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의 인상 - 조선 청년, 100년 전 뉴욕을 거닐다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 1
김동성 글.그림, 황호덕.김희진 옮김, 황호덕 해설 / 현실문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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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의 인상 (米洲의 印象)/김동성]조선 청년, 100년 전 뉴욕을 거닐다. 대단타!

 

조선 청년, 100년 전 뉴욕을 거닐다!

진짜야? 소설이야? 반신반의하며 펼쳐든 책은 실제 인물의 이야기였다. 100년 전 뉴욕에 도착해서 10년 간 공부를 했다는 인물은 김동성이다.

 

김동성(1890~1968)은 1890년 개성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906년 윤치호를 초빙해 한영서원을 설립한 주역이다. 당시 일본 유학을 가던 친구들과 달리 그는 중국 쑤저우의 둥우 대학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헨드릭스 대학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신시내티 미술학교에서 10여 년간 유학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자신의 미국체험담을 담아 삽화를 곁들인 에세이집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를 출판했다. 이 책은 한국인 최초의 영문 단행본이라고 한다.

 

귀국 후 그는《동아일보》 창간에 뛰어 들었고, 《동아일보》 조사부장, 《조선일보》 발행인 겸 편집인, 《조선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해외 특파원, 한국 최초의 세계기자대회 참가자, 연재만화가, 기획자, 편집자, 번역가, 사전편찬자였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들도 남겼다. 한국 최초의 언론학 개론서 『신문학』(1924), 뉴미디어 해설서『라디오』(1927), 한국인 최초의 한영사전『최신선영사전』(1928), 영어 학습서『영어독학』(1926), 번역서『한문학 상석』『』『중국문화사』『삼국지연의』『서유기』『금병매』『열국기』, 해외여행 체험을 담아 『미국 인상기』『중남미 기행』등의 책을 썼다.

 

이 책은 김동성의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1916), 《매일신보》의 <미주의 인상>(1918)『동양인의 미국 인상기』에 대한 미국 언론 리뷰, 해설 ‘문화번역가 천리구 김동성, 그 동서 편력의 첫 화첩’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1월의 어느 아침, 우리의 기나긴 여행도 드디어 끝이 가까워졌다. 오전 늦게 멀리서 육지의 모습이 보였고, 해안 언덕의 윤곽이 눈에 들어 왔다. 누군가 우리에게 뉴욕 시에 다가가고 있는 거라 알려 주었지만, 우리는 도시가 어떻게 언덕 위에 있는 건지 의아할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놀랍게도 뉴욕이었다. 뉴욕의 마천루들이 우리의 맨눈에는 길게 늘어선 산맥처럼 보였던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고국에서 우리의 신들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맞이해 줄 안주인에 대한 인사와 존경을 담아 우리는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우리의 미국 여행 중에서

 

지구를 반 바퀴 도는 두 달 간의 긴 항해 끝에 다다른 신천지의 첫 인상이 몹시 놀라웠을 것이다. 뉴욕의 거대한 마천루를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의 지식인이 어떻게 느꼈을지 그 놀라움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비록 무생물이지만 자유의 여신이기에 뉴욕의 안주인이라니. 역시 예의를 아는 유머 감각 넘치는 조선 청년이다. 새로운 배움을 위한 설렘, 기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미국을 보며 ‘왔노라, 보았노라‘를 외치는 청년의 기대감으로 가득 찬 글 속에는 콜럼버스보다 더 행복한 탐험가의 면모도 보인다.

 

소음과 사람들과 건물에 대한 흥미로움도 감추지 않는다. 미국에 대해 품었던 꿈과 상상은 현실과 달랐다며, 특히 높은 건축물에 대한 놀라움을 표한다.

 

길 양쪽에 서두르는 군중들, 끊임없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덩치 좋고 키 큰 교통경찰들, 자동차, 전차, 지면으로, 고가도로로, 심지어 지하로 다니는 차들, 온갖 종류의 탈 것들, 경적 소리, 덜컹대는 소리, 그 밖에 천 가지 다른 것들이 현대 미국 도시에는 동시에 존재했다.(62쪽)

 

보면 볼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부족함과 고국의 부족함을 깨달았다는 김동성은 미국여행을 즐기며 새로운 풍물을 눈에 담는다.

