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 마음의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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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詩/정끝별/마음의숲]돌고 도는 돈에 대한 시, 많구나~

 

장식적이고 환상적이고 기이한 미적 원리를 선호하는 최근 시들의 경향에 비하면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일견 투박하다. 그러나 일상이되 존재론적이고, 익숙하되 심오하며, 비판적이되 뜨겁다.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삶은 얼마나 비루하고 염치없는 삶이겠는가. ‘돈-詩’는 바로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정끝별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하루라도 돈과 멀어진 삶은 생각도 못 한다.

돈이 아니면 돈과 대체되는 신용카드라도 만진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가격표라는 태그를 달고 있기에

집을 나서는 순간 돈을 지갑에 채워야 마음이 든든해진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지만 돈에 초월해서 살고 싶을 때도 있다.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기에 늘 중심을 잡으려고 하지만 마음만큼 그리 쉽지 않다.

시인들이 돈에 대한 시를 쓰다니.

하긴 삶을 털어 놓는 시에 돈이 빠질 수는 없는 법이지.

좀 의외지만 솔직한 시라서 좋다.

 

“수단이 목적으로 상승한 가장 완벽한 예가 돈”이라 했던 이는 짐멜이었고, “세상이 ‘신을 위하여’에서 ‘돈을 위하여’로 바뀌었다”고 개탄했던 이는 니체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돈이었으나 오늘날 돈은 인간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4쪽)

 

돌고 도는 돈이지만 돈이 없으면 인간 생존 지수는 낮다.

모든 게 돈으로 값을 매기는 세상이기에 물건을 볼 때마다 자동으로 가격이 오버랩 된다.

수중에 든 돈의 액수에 따라 든든 지수가 달라진다.

모든 욕망은 돈과 동행하기에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천박하다고 주입 받기도 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전혀 자유롭지 않기에 돈을 보는 나의 시선은 늘 이율배반적이다.

모순 덩이다.

 

나는 아르바이트 소녀,

24시 편의점에서

열아홉 살 밤낮을 살지요.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이면 좋겠지만

굳이 앞날을 계산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바코드로 찍혀 있는,

바꿀 수 없는 앞날 인 걸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나는

광장의 팬지처럼,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지요

화장만 고치고 나오지요

 

애인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우린 컵라면 같은 연애를 하지요

우린 뜨거운 물만 부으면 삼 분이면 끝나거든요

 

가끔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엄마 아빠도 힘들게

엄마 아빠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아르바이트는

죽을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 박후기 『아르바이트』 전문

 

아르바이트 인생, 아르바이트 연인, 아르바이트 부모

몹시 슬픈 인생이다.

하지만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기에 일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해본 기억이 까마득하지만 나름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인데…….

어차피 아르바이트는 일시성 아닌가.

 

내가 네 번째 감옥에서 나온 뒤

그러고도 연금당한 날

나는 열 살쯤의 아이로

돈 천 원짜리에 새 한 마리를 그렸다

그것을 다른 돈과 함께 썼다

 

6년이 지났다

1998년 2월 16일

새 그린 천 원짜리가

나에게 돌아왔다.

 

경기도 안성에서 썼던 것이

바다 건너

제주도 KAL호텔 앞 술집에서 나에게 돌아왔다.

 

나-야 네가 웬일이냐

돈-오랜만이다. - 고은 『재회 』전문

 

돈이 먼 길을 돌아 다시 주인에게 왔다니, 몹시 신기하다.

돌고 도는 돈이지만 내 주머니를 빠져나간 돈의 행방을 나는 모른다.

내가 그리워 돌아왔는지, 다시 돌아 나갔는지도 전혀 모른다.

왜냐면 난 돈에 낙서를 한 적이 없으니까.

이제라도 해볼까. 돈에 낙서하면 위법이라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돈 낙서가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이 책은 2013년 봄부터 2014년 가을까지 경향신문에 ‘돈-詩’라는 코너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된 시집이다. 66명 시인의 66편 돈과 관련된 시들의 향연이다. 한국의 웬만한 시인들은 모두 들어 있다고 할까? 시를 읽고 난 저자의 감상도 읽는 맛이 있다.

 

인간이 만든 사물인 돈을 인간이 숭배하는 세상, 정말 아이러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과 돈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몹시 아슬아슬하다.

돈으로 포장된 사물, 돈으로 보지 않으려 외면하는 모습도 모순이다.

지금 세계는 화폐경제가 쥐락펴락하기에 ‘돈-詩’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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