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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거짓 그리고 숨겨진 진실
김유정 지음 / 자유정신사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된 거짓 그리고 숨겨진 진실]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 변질된 정의에 대한 철학적 사유...
거짓이 없는 사실인 진짜 진실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진실 찾기란 사막에서 우물 찾기처럼, 우물에서 숭늉 찾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해서 진실과 거짓의 비율을 묻는다면 거짓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은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게 아닐 것이다. 때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뒤집어 지는 운명일 것이고, 때로는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바람의 차이일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상식조차 시절을 따라 바뀌기도 하기에 진실이나 거짓도 시대에 따라 바뀔 것이다. 거짓이 진실인 양 오랜 세월 둔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진실이건만 드러내지 못해 숨어 있어야만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과 거짓의 경계란 어디쯤 일까. 늘 애매모호하거나 감히 다룰 수 없었던 영역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철학적인 사유를 한다면 무엇이 그 대상이 될까.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시대적 관점에 따라 정반대가 되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생각하다보니 진실의 실체와 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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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래된 거짓을 찾아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 작업을 이 책 속에 담았다. 사랑에 대한 거짓말, 자유에 대한 거짓말, 정의와 도덕에 대한 거짓말, 국가와 권력, 부, 명예에 대한 거짓말, 신에 대한 거짓말, 존재에 대한 거짓말, 진리에 대한 거짓말, 평등에 대한 거짓말, 죽음에 대한 거짓말 등에 대한 질문들이 무려 180가지나 된다.
사랑은 조건 없는 것이다. 조건이 있다면 거래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 그럴 수 없다. 이기심을 자책하고, 순수하지 못함에 비관한다.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을 열망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다. 거짓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의 요구 조건을 서로 수용하는 것이며 또 양보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조건 없는 자애를 사랑의 본질로 착각하기 쉽다. 사랑은 100가지 조건이 필요하고, 그것을 지켜가는 과정이다.
처음 만남에, 사랑이 무조건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서로 바라는 것이 많은 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일치감은 시간과 더불어 해소되고, 불일치가 시작된다. 이때, 서로 바라는 조건이 드디어 드러난다. 이때가 수용과 양보를 통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작은 물건 하나 사는데도 거래 조건이 필요하다. 사랑은 인생 최대의 거래이다. (27쪽)
무조건적인 사랑도 있겠지만 대개의 사랑은 조건에 끌리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돈이든, 인물이든, 성격이든, 마음 씀씀이든, 배경이든 직업이든 뭔가 통한다는 건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기 때문 아닐까. 첫 눈에 반한다는 것도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은 인생 최대의 투자이거나 도박이라고 하지 않나. 속마음을 숨긴 여우처럼, 저의를 가진 늑대처럼 사랑도 본능적인 이기심의 필요충분조건을 채워야 이뤄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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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경험과 지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경험과 지식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부자유 상태도 변함없다. 자유를 향한 힘든 여정이 오히려 자유를 빼앗는 셈이다. 현재 자신을 설득하고 위로하기 위한 거짓이다.
자유는 우주를 구성하는 무한 표면에 펼쳐져 있어, 한 가지 자유로워지면 반대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너무 멀리 있어서, 작은 자유의 성취는 별로 의미가 없다. 지금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나, 지금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할 때나, 자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자유는 황금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머니 속에 가득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44쪽)
행복을 찾아, 파랑새를 찾아 집을 떠나 먼 곳을 찾아 헤매다가 집에서 자신이 그토록 찾던 파랑새를 찾았다는 틸틸과 미틸의 이야기처럼 자유 역시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유란 몹시 추상적이지만 그래도 마음의 자유가, 지금 여기에서의 자유가 가장 구체적인 형태의 자유가 아닐까. 자유의 성취 역시 자유를 만끽하려는 지금의 여유로운 순간에 누리는 해방감일 것이다.
정의는 분명, 악과 맞서는 선의 편이다. 그렇다고 그가 악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정의의 역사가 흐르면서 세상은 선으로 가득해야 했지만 인간 역사 이래, 선과 악의 균형이 깨진 적은 없다. 오래된 거짓이다.
정의의 악령은 더 큰 희생을 방지하고, 더 편안한 미래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 때마다 비밀스럽게 나타난다. 정의의 악령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핑계로, 악을 정당화한다. 반복되는 악의 정당화로,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할 능력조차 상실했다. 이에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탓이다.
악이 선으로 위장되고, 선이 악으로 호도되어 무엇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선악을 다시 결정하기까지 지금 우리 정의는 선악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정의롭지 못한 두 번째 이유다. (68쪽)
다수의 편을 드는 게 정의일까, 아니면 약자의 편을 드는 게 정의일까. 정의의 가면을 쓴 악, 선이 점차 변질된 악을 생각하며 ‘도대체 정의가 무엇일까, 정의가 있기는 한가’라는 의문도 든다. 원래 선이었던 정의의 변질은 누구의 책임일까. 사회 지도층일까, 아니면 정치인들 일까, 그도 아니면 우리 모두의 탓일까.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까. 생각할수록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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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사유해보는 시간이었다. 진실의 실체와 진실인 것처럼 호도되는 거짓의 가면을 들춰본 시간이었다.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정반대의 관점처럼, 같은 시대,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나라마다 진실과 거짓은 다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변하지 않으나 진실과 거짓은 감추거나 숨기기도 한다. 거짓이 없는 사실인 진짜 진실은 과연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살면서 진실을 얼마나 알게 될까. 무심코 책을 펼쳤다가 많은 생각을 해본 시간이었다. 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 변질된 정의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