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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빨강책방의 수다, 이동진과 김중혁의 책 사랑방…….
인기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은 적이 없기에 궁금했던 내용이다.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기에 대부분의 독서가들이 이리도 열광할까.
책읽기를 수십 년 지속해도 질리지 않는 오락이라는 이동진과 노블리스트 김중혁이 함께 대화로 풀어 낸 일곱 권의 소설에 대한 수다다. 두 남자의 책 테라피가 있는 소설 사랑방 같다.
가장 인상에 남는 이야기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다.
이안 감동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스테디셀러 '파이 이야기(얀 마텔 작)' 가 원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소설로 맨 부커상을 수상한 것도.
저자인 얀 마텔이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기 저기 다닌 곳들이 흥미롭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런 인생 여정이 모험 가득한 인도 소년의 표류기를 그려내게 하지 않았을까.
주인공인 열여섯 살 인도 소년의 이름은 파이다. 파이는 수학에서 무한소수의 대표 주자인 원주율을 말한다. 무한소수인 파이처럼 소설도 끝없는 메타포들로 둘러싸인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인도의 정세 불안으로 동물원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캐나다로 이민가기로 결정하고 동물원에 팔아버릴 동물들을 데리고 태평양을 횡단한다. 마리아나 해구 근처에서 태풍을 만나 배는 난파되고 가족들과 동물들도 잃게 된다. 겨우 정신을 차린 파이에게 남은 건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뿐 이었다. 이후 ‘리처드 파커’와 227일간 태평양을 표류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파이가 바다를 표류하다가 섬에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로빈슨크루소》를 연상시켰다. 벵갈 호랑이, 구릿빛 인도 소년, 227일 간의 태평양 표류, 그럴듯한 이야기, 환상적인 영상들, 눈 앞 가득 무한대의 블루빛깔들의 향연은 무한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든 장면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었는데…….
혼란의 ‘카오스’에서 질서의 ‘코스모스’를 읽어내려고 하는 것이 종교라고 말할 수 있죠. 그리고 의미를 파악할 수 없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종교의 성격과 이 소설의 작법이 사실상 같다고 생각해요. (217쪽)
무한소수처럼 소년의 이야기도 끝날 줄 모르는 체험담이다, 여러 종교 이야기도, 이야기의 생성도 무한대로 놓아 버린다.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마지막 부분에서 파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후에 일본 보험회사 조사관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어느 쪽이 좋은 지 선택하라는 건, 독자들에게도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의미로 들린다. 자신들의 파이 이야기를. 이렇게 파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무한대의 이야기다.
《파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영화 <더 폴>이나 <판의 미로> 또는 <빅 피시>를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소설로는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도 권하고 싶구요. 화자와 그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관계가 흥미롭고 그 둘 사이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의미를 즐길 수 있거든요. (234쪽)
소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두 남자는 영화도 권하고 책도 권한다. 난 《파이 이야기》부터 먼저 읽어야겠다. 영화만 봤으니까.
혹등고래의 점프, 날치들의 날아가는 듯한 이동, 무한소수처럼 무한한 바다빛깔의 파노라마,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비유와 암시, 은유가 가득한 다소 철학적인 영화,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인물을 넣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 여러 종교의 화합이 가능한 것도 소년이 인도인이라는 점 때문 등 ‘빨간책방’에서 나누는 두 남자의 《파이 이야기》가 굉장히 섬세하고 광범위하다.
영화를 보고 반했던 작품인데, 이안 감독이 원작을 건드리지 않고 거의 고스란히 가져왔다니, 소설의 디테일을 살렸다니, 원작에 충실하면서 자기 색깔의 영상도 가진 작품이라니, 더욱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
책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통해 숭고하고 윤리적인 속죄 문제를 다룬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우연과 운명, 권태와 허무, 그 가볍지 않은 무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통해 마지막 만나게 될 진실을 이야기한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는 소년의 어떤 꿈에 대한 수다를 떤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에서는 신기한 이야기에 숨겨진 카오스와 코스모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다룬다.
빨강책방의 수다를 들으니, 마치 이동진과 김중혁의 책 사랑방을 엿본 기분이다. 소설과 노니는 두 남자의 유쾌한 소설 수다를 들으니, 소설을 더욱 깊이 있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엔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도......