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다 빛나는 미술가 8
문희영 지음,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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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다/사계절]비운과 불멸의 화가 고흐의 삶과 작품을 만나다.

 

강렬한 해바라기, 아를의 노란집, 빛이 요동치는 별밤을 멋지게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강렬하고 역동적이고 인상적이다. 병과 가난,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권총 자살로 37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일까. 그의 생전에 팔린 그림이 단 한 점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들이 그의 사후에 가장 비싼 작품으로 등극한 아이러니 때문일까. 그의 외롭고 가난했던 삶과 그의 강렬하고 역동적인 그림이 보색의 대비처럼 선명하기에 더욱 극적인 운명 같다. 그의 사후 세인들의 평가가 생전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기에 고흐를 생각할수록 애잔함이 더한다.

 

 

 

 

사계절 출판사의 빛나는 미술가시리즈의 8번째 책인 빈센트 반 고흐,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다을 보면서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 동생 테오와의 각별했던 우애, 그의 그림을 사랑했던 테오의 유족들, 고갱과의 불화, 닥터 가셰와의 우정 등을 보면서 세상이 좀 더 일찍 그를 알아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막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고흐가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하는 속상함도 있고......

 

책을 통해 함께 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역경과 고난, 아픔과 비난을 극복해내는 여정이었다. 한 편의 열정적인 비극을 보는 듯해서 막판엔 처연함까지 드는 여행이었다.

 

 

 

 

네덜란드 남부 프로트 즌델트에서 태어난 고흐는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지만 그의 집안은 신학자와 아트 딜러들, 화가들이 있었기에 그림과 무관했던 환경은 아니었다. 가난한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16세에 그는 숙부인 화상 구필의 조수가 되어 헤이그, 런던, 파리 등지에서 일했다. 유달리 친했던 동생 테오와 구필 화사에서 함께 일하기도 하고 전도사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길이 화가임을 깨닫는다.

 

1880, 27세의 나이로 화가가 되면서 헤이그에 있는 사촌 모베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밀레의 그림을 교본으로 삼아 따라 그려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한다. 비록 어둡고 투박한 그림이자만 소박하고 고귀한 농민들의 삶과 힘겹게 사는 노동자들의 삶에서 노동의 고귀함을 느끼며 그림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매춘부 씨엔과의 동정어린 잠깐의 동거, 북부 드렌터를 거쳐 고향 누에넨의 부모님집에서의 그림 그리는 생활, 안트베르펜에서의 미술 학교에 등록, 파리 코르몽의 화실 등을 거치면서 점점 그림의 기초를 터득하게 된다.

 

 

 

 

그의 그림의 변화는 파리에서 시작된다.

파리 몽마르트의 테오 집에서 화실을 꾸민 후에는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밝고 화려한 색채로 거듭난다. 이전에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해 폴 세잔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의 스승인 피사로의 칭찬을 받기도 한다.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는 고갱과 작품을 교환하기도 한다. 탕기 영감의 미술 재료상, 사무엘 빙 가게 등에서 일본 판화를 감상하면서 보색이 주는 강렬함을 보면서 자신의 그림의 방향도 찾게 된다.

 

 

 

 

그림의 방향을 잡은 고흐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색에 끌려 남프랑스 아를로 가게 된다. <노란집>, <아를 포룸 광장의 케페테라스>,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 <열두 송이 해바라기가 꽂힌 꽃병이 있는 정물>, <고흐의 방> 등의 작품을 남긴다.

 

고흐의 삶에서 아를의 노란집은 가장 격정의 시간이었으리라. 고흐다운 색채가 더욱 선명해지는 시기였고 불멸의 명작 중의 명작을 탄생시킨 시기였으니까. 노란집에서 고흐는 자신이 좋아했던 화가 고갱과 함께 그림을 그려 나가지만 결국 불화로 헤어지게 되고 자신의 귀까지 자른다.

사실 고갱과 고흐는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달라도 많이 다른 화가들이었다. 고갱의 붓은 거침없고 색채도 화려하고 자유롭다. 말쑥하고 깔끔한 성격에다가 기억력을 되살리며 꼼꼼하고 느리게 그린다. 그와 반면에 고흐는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성격과 본 장면을 빠르게 그려간다. 이런 차이로 인해 고갱의 잔소리와 고흐의 고집이 서로 대립되면서 자주 다투게 되고, 곧 고갱이 떠날 것이라는 불안감에 결국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되면서 고갱과 이별하기에 이른다. 누가봐도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고흐를 고갱이 좀 더 인내하고 지켜줄 수는 없었던 걸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 시기다.

 

 

이후 고흐는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붓꽃>,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별이 빛나는 밤>, 조카를 위한 그림인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등 명작을 그려 나간다. 퇴원 후 오베르에서 닥터 가셰와 예술적 교감을 나누지만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고흐가 죽은 6개월 뒤 테오도 세상을 떠나고, 남은 테오의 가족들은 그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실로 그의 그림들은 세상의 알려지게 된다.

 

테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1890729일 새벽 1, 고흐는 서른일곱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흐의 옷 속에는 테오에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써 내 이성을 반쯤 잃어버렸지......(151)

 

10년의 세월동안 900점의 페인팅, 1,100 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2,000 여점의 그림을 남겼던 고흐.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27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게 된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고흐의 생활에서 동생 테오의 적극적인 지지와 이해, 경제적 도움이 없었다면 고흐의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고흐가 좋아했던 고갱이나 가셰가 좀 더 고흐를 이해했더라면 어땠을까. 바람과 빛, 사물들이 소용돌이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일찍 사그라든 열정적인 불꽃 같아서 아쉬움이 가득하다.

 

 

 

 

인상파와 점묘법,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 고흐. 그의 붓질은 굵고 짧다. 그가 그린 붓꽃과 밀밭,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고 잇으면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고, 마르고 비틀린 잎, 까마귀를 보고 있으면 삶과 죽음에 대한 강렬한 통찰도 하게 된다. 삶의 흔적을 고귀하게 여겼던 고흐, 진실한 눈으로 사물과 조우하며 경건하게 그렸던 그의 그림들, 꿈틀거리고 용솟음치는 생명의 열기가 드러나는 그림들, 색채와 구성의 강렬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명성을 죽은 뒤에야 이룬 고흐의 삶은 누구보다 우울하고 슬픈 결말이기에 드라마틱하다. 비운과 불멸의 화가 고흐의 삶과 작품을 만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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