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 백 마디 불통의 말, 한 마디 소통의 말
김종영 지음 / 진성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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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김종영]수사학의 역사를 들춰보며 배우는 공감과 소통의 말하기~

 

세계사에서 배운 중세시대 고등교육의 7자유교과에는 문법, 수사학, 변증법, 산수, 기하, 음악, 천문이 있었다. 이중에서도 수사학은 라틴어 문법과 함께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과목이었다. 이 중에서 산수나 기하 음악과 천문 등은 접할 수 있는 분야지만 변증법과 수사학은 접하기 어려웠기에 궁금했던 분야다.

 

 

『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제목만 보고는 아나운서들의 말하기 기법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부제라고 할까? ‘상대의 마음을 얻는 공감과 소통의 수사학’이라고 쓰여 있다. 일리아스에서 개콘까지! 2700년을 넘나든 동서양의 말하기 정수를 밝히고 있다니, 표지를 꼼꼼하게 읽는 순간, 전율이 인다.

 

그동안 궁금했던 수사학 개론서를 만나다니.

 

여러분, 전쟁의 승리는 군사의 수와 힘으로 결정되지 않소! 그것은 어느 편의 정신력이 더 강한가에 달려 있음을 아시오. 가족과 재회하는 최고의 길은 용감한 전사가 되는 것이오.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을 이기는 것밖에 없소. (8쪽)

 

기원전 401년 페르시아 군대의 용병으로 갔다가 페르시아가 패하면서 전장에서 고립무원이 된 그리스 용병들에게 싸울 것을 독려하는 말이다. 이렇게 수사학 리더십을 발휘한 이는 장군이 아니라 일개 병사였던,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었다.

 

말의 꾸밈을 말하는 수사학은 예나지금이나 리더의 소통의 원리로 통하나보다.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는 수사학을 만사의 여왕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책의 절반을 수사학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수사학이 인문학의 출발점이기에 놓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그레고르 라이쉬의 목판화인 ‘수사학의 알레고리(1503년)’ 설명하면서 수사학의 포문을 연다. 그림 속에는 수사학의 여인을 둘러싼 주변에는 시집을 든 베르길리우스, 『수사학』을 쓴 아리스토텔레스, 법전을 완성한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도덕책을 든 세네카, 역사책을 든 살루스티우스, 웅변가 키케로 등이 있다.

 

수사학(rhetoric)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지적 성장을 위한 필수과목임과 동시에 설득과 전달을 위한 언어 장식과 언어 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수사학은 기원전 5세기 경 아테네에서 시작된 말인 ‘레토리케’ 로 공적인 자리에서의 연설가 또는 웅변가를 의미했다. 동양에서도 『주역』의 ‘건괘문언전’에 공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군자는 덕을 밀고 나가 업을 닦는다. 충과 신은 덕을 밀고 나가는 수단이 되고 말을 닦고(修辭)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은 업을 하는 수단이 된다. (23쪽)

 

국어사전에는 ‘말이나 문장을 수식해 더 묘하고 아름답게 하는 일 또는 문장이나 사상,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언어수단들의 선택과 그의 이용 수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수사학은 민주주의와도 역사적 인연이 깊다.

수사학은 민중이 참주와 귀족을 몰아내고 직접 통치하는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작한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말로써 호소하는 것이 표를 얻는 수단이 되면서 부터다. 자유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며 투표로 결정하던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소피스트들을 아테네로 불러 모았다. 대중이 자신에게 표를 던질 수 있도록 대중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던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말 잘하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토론의 힘, 웅변의 능력도 수사학에서 결정 나면서 말 잘하기 교육을 담당하던 소피스트들의 활동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간다. 수사학의 발달에 소피스트들의 역할이 컸지만 반대로 병폐도 드러나게 된다. 오죽하면 플라톤은 수사학이 감언이고 아첨이며 나쁜 것이라고 했을까?

 

수사학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들어 보자.

프로타고라스나 고르기아스 등 다른 소피스트는 ‘폴리스 생활을 잘하는 기술’이라고 했다. 호메로스는 남자들의 명예를 높이는 곳이 싸움터뿐 아니라 회의장에도 있다고 했다. 헤시오도스는 말 잘하는 능력을 신의 은총이라고 했다. 수사학을 바르지 않은 용도로 사용하는 소피스트들이 늘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가짜를 갖고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소크라테스 역시 나쁜 연설가의 위험을 설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수사학의 기능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 설득의 유용한 수단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38쪽)

수사학의 고전인 『수사학』을 저술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는 설득의 3요소를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라고 했다. 그만큼 설득에는 화자의 인품을 갖춘 호소, 청자의 감성에 대한 호소, 청자의 이성에 맞춘 논리적인 호소 등 3박자를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가 인정한 최초의 수사학 교사인 퀸틸리아누스는 전인적인 교육과 함께 수사학을 강조했다.

 

정리를 하자면, 수사학은 설득을 바탕으로 한 전인적인 인간 교육의 기초였다. 생각, 말, 행동의 조화를 다루는 학문이었다. 말도 잘하고 일을 잘 처리하는 인물로 키우는데 필요했던 교육이었다. 적재적소에서 유용한 인간이 되도록 하는 데 수사학은 필수였다는 것이다. 인간이 있는 자리엔 말이 있고, 말에는 소통과 설득이 필요하고, 소통과 설득의 자리엔 늘 수사학이 있었다.

 

결국 수사학은 생각과 말, 행동 모두를 포함하는 종합적 개념이다. 신화, 문학, 역사, 법정연설문에도 등장했던 수사학은 설득의 유용한 기술을 탐구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이다.

이 책의 2부에서는 현대인을 위한 수사학적 소통의 기술이 나와 있다.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의 어원과 의미, 수사학의 발전과 그리스 민주정치의 발전사가 함께하는 이야기, 논쟁 기술과 자신의 정체성을 함께 교육하는 것, 공동체 생활능력까지 배양하는 수사학, 종합 학문으로 변해가는 수사학 역사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수사학의 역사를 들춰보며 배우는 공감과 소통의 말하기를 통해 말하기의 인문학 여행을 한 기분이다.

 

현대에도 수사학의 미학은 통할 것이다. 누구나 용기를 주는 말, 격려의 말, 설득의 기술은 필요하니까. 오히려 리더십을 비롯한 소통의 기술로서의 수사학은 예전보다 지금이 더 절실해 보인다.

지식과 실행을 아우르고 이론과 실천을 통합한 학문인 수사학을 통해 생각·말·행위의 조화를 생각하게 된다. 신뢰와 공감이 필수인 글로벌 시대, 설득이 필요한 민주주의의 시대, 필요한 지식을 다듬고 표현해야 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도 수사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이 등장한다면,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게 될까? 필연적 진리든 그럴 법한 이야기든, 우리도 아테네 시민처럼 현혹되지 않을까? 아니면 소크라테스를 따르게 될까?

진실한 언어 표현도 중요하고 설득과 공감의 기술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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