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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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장영희]영미 시와 소설에 그려진 사랑~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됩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작가들은 결국 이 한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여는 글에서

 

토마스 만 -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 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사랑을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고 장영희 교수의 글은 언제나 맑고 따뜻하다는 느낌이 든다. 가식이 적고 순수한 이미지다. 암으로 고생해서였을까? 제목에서 시간에 대한 초조감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평소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살기도 빠듯한 세상이기에 차마 죽음에 대한 배려까지 할 여유가 없다. 죽음학 수업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웰 다잉을 생각하지만 아직은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게 된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행동은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나만 그런가.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 실린 <사랑과 생명> 중 일부를 발췌해서 수록한 책이다. 부제가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말보다 강한 게 글이고 무기보다 강한 게 펜이라고 했던가?

‘편지는 키스보다 더 강하게 두 영혼을 결합해 준다.’ 이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이 한 말이다. 그 시절엔 종이 편지가 키스보다 더 강력한 감동을 줬을까?

요즘엔 연애편지든 안부 편지든 종이에 적어 전하는 메시지는 거의 없다. 카톡, 밴드 등 스마트한 메시지를 이용하는 시대다. 메시지를 전하는 형태는 바뀌었지만 메일도 최신형 편지이긴 하네.

 

눈과 서리 사이에서 꽃 한 송이가 반짝입니다.

마치, 내 사랑이 삶의 얼음과 악천후 속에서 빛나듯이 말입니다.

어쩌면 오늘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잘 있고, 마음도 편합니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 1780년 요한 볼프강 괴테가 샤를로테 폰 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12쪽)

 

독일의 대문호가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다. 문장은 명문이나 그녀의 마음을 붙잡지 못한 편지다. 더 강력한 어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녀를 사로잡지 못했기에, 그런 아쉬움이 드는 편지다. 진정성이 약했던 걸까? 애석타.

 

<이니스프리로 가련다>로 기억되는(내 기억엔 ‘가자, 이니스프리로’라고 기억되는) 예이츠는 지독한 짝사랑 덕분에 성숙하고 심오한 삶과 예술의 합일을 이루는 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을이 우리를 사랑하는 기다란 잎새 위에 머뭅니다.

보릿단 속 생쥐 위에도 머뭅니다.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워진 마가목 잎새가 노랗게 물들고

이슬에 젖은 산딸기 잎새도 노랗게 물들어 갑니다.

이울어 가는 사랑의 시간이 우리를 둘러쌉니다.

슬픔에 가득 찬 우리 영혼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죠.

우리 이제 헤어져요.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의 숙인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고 - 에이츠 ‘낙엽은 떨어지고’ (56쪽)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고 싶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예이츠가 짝사랑한 여인은 키가 크고 열정적인 성격의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였던 모드 곤이었다. 첫 눈에 반한 사랑이었지만 그의 고백은 늘 거절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딸인 이졸트 곤에게도 청혼하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예이츠는 20년 가까운 짝사랑을 포기하고 자기 나이의 절반인 아가씨와 결혼 했다고 한다.

 

키 크고 고귀하면서도 사과빛 빛깔로 물든

섬세한 얼굴과 가슴의 그녀 (60쪽)

 

모드 곤의 얼굴을 분홍의 사과 빛깔로 곱게 표현하며 사랑의 설렘을 전하고 있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생각했어요. 그러자 그 생각은

날카로운 사념의 화살이 되어 내 뼛속 깊이 박혔어요. (61쪽)

 

사랑을 생각하는 것도 뼈아픈 고통임을, 짝사랑의 비애를 아름다운 시어로 묘사하고 있다.

모드 곤의 미모와 조국 아일랜드 독립에 대한 열정이 널리 알려져, 그녀는 여왕처럼 많은 이들의 우상이었다고 한다. 야심차고 자유분방한 아름다운 그녀는 결국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인 맥 브라이드와 결혼을 했고,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사생아도 낳았다고 한다.

 

내 청춘이 다하도록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그녀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 날이 밝으면

그녀를 위해 깨어 있으며

나의 선과 악을 가늠해 본다. (63쪽)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자신의 푸른 청춘을 모두 바친 여인의 파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한 열정을 돌아보는 예이츠의 모습이다. 그녀의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로잡았을까. 나도 궁금해진다. 모드 곤을 향한 사랑의 희열과 고통이 예술로 승화했기에 예이츠의 청춘엔 절망을 남겼겠지만 위대한 시의 탄생에는 일조했을 것이다.

 

 

‘삶에 그리고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마부여 지나가라! ‘

자신의 묘비에 새기도록 그가 선택한 시구라고 한다. 그가 느꼈을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인간의 무기력함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장영희의 생각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구나 영미 시나 소설을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새해엔 시와 소설을 많이 읽고 싶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몰랐던 시인들의 일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쫄깃한 이야기들이 가득하기에 흥미로웠다. 책 속의 시인들을 한 사람씩 탐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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