 보여주며 세상에 대한 시선도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여러 자화상을 보며 너 자신을 알고 무지를 깨쳐라고 외치던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떠오른다. 그렇게 자의식, 예술적 자아, 사회적 자아, 가면의 세계와 진실의 세계를 표현한 자화상을 보며 나의 내면의 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음악이나 미술, 문학 등에서도 자화상이나 자서전은 작가들이 흔히 다루는 소재다. 먼저 자신에 대한 성찰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일까. 관상학은 아니지만 한 점의 자화상을 통해서도 작가의 개성, 인생관, 예술관을 볼 수 있다니, 재미있는 경험이다.
허물을 벗기는 일은 누구나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페르소나를 쓰고 살았던 일생에 대한 자기반성, 자기표현이 자화상이라니, 무심코 스쳤던 자화상들이 이젠 새롭게 보인다.
책에서는 안드레아 만테냐의 <이태리 정원에서 야만과 무지를 내쫓는 미네르바>,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 플라톤의 영혼의 아름다움, 아리스토텔레스의 성격과 습관의 실천문제, 롤란드 사베리의 <오르페우스>, 푸코의 자기로 돌아가기, 공재 윤두서의 고요 가운데 자신을 지키는 예술, 카라바조, 백석, 바를라흐 등의 예술과 삶에 대한 통찰이 가득하다.

시와 산문, 그림과 사진, 조각과 철학이 있는 심미적 인문학이다. 실제적이고 생활 중심의 심미적 체험을 제공하는 심오한 이야기다. 마음의 아름다움과 좋은 삶에 대한 인문학이랄까. 무심코 펼쳤다가 쏙 빠져드는 깊이 있는 예술적 삶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