여름날의 푸른 들판, 겨울의 눈 덮인 빈터, 가금류의 울음소리가 있는 미국의 시골 생활에선 한국의 고향 땅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느낌에 푸근해하기도 한다. 자연이 온대 지방의 세상을 거의 닮은꼴로 만들었다며 감동하기도 한다.

상당한 실망을 안겨준 장소라며 시골 교회의 신앙심을 꼬집기도 한다. 사느라 바빠 주중 기도회에 나오지 못하는 신앙심을 지적하는 열혈 조선 청년의 모습이다.

 

아버지나 삼촌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장점을 살려 독립하는 자녀 교육의 훌륭함에 매료되기도 한다. 진정한 가정은 한 집에 머무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신을 경외할 줄 알고 서로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평화로운 가족으로 이루어지는 거라며 감탄하기도 한다.

 

춤이 최고의 여흥이고 경쾌함을 선물하지만 고국에서는 점잖은 이는 아무도 춤추지 않기에 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재미있다. 춤이 대단한 신체운동인 것은 사실이나 남녀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춤에 대한 상식이 만만치 않음도 드러낸다.

 

춤을 비난하는 것은 잔혹한 일인가? 언젠가 우리 아내가 무도회장의 아무나와 혹은 모두와 춤을 추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이 평등한 권리의 시대에 우리가 뭘 어쩔 수 있겠는가? 그녀의 취향은 어떨까. 투스텝, 왈츠, 폭스트롯, 그리즐리 베어, 버니 허그, 와들, 토들, 아니면 그냥 평범한 탱고일까? - '춤‘ 중에서

 

다양한 자동차와 사고위험에 대한 논평, 옷, 개구리 다리, 사교, 우편배달부, 사랑, 여성참정권, 대학사교모임, 대학생활, 야구, 대통령, 자유, 남부, 유명한 미국인들, 작가들, 공공도서관, 신문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예리한 관찰과 분석, 유머까지 더해 풀어냈다.

 

그의 책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도 흥미롭다.

 

기개가 가득하며, 두 눈은 차분하고,

황금의 가슴을 지닌 지극히 현명한 청년,

우리의 김동성 씨!

엉클 샘의 민족이여, 친절히 대하라,

그대들의 친절함을 다해, 설사 거짓이 될지라도,

그를 존중히 대하라! -매리 맥밀란 「머리말

 

캔자스시티 지역 조간신문인 <캔자스시티 스타> 1916년 2월 12일자에 신간소개 된 글이다. 정확한 판단과 안목으로 실제 있는 그대로의 서양 문명에 대한 논평이며, 기발하고 건전한 유머라며 기고하고 있다.

 

일본인의 횡포를 보고 의도적으로 일본 유학을 배제하고 중국을 거쳐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는 점, 이전에 개성소년의 교육을 위한 한영서원을 세우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고 교장 윤치호를 찾아갔다는 점에서 개성에 대한 자부심, 계몽과 교육에 대한 열의를 볼 수 있다.

 

미국의 축적된 지적 분위기, 선조들의 곤경과 헌신 위에 이룩된 고도의 미국 문명에 대한 놀라움에 가득 찬 글들이 가득하다. 미국 친구들이 보여준 환대와 배려에 대한 감사와 감탄도 가득하다.

 

조선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겪고 해방,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이야기는 늘 눈물겨운 이야기인데, 김동성의 글에서는 호탕한 기개와 자유로운 고국에 대한 갈망, 계몽을 위한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가난했던 시기, 가장 힘들었던 시기, 울분으로 가득했던 시기이기에 그의 미국 유학이 주는 의미는 남달라 보인다.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선택이기보단 조국의 발전을 위한 필연의 선택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세계를 돌아보고 배우며 깨친 것을 조국에 와서 알리고 가르치려 한 100년 전 선조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 벅차다.

100년 전 뉴욕을 거닌 조선 청년의 포부를 알기에, 그의 감격과 그의 인상이 어땠을지 얼핏 짐작이 간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러운 김동성. 언론인, 만화가, 번역가, 관료, 정치가, 사전편찬가, 각종 저술가, 선각자적인 삶은 그에게 숙명이었을 것이다. 문화 충격을 이겨내며 낯선 문명과 당당하게, 때론 유머 있게 조우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자랑스런 선조의 모습을 알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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