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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새벽의 인문학]새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문학…
새벽은 자기 시간대, 자기 기후로 세상을 덧칠하는, 석화된 숲과 잠자는 미녀들의 세상이다. 얼어붙은 이슬로 단단해진 마른 잎은 유령의 손이 되고, 사슴은 숲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돌아다니며 먹이가 녹기를 기다린다. 우리 삶의 거대한 괄호의 일부인 새벽은 삶과 물질세계의 깊숙한 회랑이 손짓할 때 살아서 죽음에 저항하는 세상으로 우리를 부른다. - ‘프롤로그’ 중에서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에 대한 인문학』을 읽으면서 새벽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역동하는 새벽에 대한 사유들로 인해 새벽이 새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새벽을 주제로 이리도 다양하고 깊은 통찰을 할 수 있음에 놀랐다. 어둠이 어슴푸레 남아 있는 새벽에 대해 이리 많은 생각을 해보기도 처음이다.
악명 높은 네덜란드 여배우이자 고급 스파이, 고급 창녀이기도 했던 마타하리의 뜻풀이가 새벽과 관계있다니. 말레이어로 마타하리는 ‘낮의 눈’ 또는 ‘새벽의 눈’이라고 한다. 남들이 움직이기 전에 행동을 개시하기에 그런 예명을 지었을까. 새벽에 피고 해질 녘에 진다는 꽃인 데이지도 ‘낮의 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해가 지평선에서 18도 아래에 있을 때가 새벽이라니, 밤과 새벽, 아침의 경계를 지을 수 있을까. 수탉이 새벽에 우는 이유도 궁금해진다.
사계절 중에서도 봄에 태어났기에 봄의 새벽이 가장 끌린다.
비둘기들이 공중에서 집단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일사불란할 수 있을까 싶은데, 사실 이런 것은 ‘창발적 행동’이라 부를 수 있다. 창발성이란 인간의 의식을 설명할 때에도 종종 쓰는 용어인데. 개체(비둘기, 세포, 벌, 뉴런 등)가 무의식적으로 일제히 움직일 때 생겨나는 인식을 말한다. (29쪽)
이른 새벽 염주비둘기의 일사불란한 비행과 비둘기들의 활기찬 교감에 대한 대목을 읽으니 우리 집 베란다의 새벽이 생각난다. 깨를 말리던 어느 가을에 비둘기 한 쌍이 살포시 날아와 꾸꾸 거리며 깨를 먹어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집이 꼭대기 층이라서 새벽이면 활강하는 비둘기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새벽이면 유난히 비행이 잦은 비둘기들, 벌레를 잡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걸까.
『인상, 해돋이』를 그려 인상파의 존재를 알린 모네는 새벽 일찍 일어나 빛의 변화를 캔버스에 남겼다고 한다. 이 그림은 센 강 어귀에서 자신의 방 창을 통해 보이는 새벽 항구의 모습, 해가 떠오르면서 아침노을이 점점 밝아지는 모습, 물 위에 어리는 붉은 빛 그림자의 일렁이는 순간의 모습 등이 가히 인상적인 그림이다.
“정말 아름답고 고와서 미친 듯 일하기 시작했소. 해와 물 위에 비친 빛 그림자를 따라서...... 연기 떡에 안개가 내려앉았소.” 모네는 의사당 건물을 빛과 해를 담아 세밀한 습작으로 자주 그렸다. (중략) 1874년 그룹전을 열면서 몽롱한 대기를 담은 한 점에 『인상, 해돋이』라는 제목을 붙인 데서 인상파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 (82쪽)
모네의 그림과 함께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영국 화가인 터너의 그림에서도 역동적인 빛의 일렁임이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새벽이란 무엇일까. 새벽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새벽에 대한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새벽에 대한 정리를 해보게 된다.
새벽에 대한 이미지는 대개 희망적이고 건강하다. 짙은 어둠에서 깨어나는 새벽은 구원의 순간이자 마법의 순간이다. 하루의 행운을 비는 기원의 시간이다. 특히 해가 뜨는 순간의 환한 기운 때문에 소원이 통하는 마법의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이 되면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과 사물은 깊은 수면 상태를 벗어나 서서히 눈을 뜬다. 지구의 반쪽은 어둠을 보내고 밝음을 맞이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의 인간을 깨우고 먼지가 쌓인 사물들도 깨운다. 숲 속에서의 새벽은 새들의 재잘거림으로 시작하고, 도시의 새벽은 첫 차의 시동으로 시작한다. 새벽 바다는 조용히 밝은 여명을 기다리고 새벽을 여는 시장에선 싱싱한 먹거리가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새벽은 부지런하고 활기차다. 깨끗하고 조용하다.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하다.

일찍 일어나는 새들은 벌레를 먹을 수 있어서 일까. 책에서는 새 이야기가 많다.
밤에서 새벽,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들을 어떻게 구분할까.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할 것이다. 성공을 원한다면 새벽이 있는 삶을 택할 것이다. 빛을 기다리는 시간인 새벽을 통해 부지런함과 활기참, 생동감을 배운 시간이다. 무엇보다 새벽의 소중함을 일깨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