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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ㅣ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신동흔]옛 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어느 날 갑자기 거친 숲에 던져진다면?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말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리라고.
주저앉지 말고 길을 찾아 움직이라고.
이리저리 재고 눈치 보느라 쩔쩔매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고.
그렇게 숲의 힘을 자기편으로 만들라고. (51쪽)
책의 부제가 ‘옛 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다. 저자인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신동흔 교수의 이야기 콘서트를 직접 듣는 기분이다. 책에서는 이야기의 탄생과 성장, 소멸의 과정을 통해 이야기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길 떠나는 혹은 집을 나서는 숱한 주인공을 통해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치게 한다. 비슷한 서사를 가진 동서양 옛 이야기 비교도 흥미진진하다. 읽으면서 전율이 이는, 깊이 빠져들게 되는 매력적인 책이다.
이야기를 탄생과 성장, 모티브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이야기를 만들려면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끌리는 이야기가 되려면 특별한 요소가 끼어야 한다. 마법사, 무인도, 귀신, 부활 등 호기심과 상상을 끄는 요소가 더해져야 빨려든다. 이러한 모티브는(화소 話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여러 화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된다면 긴장과 재미를 일으키고 의미를 자아낸다. 그렇게 이야기는 화소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매력적인 이야기가 된다.
세계의 옛이야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화소의 목록을 집대성한 톰슨의 《화소색인Motif Index of Folk Literature》도 있다고 한다. 변신, 시간 이동, 공간 이동, 길 떠남도 중요한 화소가 된다. 이러한 화소들은 옹달샘처럼 이야기를 샘솟게 한다.
인물, 사건, 배경을 기본으로 매력적이거나 이색적인 화소의 연결이 흥미와 긴장을 돋운다니, 앞으로 화소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읽어봐야겠다.
누가 떠나는가, 혼자 떠나는가, 함께 떠나는가, 무엇을 가지고 떠나는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어디로 떠나는가, 자의로 떠나는가, 타의로 떠나는가,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떠나서 무엇을 만나고 어떤 일을 겪는가? 등 떠남에 대한 이야기엔 언제나 많은 화소들이 연결된다. 떠남과 동시에 이야기는 예측불허가 되고 긴장감이 조성되고 흥미진진해지고 쫄깃해진다. 주인공이 떠남으로써 성장과 발전, 무궁무진한 변화가 가능해진다.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떠남을 통해 새로운 돌발 상황, 낯설고 신기한 극적 체험을 하게 된다. 저자는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가 집을 떠나 숲 속으로 가는 과정, 살기 위해 숲 속을 내달리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 우리의 민간 신화인 《바리데기》가 여자라는 이유로 산 속에 버려지고 산신령의 가르침을 받아 삼강오륜을 깨치는 과정 등을 통해 떠남의 중요성, 떠나면서 겪게 되는 흥미로운 체험들을 이야기한다.
옛 이야기 속의 집과 숲의 상반되는 특성 비교로 떠남의 중요함을 말하는 부분이 참신하다.
집이 좁은 공간이라면 숲은 넓은 공간이다. 집이 닫힌 공간이라면 숲은 열린 공간이다.
집이 안전하기에 평화로운 공간이라면 숲은 위험하기에 투쟁적인 공간이다. 집은 익숙한 일상이 지속되기에 이완을 주는 공간이지만 숲은 예측불허의 특별한 변화들이 있기에 긴장을 주는 공간이다. 이처럼 숲은 집에 비해서 넓고 열린 공간, 위험하고 특별하고 긴장감을 주고 특별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집이 가정이라면 숲은 사회다. 집은 재미없고 답답한 감옥일 수도 있지만 숲은 무수한 변화와 역동의 공간이다. 집과 숲은 아주 대조적이다.
저자는 제주도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민간 신화 <삼공풀이>에서 숲 속으로 쫓겨난 막내 딸 이야기, 장화 홍련과 엄마 품이라는 감옥, 여우로 변한 누이 이야기인 여우 누이와 악어 아들이 벌인 참극의 전말, 심청 등의 이야기에서 떠나는 자와 머문 자의 엇갈린 운명도 이야기 한다.
콩쥐와 신데렐라는 ‘일 하는’ 인물입니다.
방에 머물러 웅크리는 인물이 아니라
움직이는 인물이지요.
그렇게 바깥세상과 접속하는 가운데
자신의 숨은 가치를 확인하고
빛나는 비약을 이룰 수 있었지요.
머무름과 길 떠남의 차이란
이렇게 크고도 큽니다. (91쪽)
옛 이야기를 찾아 이야기 원형으로서의 가치, 떠남과 머무름이 주는 이야기의 묘미들, 떠났다 돌아온 이들의 변화무쌍한 반전들, 동서양의 공통된 이야기들, 길을 떠나 모험의 세계로 들어서는 짜릿한 이야기들, 집을 떠나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떠남의 방법들, 길을 떠나 신나게 세상과 부딪치며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 문밖을 나서는 순간 긴장과 설렘, 새로운 세계가 열림을 옛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이야기 콘서트를 생생하게 듣는 기분이다.
이야기 속으로 떠나는 멋진 여행이다. 옛 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사는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낸 책이다.
이야기의 탄생과 성장, 소멸의 과정을 통해 이야기 만드는 구체적인 과정, 길 떠나는 혹은 집을 나서는 숱한 주인공을 통해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 비슷한 서사를 가진 동서양 옛 이야기 친절한 비교 등 모두 흥미진진하다.
이젠 집에 머물러야 할까, 아니면 숲으로 가야 할까? 머물러야 하나 아니면 떠나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면 ,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면 도움이 될 책이다.
이야기가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는 떠남이다. 소설을 극적이게 만드는 장치도 떠남이다. 삶을 역동적이게 만드는 것도 떠남이다. 나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서도 떠나야 한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