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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짚은 하이진 - 사고로 파괴된 사춘기 소녀의 몸과 기억에 관하여 ㅣ 장애공감 1318
쥬느비에브 튀를레 지음, 발레리 부아예 그림 / 한울림스페셜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목발 짚은 하이진]글을 쓰며 자유와 행복을 알게 된 장애 소녀...
‘사고로 파괴된 사춘기 소녀의 몸과 기억에 관하여’
표지에 있는 이 글귀를 보면서 미스터리나 괴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용은 하이쿠를 지으며 마음과 몸의 건강을 찾아가는 장애 소녀의 이야기였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211/pimg_7269711951151140.jpg)
하이진은 하이쿠를 짓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이쿠는 5·7·5의 17 음절로 이루어진 일본의 정형시다. ‘숨 한 번의 길이만큼의 시’라고 불리는 매우 짧은 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랑과 삶, 자연과 우주 등 모든 것이 녹아 있기에 함축적이고 다의적이다.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와 ‘~구나’, ‘~여’, ‘~로다’ 등의 맺음말을 넣는 것이 규칙이다.
하늘이 끌어
내 몸이 추락하네
물웅덩이로 (9쪽)
자동차 사고로 온 몸을 다치고 뇌까지 다친 주인공 기유메트는 전두엽 기능 장애를 겪게 된다. 몸의 오른쪽 기능이 마비되고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수술을 통해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정도다. 의사는 탈억제 행동들은 통상적 증상들이라고 하지만, 기유메트는 자신의 처지가 혼란스럽다. 오른쪽 팔과 다리는 마비되고 약간의 기억상실증세가 그녀를 괴롭힌다. 무엇보다 사고 직후의 아픔들을 차단하고자 모르핀까지 맞게 된다.
기유메트는 잃어버린 기억들과 고장 난 몸을 치유하고자 재활운동, 물리 치료를 받게 된다. 손과 발의 감각을 조금씩 찾게 되지만 여전히 장애인일 따름이다. 몸과 마음까지 망가지고 깨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기유메트는 폭언과 폭력이 일상사다. 건강이 점차 회복되면서 난폭함은 줄었지만 한 번 몸에 밴 버릇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기유메트는 가족들의 헌신으로 점쩜 용기를 얻게 되고, 하지 못하던 것들을 조금씩 해내면서 성취감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센터의 맨슨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은 기유메트를 변화 시킨다. 맨슨 선생님은 처음엔 시를 읽어 주고, 그 다음엔 굵은 수성 펜으로 이름을 쓰게 하고, 글자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기유가 하이쿠를 쓰도록 돕는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잠재된 원인모를 분노와 폭력을 잠재우게 한다.
저 아래 강가
골짜기 채운 안개
길을 감추네(63쪽).
하늘 젖히고
황금 보인 짓궂은
찰나의 바람(99쪽)
느릿한 일출
붉은 빛의 하늘을
흩어버리네 (112쪽)
슬픈 하늘에
희망의 색 뿌리는
무지개 하나 (134쪽)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더 좋아진 기유는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아침을 즐기게 된다. 더구나 기욤과의 우정과 사랑은 기유에게 더욱 큰 힘을 준다.
글을 베껴 쓰고 흰 종이를 채워가는 일이 상처가 아니라 빈 공간을 채워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글쓰기를 통해 상처 입은 삶에 점차 새살이 돋음을 느낀 기유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기유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과 행복감을 누리게 된다. 오펠 리가 바이올린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도 해주기도 한다. 폭언과 폭력 대신에 용기를 주는 말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롭다는 건, 네가 마주하는 것들을 거부하지 않는 거야. (164쪽)
지금 이 순간 세상은 온통 거대하고, 수평선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하늘을 쳐다보거나, 사과 꽃의 달콤한 향에 취해 꽃구름 속에 있는 우리를 상상할 때마다 행복하다.
종이 위에 썼다고 다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글은 휘갈겨 쓴 의미 없는 낙서들 이상의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글은 자유 그 자체다. (172쪽)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211/pimg_7269711951151141.jpg)
한 순간의 사고로 몸과 마음을 다쳐 절망에 빠졌던 소녀가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가 뭉클하다. 글을 쓰며 자유와 행복을 알게 된 장애 소녀의 글쓰기 테라피라고 할까. 글쓰기는 힐링이라고 생각하기에 공감가는 이야기들이다. 폭언과 폭력이 글쓰기로 인해 격려와 용기를 주는 말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의 글쓰기 수업이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