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 징비록 - 지옥 같은 7년 전쟁, 그 참회의 기록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 징비록/조정우/세시] 임진왜란의 참회 기록을 소설로~
서애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전쟁 기록물인 <징비록>의 인기가 몹시 거세다. 소설 징비록, 드라마 징비록, 완역본 징비록 등으로 접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은 <징비록>이다. 400여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비슷한 상황 같아서 말이다. 이기적이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지금의 정치권, 당쟁의 소용돌이에 민심을 외면하는 지금의 정치권과 임진왜란 시절의 지배세력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작가의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은 역시 소설 읽는 맛을 더한다. 이전에 읽은 이재운의 ‘소설 징비록’에는 작가의 선대 할아버지였고 호종일기를 쓴 승지 이효원과 징비록을 쓴 류성룡의 대면으로 시작했다. 이번에 조정우 작가의 ‘소설 징비록’은 봉화대를 관리하던 봉수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같은 제목이지만 서로 다른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색다른 묘미였다.
소설은 임진년(1592년) 4월 13일 새벽, 아미산 응봉 봉화대의 봉수군이 봉화를 올리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봉화의 개수는 전쟁이 시작된 후 가장 아쉬운 부분이 아니었을까.
봉수군은 새벽안개를 뚫고 보이는 절영도 앞바다의 왜선의 수적인 압도감에 놀란다. 전시 수준의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봉수군의 책임자인 오장은 새까맣게 몰린 배를 보고서도 겨우 2개의 봉화를 올리는데 그친다. 지난 밤 자리를 이탈한 상황이었기에 직무 유기에 대한 추궁이 두려웠던 것이다. 제대로 된 봉화를 올리지 못한 책임은 이후 조정의 전략과 전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왜군을 겨우 1만 이하로 보게 했으니 대대적인 전쟁이 아니라 소소한 노략질 정도로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이후엔 봉화의 수를 늘리지만 그 때는 늦어도 너무 늦은 뒤였다. 처음부터 봉화만 제대로 5개를 올렸더라면 어땠을까. 역사에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자꾸 가정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전쟁에 대처하는 이들의 서로 다른 자세가 슬프고 분통 터지면서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함께 죽기 살기로 싸우자는 송상현과 도망 갈 빌미를 대는 이각의 전쟁에 대처하는 자세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에 어이가 없을 정도다 왜장의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 ‘는 팻말에 대응한 송상현의 ‘싸우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는 문장은 보면 볼수록 명장의 충정과 패기, 필력까지 느껴진다. 모든 대장들이 이와 같았다면 어땠을까.
책에서는 의병들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일화는 그대로 각각의 위인전을 보는 것 같았다. 의병들은 관군들이나 관리들의 무시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내놓으며 선조들이 물려준 땅을 지키고자 했다. 고향의 지리적 이점을 잘 살리면서 매복과 공격, 퇴각을 거듭하며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렇게 전공을 세운 무명의 의병들이 없었다면 조선의 앞날은 더욱 어둡지 않았을까. 이 땅을 지키고자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 게릴라전을 펼친 의병들은 시민군의 모범이었다.
조선 팔도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경남 의령의 홍의 장군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장면, 의병장 고경명의 활약, 천하장사 의병 대장 김덕령의 괴력과 충정, 김천일, 이원일 등의 의병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은 대목이었다. 이들의 지략과 용맹, 물러서지 않는 담대함, 백성과 관군의 지원까지 모으는 능력, 통쾌한 승전보까지 읽으면서 흥미진진한 시대극을 보는 듯 했다.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던 신립 장군이 천혜의 요새인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에서 기마전을 준비하다가 전사한 이야기에서는 그의 전술 없음에 안타까웠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자 항복하고 순왜가 된 조선군인들의 이야기에서는 답답함과 분노가 일기도 했다. 말을 타고 왜장을 무찌르거나 왜적을 물리치며 첫 승전보를 올렸던 조선의 조자룡인 정기룡의 쾌거에서는 박진감에 속이 다 후련할 정도였다. 해전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 진주 목사 김시민의 활약, 왜장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이야기가 많아서 색다른 소설 징비록이었다.
당시 토요토시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리라는 소문이 퍼져있던 상황이었지만 너무도 무사 안일한 태도를 보였던 선조와 조정, 일본의 분위기를 감지하러 보낸 김성일의 무책임한 보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러 명에 망명하겠다던 선조의 이기주의 근성, 명의 눈치만 살폈지 세계 정세에는 무지했던 권력자들 등은 분명 실망스런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십여 년 전, 율곡 이이가 십 만 대군 양병설을 주장할 때, ‘나라가 태평할 때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고 반대했던 류성룡의 뒤늦은 후회를 보며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가의 부재가 조선의 전란으로 몰아넣었음을 생각한다. 김성일의 거짓 보고를 알고서도 같은 동인이라는 점 때문에 안일하게 대처한 류성룡을 보며 무모한 당파싸움이 국난을 초래한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소모적인 당쟁으로 국고를 낭비하거나 국난을 초래하진 않는지, 징비의 시선으로 지금의 정치가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적극 추천이다.
<소설 징비록>은 역사 소설을 주로 쓰고 있는 조정우 작가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장옥정>, <기황후>, <이순신 불멸의 신화>에 이어 네 번째로 만난 그의 소설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기에 역사 소설을 꾸준히 읽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역사 소설이 더 많이 나와야 독자들이 우리 역사를 좀 더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반가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